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녀의 귓속말… 들리나요?

비디오 가게에서 만난 <미나 타넨바움>

홍문보미 | 기사입력 2003/08/31 [22:03]

두 소녀의 귓속말… 들리나요?

비디오 가게에서 만난 <미나 타넨바움>

홍문보미 | 입력 : 2003/08/31 [22:03]
<미나 타넨바움>은 글을 쓰기가 참 어려운 영화예요. 중간까지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퍽 따사로운 감성의 친구와 함께 비디오방에 갔는데, 그 친구가 이 영화를 골랐어요. 어떤 영화냐고 묻자 그 친구는 대답 대신 “전에 봤던 건데,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어서”라고 하더군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친구를 이해했습니다.

<미나 타넨바움>은 친구와 함께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예요, 그러나 어떤 영화인지는 말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지요. 이후 몇 년간 제 주위 여성들이 “여자친구와 함께 볼 영화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 거의 언제나 <미나 타넨바움>을 추천했지만 “어떤 이야기냐”는 질문에는 “여자 이야기야…”라는 바보같은 대답으로 어물쩡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려니 모니터 앞에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손톱을 깨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건, 누군가 내 삶에 대해 말해보라고 할 때의 심정과 비슷할 지 몰라요. 나는 내가 언제 태어났고 누군가를 언제 어떻게 만났고…라며 주섬주섬 설명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라며 입을 막아버리겠죠.

삶은 잡다하고 다양한 결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조각들을 모아 손에 쥐려하면 수없이 떨어져나가는 다른 빛의 조각들. 미나 타넨바움과 엘자 베네기의 삶과 그녀들의 관계를 잡아 보려하는 이 영화도 한 줄로 꿰어 설명할 수 없는, 한 줄로 꿰어보려 할 때 낯설고 아름답게 흩어지는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걸 지독히 섬세한 눈길로 바라보는 영화죠. 서사와 시놉시스 뒤에서 묵인되는, 그러나 우리의 삶과 관계에서 중요한 것들을 바라보려 하는 영화입니다. 나는 이렇게 설명할 도리밖에 없어요.

영화의 마지막에는 다소 난데없는 자막이 올라옵니다. “그는 맹세했다. 내가 그걸 묵인한다면 나는 개가 되어버릴 거야, 그리고 그는 네 발로 뛰어갔다 - F. 카프카”

그 직전도 이미 충분히 당혹스럽습니다. 이 영화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했던 미나의 사촌이 미나의 죽음에 대한 마지막 멘트를 끝낸 후 갑자기 화면 왼쪽 너머를 보며 말합니다.

“되었나요?”
“다 되었습니다. 이제 정리하고 끝내.”

남자감독의 목소리예요. 불이 꺼지고 스텝들이 오고 가며 정리합니다. 카메라는 서서히 위로 올라가고 클로즈업되었던 그녀는 조그맣게 아틀리에 가운데 서서 버려집니다. 그녀는 절망적으로 외쳐요. “나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했잖아요.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그녀는 계속 영화 속에 등장해 미나와 엘자의 이야기를 했지만 막상 자신의 이야기는 할 수 없었어요.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하려 할 때면 카메라는 미나를 향해 빠져버리지요.

그녀가 더듬거리는 비명처럼 서 있다가 사라진 후 화면은 텅 빈 아틀리에에 있던 그림 한 편을 비춥니다. 어린 시절 미나와 엘자가 처음 만났을 때 미나가 엘자에게 준 그림이지요. 유명한 화가의 복제화인데 미나가 두 소녀의 귓속말을 덧붙여 그린 그림이라고 하죠.

아무도 없는 아틀리에에 미나와 엘자 두 소녀의 귓속말이 들립니다. “있잖아, 이건 비밀인데…” 학교 복도에서 보았던 키스 신에 대한 비밀이야기입니다. 그 뒤론 키득대는 어린 소녀들의 웃음소리들만. 그 뒤에 무엇을 했기에 그렇게 웃고만 있을까요? 그건 나레이터 사촌이 알 수 없었고,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부분이에요.

미나와 엘자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어요. 묵인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들은 빠뜨려지는 거죠. 관계에서는 감정에서는 삶에서는 항상 말줄임표와 빈곳으로만 표현되는 무엇이 있는데, 난 그걸 설명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당신에게 전달할 수도 없고 다만 손을 내밀며 무력하게 “아시겠어요?”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지요.

