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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과 임신중지의 권리는?
이성애중심 사회의 '낙태 범죄화' 논란에 부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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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액티비즘을 기치로 결성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glocalactivism.org)에서는 낙태에 대한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릴레이 글쓰기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 중 레즈비언과 임신중지(낙태)의 권리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NGA활동가 나영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며칠 전 ‘낙태’, 'abortion' 을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접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10대들을 연구한 결과, 10대 레즈비언/바이섹슈얼 여성 중의 다수, 10대 게이 남성 중 거의 절반이 이성과의 섹스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에는 예기치 않은 임신을 경험한 이들의 비율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 (‘Not yet equal : The health of Lesbian, Gay, and Bisexual youth in BC', The McCreary Centre Sociey, 2007)


심지어 이 연구에서는 10대 바이섹슈얼/게이 남성들이 또래 이성애자 남성들보다 거의 세 배 이상 많은 임신 관련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10대 바이섹슈얼/레즈비언 여성들은 또래 이성애자 여성들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많은 임신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과 성관계를 가진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10대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이들의 임신 관련 경험이 이성애자 10대들보다 두, 세 배나 많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이성애중심 사회’에서 레즈비언 정체성 찾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동성애자들조차도) 동성애자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나 낙태의 경험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레즈비언들은 종종 이성애자 친구들로부터 “넌 임신할 걱정 없어서 좋겠다.”는 푸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레즈비언은 낙태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일까?


사실 나 역시 레즈비언이지만 갓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남성과 성관계 경험을 가진 적이 있다.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적인 지식이라고는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 밖에 없었던 당시의 나는 20대가 되었으니 ‘당연히’ 남자를 만나야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꾸준히 여자아이들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내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과정에서나 인지하게 된 것이었다. 그 때까지 나는 그 경험들이 그저 ‘우정’이거나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하나의 문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자연스럽게 남자와 사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기타를 가르쳐 주겠다던 그 남자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꽤 진한 스킨쉽을 시도했다. 나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학교에서 했던 성교육이나 영화에서 본 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자와의 첫 섹스를 치뤘다. 당연히 하나도 좋지 않았다. 처음이라 아파서 그런 것인 줄 알았지만 두 번째도 좋지 않았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와의 성관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몇 주 후, 한 여자 친구가 나에게 “너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고백을 해왔고, 나는 그 남자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후 남겨진 고민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다음 생리가 시작되기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던 시간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나는 ‘똑바로 처신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자기감정도 모르는 채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벗어나고자 했지만 쉽게 떨치기 어려운 ‘순결 이데올로기’도 그 혼란의 시간 속에서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경험은 이후 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인정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커밍아웃의 첫 관문에서 나는 ‘내가 왜 동성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어려서부터 집안에 압도적으로 여자가 많아서? 아버지가 외도를 해서?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녀서? 혹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서? ‘왜 이성애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지만 ‘왜 동성애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아야만 하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 모든 사건들이 내가 동성애자가 된 원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의 경험으로 여기에 더 많은 질문을 추가해야 했다. ‘남자가 두려운 것일까?’, ‘다른 남자와 다른 성경험을 또 해본다면 괜찮았을까?’, ‘임신이나 낙태가 두려워서 남자를 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들.

물론, 그 후 꾸준히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고 그 안에서 안정을 찾으면서 그러한 질문들은 차차 삭제되어 갔다. 나는 남성이 아닌 여성을 사랑하고, 여성과의 성적 교감을 통해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들을 해야 했던 그 혼란의 시간들은 결국 나에게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기고 말았다.

레즈비언은 낙태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일까?

