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겁부터 내면 안되잖아요"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사는 이라나

이희연 | 기사입력 2008/04/28 [16:30]

"힘들다고 겁부터 내면 안되잖아요"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사는 이라나

이희연 | 입력 : 2008/04/28 [16:30]
참 힘든 만남이었다. 약속이 여러 사정으로 어긋나고, 만나기로 한 장소가 일요일이라 문을 닫는 바람에 길에서 헤매는 해프닝도 겪은 후, 찻집은 많으나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는 대학로에서 그나마 경사로 있는 찻집을 발견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 이라나씨    © 이희연
“저랑 같이 다니려면 헤매는 것을 각오하셔야 해요.”

 
이미 익숙한 상황이라 괜찮다고 했더니, “날씨가 좀 따뜻하면 밖에서 이야기해도 좋을 텐데” 하며 아쉬움이 남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라나(27)씨는 골형성부전증 장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몸집이 상당히 작다. 처음 통화했을 때 목소리 역시 굉장히 어린 목소리여서, 나이가 한참 어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직접 만나본 그는 보기보다 나이도 많았을 뿐 아니라, 숨은 힘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보기보단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나 봐요. 아무래도 몸집이 작고 장애를 지니고 있다 보니 더 그렇게 보이겠죠. 길을 가다 보면 반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럴 땐 상대방을 있는 힘껏 노려보면서 한마디 해요. 그럼 그 사람들이 다시 태도를 바꾸더군요. 특히 아저씨들이 심한 편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나이가 어려 보이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은 예의가 아니잖아요?”
 
콜센터 상담원 직, 여섯 번째 면접을 보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녀가 참 씩씩해 보인다. 라나씨는 무슨 일을 할까?
“저요? 전 국민연금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해요.”

 
상담원 일이 많이 힘들다던데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됐을까. 라나씨는 장난스럽게 “음. 목소리엔 자신이 있었어요” 하더니 웃으며 “농담이구요.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라고 말한다.
 
“왠지 목소리만으로 사람에게 어떤 정보를 줄 수 있고, 그 사람의 상황도 알 수 있거든요. 게다가 참 여러 사람을 접할 수 있으니까, 처음엔 괜찮겠다 싶더라구요. 일이 그리 힘든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저 여섯 번째 면접에서 붙은 거예요. 자신이 있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자꾸 떨어지고. 오기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면접을 본 다음에, 일을 시키고는 싶은데 시설이 안 되어서 일을 못 주겠다고 말했던 담당자한테 메일을 보냈어요. 일단 한 달만 일을 시켜달라고, 시설이 없어서 힘들면 내가 그만두겠다는 내용이었어요.”
 
담당자가 그 메일에 반응을 한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라나씨는 원래 한 이동통신업체의 상담원 직을 응모했지만, 국민연금 콜센터가 같은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었고, 1층엔 장애인화장실도 있어 편할 것이라고 하면서 국민연금 상담원 시험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합격, 지금은 일이 꽤 능숙해졌다.
 
“콜센터 상담원은 아웃소싱이잖아요. 그런데 관리업체가 바뀌어도 상담원은 바뀐 업체의 소속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아직은 재계약 걱정 없이 일하고 있어요.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이긴 한데. 그것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이고. 일하기 힘들다고 겁부터 내면 아무것도 안되잖아요? 환경이 나쁜 것이 이 일뿐만 아니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라나씨의 성격이 드러나는 얘기였다.
 
“저뿐 아니라 많은 장애인들이 일을 좀더 쉽게 구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참 그게 어려워요. 이동도, 교육도, 취업도 어려우니 자꾸 장애인들이 집에 있게 되고요. 그러니 가난해지고 무능력하다는 편견을 받게 되죠.”
 
비장애인 친구들 통해 쌓은 ‘간접경험’도 도움이 돼
 
▲ 이라나씨    © 이희연
그녀 역시 지금처럼 혼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라나씨는 강릉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반학교를 다녔다. 특수학교에 가는 건 어머니가 반대했다.

 
“원래는 특수학교를 보내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상담을 하러 갔는데 아이들이 잘 넘어지고 부딪히고 하니까 겁이 나신 거죠. 아시다시피 제 장애가 뼈가 잘 부러지는 장애인지라, 아이들끼리 노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아버지랑 싸우면서까지 일반학교를 보내신 거예요. 어머니가 거기 보내 병원신세를 지느니, 차라리 애를 업고 다니겠다 하시면서요. 어머니 힘이 컸죠. 어릴 땐 얼마나 엄마가 무섭게 저를 키우셨는지 몰라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겠죠?”
 
학교 가는 날과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비슷했던 생활이었지만, 친구들은 정말 많았다. 아주 어릴 때는 물론 놀림을 받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친구들이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녀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은 친구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쌓기도 했다. 라나씨는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내가 ‘도울 수 있다’는 것
 
대학에 진학하면서 드디어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 그녀는 지금도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처음 집 나올 때는 아버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를 좀 과잉보호 하셨어요. 장애 있는 지식을 둔 부모님들이 다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는 좀 심하셨죠. 그런데 제가 전국백일장대회에서 장원을 하고 서울의 한 대학에 특차시험 볼 기회가 생겼어요. 아쉽게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아버지 인식이 좀 바뀐 듯해요. 다른 학교에 합격하고 집을 나오게 되었을 때, 그리 반대를 안 하시더라고요.”
 
기숙사 방이 부족해서 정문 가까운 곳에 집을 얻었는데, 혼자 생활하는 것 자체보다는 수동휠체어를 타고 넓은 학교를 오가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전 인복이 많아서인지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던 그녀가 장애인 친구를 만난 것도, 다니던 학교에 기숙사가 신축되어 입주하면서부터였다. 그것은 참 좋은 경험이었다.
 
