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절대 더러워져서는 안 된다”

여성주의가 가부장제와 손잡을 수 있나

윤하 | 기사입력 2003/07/28 [00:30]

“여성들은 절대 더러워져서는 안 된다”

여성주의가 가부장제와 손잡을 수 있나

윤하 | 입력 : 2003/07/28 [00:30]
지난 해 여성주의 진영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을 불문하고 무조건 여성후보를 지지할 수 있는가’라는 이슈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이 논쟁 속에서 급기야 “여자도 더러워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그룹이 등장했고, 그것을 실천해 보이기라도 하듯, 이계경 전 여성신문사 사장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한나라당에 입당을 했다.

이제 ‘여자도 더러워져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여성의 진정한 정치세력화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논함에 있어, 그 원칙을 짚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원칙을 분명히 하고 길을 나섰을 때만이 길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면 호랑이가 된다

우선 여성의 정치세력화란 당을 불문하고 여성들이 정치계에 많이 진출하는 것인지를 질문해 볼 수 있다. 지난 해 논쟁이 바로 이 질문과 관련되었던 것 같다. 대답은 물론 아니다. 이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안기부나 보수당에 들어갔던 지난 날의 진보인사들이 모두 호랑이가 되었다는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개인은 거대한(그리고 정치적 목적이 분명한) 집단 속에서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또 여성대통령 배출과 여성인권 향상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물어 볼 수 있다. 그것 역시 아니다. 예를 들어, 인디라 간디와 같은 여성수상을 배출한 인도의 경우, 오늘날도 여전히 결혼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남편이 아내를 불태워 죽여도 처벌 받지 않는 형편이다. 이런 이유로 죽어가는 여성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며, 그만큼 그 곳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다.

 
결국, 여성들의 인권이 폭넓게 신장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을 개혁시킬 수 있는 사회저변의 여성들의 힘이 탄탄하게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여성대통령 배출은 여성인권신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 여성이 보수당에 속한 사람이라면 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패거리 짓기는 자매애가 아니다

두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을 불문해 사유할 수 없고, 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대를 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그러한 것은 ‘자매애’가 아니라 ‘패거리 짓기’라고 불려야 옳다. 더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기존의 가부장적 권력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권력을 쥐는 것, 그것은 ‘가부장주의’의 변형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란 이름을 빌어, 또 ‘자매애’라며 여성들도 더러워지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거부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자라면, 더더욱 여성들이 줄곧 이러한 ‘패거리짓기’ 관행에 희생되어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가부장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패거리 짓기’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조금이라도 확대시키기 위해서라면 출신고장, 학연, 지연 등 인맥을 가리지 않고 이용하며, 이러한 인맥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을 자신의 정치세력 공간에서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꾸준히 권력구조를 재생산시켜 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남성들조차 돈 없고 배경 없고, 학벌 없는 이들은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정치적 관행을 청산하자는 진보적인 주장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여성주의자 그룹이 도리어 여성주의의 ‘자매애’를 함부로 들먹이면서 ‘패거리짓기’를 하자고 주장한다면, 이는 시대를 거스르는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소수자, 차별받는 모든 세력과의 연대

여성주의 진영이 함께 어깨를 걸어야 할 사람들은 ‘정치적 색채를 불문한 여성들’이 아니다. 가부장주의 남성권력의 부정과 폐해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진정으로 우리가 연대해야 할 세력이다.

 
지난 날 미국의 백인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펼쳤던 여성운동은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 당시 백인여성운동은 인종차별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사회통념으로 존재하고 있던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백인우월성을 피력하면서 ‘백인여성들에게 선거권을 달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들은 진정한 여성해방운동이 다른 소수집단의 여성들은 물론, 가부장제 하에서 차별 받고 있는 모든 세력들을 아울러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다른 소수집단의 정치세력화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며, 가부장제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그룹들과의 연대를 통해 나아갈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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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샐포 2003/08/06 [23:59] 수정 | 삭제
  • 다른 곳에서 이 글을 읽고, 일다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주의를 넘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고민과 열정이 느껴집니다.
    세상이라는 이 외나무다리 위에서
    때론 비틀거리기도 하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균형을 잃거나 쓰러지지 않고
    건너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정치학도 2003/07/30 [18:54] 수정 | 삭제
  • "여성은 절대 더러워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치명적인 모순이 하나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논리대로라면 여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더러웠스니까요. 여성은 오래전부터 가부장제와 손잡고 있었습니다. 왜 이 점을 간과하시나요?

    한총련이나 민주노동당같은 가부장제가 지극히 강한 민족운동진영하고 여성운동은 오래전부터 손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보수적인 사람들보다 민족운동진영이 더 군사주의적이고 가부장제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9.11때 민족운동진영 사람들이 민간인 수천명이 죽은 테러에 대해 얼마나 기쁘게 생각했습니까? 민족운동진영이 비판하는 보수적이라는 사람들중에 민간인 수천명이 죽는 군사적 폭력(테러/전쟁)을 보고 기뼈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도대체 보수주의자가 더 진보적인 건지 민족운동 진영이 더 진보적인 건지를 모르겠습니다.

