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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아닌, 어린이로 뛰어노는 4박 5일
네팔의 <어린이노동자캠프>를 가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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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네팔 현지에서 어린이노동자들을 만났다. 노동을 하랴, 학교에 가랴 바쁜 이 아동노동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노동자 캠프’가 열렸기 때문이다. 캠프 주최 측은 2005년부터 네팔 ‘어린이노동자 학교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해온 한반도화해센터였다.
 
한반도화해센터는 한국에서 지난해 여름부터 캠프에 참가할 교사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시민들과 대학생 10여명이 신청을 했다. 이들은 약 5개월간 네팔어를 배우고, 캠프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는 등의 준비를 해왔다. 이 캠프는 2년 전 처음 열리고, 올해로 2번째를 맞는다.
 
가정부 일을 하는 아이들은 끝내 참가하지 못해
 
▲ <어린이노동자캠프>의 주요 취지 중 하나는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사진은 캠프에서 마련한 운동회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 일다
이번 캠프는 네팔의 포카라에서, 1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렸다. 캠프에 참가하는 어린이노동자들은 포카라에서 버스로 12시간 이동하는 거리에 위치한 모랑에서부터, 뚤시풀 지역, 치트완, 카트만두 등 전국 곳곳에서 모였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어린이노동자는 전체 31명이었다. 한반도화해센터가 5년 전부터 진행해온 ‘어린이노동자 학교보내기’ 프로젝트의 지원 대상 중 일부가 참여한 것이다.

 
불행히도, 수도 카트만두에서 일하는 어린이노동자들은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이유는, 카트만두에는 가정부 일을 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인데, 이들의 주인들이 캠프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
 
지난해 12월에 먼저 선발대로 네팔에 가서 캠프 준비를 해온 한반도화해센터 오정민 씨는 “가사노동자들이 있는 가정을 직접 방문해, 주인에게 몇 번을 사정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런 사정으로 이후에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가사노동자들을 위한 캠프를 카트만두에서 1박 2일 준비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캠프의 주요 프로그램은 미술활동을 포함한 자기표현 활동, 소풍 및 운동회 등 야외활동과 건강검진, 성교육, 안전교육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프로그램들은 캠프의 취지에 맞추어 기획되었다. 캠프의 취지는 가장 크게는,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아동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검진해서, 단기간‧장기간‧응급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함이고, 셋째는 성교육과 노동 안전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캠프 기간 동안 아이들 직접적으로 대면함으로써 아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더욱 이해해, 더욱 섬세한 도움을 주기 위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 캠프에서는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건강검진도 실시되었다.     © 일다
건강 검진을 한 결과, 대부분 아이들이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고, 두통, 안과질환, 피부병, 기생충 감염 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진료한 현지 의사와 간호사는 아이들이 안고 있는 두통과 안과 질환은 일하는 노동 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돌 깨는 노동환경 상 먼지와 돌가루 등을 너무 많이 마셔 안과 질환은 물론이거니와 두통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진료한 결과에 따라서 아동들에게는 장기간 영양제를 공급하고, 구충제 등 필요한 약품을 지원한다. 또 이번에는 대체로 심각한 상황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한 아이의 경우는 심장병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발견됐다. 한반도화해센터는 이후에 정밀 검사 및 치료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반도화해센터 권은수 씨는 캠프에서 건강검진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사르빌라(10세)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1회 캠프 때에 사르빌라가 캠프 프로그램에 잘 따라오지도 못하고, 항상 시큰둥하게 있어서 왜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심각할 정도로 귀에 고름이 꽉 차 있었고, 염증이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심각했습니다. 귀가 계속 아프고, 잘 안 들리니까 프로그램을 잘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었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그런지 사르빌라는 아프다는 얘기도 안 하고, 혼자 참고 있었던 거에요.”
 
캠프를 기다려온 아이들

 
이번 캠프 4박 5일 동안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색종이를 접어 꽃을 만들고, 티셔츠에 직접 물감으로 색칠해 입고, 체육대회에서는 조별 대항전을 하는 등 마음껏 뛰어놀았다. 저녁에는 애니메이션 및 영화 관람이 이어지기도 했다.
 
“가난한 네팔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도 여행하지 못한 사람도 많고, 평생 자기가 일하는 공간과 집이 전부인 경우도 있죠.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여행해보고, 캠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기 때문에 캠프에 대한 기대감이 엄청 납니다.”

