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윤하 | 기사입력 2003/04/30 [23:11]

함께 사는 세상

윤하 | 입력 : 2003/04/30 [23:11]
며칠 전, 한 어린이 캠프의 봉사자로서 제주도를 다녀온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일정 속에서 본의 아니게 나는 ‘코끼리 쇼’를 보러 가게 되었다. 평소 동물들을 인간들의 놀이감으로 다루는 동물쇼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에 이런 구경거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차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들의 일정에 그저 따라 다니는 상황이었고,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까지 있어 그 구경을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우리 일행은 쇼장에 도착해 코끼리에게 줄 바나나를 사서 아이들 손에 하나씩 쥐어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관람석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쇼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대여섯 마리의 코끼리들이 나왔다.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코끼리들은 관중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갖가지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장내는 그들의 쇼를 보는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나 나는 쇼를 하는 코끼리들을 보면서 환호를 보낼 수만은 없었다. 거의 모든 코끼리들은 울긋불긋한 리본을 앞발목에 묶고 있었는데, 그것을 그저 장식을 위해 둘렀다고 만은 보이지 않았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족쇄에 의한 상처를 감추기 위해 그것들을 두른 듯한 느낌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코끼리들의 몸 어디에서고 건강한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는데, 거의 모든 코끼리들은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듯한 피부와 혈색에, 몸 곳곳에는 약을 바른 상처들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서식지였던 버어마와는 기후나 풍토에 있어 너무나 다른 이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놀라운 묘기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 속으로부터 북받치는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묘기를 익히기 위해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채찍을 맞아야 했을까.... 결국, 무수히 쏟아지는 박수 소리와 환호성 속에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앉아 있었다.

아무리 구경거리가 없다 하더라도 동물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이런 쇼가 꼭 필요한지에 대해 나는 의문을 갖고 있다. 한낱 인간들에게 작은 웃음을 주기 위해 잔인하게 동물들을 다루는 이런 쇼를 만드는 천박한 상업주의 논리와 그것들을 구경하러 오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모멸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욱이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코끼리 쇼를 즐기러 왔는데, 이런 구경거리가 결코 교육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이것을 본 아이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동물들을 인간의 놀이감으로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내면화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어린이들 사이에서 햄스터나 바다가재 같은 살아 있는 동물들을 뽑는 게임기가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서 살아 있는 동물들을 뽑는 것이 더 스릴 있고 재미있다는 한 어린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어찌 이 아이를 향해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폭력적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잔혹한 게임기를 개발하고 만들어, 버젓이 장사를 하는 이 시대의 상업주의와 어른들이 존재하는데, 그리고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이런 동물쇼를 고안하고, 또 사업이랍시고 구경거리로 만들고,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많은 부모들과 교육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어찌 생명의 귀중함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인간의 생명이란 어떤 이유에서건 귀중한 것이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들 뜻을 같이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즉, 모두들 인간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것을 공감하고, 또 인간들에게 행해지는 잔인한 폭력에 대해 하나 같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만큼 함께 마음 아파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 귀중하다면, 인간과 똑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들, 더 나아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목숨이 모두 소중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새로운 세기를 사는 오늘날, 보다 성숙된 인간의식이 아닐까.

내가 고통스럽다면 다른 생명체들도 고통스러우며, 내가 고통을 느끼는 그것을 다른 생명체들에게 가해서는 안 된다는 이 평범한 윤리를 내면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인간성을 한 단계 진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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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기나이트 2003/05/07 [15:50] 수정 | 삭제
  • 현실화 하기가 mission impossible 이라서 그렇지.
    조금씩 인식을 변화시키는 작전에 비하면 보스가 너무 쎄군요. :D
  • hino22 2003/05/06 [22:35] 수정 | 삭제
  • 동물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꼭 분노하게 됩니다.
    가학성이나 광기같은게 이 나라에 온통 퍼져있는거 같아
    때론 소름도 끼치구요.
    글로 풀어놓은것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
  • 햇풀냄새 2003/05/06 [21:45] 수정 | 삭제
  •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없지요..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보면서 참 맘이 아팠습니다.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제대로 건강하지 않은 병아리가 가져다 줄 죽음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 향내(나나) 2003/05/03 [00:15] 수정 | 삭제
  • 아니, 이 곳에서 님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환호성을 질렀죠!!
    반가워요 윤하님!!
    윤하님의 칼럼 기대할께요.
  • 폴라리스 2003/05/02 [02:10] 수정 | 삭제
  • 따뜻하지만 견고한 글이네요.
    깊이 공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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