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 방으로 인생역전?

고유영아 | 기사입력 2003/07/31 [00:16]

[기자의 눈] 한 방으로 인생역전?

고유영아 | 입력 : 2003/07/31 [00:16]
모두들 ‘학벌’에 목매고 있다. 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매년 사교육비 규모는 늘어만 가고, 조기교육. 조기유학 열풍도 여전하다. 수능시험 때마다 예상난이도와 대비책, 입시일 날씨예측 등 세세한 정보에 이르기 까지 대대적인 보도를 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행태들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 매진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수능시험, 그 한 번의 기회가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가는 순간,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이미 일정 수준까지 보장된다. 대학졸업 후 사회에 진출할 경우, 요직에 오를 가능성은 타대학 출신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다.

회사에서 소위 명문대가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타대’라고 자조 섞인 말로 부른다. 힘든 경쟁을 뚫고 입사했더라도 이미 자신들의 미래는 ‘명문대 출신’의 미래와는 ‘다르게’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임원들의 학교를 보면 죄다 ‘명문대 출신’이다.

‘기타대’ 사람들은 언감생심 샐러리맨의 최고 목표인 임원이 되길 꿈꾸지 않는다. 그저 부장 정도까지라도 승진하고 퇴직하면 작은 가게라도 하나 운영할 수만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한다. 이러니 ‘기타대’조차 못 나온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의 삶이 자신이 나온 ‘최종학교’ 즉 ‘학벌’과 ‘학력’에 의해 철저하게 규정 지어진다.

‘명문대’ 출신들은 말한다. 우리는 ‘자격’이 있다고. ‘학벌’이란 건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고, 그 대가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고.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수능성적이 좋았다는 이유 만으로 평생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규정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실제로 입사 시 요구되는 학부 성적, 어학 성적, 자격증 조건 등을 다 충족하고도 단지 ‘학교’의 브랜드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그들이 자기계발을 위해 기울인 노력들은 ‘학벌주의’에 의해 철저하게 폄하된다.

사실상 어떤 기업에도 ‘인재’에 대한 명확한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명문대 입학생 수 늘리기에 혈안이 된 고등학교처럼 회사 역시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을 많이 확보하는데 열중할 뿐이다. 그들이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지는 검증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진정한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 사람의 ‘학교 코드’가 아닌, 실질적인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해서 제대로 평가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몇 년 동안의 성과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한정하는 새로운 계급제도, ‘학벌’은 결코 유지되어선 안 될 구시대의 유물이다. 자신이 노력한다면 그 시기가 언제든지 간에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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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요 2003/08/02 [10:17] 수정 | 삭제
  • 중학생들 대상으로 대학탐방을 보내준다고 하는데요.

    그 대학이란 게 서울대,연고대,이대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참, 멀고 멀었단 생각이 드네요.
  • 파인애플 2003/08/01 [15:33] 수정 | 삭제
  • 기자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어떤 직장이든 능력을 검증할 기준을 마련하면 되는 것인데, 학벌로 모든 기준을 대체해왔다는 것이 문제죠.
    왜 효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가 체면중시하고 겉모습 중시하는 문화가 만연해있어서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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