오정민 씨는 1회 캠프를 진행하고 나서, 예산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서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것을 뻔히 알고 있어서” 1회에 이어 2회 캠프를 열겠다는 약속을 꼭 지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은 캠프가 열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 일다
심지어 1회 캠프 참가자였던 라주(13세, 돌깨는 노동)는 부모와 친척들의 구타와 무관심 때문에 최근에 가출을 했었는데, 이번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을 정도였다. 라주는 가출한 동안 돌 운반하는 트랙터기사 옆에서 돌 운반하는 일을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캠프에 참가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학교에 나가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캠프 폐회식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많이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캠프기간동안은 내려놓았던, 저마다의 힘든 삶의 문제들과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노동이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사회적으로도 제도로서는 이미 폐지되었지만 아직 일상에서는 뿌리 깊게 박혀있는 카스트(계급)와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극심한 가난이 가로놓여 있다.
 
당장 아이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가로 놓여 있긴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며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희망을 키워가고 있었다.
 
“교육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될래요”

▲색종이를 접어 만든 꽃을 들고 있는 사르빌라(오른쪽).      © 일다
2005년 처음 일다와 한반도화해센터가 ‘어린이노동자 학교 보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당시 다섯 살이었던 사르빌라는 5년이란 시간동안 키도 많이 크고, 신체도 건강하게 변했다. 권은수 씨는 “당시에 사르빌라를 만났을 때, 우리에게 자기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여주겠다면서 조그마한 몸으로 돌을 나르고, 돌을 깨는 일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때 사르빌라는 몸이 약하고, 아프기도 했고. 사르빌라가 인상이 참 깊었어요.”라며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나 또한 기억한다.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사진 상에서 조그마한 아이가 돌을 가득 실은 망태기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장면을. 그 주인공이 사르빌라였다. 사진에서 특히 몸집이 작고 여려 보여서 어떻게 저 무게를 이기나 하고 걱정스러웠는데, 그때의 다섯 살 꼬마가 5년 동안 키가 훌쩍 커서 학교에 다니며 밝게 자란 모습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캠프 기간 동안 아이들은 자기의 소망을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사르빌라가 쓴 작은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다. 나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교육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받게 도와줄 것이다.”
 
*어린이노동자 학교 보내기 프로젝트 참여문의: 010-6455-9455(권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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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11 [13:29]  최종편집: ⓒ 일다
 
qkfka 11/02/12 [14:31] 수정 삭제  
  희망을 볼 수 있어서 마음 따땃해집니다.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구만요.
희망을 품고 있으면 고된 생활도 견뎌낼 수가 있지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는 분들이 있어서 고맙습니다.
레디 11/02/13 [13:57] 수정 삭제  
  가정부로 일하는 아이들은 집주인들이 4박 5일 말미도 주지 않았다니.... 캠프 참가 못한 것보다 그게 더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 아이들을 위해 별도로 또 프로그램 만든다고 하니 거기엔 꼭 다들 참가할 수 있었으면....

가출한 아이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캠프 얘기 멋집니다.

두목 11/02/14 [10:46] 수정 삭제  
  프로젝트 관련 웹사이트는 없나요? 어떤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정은 11/02/14 [13:09] 수정 삭제  
  그동안 이 프로젝트를 계속 취재해온 윤정은 기자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주요한 일은 어린이노동자들이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네팔 현지에서 어린이들을 정기적으로 직접 만나고, 아이들의 상황을 보고하고, 문제가 있을 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은 네팔 현지인 활동가가 하구요. 한국에서는 이를 후원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 아이를 학교 보내는 데 한달 2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원인들은 한 사람이 1달에 2만원을 후원하고 있구요. 반드시는 아니지만 대개들 그렇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따로 웹사이트가 있지는 않고, 후원인들에게는 이 프로젝트에 관련한 소식지가 발송됩니다. 2-3년마다 있는 캠프에는 후원인들이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구요.

프로젝트 후원으로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노동자들은 현재까지 53명입니다. 선정 기준과 선정된 아이들의 상황에 관련해서는 지난 일다 기사("네팔어린이 미래의 종자돈 '2만원',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3058)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아래에 관련기사 목록에서 보면, 이 기사 외에도 다른 기사들이 있는데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Gee 11/02/14 [13:39] 수정 삭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의 권리를 주장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우리도 가난하고 먹을 것도 없었던 시절엔 아이들이 농사일부터 남의집살이며 온갖 노동을 해야했지요.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못하고.. 여자아이들은 집안 뒷바라지하느라 자기 이름 석자도 못쓰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영국에서도 산업혁명 당시에 고아인 아이들이 격한 노무에 키도 못크고 이른 나이게 사망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들을 노동현장에 투입한다고 하는게 우리한테는 이상하게 들릴 일이 되었지만, 우리도 몇십년 전엔 그랬습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고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누면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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