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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생활 어려워 시설로 다시 가려했어”
화가의 꿈 키우려 45년만에 탈시설한 명수씨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여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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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행동’)과 공동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설장애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발바닥행동은 탈시설, 즉 장애인생활시설 안에 있는 장애인들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권단체입니다. 장애당사자들의 구술 기록과 수기, 그리고 장애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글을 통해 ‘탈시설’의 의미와 현안을 짚어봅니다. 이 기사는 탈시설한 한명수씨의 구술을 토대로, 발바닥행동 활동가 여준민씨가 기록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장애인생활시설, 관계를 차단하다
 
▲ 한명수씨는 서너살 즈음 시설에 들어가 40년을 넘게 생활한 후 탈시설 했다.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시설에서 나와 지역에서 살고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짧은 단답식의 말은 오가되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언어 장애가 있건 없건 그건 상관이 없는 듯 보인다. 대체로 오랜 기간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고, 학교교육 혹은 다른 학습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관계의 출발이자 핵심인 대화에 일단 서툰 모습을 보여준다.
 
초등학교를 간신히 나왔거나 아예 학교에 가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어찌어찌 문자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시설에 있을 때나 시설에서 나와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대화의 대부분이, 질문은 길되 답은 단순한 ‘예, 아니오, 글쎄, 몰라요, 좋아요, 싫어요’ 정도에 불과하다. ‘시설생활’이라는 환경이 삶에 대한 희망, 혹은 자신에 대한 되새김, 미래를 차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다르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하고 인정해야만 온전히 가능하다.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 ‘관계’는 그것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는 진실이고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모여, ‘나’ ‘당신’ ‘우리’를 이야기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일명 “나를 찾아가는 어메이징 스토리”-스토리텔링 모임이다.
 
스토리텔링 모임은 서로가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며, 조언도 구하고 지지를 받는 모임이다. 시설에서 나온 6, 7명의 사람들이 매주 토요일 2, 3시간 씩 만나 9차례 진행했다. 마지막 날에는 근사한 와인바에서 지인들도 초청해 자신의 매력을 스스로 이야기하고, 참여한 동료의 매력적인 점을 이야기하며 ‘긍정의 힘’으로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때>를 꾸며보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 처음과 마지막에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서너 살 즈음에 시설에 들어가 40년이 넘는 시간을 ‘시설’이란 곳에서 살았던 한명수(45세, 남) 씨다.
 
그가 시설로 돌아가겠다고 한 이유
 
▲ “자립이 너무 어려워. 다시 시설로 갈래” 그 결심은 쉽게 철회되지 않았다.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처음 그를 주목한 이유는 그가 너무나 가슴 철렁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쳤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준비와 계획에 투철하며, 무슨 일이든 성실함을 보여준 그가 왜 다시 시설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일까.

 
명수 씨는 시설에 있는 동안 약 3천만 원이 넘는 목돈을 저축해왔고, 다른 사람과 달리 전문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자립생활’을 하는데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물론 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했다. 비장애인 활동가들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그가, 어찌된 일인지 장애가 있는 동료들과는 거의 말을 섞지 않고 조용했고, 행사나 모임 등에서 보면 혼자 멀리 동떨어져 앉아 있어 외로움이 비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생각한 건 아니다. 그런 자리가 익숙지 않은 사람이거나 성격이 내성적이면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듯 보였다.
 
“자립이 너무 어려워. 자신이 없어. 다시 시설로 갈래”
 
여러 활동가들이 만나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어봤지만 그 결심은 쉽게 철회되지 않았다.
 
“쌀을 씻을 때 내 장애 때문에 쌀을 쏟고 지하철 타다가 길 잃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는 것도 싫어. 설거지를 해도 물이 사방팔방 다 튀어 옷이 다 젖고 바닥에 물이 흥건해지는 것도 보기 싫어. 내가 왜 이렇게 혼자 힘들어해야 하는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다시 시설로 갈래.”
 
그는 뇌병변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보행이 가능한, 일명 우리 사이에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낮은 장애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활동보조를 배정받지 못했다. 장애등급을 높게 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활동보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처음 자립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해도 활동보조인이 있다면 일상의 많은 부분 큰 도움이 된다. 아니 꼭 필요하다. 헌데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활동보조를 쓸 수 없어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밖에 나갈 때 외출을 준비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그의 몫이 된다.
 
명수 씨는 ‘힘들지만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보다 ‘보통 비장애인처럼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서툴고 지저분하게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그는 왜 장애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시설에서는 이런 일을 다 직원들이 했지. 난 그림 그렸고(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됐어.”
 
보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청소년기 학교를 다니면서 장애를 인정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달라진 환경 속에서 장애에 대한 무지로 차별과 외면과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사회 속의 장애’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45년 동안 시설 경험이 전부다. 지역사회라는 환경이 그에게 “너는 장애인이야”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장애가 심해 밥 먹을 때 막 흘리고 입 주변에 음식물이 묻어 있으면 정말 보기 싫어. 다른 사람의 모습도 보기 싫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가까이 가거나 말도 하기 싫고”

그의 이런 반응은, 다른 장애인들이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모습에 자신을 투영해서인 건 아닐까. 평소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인 그는 자신과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자신도 그렇게 보일까 두려운 것이다.
 