    왜 똑같이 가부장제와 손잡는데 이계경씨만 비판을 받아야합니까? 자기가 믿는 신념에 따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가 좋다는 민족주의자들과 한나라당과의 차이는 뭔가요? 한나라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 군사적 폭력을 지지하면 안되는 건가요? 진보(?)진영의 가부장제와 손잡는 것은 옳고 보수진영의 가부장제와 손잡는 것은 나쁜 일인가요?

    이계경씨를 비판하려면 여성운동은 더 이상 민족운동과 손잡지 말아야합니다. 특히 평화운동에서 그들과 연대하는 것은 더더욱 피할 일입니다. 민족진영이 평화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 아닌가요? 반전이라는 필요에 따라서 민족진영 군사주의자들과 전술적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신다면 저도 여권신장이라는 필요에 따라 보수주의자들과 전술적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여성은 깨끗한 상태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부장제와 손잡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여성은 민족진영과 연대함으로써 이미 더러워져있었고 가부장제와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밥탱이 2003/07/29 [15:21] 수정 | 삭제
  • 많이 헷갈려했었는데
    방향을 잡고 원칙을 환기시켜주는 일다,
    고맙습니다.^^
  • 자매 2003/07/29 [11:24] 수정 | 삭제
  • 세게 나가는 일다, 맘에 들어요!
  • 호랑이도호랑이나름 2003/07/28 [23:49] 수정 | 삭제
  • 논의가 너무 단순한 구도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모두가>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호랑이굴에 들어가면 호랑이가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요.
    하지만, 저는 각자의 가장 자신있는 포지션에서 자신의 운동을 풀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를 시도하는 여성들이 있다면 그 여성들 중에 호랑이가 되기를 염두에 둔 여성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도 당연히 존재할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조건, 단순한 정렬로 정치에 접근하는 여성들을 틀짓는다면
    우리의 상상력은 여기에서 멈추게 되는것 아닌가요?

    여성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일수 없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묶이기도 하며 동시에 묶이지 않기도 한>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보다 복잡한 관계의 그물이 존재하는 것이라 할때,
    가부장적인 시선이 아닌 여성들 내부의 목소리를 조금더 세심하게 살필 시간이 필요한것 아닐까요.

    여성이 만드는 정치는 전혀 다를수도 있으니까요.
    남성적 상상력에 국한된 "호랑이굴에 들어가면 호랑이가 되는/되지않는", 혹은 "생활정치", "여성스럽고 어머니스러운" 정치가 아니라, 아주 다른 말과 느낌, 힘이 묻어나는 그런 정치.. 말입니다.
  • LB 2003/07/28 [19:31] 수정 | 삭제
  • 여성을 위한 정책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요.
    선거 때면 특히요.

    내가 지지할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당이 밀어줄만 한지.
    여자가 나오면 가능하면 여자가 되면 좋겠단 생각도
    얼핏 있지만. 보수당에서 나온다면?
    머리수 채우는 거에 족해서 뽑아주는 게 나으려나.
    그 당의 정책은 나를 더 억압할 수 있는데도?
    근데 이 때의 나는 모든 여성전반은 아닌 것 같고,

    여성정책이 보육이나 호주제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나와 관련된 여러가지 정책들이 있지만
    여성이란 이름 안 달고 나와있을 때,
    그걸 뺀 것만이 여성정책인 건지 모르겠더군요.
    선거 때면 나 자신이 여러 동강 난 기분이 들어요.

    일다기사 보면서 그런 갈등이 조금 해결책을 찾는 것 같네요.
    여성정책이란 걸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해야 겠죠.
    여성주의 그룹은 남성그룹과 다르기 때문에 지지하는 거잖아요.
    남성그룹은 생물학적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내가 여러 동강 날 필요까지는 없었다 싶네요.
    비주류를 포용하지 못하는 정당이나 정책은 드러나잖아요.
    그런 그룹이 여성을 위할 수 있다곤 생각안해요.
    여성들이 그런 그룹에 들어간다면?
    들어간 여성들만 명예남성이 되겠죠.
  • 소이 2003/07/28 [14:34] 수정 | 삭제
  •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기사 보다가 웃음이 났어요. 그들이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호랑이가 되었다는 게 우습지만, 사실이니까요.

    이제 그들 중에 '그녀들'도 끼려고 하는 것일까요. 여성주의자가 가부장제의 더러움에 길들여지는 것이 정당화될 순 없죠. 사실은, 저는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굴 들어간다는 사람들이,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는 처음부터 호랑이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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