 

▲ 낙태죄 폐지 요구하는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연합 시위.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09 © womenonwaves.org

생각보다 많은 레즈비언 여성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고 나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거나 부인해왔던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이들도 많다. 이성애만이 ‘정상’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자신이 남들이 말하는 정상의 범주 밖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다. 끊임없이 정상의 범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또는 타의에 의해 그 범주 안에 있기를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레즈비언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배반하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레즈비언 여성들은 특히 피임에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남성의 성적 욕구가 당연히 우선시되는 이 사회에서 비단 레즈비언 여성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여성들이 상대방에게 피임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요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레즈비언 여성들이 특히 취약한 이유는 심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캐나다의 10대 LGB 사례 연구를 분석한 한 칼럼(Why Would a Lesbian Teen Need Birth Control?, Ellen's LGBT Teens Blog, 2008, 6, 17)은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를 10대 LGBT들에게 상대적으로 피임 교육이 강조되지 않고, 의사나 건강관리사들도 이들에게는 임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들 자신이 임신의 위험이나 가능성에 대해 그다지 인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캐나다의 10대 LGBT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인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있는 다수의 성인 LGBT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결국 이성애적 관계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되는 세상에서 ‘예기치 않은 임신’과 ‘낙태’는 LGBT에게도 엄연한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낙태 반대운동은 보수적 가족주의로 귀결돼

좀 더 나아가 레즈비언의 임신과 출산, 가족구성권의 문제를 낙태 반대 논란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레즈비언이자 여성으로서 우리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하는 몇 가지의 중요한 이유들을 더 발견하게 된다.

우선 그 중 하나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생산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기능하고 있는 가부장 체제-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레즈비언이란 ‘재생산이 가능한 성관계를 맺지 않는 여성’ 이라는 점이다. 얼핏 모순되는 것 같지만 ‘임신을 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레즈비언은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된다. 100% 안전한 피임이란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낙태 반대운동은 궁극적으로 출산을 전제로 한 성관계만을 옹호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혼전순결에 대한 강조와 ‘남녀 간의 결혼을 통한 안정적인 가족 구성’이라는 보수적인 가족주의로 귀결된다. ‘쾌락을 즐기기 위한 성’, ‘출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여성만이 ‘온전한 성인’이자 ‘제 역할을 다하는 시민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 사회에서 지금도 비혼 여성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성인’ 내지는 ‘이기적인 존재’로 낙인찍히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은 여성이 자신의 성적 쾌락을 온전히 즐기고, 자신의 성적 요구와 욕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성적으로 여성의 의사를 남성의 의사에 종속되게 만듦으로써 남녀 간의 불평등한 지위를 지속시킨다.

 

따라서 낙태 반대운동은 비단 임신을 했거나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게만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사회적, 성적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모든 여성으로부터 그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빼앗는 일이 되는 것이다.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와 레즈비언의 임신

 

▲  미래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아이갖기를 그린 SF영화 <베이비 포뮬라>의 한 장면.  © wffis.or.kr

한편, 점점 많은 수의 레즈비언 커플들이 임신을 계획하고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은 또 다른 논쟁의 지점들을 안고 있다. 레즈비언의 임신과 출산, 가족구성은 가부장 체제와 자본주의가 인정하는 ‘정상사람’, ‘정상가족’, ‘정상적인 재생산’의 기준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들이 인정하는 ‘정상 사람’이란 곧 ‘생산성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생산성 있는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 ‘생산성 있는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정상 사람’의 범주에 들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 동성애자는 이 범주에서 제외되거나 소외되고, 가정과 회사 양쪽에서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 원활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이주 노동자 등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차적인 사람’이 된다. 이러한 세상에서 원래는 ‘생산성 있는 성관계를 맺을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이 임신과 출산을 하고 가족을 구성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정상 사람’의 범주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는 행위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레즈비언 여성 뿐 아니라 다양한 퀴어 주체들이 임신과 출산, 가족을 구성하는 상황도 포함된다.)

이제 앞으로의 가부장 체제와 자본주의는 이와 같은 현실에 새롭게 대응할 것이다. 한 편으로는 ‘비정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LGBT의 가족구성을 끊임없이 억압하거나 차별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저출산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이들의 출산이나 가족구성을 인정하거나 묵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미 상당수의 국가들이 이와 같은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정자 기증이나 인공수정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계획적인’ 임신을 하는 커플들이 늘어가고 있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가족이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계획된’ 임신과정에서는 배아의 생성에서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무수한 ‘실패’나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한 '임신중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배아에서부터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대다수의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이것은 실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이성애자 여성‘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듯한 낙태 논쟁은 앞으로 레즈비언 여성들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현재의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결국 레즈비언을 포함한 퀴어 주체들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여성 자신에게 있으며, 임신과 출산은 누군가의 관리와 통제 하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다.

