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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라, 그러나 노동자는 아니다?
[르포] 저임금, 질병 시달리는 돌봄노동자에게 권리를 (상)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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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한다. 아이였을 때, 아플 때, 노인이 되었을 때 사람은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써 생존하게 마련이다. 기르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간호하고, 재생산의 공간인 집을 관리하는 일이 없다면 다른 모든 노동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돌보는 일을 노동이라 여기고, 그 일을 하는 이들을 ‘노동자’라 부르는 것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낯설다.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화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가사, 간병, 보육 등에 종사하는 돌봄노동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은 근로기준법 상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이 일을 한다는 걸 말 못하는 게 가슴 아파”
 
▲ "파출부가 아니라 '가정관리사'라고 불러주세요." <전국가정관리사협회>의 캠페인 포스터.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서울지부 홈닥터 지부장 염창순씨를 만났다. ‘홈닥터’는 가사관리사, 영유아관리사, 산모관리사로 일하는 여성들이 함께 운영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보건복지부 바우처로 진행되는 사업과 노동부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은 사업, 사대보험 적용 없이 수행되는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좁은 사무실 안 세 개의 화이트보드에는 일하는 이들의 이름과 함께 목동, 구로, 상도, 오류동 등 지명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이곳을 통해 일하는 여성들은 모두 돌봄노동을 하지만, 근로자로서 법적 보호를 임의적으로 받는 사업도 있고 받을 수 없는 사업도 있다고 한다.
 
“제가 가장 가슴 아픈 게 우리 가정관리사님들이 이 일을 한다는 걸 남한테 말 못하는 거예요. 남들이 ‘파출부’라고 그래요. 파출부가 뭡니까? 가사관리사예요.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자기가 일할 수 있는 건데, 이 일들을 무시하는 게 안쓰러워요. 우리가 그 밑바닥 일을 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일을) 다 도와주잖아요.”
 
돌봄노동자들을 ‘파출부’, 저가도우미로 인식하는 사회적 편견은 돌봄노동의 가치와 전문성을 떨어뜨린다.
 
<‘바우처 사업 가사간병 도우미’로 참여하게 되면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동료와 함께 만난 첫 수혜자 분, 인사를 하자마자 위아래로 쳐다보고는 대뜸 내뱉는 말, “저거 저 아줌마 일주일도 못하고 떨어져나갈 거야”였다. 순간 너무나 황당하고 불쾌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순간 내가 여기서 저 문을 열고 뒤돌아 나가면 난 앞으로 이 일을 결코 해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료의 말이 생각났다. 자존심은 버려라. 나를 버려라. 우리가 하는 일은 밑바닥 수준이다. 어르신들에게 서비스를 하면서 다른 무엇보다 나를 자존심 상하고 슬프게 한 것은, 가사간병 도우미를 국가공인자격증 있는 파출부로 취급하는 것이었다’-서울지역자활센터협회 사회서비스 가사간병방문사업단 참여자의 수기사례 중>

 
염창순 지부장은 가정관리사 일의 전문성과 중요성을 반복해서 말했다. “40평 고객집에 들어서서 네 시간 만에 방, 거실, 베란다, 주방, 욕실 두 개를 청소하고 세탁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다림질을 하고 쓰레기를 정리해 나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교통비를 아껴가며 움직이며 하루 여덟 시간을 고객의 집에서 쉬지 않고 일합니다.” 이것이 ‘일’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돈 주고 쓴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노동 요구
 
돌봄노동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오십대 이상의 경력단절 여성들이다. 임금이 적고 일자리도 단속적이며 사회보험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음에도, 현실적으로 나이든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가 되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육십만 원에서 백만 원, 백이십만 원을 받고 일하는 시간제 비정규직이다. 한부모 가정이 많고 차상위계층, 저소득층이 많다. 자기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어 있어, 꼭 일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가정관리사들은 고객에게 돌봄노동을 제공하고 사회를 지속할 수 있게 한다. 독거노인들, 혼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장애인들, 당장 생활용품이 부족한 산모들, 방치된 아이들, 다문화 가정의 사람들, 탈북자도 이들이 돌보는 대상들이다. 이들의 돌봄노동은 가족과 사회,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노동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외출은 전혀 하지 못하고 현관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는 일이 하루일과가 되었다.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싸늘한 공기가 숨통을 막히게 했다. 반지하의 특유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였고 불은 전부 꺼져 칠흑같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이때 할머니는 작은방에 오그리고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나를 끌어안으며 눈시울을 적시셨다. 죽고 싶다고…… 이렇게 사느니 강물에라도 빠져서 죽는 것이 낫다며 숨죽여 흐느껴 우셨고 나는 이런 할머니의 등을 쓸어드리며 따뜻한 온기를 느끼실 수 있도록 힘껏, 아주 힘껏 안아드렸다.’-서울지역자활센터협회 사회서비스 가사간병방문사업단 참여자의 수기사례 중
 
그런데 좋은 고객은 ‘관리사가 있어서 나도 일할 수 있다’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지만, 모두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 2008년부터 산모 자부담이 생겨나, 이전에 평균소득 65%이하가 비용 없이 수혜자가 될 수 있었던 상황과 달라졌다. 국가의 지원이 아니라 자신의 돈을 주고 이용하는 이들은 가정관리사에게 “최대한의 노동”을 바란다. 홈닥터 염창순 지부장의 말을 들어보자.
 