어두운 가족사에 대한 기억
 
그런데 그를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높은 군인이었는데, 어느 날 우리 가족을 다 총으로 쏴서 죽였어. 내가 3살 때인가 그런데, 난 다 기억해. 형제가 7명이었는데, 다 죽이고 나만 살렸어. 짐승만도 못한 놈이니까 죽이지도 않은 거야. 그리고는 나를 어느 아동병원 앞에다 데려다 놨어. 그게 시설생활의 시작이야.”
 
너무 어린 나이 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나, 현역 군인이 일가족을 몰살한 일이라면 그건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큰일이다. 그는 진실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다들 믿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의 모든 삶은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무서워. 자신이 없어, 너무 두려워. 다 나 때문이야.”
“형은 너무나 잘하고 있어요. 돈도 모았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왜 그렇게 자신감 없어 해요? 주변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형은 왜 그렇게 자신을 낮게 평가 하세요?”
“아니야, 자신 없어…….아버지 때문에 이런 마음이 생겼어. 비관적인 마음. 내 삶이 너무…….”

 
그는 끝내 말을 흐렸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짐승만도 못한, 병신이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분위기 전환 겸 진행자가 “한 선생님, 그럼 지금까지는 정물화나 풍경화를 그리셨는데, 이참에 우리 모임 풍경을 좀 그리시면 어때요? 사람들 표정. 인물화”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요. 사람은 못 그리겠어. 불편… 마음이 그쪽으로 안가”라고 한다.
 
언어장애 때문에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것이 힘든 그는 온몸에 힘을 주어 말하느라 에어컨 빵빵한 커피숍에서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빠 들숨날숨 모두에서 한 마디 한 마디 힘겹게 토해냈다.
 
버거운 삶을 감당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시설로 가게 된 경우는 허다하지만, 이렇게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는 “시설에 있을 때도 아무도 믿지 않아서 화가 났는데, 정말 사실이야”라며 단호한 어조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믿어달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장애 때문에 아버지가 가족들을 죽이고 자신은 죽일 가치도 없었다는 말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사실의 유무 관계를 떠나서).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란 자부심이 강하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닐 정도로 멋스런 옷을 즐겨 입는 그지만, 속으론 ‘나는 왜 태어났나’하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 내내 존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이 다 이유가 있어서 나에게 이런 장애를 주셨다고 생각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애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보려는 그의 말이, 숨 막히도록 답답한 것은 왜였을까.
 
‘우리들’ 속에서 힘을 얻다
 
▲스토리텔링모임 사람들과 함께 (아래 왼쪽이 명수씨) ©발바닥행동
스토리텔링 모임이 진행되는 중간, 나에게 안식월이 주어져 모임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했다. 짧은 2-3개월의 모임이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특히 명수 형이. 모임의 속기록을 찾아보니 사람들은 명수 형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있었다.

 
“생활력이 강한 것도 좋지만 좀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참 장점이 많은 사람이고 생각해요. 그 장점을 잘 살리면 자립도 잘할 거고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미대에 가서 공부를 더 하면 좋겠어요.”
“그림 좋아하는 만큼 사람들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다시 시설로 간다는 말은 주변 사람들을 너무 아프게 해요.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웃는 모습이 참 좋고 따뜻한 사람 같아요.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도 마음이 아팠는데, 이런 자리에서 과거의 아픔을 같이 해줘서 고마워요.”

 
그 이야기를 들은 후 그도 한 마디 하고 있었다.

“저는 어렸을 때 많이 무서웠어요. 말 꺼내기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많이 속상하고 마음이 무척 아팠어요. 그것을 생각하면 나도 죽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 다행히 잊어버릴 수 있겠다. 이상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만 특히 시설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스토리’ 즉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낯설고 두렵지만 동경하게 되는 그 무엇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감을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구체적 물음을 갖게 한다. 그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자신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하고, 자신의 내면을 읽는 힘이 생겨 나에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통해 ‘뭐든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의 힘도 찾는다. 결국 이야기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 원래 이 인터뷰는 그의 시설에서의 삶과 경험이 목적이었으나, 그는 화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자립을 결심했다며, 시설 내에서의 생활은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가족사와 현재 경험하는 ‘장애인’이란 한명수를 새삼 인식하고 있어, 인터뷰의 내용을 현재에 초점을 두었음을 밝힙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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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9/28 [08:50]  최종편집: ⓒ 일다
 
투투 11/10/02 [18:06] 수정 삭제  
  스토리텔링 모임이 지지가 많이 되어줄 것 같네요.
화가의 꿈 꼭 이루시리라 기대합니다.
길벗 11/10/04 [18:43] 수정 삭제  
  스토리텔링, 이야기 나누기 그것은 자유로운 삶을 향한 기억의 재구성이자 기억투쟁입니다. 볕 좋은 날 빨랫줄에 빨래를 넌 후 개어놓듯이 지난 날의 좋지 않은 기억을 정화시키는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L.L.L 11/10/11 [21:58] 수정 삭제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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