진정 '생명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  1980년대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의 '낙태금지' 정책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희생당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마지막으로 레즈비언이자 여성으로서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어느 순간, 누구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성폭력의 위협이다. 현재 ‘프로라이프 의사회’나 ‘낙태반대운동연합’은 강간을 당한 여성들조차 낙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 당시의 기억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서 계속해서 재현되고, 잊으려 해도 끊임없이 상기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인데 가해자의 흔적을 평생 안고 살아가라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생명존중’인 것이다.

한편 그들 홈페이지의 제보 게시판에는 자신의 여자 친구 또는 옛 애인이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낙태를 했다며 이를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글을 읽어보면 이들 중 대부분은 여성이 낙태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그 여성과 아이 모두를 책임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스스로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상대 여성과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마치 자신의 ‘소유’인 양 온전히 자기 의지대로만 하려는 이들의 태도를 보면 앞으로 낙태 반대운동이 가져오게 될 끔찍한 결과가 충분히 예상된다.

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는 며칠 사이에 두 명의 친구로부터 임신중지에 대한 고민을 듣게 되었다. 한 명은 이미 헤어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 경제적 사정이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 출산을 한다는 것은 그저 10개월의 시간 동안 뱃속에서 생명 하나를 만들어 꺼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하는 일이기에 더욱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구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이 될 수 있는 존재를 가지게 되었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폭력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이미 몸의 일부가 된 무언가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내는 일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여성들이 처한 상황인 것이다.

매년 7만 여명의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낙태 시술로 사망하고 있으며, 500만 명의 여성이 합병증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를 찾고 있다. 심지어 300만 명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합병증에 시달려야 한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낙태가 법적으로 자유화된 1996년 이후 낙태로 인한 감염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서유럽과 북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낙태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어 있지만 낙태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Abortion Worldwide-A Decade of Uneven Progress', GUTTMACHER INSTITUTE, 2009)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낙태를 범죄화하고 처벌하기에 앞서 여성들의 자율성과 결정권을 존중하고 그것이 온전하게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생명은 혼자 만들고 혼자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생명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먼저 여성이 사회․경제적, 성적으로 자신의 권리와 요구를 제대로 실행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레즈비언이자 여성으로서 우리가 함께 싸워나가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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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10 [22:09]  최종편집: ⓒ 일다
 
조이 10/09/11 [12:20] 수정 삭제  
  조두순이 자기의 욕구를 채우고 아무 힘도 없는 순결한 아이에게 한것이나 낙태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또한 자기의 성적인 욕구아래 생명이 생겼는데 의사에게 돈을 주고 그 증거를 없애려고 하는 것 무엇이 다릅니까? 당신의 인생만 중요하고 울음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아이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10/09/11 [19:48] 수정 삭제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아이들의 인생은 그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사회 모두가 져야 하죠. 그런데 대부분 그 책임은 어머니 혼자 지더군요. 낙태를 하고 맘 편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글 쓰신 분은 여성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낙태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낙태를 택하든가 아니면 맘놓고 아이를 낳기를 택할 수 있게 사회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여성의 자율성과 결정권이라고 해서 꼭 낙태를 할 권리만을 말하는 건 아니죠. 그리고, 낙태는 미혼여성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기혼여성의 낙태도 꽤 많습니다.
그나저나, 제목이 좀 오해의 소지가 있어보입니다.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낙태문제로부터 무조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는 이해하겠는데, 제목만 언뜻 봐서는 마치 낙태가 레즈비언과 무슨 큰 상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여성에 대한 편견,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어서 더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편견으로 인한 오해의 소지가 많은 소재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eele 17/07/18 [20:15] 수정 삭제  
  정자 공여합니다. https://goo.gl/ji8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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