일다의 방 > 몸 이야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낙태, 기억 저편으로 다시
모두가 겪지만 묻어두는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재은
배너

서른을 넘고 매년 맞이하는 생일 즈음이 되면, 돌아보게 되는 일이 있다. 주위의 생일 축하를 받으며,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축하하지 않았던 생명을 생각해 보게 된다. 10년도 전 일인데 아직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내 삶에서 일어난 큰 사건임이 분명하다.

아직 찬 봄바람이 가시지 않은 날 오후였다. 산부인과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수술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전신마취주사를 놓고 난 뒤, 간호사는 나를 향해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오늘도 또야’”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몸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혼미해져 가던 난, 당혹스러움과 죄책감, 불쾌함으로 뒤범벅된 채였다. 그리고, 절대로 내 인생에 이런 일은 다시 없을 거라 다짐했다.

열아홉 살, 임신 4주의 나는 그렇게 낙태수술대 위에 오르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깨자, 병실 침대 한 켠에 우두커니 놓인 요구르트 한 병이 제일 먼저 보였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바라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안도감도 느꼈다. 나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은 공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계속 눈물을 흘리자 옆에서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도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란 말과 함께. 그는 정성껏 미역국을 끓여 놓았다고 했다. 어이가 없고 조금 분하기도 해서 울었다. “체외사정을 할 수 있으니 임신은 절대 안 될 것이므로, 콘돔은 불필요하다.” 가임기에 섹스를 하던 날, 남자는 그렇게 헛소리를 해댔다. 피임에 관한 지식이 없던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동의했을까 바보 같다고 느꼈다.

둘러보니 나와 같은 수술을 한 듯한 아주머니가 홀로, 한 병실 다른 침대에서 마취에서 막 깨어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던 나와 그 남자를 힐끗 보더니, 좀 노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요구르트를 마셨다. 그다음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나는 그제야 병실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나와 걷기가 좀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다니던 학교 근처였기 때문에 행여 아는 이를 만날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해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낙태 경험이 끝났다. 어찌됐건 난 선택을 했고, 나름대로 그 점에 대해선 당당하고자 했는데, 문제는 당시 사귀던 그 남자 외 어느 누구에게도 낙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거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남자와도 별 이야기를 해본 적 없다.

미역국을 떠먹으며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라고 한마디 선언한 뒤, 서로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 없었지만, 왠지 그가 ‘운명공동체’처럼 밀착되게 느껴졌다. 서로 맞지 않는 구석도 많았는데, 그 남자와 뭔가 비밀을 공유한 ‘특별한’ 사이가 되어갔다.

그 뒤 3년쯤 지난 어느 쌀쌀한 가을날, 친구가 임신을 했다고 알려왔다. 친구는 그의 남자친구가 ‘부양 능력이 없으니 지우라’고 했다며 내게 전화했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그는 병원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고, 난 병원을 예약했다.

병원으로 들어가기 전, 친구는 담배 세 가치를 연이어 피웠다. 담배를 움켜쥔 그 손이 어찌나 심하게 떨리고 있던지, 애처로웠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금방 지나가. 나도 그랬어” 라고 달랬다. 그때가 다른 이에게 낙태 경험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낸 날이다.

잡지를 뒤적이며, 병원 대기실에서 친구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 낙태 수술 시 입는 펑퍼짐한 고무줄 치마를 입은 채였다.

“나, 안 할래. 하더라도 오늘은 아닌 것 같아.”
그는 수술대 위에서 아이를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고, 함께 병원을 나왔다.

다음해 여름, 친구는 배가 산만큼 동그랗게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막길을 오르며, 아이 옷과 신발을 사고 출산을 준비했다. 난 친구가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 무척 걱정이 됐다. 그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어서 부양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집에 놀러 가서 그가 임신으로 힘들어서 미뤄두었던 욕실 청소를 도울 땐, 그의 낙태를 예약하려고 병원에 전화하던 때와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건 또 내가 낙태와 생명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의 하나기도 했다. 어떤 선택을 하건, 난 그 친구 옆에서 힘이 됐으면 싶었다.

그런데 친구가 아이를 낳은 후, 좀 더 정확하게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후, 그 친구와 낙태에 대해 이야기한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야기 못할 일도 아닌데, 아장아장 뛰노는 아이 앞에서 낙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아이와 친구에게 미안한 일이라 느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의 부모도 낙태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이번에야말로 아들일지 모르는데 낙태를 했다”며 불같이 화를 내던 할머니 이외에 잉태된 아이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래로 여동생이 셋인 난, 네 번째 동생이 태어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되뇌며,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부모의 낙태는 물론, 나 그리고 당시 사귀던 남자의 낙태에 대해서도 부모와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생일을 서로 챙기며 축하하고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제 가끔 부모와 맞장구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모두 경험한 낙태에 대해 한번도 이야기 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모두가 겪었는데, 기억 저편으로 묻어 두는 이야기가 돼 버렸다. 우리가 행했던 중대한 선택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화제가 또 있을까. 대체 무엇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언제쯤이면 한 번 이야기해 볼 수 있을는지. 기억 저편은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배너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07/10/18 [22:20]  최종편집: ⓒ 일다
 