“맨날 도움을 받던 제가 같은 방에 있는 친구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좋았고. 그때 기숙사 생활이 아직도 기억나요.”
 
대학을 졸업한 후엔 강릉으로 와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했다. 공공근로도 하고, 다른 일도 해보면서 돈을 모아 사이버대학에서 다시 사회복지 공부를 했다. 덕택에 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간사로 일하기도 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그 일을 그만두었지만, 이번에 그 센터에서 영화제를 하는데 회사도 휴가 내고 가겠다고 하니 그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생활은 할 만해요?”
 
“네, 좋아요. 그런데 집값이 너무 비싸요. 장애가 없으면 좀 싼 방이라도 구할 수 있지만 장애가 있기에 계단 있는 집은 안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굉장히 집을 구하기 어럽더라구요. 다른 거야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아, 맞다. 지하철역 환승장에 있는 리프트가 절 어렵게 해요. (웃음) 환승장에는 리프트만 있는 데가 아직 많아요. 고장 나도 안 고쳐놓고. 정말 1인 시위라도 할까 봐요.  그럼 지지방문 오실 거죠?”
 
라나씨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그 말에는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아픈 현실이 담겨 있는 듯했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독립을 하고 싶어도 너무나 제한된 조건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다. 이동에도 아직 많은 제약이 따르며,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 또한 변화시켜야 할 것이 많다.
 
장애인야학, 구마다 하나씩 있었으면…
 
그녀는 현재 노들장애인야학에 신입교사로 신청을 해 둔 상태라고 했다.
 
“2학기부터 자리가 있으면 그때 수업을 해보려고요. 솔직히 걱정도 되요. 지금 집과 거리가 있어서. 그래도 해보고 싶었어요. 주위에서 권하기도 하구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같이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몰랐던 여러 가지를 알게 되면서 저도 모르게 쌓았던 벽을 깨는 거죠.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요.”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교육은 권리에요. 장애를 이유로 뺏으면 안 되는 권리죠. 그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게 만들고, 무능하다고 하는 것이 참 말도 안 되요. 야학의 경우도 좀 가까이 있어야 해요. 정규교육이 안 되면 그렇게라도 배우겠다는 건데. 그리고 일종의 탈출구 같은 건데.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정말 구마다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머리 위로 반짝 햇볕이 드리웠다. 라나씨의 말들이 반짝하고 빛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면 나의 착각일까?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려나가고 있는 그녀는 지금 한창 빛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빛을 좀더 오래 간직하려면 좀더 많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장애인 야학: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장애성인들을 위한 교육공간으로서 야학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야학은 못 다한 공부를 하는 곳이자, 꿈을 키우는 곳이고,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장애인들이 많다. 그러나 야학의 필요성에 비해 그 수는 매우 적고 규모 또한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다. 야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너무나 미비하다. 교육열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정말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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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의꽃 2009/08/11 [15:22] 수정 | 삭제
  • 고맙습니다.
  • 원주 2008/07/14 [19:58] 수정 | 삭제
  • 작년여름에 원주장애인자립센터에서 강릉으로 놀러간 휠체어 탄 언님니다...
    라나씨 정말 넘 멋있어요. 서울에 갔다고 강릉 소장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원주 장애인 영화제때 말이죠)공부도 더 많이 하시고 일도 많이 하세요...
    너무 예뻐요.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날날이 있겠죠.
  • 5월에 내린 눈 2008/05/09 [00:31] 수정 | 삭제
  • 불만이 가득한 체 환경 탓을 하는 제가 너무 무능해보입니다.
    고맙고 감사해요 ^^*
  • 맛있는생선 2008/05/04 [12:05] 수정 | 삭제
  • 무심코 줄거리에 살짝 나온 '여섯번째 면접' 이란 말에 "요즘 그정도면 보통이지" 라고 코웃음 치고 보다가, 내용을 다보고 난후 내가 좀 부끄러워 졌습니다. -_- 이런 멋진 글들 더 많이 남기시고, 보기좋게 활동하셔서, 저 같은 무지한 실수를 하는 사람들에게 보기 좋게 한방 먹여주시길 바래요. "Have a good luck for you"
  • mimimiki 2008/05/03 [02:33] 수정 | 삭제
  • 밝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잘 모르지만 친해지고 싶은데요? ^^ 저도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 2008/05/01 [21:57] 수정 | 삭제
  • 힘들다고 겁부터 내면 안 되죠.
    사회 구조를 바꾸려해도,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욱 더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거니까요.
  • rana 2008/05/01 [13:03] 수정 | 삭제
  • 아이크;;; 제가 막 두서 없이 주저리 늘어놓은 말이 작가님 통해서 너무 빛이 나는데요^^ 감사합니다. 저한테 큰 경험이였고 좋았어요~!! 그리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또 뵈어요~!!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 2008/04/29 [17:03] 수정 | 삭제
  • 여섯번째 면접을 보고 메일도 써야하는 사회가 안타깝지만, 여섯번째 면접을 보고 메일도 쓰는 라나님은 정말 멋집니다. ^^ 그렇게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아마 어머니의 역할이 컸을 것 같다는 짐작도 드네요. 개인적으론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한번 더 새기게 되었습니다.
  • 녹스 2008/04/29 [02:01] 수정 | 삭제
  • 연상하게 되는 상황들과 곱씹어보게 되는 이야기들이군요.
    답답한 세상에서, 시원한 사람을 만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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