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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열매의 시간
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29)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공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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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이번 겨울 한반도에 폭설과 한파가 자주 찾아올 거라고 합니다. 추위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울적해지지 않도록 월동 준비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재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는 최고 기온 섭씨 20~25도, 최저 기온 섭씨 5~10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이제는 아득해진, 건기가 된 코스타리카의 12월에 비치는 쨍한 햇살을 떠올려 봅니다.
 
그 햇살 속에 저는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섭니다. 얼굴이 타지 않도록 모자를 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오전인데도 벌써 해가 중천에 뜬 듯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집을 벗어나 조금 걸으면 동네 한복판 성당 앞에 열린 장에 도착합니다. 이미 그곳은 주로 야채와 과일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코스타리카에서 새로운 야채와 야채요리, 과일을 접하고 맛보게 된 건 다 친구들 덕택이었습니다. 
 
치즈 넣은 가지와 플라타노 요리
 
▲ 튀긴 플라타노 요리. *사진출처: 위키미디어(wikimedia.org)    
자주 사던 양파와 마늘, 토마토 대신 집은 것은 가지입니다. 가지를 썰어 토마토소스를 뿌리고 치즈를 넣어 구운 요리를 동네 피자집에서 먹어 본 적이 있습니다. 함께 간 멕시코 인 친구가 주문한 이것을 먹어 보니 가지와 치즈, 토마토소스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 색다른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그 요리를 집에서 비슷하게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플라타노(Platano, 영어로는 ‘plantain')는 우리가 흔히 손으로 노란 껍질을 벗겨 먹는 바나나를 닮았지만, 녹색의 껍질이 두꺼워 칼로 껍질을 벗겨야 하고 날 것으로는 맛이 거의 없고 딱딱하여 익혀 먹어야 합니다. 그냥 튀기거나 볶거나 찔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치즈와 함께 구워 먹으면 쫀득쫀득 녹아내린 치즈와 더불어 더 맛있어집니다. 이 조리법 역시 가까운 이웃 친구가 알려 주었습니다.
 
치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동네의 작은 식료품점에 가면 마치 두부를 팔듯 치즈를 꼭 두부 한 모 크기 정도로 잘라 비닐봉지에 싸서 낱개로 팔았습니다. 이것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끼니마다 썰어서 이런저런 요리에 넣거나 얹어 먹곤 하였습니다.
 
지금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치즈를 예전처럼 먹지 않습니다. 크게 아쉽지는 않지만 가끔은 치즈가 매우 먹고 싶긴 합니다. 특히 코스타리카에서 먹은 치즈 넣은 가지 요리나 플라타노 요리 같은 게 떠오르면 말입니다.
 
정열의 과일, 별의 과일
 
▲ 패션프루트 *출처: 위키미디어(wikimedia.org)  
과일 역시 자주 먹던 딸기나 사과 말고 다른 것을 골라봅니다. 이 과일을 알고 먹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의 읍소에 가까운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딱딱한 껍질을 지닌 이 열매는 속을 보면 진정 희한합니다. “이렇게 생긴 걸 어떻게 먹니?” “딱 한 번만 먹어봐, 응? 딱 한 번만! 일단 먹어보고 말을 해, 진짜 맛있다니까!”

 
한국을 함께 떠나온 이 친구는 과일을 너무나 사랑해서, 길 가다가 과일 열린 나무를 보면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찬탄 어린 표정으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땅바닥에 떨어진 것을 꼭 주워옵니다. 알지 못하던 과일을 만나면 그 정체를 밝혀내고 맛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친구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 껍질을 깨어서 속에 든 것을 입 속에 넣고 일단 혀로 맛을 봅니다. 엄청나게 새콤달콤합니다. 씹으면 과즙이 흥건히 흘러나옵니다. 투명한 과육이 둘러싼 씨앗을 씹는 맛도 무척 독특합니다. 패션프루트(passionfruit)라는 정열적인 이름을 가진 이 과일은 차게 하여 먹으면 청량감이 아주 그만입니다.
 
그리하여 그 친구와 저는 아직 모르고 있던 다른 친구들을 패션프루트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힘껏 노력을 기울이곤 했습니다. “일단 한 번 먹어보고 말을 하라니까!”끝까지 안 먹겠다고 하여 우리를 실망시킨 친구도 있었지만, 마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뭐 이렇게 생겼냐고 하다가 맛을 보고 감탄하는 친구들이 있어 우리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옆방에 사는 프랑스 인 친구 덕택에 알게 된 카람볼라(carambola)는 썰어 놓으면 꼭 별처럼 생겼기 때문에 스타프루트(starfruit)라고도 불립니다. 특별한 날이거나 특별한 식사를 할 때 이 예쁜 과일을 잘 담아내면 무척 특별한 느낌을 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에도 이 과일은 참 잘 어울릴 것입니다.
▲ 카람볼라 또는 스타프루트.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wikimedia.org)     

열매 없는 꽃, 꽃 없는 열매
 
야채와 과일을 얼추 사서 돌아오려는데 꽃 파는 수레가 보입니다. 여러 개의 양동이 속에 담겨 있는 갖가지 꽃들이 화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석에 쇠가 끌리듯 그 앞으로 스르르 가서 마치 과일을 사랑하는 제 친구가 과일나무를 올려다보듯 황홀하게 바라봅니다.
 
▲ 상사화를 닮은 꽃.     © 공숙영

한참을 고민하다가 푸른 보랏빛의 이 꽃을 고릅니다. 매혹적인 빛깔과 모양도 아름답지만 잎사귀 없이 미끈한 꽃대궁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이 꽃의 이름은 정확히 모르지만 우리 나라의 상사화(영어로는 ‘magic lily', 'resurrection lily')와 많이 닮았습니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서로 그리워하다가 상사병에 걸린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합니다. 잎 없이 핀 이 청보라색 꽃 역시 상사화 계열임이 틀림없습니다. 이‘코스타리카의 상사화’를 몇 대 사서 새로운 야채나라 과일나라로 인도해 준 고마운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줘야겠습니다.
 
잎과 꽃이 따로 나고 피는 이 예외적인 식물은 열매 맺지 않고 단지 꽃만 피운다고 하는데, 꽃 없이 열매만 달린다 하여‘꽃 없는 과일’이라 불리는 무화과(無花果)와 대조적입니다. 그러나 꽃이 안 피는 게 아니라 겉으로 보이지만 않을 뿐 열매 속으로 꽃이 핀다 하여 무화과는 ‘꽃이 숨는 과일’은화과(隱花果)라는 신비로운 다른 이름도 갖고 있습니다.
 
꽃과 열매의 시간
 
장바구니에 그날의 야채와 과일, 꽃까지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신납니다. 친구들의 다정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제 손에 들린 이 꽃과 열매를 보면 그들도 무척 좋아할 것입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가운데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반짝이며 저 멀리 구름이 어딘가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습니다.
 
연말의 겨울입니다. 한 해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한 것도 남는 것도 없이 올해가 다 갔다고,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헐벗은 겨울을 쓸쓸히 맞이했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는 분들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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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2/23 [13:43]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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