물고기 07/10/19 [10:33] 수정 삭제  
  나는 겪지 않았는데....하면서 보다가, 우리 엄니를 포함해서 주위에 친구들.. 내가 낙태를 권했던 아는 언니까지..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네요.
jhm 07/10/19 [18:49] 수정 삭제  
  밖에서 떠드는 낙태 이야기에 우리의 얘기는 없다는 외로운 느낌을 공감합니다.
유오가현 07/10/20 [11:08] 수정 삭제  
  개미를 죽일 때, 밥을 먹을 때, 달걀을 만질 때, 지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 풀과 꽃을 돌볼 때 문득 생각납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이를 몸 밖에서 키울 수 있다면 기꺼이 어떤 수고도 마다 않고 그리 했을 것입니다.
장애인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한 여학생은 이렇게 내게 말했습니다.
"자기 몸이잖아요. 선택할 권리가 있어요."
많이 다른 의견들이 있겠지요. 묻어두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평가를 미루면서요. 기억합니다. 내가 아니면서 나였던 그 존재에 대하여.
... 07/10/21 [15:47] 수정 삭제  
  아직도 제대로 말을 못합니다. 다 잊고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몇 년이나 흐른 뒤 그 생각 안 하면서 웃으며 사는 날이 더 많아졌는데도, 언제나 맘 한켠에는 응어리진 무언가가 갇혀있어서 조금이라도 그게 툭 하고 풀려나오는 날이면 어찌해야할지 모를만큼 무너지곤 해요. 그러면 생각하죠, 아, 나는 여기서 어쩌면 평생 못 벗어날지도 모르겠구나. 낙태를 여성이 짊어지는 도덕적 죄악으로 여기는 시선들을 반대하지만, 제 자신에 대해서는 죄책감 같은 게 남아있나봐요.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쓰여진 글자보다 말하지 못한 행간의 여백들이 더 가슴아팠습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07/10/25 [13:08] 수정 삭제  
  내게도 기억 저편으로 묻어두는 이야기들이 여럿 있어요. 낙태만이 아니라...
사회운동권 안에서 생명존중 같은 단어가 나올 때, 묘한 이질감을 느낀답니다. 어떤 느낌이냐면, 그들은 모른다, 너희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는데, 하는 느낌이에요.
겪어보지도, 고민해보지도 않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가, 매우 메마르게 느껴지죠.

곰돌이 07/11/07 [21:33] 수정 삭제  
  같이 아이를 만들고는 뻔뻔하게 뒤로 빠지는 이기적인 사람들.
아비가일 10/07/15 [13:22] 수정 삭제  
  선택은 당사자만이 할 수 있다... 글쎄요 제가 만난 분들은 자신보다 주변의 강요나 외면 냉대로 낙태를 결단 하더군요. 같은해 두번이나 강요된 낙태를 감행한 여성이 다음엔 누가 뭐래도 꼭 낳을거라며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주의 지멋대로 머리 짧은 여자
조카데이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요가 자세
메인사진
“Health”(건강)이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 단어의 “Whole”(전체)에서 나왔다. 즉 우리는 육체 뿐 아니라 감정, ... / 최하란
반다의 질병 관통기
시간 사용에 대한 자기결정권
메인사진
이따금 쓰던 시계부(時計簿)를 다시 써봤다. 매일 몇 시에 뭘 했는지 기록해 봤지만 새삼스러울 게 없다. 대체로의 ... / 반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집의 정신성
메인사진
집에 대한 지향이 ‘편리’나 ‘효율성’, ‘아기자기’나 ‘예쁜’, ‘세련된’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얼마 가지 ... / 김혜련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한밤중에 밖에 나가는 건 미친 짓이다
메인사진
사실 인도남자가 여자에게 청하는 악수는 성적 뉘앙스가 있다고 들었다. 나는 처음 보자마자 청하는 사람의 악수는 ... / 헤이유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당근이랑 다로랑
정은의 빨강그림판
독자들의 영상 메시지
"일다의 친구를 찾습니다"
메인사진
내가 일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페미니스트들이 만드는 저널, 상업광고 없는 일다의 기사들을 후원해주세요! ... / 일다
최근 인기기사
1.
2.
3.
4.
5.
6.
7.
8.
9.
10.
일다소식
[뉴스레터] 2000년대 중반 ‘여중생’들의
2017년 8월 <일다> 독자위원회 모니터링
[뉴스레터] 외모 품평이 인사를 대신하는
[뉴스레터] 성인비디오 업계 성폭력 피해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