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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를 찾아서
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30)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공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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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 둥지로 들어가는 케찰(중남미에 사는 파랑새), 2008년 5월, 코스타리카 *출처: 위키피디아  
새 소리가 들립니다.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새가 지저귑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는, 소리로만 아는 얼굴 모르는 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냉장고 속 사과를 꺼냅니다. 사과를 들고 침대로 돌아와 다시 누워 사과를 껍질째 씹어 먹습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까지 살을 다 먹고 남은 것은 손에 쥔 채 눈을 다시 감습니다. 일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눈을 다시 뜹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살이 벽에 닿습니다. 햇살이 벽 위에 만드는 무늬를 바라봅니다.
 
간밤에 꾼 꿈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몸을 다시 일으킵니다. 커튼을 걷습니다.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옵니다. 습기에 곰팡이가 피었던 큰 여행가방을 볕이 잘 드는 쪽으로 옮깁니다.
 
바람 불던 어느 날
 
집을 나서니 녀석이 반갑게 달려옵니다. 녀석과 친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녀석을 처음 본 날이 떠오릅니다. 앞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온 것입니다. 녀석은 꼭 작고 둥근 털뭉치처럼 보였습니다. 그 집은 대여섯 살 쯤 된 아이를 하나 둔 부부가 사는 곳입니다.
 
녀석은 늘 심심한 편이었습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늘 다른 일로 바빠 보였고 아이는 강아지보다 장난감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집에 하숙하는 학생들도 녀석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녀석과 친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바람 불던 어느 날 혼자 집을 지키며 코를 내밀고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던 녀석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진보라색으로 처음 피었다가 차차 변색해가는 꽃, ‘어제, 오늘, 내일’     © flicker.com
집 근처 커피밭으로 갑니다. 저편에 서 있는 키 큰 꽃나무를 바라봅니다. 녀석은 흙에 코를 박고 냄새를 킁킁 맡으며 돌아다니느라 분주합니다.

 
보라색 꽃이 만발한 저 나무는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진보라색으로 꽃이 피고 차차 연보라색, 하얀색으로 꽃의 색깔이 바뀌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나무에 한꺼번에 꽃피는 것입니다.
녀석은 볼일을 마쳤는지 어느새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자 귀가 풀잎처럼 풀썩 흔들립니다.
 
녀석이 유난히 개구지게 굴어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무작정 안아들고 커피밭으로 간 날이 떠오릅니다. 흙 위에 내려놓자 녀석은 한껏 뛰어올랐습니다. 발을 탕 구르며 제발 좀 얌전히 있으라고 소리치자 친구는 많이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때는 미안했어, 소리 질러서. 기억이 나는지 어떤지 흙 위에 앉은 녀석이 꼬리를 치자 흙먼지가 일어나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파랑새를 찾아서
 
파랑새를 본 곳도 커피밭 근처입니다.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조용히 앉아 있던 파랑새, 혹시 저 파랑새가 매일 아침 가까이 다가와 지저귄 것인지, 나 여기 있다고.
 
"너희가 파랑새를 찾으러 가 줘야겠다."
"파랑새요? 우리는 그 새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걸요."
"나도 모른단다. 어디 있는지 모르니 찾아 봐 달라는 거지."

 
그러나 파랑새만 본 것은 아닙니다. 파랑새를 보기 직전에 맞닥뜨린 갈색 새 - 길 위에 누운, 작은 몸집을 한 어두운 갈색 새. 그 새는 눈을 뜬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코스타리카에서 본 파랑새는 그 갈색 새의 주검과 함께 기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파랑새를 잡지 못했는걸요! 추억의 나라의 파랑새는 시커멓게 되어 버렸고, 밤의 궁전의 파랑새는 모두 죽어 버렸잖아요. 숲 속에서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미래의 나라에서는 파랑새를 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파랑새가 색이 변하거나 죽거나 한 것은 제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 메테를링크, 파랑새
 
별 많은 밤
 
 ▲ 벽장 속 깊숙이 공팡이가 피었던 여행가방도 새로운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공숙영
저녁이 되면 어두워지기 전에 녀석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책상 밑에 웅크린 녀석은 선잠이 까무룩 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앞집에서 녀석을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아이가 녀석의 이름을 번갈아 부릅니다. 그 소리를 알아듣고 녀석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번개처럼 뛰어 나갑니다.

 
녀석은 이미 보이지 않지만 마치 배웅이라도 하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나가봅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구름이 석양에 물들기 시작합니다. 저 너머 ‘어제, 오늘, 내일’의 보랏빛 꽃도 불그레해지고 파랑새 역시 색깔이 변해가고 있을까요.
 
저녁이 점점 깊어갈 즈음 아랫방에 사는 친구가 마당으로 나오라고 소리칩니다. 무슨 일인지 기어이 우리 모두를 나오게 하더니만 대뜸 하늘 좀 보라고 목을 잔뜩 젖히며 크게 손짓을 합니다.

 
그 손이 가는 곳을 올려다보니 과연 맑은 밤하늘 위로 별들이 보석가루처럼 흩뿌려져 있어 마치 세상에 태어나 별이란 것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경이로운 눈으로 올려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좀 봐, 별이 참 많기도 하지!”
 
-<공숙영의 ‘아웃 오브 코스타리카’>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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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02 [14:07]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hana 11/02/03 [14:01] 수정 삭제  
  오랜만에 파랑새 이야기를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
yeunmi 11/02/09 [15:13] 수정 삭제  
  보지 못한 파랑새, 가보지 못한 곳 코스타리카.....
잘 읽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11/02/20 [15:14] 수정 삭제  
  곧 삼월이 오네요 모두 봄맞이 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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