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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 숭배의 끝은 어디일까
장애여성 숨은그림찾기(15) 드라마 '천일의 약속'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백발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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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 연재는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다양한 ‘매체 읽기’를 통해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내가 드라마를 즐기는 이유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의 사랑을 지키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천일의 약속'이 끝났다. 서른 살의 지적인 여주인공(수애)이 알츠하이머를 앓는다는 설정만으로도 이미 세간의 관심을 끌 요소는 충분했다. 게다가 소름끼칠 만큼 성숙한 수애의 연기까지. 이번에도 '역시 김수현 작가다'라는 말이 여지없이 나올 정도로 시청률이 높았다.
 
나는 드라마를 즐기는 편이다. 드라마 중에서도 미니 시리즈를 즐긴다. 하루 종일 내내 장애인 내에서도 각기 다른 배경과 지향을 가진 여러 집단들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풀고자 애쓰는(?) 활동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정신없이 아이와 남편의 저녁을 챙기고 세탁기를 돌리는 등 집안일을 하고 나면 9시. 늦게 자면 키가 안 큰다며 잠이 오지 않는다는 아이를 이불 속으로 밀어놓고 나면 10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진 시간에 나는 드라마에서 위안을 얻는다. 우선은 머릿속이 단순해져서 좋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빛나는 대사라도 얻어걸릴 때면 한 번 더 음미하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드라마 속 남녀들의 애절한 사랑을 대리만족할 수 있어 나도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좋다.
 
바보, 멍청이에 찔린 상처
 
▲ 김수현씨가 집필한 드라마 <천일의 약속> 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젊고 지적인 여성의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 KBS
그런 내가 '천일의 약속'을 놓칠 이유는 없었다. 특히 감정이 최대한 절제된 남녀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압권인 드라마였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처음엔 알츠하이머가 그저 색다른 소재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점차 자신의 알츠하이머를 받아들이는 여주인공 이서연의 모습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경험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부정하고 분노하다 슬퍼하며, 결국은 수용하는. 당연하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진 않지만, 삼십대의 알츠하이머는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알츠하이머가 상당히 진행된 후의 자신을 '바보' '멍청이'로 표현하는 이서연이 싫어졌다. 아니, 싫다는 감정 이상이었다. "나 바보 되면 그렇게 해."라든가 "나 아직 멍청이 아냐!"라는 식의  표현이 반복될 때마다 내 안에 어떤 깊은 상처가 있어 그것이 파헤쳐지고 도려내지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바보, 멍청이가 단지 장애차별적인 언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도 가끔은 그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곤 하니까.
 
세상엔 분명 바보도 있고, 멍청이도 있다. 그리고 그들도 분명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바보이거나 멍청이는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여긴다. 여주인공 이서연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심했다. 기억을 잃어 가면서도 외국 작가들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집착한다거나 시를 읊어대는 모습은 마치 지식과 이성이 살아 있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는 절규로 들렸다. 지독한 이성숭배! 그깟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저명한 외국 작가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시 나부랭이를 줄줄이 욀 수 있어야만 인간다운 삶이고 똥, 오줌을 못 가리면 인간 이하의 삶인가? 그럼 하반신 마비로 배변이 자유롭지 못한 척수장애인들도 모두 인간 이하인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나?
 
알맹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남자 주인공 박지형은 이서연의 알츠하이머를 알고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고는 결혼식 전날 파혼을 감행한다. 둘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지만 출산으로 인해 증세는 급속도로 나빠지고, 박지형은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그녀 곁을 지킨다. 그런데 치매가 진행되고 난 이후부터 이서연이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그를 지켜보는 박지형과 가족들의 시선만이 극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여주인공은 없고, 그녀의 병세 악화에 당황하고 고통 받는 주변사람들만 전전긍긍하고, 오열한다. 박지형은 똑똑했던 이서연을 사랑했던 것이기에 기억도 잃고 기품도 없어진 서연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극중에서 박지형은 병세가 악화된 아내에게 "나아지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비난이나 원망의 말투는 아니었지만 박지형은 아내에게 어떻게든 병을 고쳐보겠다는 의지, 아니면 최소한 악화는 지연시켜보려는 의지를 기대한다. 그것이 보이지 않아 힘들어한다.  그런 남편에게 이서연은 또박또박 대답한다. "응, 나 그래. 나 기억하려고 애쓰는 게 너무 힘들어. 그냥 이렇게 살래." 옳거니, 정답이다. 어떻게든 정상으로 되돌리거나 정상에 가까워야만 인간다운 삶이라고 여기는 우리들의 뒤통수는 친 이 대사는 건질 만했다.
 
김수현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치매는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나도 사실은 궁금했다. 껍데기만 남는 게 어떤 것일지. 그냥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나는 치매가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치매인 사람도 치매가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알맹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믿는 조건인 품위, 이성, 논리, 지식이란 완전히 사라지고 온통 유치하고 추잡한 것들로만 채워졌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어쩌면 사라진 알맹이에 집착한 나머지 알츠하이머 환자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서연의 무덤 앞에서 "난 아직도다"라며 오열하는 박지형의 끝나지 않은 사랑으로 드라마가 결말을 맺은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그런데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이유는 상대역인 이서연이 이미 오래 전에 존재감이 없어진 탓일 게다.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혼자 사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여주인공 이서연은 실패한 캐릭터라고 본다. 남편 박지형의 시각에서 똑똑했고, 누구보다도 현명했던 과거를 조금씩 잃어버리는 여자로서 그려졌기에 이서연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30대의 알츠하이머라는 충격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극적 요소도 희박하고, 주제도 모호해지게 된 원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다른 언어로 말한다
 
바보, 멍청이라는 말이 내게 그토록 상처가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지적장애인 인권감수성이 갑자기 민감해진 것이 아니고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최근 장애계 안에서 나는 논리가 부족하거나 이상적이기만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자며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내 언어가 권력자의 언어가 아니기에 애써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평가라고 여겨진다. 나 역시 무시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상처가 되었었나 보다.
 
이성, 논리, 합리성, 효율. 그런 잣대로 보면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장애인 권리는 어불성설인데, 운동을 한다는 우리 모두 거기에 갇혀 있다. 그리고 그 잣대로 우리 안에서도 더 약자인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상처가 되었던 걸 보면 나 역시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었음을 알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그들의 흉내를 내지는 않으려 한다. 다른 언어로 이야기할 것이며, 다른 세상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무슨 말을 사용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꿈을 표현할 수 있는가를 결정"(글로리아 스타이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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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27 [17:36]  최종편집: ⓒ 일다
 
애독자 12/01/18 [02:06] 수정 삭제  
  좋은 글을 늦게 읽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아서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다큐프로에서 실제로 30살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자분이 나온 걸 보았던 기억이 나서 더욱 공감하며 글 읽었어요. 병이 없는 사람들은 참 쉽게 그 상태일 때의 자신만이 진정한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병이 나면 병이 난대로 다른 알맹이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겠죠. 제 자신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였는데, 많은 배움을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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