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 ‘피플’(C-town People)시리즈가 오는 11월경 단행본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피플’은 캘리포니아의 가상도시 C-town에 살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몇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한 연작 만화로, ‘사춘기’(단행본으로 2권까지 발간됨)와 더불어 이진경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작가 이진경은 동호회 '익스프레스'와 'PAC'에서 활동하다 1994년 <펜펜>에서 'GETTO JAM'으로 데뷔했으며 데뷔 후 <윙크>와 <나인>에 'PEOPLE' 단편 연작과 '사춘기'를 연재했다. 그녀는 1997년 언더그라운드 성향이 강한 작가들의 작품을 묶은 만화무크지 [MIX]의 편집장을 맡기도 하는 등 언더와 오버를 넘나들며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활동을 해왔다. (이진경 사이트 '퀴어코믹넷' www.queercomic.net) '피플' 에피소드들의 경우 1995년부터 약 8년 동안 (주로) <윙크>와 <나인> 등의 지면에 발표돼 왔으나, 고정적으로 연재되지 못했기에 독자들은 작품 전체를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 같은 단행본 발간 소식이 더욱 반가운 것. 1995년 <윙크>에 발표된 단편 '편의점 사건'으로 시작된 '피플'은 여타 순정만화들과는 차별성이 강한 소재 선택과 회화적 느낌이 강한 입체적 그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피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여성예술가, 흑인, 혼혈아, 게이/레즈비언 등 사회 주변에 위치한 소수자 집단. 작가는 페미니즘적 성향이 강한 여성 조각가, 한국인과 멕시코인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경찰, 편의점에서 일하는 흑인여성 등 각 인물들의 성격과 직업, 취향 등을 면밀하게 설정하여, 이들 각자가 속한 주변부 집단의 속성을 리얼하게 구현한다. 이는 '사춘기'에 등장하는 네 여자아이가 사는 곳과 다니는 학교, 취향, 성격 등의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이처럼 일종의 계층적인 관점에서 사회/문화를 분석하는 시선은 이진경의 작품을 차별화 시킨다. 이진경의 작품세계와 페미니즘 이진경의 작품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페미니즘’이다. 이진경은 '금지된 사랑' 등에서 여성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 한혜연과 함께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로 손꼽힌다. 1990년대 순정만화는 유시진, 이강주, 나예리 등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그 이전의 고전적인 순정 스타일과는 거리를 둔, 일상과 가까운 만화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여주인공들 역시 금세 눈물을 흘릴 듯한 순정적인 '캔디' 캐릭터를 탈피하여 현실 속 여성들의 다양한 특성들을 (어설프게나마) 캐치하게 된다. 그런데 이진경의 경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전제로,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를, 그 중에서도 여성 정체성이 확고한 여성들을 다루었기에 여타 작가들에 비해 한참 더 나갔다고 할 수 있다. '피플'의 애니는 생리대에 시비를 거는 깡패들과 맞붙고, 헬스가 여성들의 몸을 비쩍 마른 몸매로 바꿀 것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헬스장 공사장에 화풀이한다. 다른 주인공 맥스도 애니에 지지 않는다. 얼떨결에 권투경기에 나간 그녀는 하필이면 여성을 때리면서 쾌감을 느끼는 연쇄 폭행범과 권투를 하게 된다. 맥스는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다가 '여자들이 축 쳐져서 마지막 반격을 기다리는 것'이 재미있다는 상대의 말에 발끈하여 발차기를 날리고 만다. 네 여자아이들의 감정과 회고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사춘기'는 1980년대라는 시대를 살아 온 네 명의 개성적인 여자아이들을 그려내, 그녀들을 통해 1980년대를 특징짓는 사건/집단들을 드러냈다는 점, 당시(1997년 연재 시작) 20대 한국 여성들의 성장기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제목 앞에 붙은 'for my fenerzation girls2'에 등장하는 fenerzation이라는 단어는 femi+energy+generation의 합성어로 여성적 에너지를 지닌 2000년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한다. 가상도시의 다양한 여성집단 이야기 '피플'은 미국의 가상 도시를 무대로 하고 있기에 차분한 '사춘기'와는 달리 시원시원하고 이국적인 인상이다. 캐릭터들도 '사춘기'에 등장하는 차분한, 혹은 문제 상황을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는 한국 여자아이들보다 좀더 도발적인 편. 'C-town heritage'에 따르면 C-town은 과거 M.K스미스 부인이 마을의 주부들과 함께 C-town 프루트 주스를 생산한 곳이다. 스미스 부인의 주스 공장은 여성 근로자를 특별히 우대하여, 전국의 여성들이 C-town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스미스 부인 사망 이후 공장은 과일 원산지로 이동하고, 빈 공장은 부랑아와 불법 이민자들의 온상지가 되고 만다. 1990년대 들어 젊은 예술가들이 이 곳으로 모이고 시에서는 빈 공장을 예술가들에게 작업실로 대여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피플'의 주인공 시간강사이자 조각가인 애니가 작업을 한다. 말하자면 여성 사업가에 의해 산업도시로 발전한 '여성적 공동체'임을 암시하는 이 곳에서 지금 여성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하는 것. '편의점 사건'은 조각가 애니의 친구 글로리아 리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글로리아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의 여자였으나 바람둥이 애인을 붙들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 그 결과 극도로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변하고 끝내 거식증으로 죽고 만다. 애니는 또 다른 친구 레슬리가 임신 6개월에 중절수술 하다가 죽었다고 전하면서, 몸에 대한 여성들의 강박을 이야기한다. 애니, 맥스, 그리고 그녀들을 둘러싼 많은 여성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는 C-town이라는 하나의 가상적인 도시의 역사와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짜 맞춘다. 특히 'PEOPLE-MUSIC STYLE'은 음악 취향을 통해 각 집단적 특성을 정공법으로 그러낸다. 랩을 좋아하는 갱스터, 흑인의 영혼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재즈를 좋아하는 편의점의 흑인여성, 영혼을 정화하는 듯한 고급스런 음악(K.D.랭)을 좋아하는 독립영화감독,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섞인 비스티 보이스를 좋아하는 애니. 작가는 이 같은 내용을 배경에 신문기사와 사진을 오려 붙이는 등 다양한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그려냈다. 현재 '피플'은 단행본(1권 9월 발간, 2권 11월 발간 예정) 수요 파악을 위해 책을 구입할 독자들의 예약주문을 받고 있다. 예약은 만화기획사 코믹팝 엔터테인먼트(comicpop.com/jk) '피플' 예약/주문란에 이름과 연락처, 각 권 예약부수를 적으면 된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