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대신 그녀가 택한 것

인간성에 대한 남성감독의 실험 <도그빌>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3/07/29 [22:07]

휴머니즘 대신 그녀가 택한 것

인간성에 대한 남성감독의 실험 <도그빌>

김이정민 | 입력 : 2003/07/29 [22:07]
도그빌은 자연 속에 묻힌 작은 ‘공동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민들은 도그빌을 공동체라 부르고 싶어하지만, 실상 이곳은 인간군상의 각기 다른 욕망과 폭력성을 대변하는 이들의 집합소다. 이름부터가 애초에 공동체라 하기엔 의도적으로 너무 추하지 않은가. 개마을(dogville), 개의 마을(dog's ville)이라... 냉소적 의미가 가득 풍기는 이 이름은 <도그빌>이라는 영화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축약해서 보여준다.

다 합쳐야 8가구 밖에 살지 않는, 도심에서는 멀고도 먼 산골 마을. 우리는 쉽게 도심에서 떨어져 있을 수록 소박하고 순진한 선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물질의 결핍도 정신적 풍족함으로 대체되는 파라다이스 인양.

<도그빌>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레이스에게 톰이 마을을 소개할 때부터 그러하지만, 그들은 ‘값싼 유리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고’ ‘시장이 멀다는 것을 이용해 8가구 밖에 안 되는 주민들에게 엄청난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들이다. 그레이스는 그들을 향해 ‘천사’같다고 말하지만, 이 평온한 마을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애매모호함을 본다.

권력이 없는 자, 가난한 자, 낮은 계층의 사람들,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선한 인간’으로 말할 수 없듯이 인간 내부에 양존하는 선과 악은 상황에 따라 뒤바뀌게 마련이다. 여성억압이 계층의 문제로 모두 설명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가진 주변성이 폭력성에 대한 면죄부도, 모든 선한 가치에 대한 전제도 될 수 없다.

평범한 선악의 존재 <도그빌>

<도그빌>은 연극적인 무대와 구성으로 총 10장에 걸쳐 인물들의 심리적 긴장과 갈등을 점층법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레이스가 마을에 도착하는 풍경과 마을을 떠나는 모습은 너무 다르지만,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8장은 관객들을 그 소용돌이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처음으로 구즈베리밭을 가는 일이 그녀에게 주어졌을 때, 그녀와 마을사람들은 함께 기뻐하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만, 결국 그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방향을 향해 영화는 치닫는다.

<도그빌>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건 마을회관에 모여 회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결정하려 한다. 하지만 그 협상의 과정을 가만히 보면 서로의 이해관계에 맞게 타협하는 모습일 뿐이다. 그레이스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 역시 그러하다. 애초에 그들은 그녀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지 못했고, 대가를 바라고 그만큼의 보상을 원했다. 상당한 돈이 걸린 그녀의 현상수배가 붙었을 때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의 더 큰 보상과 희생을 요구한다. 그 돈을 그들이 받는 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도그빌>사람들이 보여주는 폭력성과 욕망은 평범한 인간 군상의 그것이다. 그들은 특별히 더 착하지 않듯이 그들이 특별히 더 사악하여 그레이스에게 무자비했던 것은 아니다. 도그빌은 폐쇄된 공간이면서 인간 사회의 축약된 모습이다. 그레이스가 이 마을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들이 변한 것이 아니다. 그레이스는 단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인간성의 다양한 면모를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도그빌> 가장 사악한 이빨을 드러내다

그레이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극대화되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여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감지하면서부터다. 그녀를 향한 남성들의 욕망이 살짝 덮여있던 껍데기를 들추고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글로리아에게 보내지던 끈적끈적한 시선이 그레이스에게로 옮겨오고 그레이스의 ‘여성’으로서의 자원을 그들은 무자비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드러내놓고 마을 남자들이 그레이스를 밤마다 성폭행하기 시작했을 때, 이것은 인간성에 대한 실험의 수준을 넘어선다. 탈출하려던 그레이스를 다시 잡아서 목에 개목걸이를 만들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것이 그레이스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한다. 개목걸이를 해놓고 “오~그레이스”라고 안타깝게 부르는 소리는 소름이 끼친다.

<도그빌> 속으로 ‘여성’을 들여보내고 성별화 된 학대와 폭력으로 인간성을 실험하려는 시도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감독은 아마도 가장 극한 상황에 끝까지 간 고통과 억압을 보여주기 위해 ‘젊은 여성’을 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라스폰트리에가 그녀를 학대할 때만 그녀가 여성임을 떠올리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영화에서 성별화된 폭력과 고통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나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녀에게 가해졌던 억압과 폭력은 에필로그에 거칠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모종의 ‘해결’을 시도하게 된다.