“산모관리사 같은 경우, 바우처가 2007년부터 활성화되어 일할 때는 고객들이 감사히 생각했는데 지금은 당연한 걸로 여겨요. 산모관리사는 산모 몸조리 도움인데 가사까지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커튼과 침대보 빨아라, 김치 담궈라 요구하고 안 되면 사무실로 연락해요. 관리사님이 반찬을 오후에 해놓고 다음날 가보면 친척들한테 주고 없는 경우도 있어요. 관리사가 또 만들면 된다는 거죠.”
 
비용이 이용자에게 부담되는 상황에서 돌봄노동자의 임금인상이나 노동권 보장은 해결되기 어렵다. 염창순 지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고객들은 돈을 주고 관리사를 쓴다는 이유로 모든 일을 다 시키려 해요.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고 생리대가 붙은 채 팬티를 내놓기도 해요. 인간적으로 힘들지요. 고객들은 관리사가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하는 건 말 안하지만 조금 일찍 나가면 사무실에 연락해 관리사를 바꿔달라고 해요.”
 
직업병 인정 안 돼 치료도 못 받는 현실

 
▲ 돌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을 받으며 강도 높은 노동을 소화하고 있다.    ©가정관리사협회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라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중요한 정책의제가 되었다. 2007년 5월 장애인활동보조인제도 실시,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제도 시행, 보육정책 추진 등은 그 일환이다. 그러나 돌봄노동의 공급을 직업소개업이나 민간이 주로 맡게 되면서, 노동의 체계적 관리나 정당한 처우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서비스제공기관 간의 경쟁도 심화되고 일하는 여성들의 환경은 더욱 악화되었다.
 
“영유아관리사는 30시간 교육을 받고 관리사가 애기의 모든 것을 돌봐줘요. 애기한테 친구가 돼줘서 책 읽고 노래 부르고 놀이해주고 빨래하고 청소기를 돌리죠. 애기라고 반말하면 안 되고, 한없이 친절하게 말해줘야 고객한테도 인정받을 수 있어요. 영유아관리사는 가사를 안 하는 게 원칙인데 애기 간식 챙겨주려면 쌓여 있는 설거지해야 하고, 애기빨래 하려면 세탁기에 든 고객 빨래도 하게 되고, 애기방을 치우려면 집청소까지, 결국 온 집안일을 다하게 돼요. 12시에서 1시까지 휴식시간이지만 애기가 있는 집에서 절대 휴식할 수 없어요. 영유아관리사도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아기 잘 때 이유식 만들고 이삼십 분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는데 고객은 내 돈을 준다는 이유로 더 일해주기를 원하니까. 돌아오면요, 내 집 일은 너무 지쳐 하기 싫어요.”
 
홈닥터 염창순 지부장은 돌봄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가혹할 정도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다 보니 갖가지 질병을 안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가사관리사님들은 9시에서 1시까지, 그리고 다른 집에 가서 2시에서 6시까지 일해요. 네 시간에 3만원을 받는데, 시간 안에 일이 잘 끝나지 않고 점심식사는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잘 못한 채 다음 고객 집으로 이동해야 해요. 일을 오래해 아픈 분들이 많아요. 무릎, 팔, 어깨, 날갯죽지가 아프지만 산재보험이 안 되고 직업병 인정을 못 받으니까 치료도 제대로 못 해요.”
 
이동이 많고, 다치기 쉬운 환경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특히 이들이 저소득 계층이라는 점에서, 이는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염창순 지부장은 “작년에 가사관리사분이 고객 집의 일을 하고  쓰레기를 가지고 나오다 걸려 계단에서 뒹굴어 발목이 부러졌는데 아무 것도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보험도 안 되고 일도 못하고 치료비도…… 우리가 만원씩 걷어 갖다 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못했어요.”라는 탄식이 돌봄노동자들의 아픈 현실을 웅변한다.
 
늘어나는 돌봄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라’
 
공식 영역에서 돌봄노동을 하는 이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유럽은 공공중심의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시장논리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일례로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실시되자 일정 시간의 교육을 받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이들은 2008년 7월 13만 6천명에서 2009년 5월 49만 명으로 급증했고, 현재는 50만 명이 넘었다.
 
그러나 취업자는 12만 명 정도에 그쳤다. 재가요양보호사의 월급은 최저생계비보다 적다. 이들은 성희롱과 직업병,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재원이 건강보험에서 나오자, 영세업체가 직업을 알선하며 경쟁도 치열해졌다. 가사사용인은 2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그 수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늘어나는 돌봄노동자를 어떻게 지원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는 우리사회가 맞닥뜨린 중요한 문제다.
 
돌봄노동자들은 좀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돌봄문제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또한 경력 인정과 전문인으로서의 재교육도 필요하다. 홈닥터 홍성돈 행정팀장이 마지막 바람을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돌봄노동이 고령화 시대에 도래해 더 확산될 겁니다. 부분적인 데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사회정책으로 반영되어 자본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 그들이 나아갈 교육과 접목되어 돌봄사업이 넓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돌봄문제가 시장논리가 아니라 우리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하고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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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13 [20:31]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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