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싫었던 교사 이야기

나의 친구 김진영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3/08/17 [23:51]

교사가 싫었던 교사 이야기

나의 친구 김진영

문이정민 | 입력 : 2003/08/17 [23:51]
18살 무렵, 그녀는 늘 혼자 있었다. 말도 없었고 가끔 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반장이었지만 쇼맨십도 리더십도 보여주지 않았다. 늘 조용히 책상에 앉아있었다. 친절하긴 하지만 의례적인, 회장이고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 눈에 띈 건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그녀는 텅 빈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혼자 울고 있었다. 무슨 심산이었는지 나는 크래커 하나를 건넸던 것도 같다. 그녀는 조금 후에 “학교가 싫어서”라고만 말했다. 사실 그녀는 교사가 싫었다.

28살이 된 지금, 그녀는 교사가 됐다.

좌충우돌 교사

벌써 교사 경력 4년차다. 첫해에는 정말 고생도 많이 했다고. 생각해보면 발령 첫해에 그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온통 코미디였다. 그 중 하나.

교사로 부임하자마자 담임을 맡았다. 수업이 끝나고도 집단 상담을 진행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교실에서, 혹은 집에 데려가서까지 상담을 진행할 정도로 ‘극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학급에 ‘일진’ 소속인 남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학급 일에도, 교사에게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결국 집단상담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는데 수업이 끝나고 보니 가버리고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머지 학생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데 편의점에서 그 학생을 발견했다. 얼른 잡으려 들어가보니 각 학교 ‘일진’ 학생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아지트였던 셈이다.

“함께 가자”고 했으나 주변에 몰려든 학생들은 야유했고 그 학생 역시 안 가겠다고 버텼다. 못 데려 가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고 힘으로는 안되겠고. 나름대로 데려갈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고심하다 생각해낸 게 ‘가위,바위,보!’였다. “내가 이기면 군소리 없이 가는 거다!”라고 당당히 약속을 받아내고 결전의 순간! 불행히도 그녀는 졌다. 모여있던 일진 학생들의 함성 속에 그녀는 민망한 얼굴로 뒤돌아 나와야 했다.

“지금은 ‘안 한다’는 학생의 의견을 존중할 것 같아. 억지로 해봐야 소용이 없거든. 대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권유하고 설득하되 쓸데없는 신경전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그때는 ‘무조건 학급 일에 참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교사의 권위를 우선시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교사로서의 자신감과 색깔이 생긴 지금, 그녀의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교육해야

학생 대하기도 힘들었지만 전반적인 교직사회도 만만치 않았다. 첫 부임 학교에는 전교조 교사가 아무도 없었다. “좌우 살피지 않는 성격이라 옳은 건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혼자 전교조 지부에 찾아가 가입했다. 초임교사가 전교조에 가입하고, 매일 서명지 들고 다니고 했으니 자연스레 불편한 시선이 쏠렸다. 전교조 활동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교감은 소리 지르는 것으로 모자라, “뭐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기죽는 성격도 아니다. 내 보기에 그녀는 대놓고 싸우기보다 의아하다는 듯 눈 깜박거리며 말간 눈으로 사람 민망하게 하는 데 소질이 있다.

그렇게 혼자 시작한 전교조 활동이었지만 결국 작년 학교차원의 전교조 분회를 창립할 정도로 활성화 됐다. 그녀는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조직이 커지면서 등치만큼 역할들을 못해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현 교육현실에서는 전교조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행사는 ‘참교육 실천보고대회’다. 다양한 교육적 주제에 대해 교사들이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실천 사례들을 풀어내고 공유, 토론하는 자리다.

“사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닌데 교사들이 시간을 내서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교육적 주제에 대해 접근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런 분위기 확산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교사들이 더욱 열정적이고 자발적으로 연구하는 문화, 그리고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자세들.”

이런 교사,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언뜻 떠올려 봐도 내 학창시절 교사들은 ‘내가 얼마나 잘났는데 여기서 인생 망치나’ 식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참고서대로 대강 수업하는 것 외에는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며, 성적으로 학생 평가하기에만 급급했으니. 그녀 역시 그런 교사들의 모습에 상처 받고 질리면서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협력 문화라고 생각해. 많은 교사들이 무관심하고 개별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걸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어. 동료교사와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는 문화가 먼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지식이 아니거든. 지식의 양은 많지도 않고 점점 더 지식교육은 의미가 없어져.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교육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사의 삶이 그러해야 하고 교사들이 먼저 공동으로 연구,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

나는 행복하다

학생에게 존중 받으려면 “학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쾌하게 대답하는 그녀는 학교 현장에서 정작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점이 많다고 한다.

“애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관계 맺는 방식, 갈등 조정 능력 등 배울 부분이 있어. 작년에 학급에 ‘왕따’ 문제가 생겨 내가 과도하게 개입해 해결하려고 했더니 조언을 해준 학생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친구 말이 맞거든.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뒤에서 애들 사이에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 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지. 학생들이 판단하는 부분을 무시해서는 안 되거든.”

그녀는 지금 육아휴직 중이다. 아기가 생기고 나니 예전만큼의 활동력이 유지될까 고민이지만 “하는 데까지는 하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개학을 앞두고 어린애처럼 마음이 설렌다는 그녀는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쌓은 뒤 나중에 실업계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소외된 애들, 교사의 관심과 손길을 더 필요로 하는 애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4년차 된 교사, 내 친구 김진영의 소망이다.

언젠가 나는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삶’이라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친구를 보면 다시금 그런 생각이 슬그머니 내 머리 속을 메운다. “행복하냐”고 묻자 그녀는 예의 그 천진스러운 눈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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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이 2004/06/16 [13:53] 수정 | 삭제
  • 이제 막 교사생활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동교교사들과의 대화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여성학, 사회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혼자 헤쳐가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싶은데,
    대화가 가능할지요??
  • 진영동료교사 2003/08/29 [11:19] 수정 | 삭제
  • 진영선생님 전화 한 통 때려야겠네요
    아가는 잘 크고 있죠?
    나 햄이요~
  • 2003/08/19 [13:02] 수정 | 삭제
  • 전문성이라는 단어와 왠지 멀게 느꼈던 것 같아요.
    교사라는 직업.
    새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
    요즘은 워낙 할거 없으면 교사나 하자(사실 되기도 어려운데) 하는
    분위기가 주로 많아 회의적이었던 것도 사실인데요.
    그 사람들만 탓할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김진영씨와 같은 선배교사와 함께 교육을 고민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잔디 2003/08/18 [15:38] 수정 | 삭제
  • 학생들이 부럽네요.
    저도 학창시절에 교사들 보면서 성인이 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김진영 선생님의 말 중에서 정말 와닿는 말이 있네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교육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사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는 말씀이요.
    교사가 영 아닌 사람인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좋은 걸 가르치겠어요.
    교사들도 어떻게 살 것인지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채 2003/08/18 [00:42] 수정 | 삭제
  • 이렇게 '말간' 얼굴을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가 내게 묻는 물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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