선악을 모호하게 만드는 그녀의 복수

그레이스는 갱단 보스의 딸로 돌아간다. 아마도 그녀는 갱단 보스인 아버지의 무자비함에 질려 집을 떠났던 것 같다. 아버지의 악함을 비난하는 그녀는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겠노라고 말한다. 그레이스와 아버지는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쏟아내며 언쟁을 벌이지만, 그레이스가 경멸하던 아버지의 권력으로 그녀에게 가해졌던 폭력을 없앰으로써 선과 악, 인간성의 성선, 성악은 모호하게 사라지고 만다.

<도그빌> 사람들이 그녀의 뜻대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결말을 보고도 전혀 동정심이나 측은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레이스에게 가해졌던 억압과 폭력을 제거하는 복수의 통쾌함 때문이겠다. 만약 그레이스가 <도그빌>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 곳에 남았다면 영화는 아주 우스운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결말은 ‘휴머니즘’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끼게 한다지만, 글쎄, <도그빌>은 적어도, 총에 맞아 죽지 않으려면 ‘착하게 살자’는 교훈을 주려는 영화는 아니지 않는가.

이 세계는 정녕 희망이 없는가라고,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조금 거칠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인간사회와 인간성의 나약하고 속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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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다 2003/08/14 [10:15] 수정 | 삭제
  • 연극의 기법을 들여온 새로운 형식,
    니콜 키드만과 배우들의 연기력..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


    악동 라스폰트리에..
    나같은 관객은 푹 빠지게 만들죠.
  • namgi 2003/08/03 [14:30] 수정 | 삭제
  • 인간성에 대한 통찰-쉽게 선의를 품기도 하지만 잇속에 따라 잔인해질 수 있고, 힘을 가졌을 때 가학성을 드러내는,-을 보여줬다는 점에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키드만은, 강인한 정신-인간의 약점을 이해하고, 훌륭한 상담가처럼 다른이의 열등감을 어루만져 주고, 스스로의 연민이나 감정을 통제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하는-을 잘 보여주는 역을 했습니다.
    제가 주의깊게 본 점은 성폭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성폭력은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저지르는 폭력인 만큼 영화상에서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랄 수 있는-여성의 배려와 공감을 성적 동의로 해석하고 이를 강요하는 모습도 사실적이었습니다. (척의 모습에서)
    강간에 대해 그레이스는 크게 분노하지 않고, 다른 고통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을 마지막까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물론 자기를 강간하려는 마지막 남자(존이었던가?)에게 당신이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차피 강간이라는 점을 명확히 말해주는 점에서 사태의 본질은 알고 있지만요. 강간은 이 작품에서 자극적으로 키드만의 고통을 강조해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여성의 강간이 소재로 쓰인 점은 특별한 장치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가학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 이 강간은 등장인물보다는 관객을(저 같은 사람)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여성관객으로서 다른 여성이 화면에서 강간당하는 것을 보는 불편함이죠. 작품상 강간은 나올 수 는 있지만 강간에 대해 다른 소재와 같이 덤덤한 취급을 한다는 것이, 감독을 무디게 느끼게 했습니다.
    결말도 거칠다고 생각합니다. 그레이스의 선택은 관객에게 해소감을 주지만 노동계급, 빈민 계급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전합니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나오는 빈민들의 모습은 영화 속 도그빌 주민들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과 불신은 있지만 계급이나 사회구조에서 파생되는 또다른 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아 오히려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진실은 담고 있되, 여성이나 빈민 같은 소수자에 대한 진정어린 관심은 없다고나 할까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선악을 다룬다지만, 한편으로 각 인간이 처한 사회맥락적인 이해가 없다면 그 인간성에 대한 이해도 손쉬운 냉소과 도맷금의 판단이 돼 버리지 않을까요. 형식적 실험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 등 영화는 괜찮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쓴웃음이 났습니다.
  • 늘보 2003/07/30 [00:14] 수정 | 삭제
  • 그 영화도 막판 가면 갈수록 점점 짜증이 나서..
    내가 좋아하는 뷰욕 이었음에도
    차마 화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는데..
  • 소리 2003/07/29 [22:24] 수정 | 삭제
  • 영화를 보고 싶게 하는 글이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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