미나와 엘자와의 사이에 있었던 것은 그저 우정, 애정, 선망, 질투, 미움, 집착, 이런 단어들로 표현될 수밖에 없어요. 그것으로는 불충분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미나가 엘자에게 엘자가 미나에게 전달할 수 없었고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나에게 전달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난 잠시 생각해요. 나는 늘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몰랐고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몰랐어요. 아마 그건 내가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거예요.(이 말을 오해하진 않겠죠?) 시놉시스 뒤에 가려진 것들이 항상 내 눈을 부시게 해요.

미나의 사촌은 미나의 사촌일 뿐 이름도 갖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녀에게도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말하고자 했던(그리고 무시되었던)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죠. 하지만 묵인할 것은 묵인하고 무시할 것은 무시해야 영화가 만들어지듯, 우리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미나가 죽고 엘자가 산 이유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엘자는 완전히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뜻대로 남편을 찾아보고 어린 시절의 모델-미나에게서 벗어나고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제 위치를 찾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묵인하죠. 미나의 죽음을 안 엘자에 대해 이런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이제 그녀의 존재 대신 추억을 갖고 살기로 했다. 오히려 그녀가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어린 엘자였다면 그렇게 담담하지 못했겠죠. 미나의 죽음은 엘자가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의 엘자는 직장으로 원고를 보내면서 잠시 미나를 회상할 뿐입니다.

미나는 죽기 전에 열여섯 살의 엘자를 봅니다. 미나는 죽었고, 어떤 의미에서 열여섯 살의 엘자도 죽었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게 사회에서 말하는 '성장'이고 '삶'일 지 모릅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어쨌든 살아야 하는 거고, 영화는 만들어져야 하고, 서른 셋의 엘자도 여전히 예쁘니까요.

그리고 살아서 <미나 타넨바움>을 보는 우리는 다른 삶을 꿈꾸고 <미나...>같은 다른 영화를 꿈꿀 수도 있습니다. 미나가 복제화 그리기를 중지하고 자신의 그림을 다시 그리려 하는 순간 죽었듯이, 복제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그리려 하는 순간에는 죽음의 위협이 따라오지만 말이에요. 그럼에도, 그 죽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맹세 없는 내 나름의 진짜 삶을 향해 비상해보고 싶다고 나는 중얼거려요.

자, 이 혼란스러운 중얼거림을 이만 접어야겠군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무척 다채로운 결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나는 묵인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묵인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영화로 <미나 타넨바움>을 보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본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요.

엘자 뒤에서 전화를 엿듣는 어머니의 중압감이 잊혀지지 않았던 누군가는 '어머니와 딸간의 관계'로 이 영화를 보더군요. 상관없어요. 나는 그저 당신과 이 영화를 보고 싶어요. 당신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어떤 시선으로 보더라도 <미나 타넨바움>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독한 영화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말할 수 없는 그 수많은 것들에 불구하고 당신에게 말 걸고 싶으니까요.

▶ 작품명: 미나 타넨바움 (Mina Tannenbaum)
▶ 제작년도: 1994년 (드라마)
▶ 감독: 마르틴 두고브송
▶ 제작국가: 프랑스
▶ 출연: 로만느 보링거(미나 타넨바움), 엘자 질버스타인(에델), 닐스 타베르니에
▶ 상영 시간 : 1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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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단 2003/09/17 [00:30] 수정 | 삭제
  • 중학교땐가요? 티비에서 우연히 보고는
    주인공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평범한 여자의 길로 가는 친구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참 강렬하게 각인되었었죠. 나같으면 미나같은 삶을 살고 싶다.. 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요. 저도 밑의 분처럼 아애 소장을 하고
    싶은데 잘 찾아봐야 겠네요.
    다시 상기시켜준 기사 감사드리네요.
  • 하나 2003/09/08 [23:56] 수정 | 삭제
  • 로만느 보렝제죠. Romane Bohringer니까.

    비디오 케이스에도 보링거라고 적혀있더군요. 잘못된 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nyma 2003/09/07 [21:40] 수정 | 삭제
  • 아주 어릴적에 우연히 보곤
    말로 표헌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을 갖게 했던 영화.
    비디오 재고정리칸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샀죠

    두 사람이 대화 사이에
    정말 솔직한 나래이션이 끼어들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다시 보기가 어쩐지 조금은 두렵기도 해요

    글 잘보았습니다
  • 마운틴듀 2003/09/02 [01:42] 수정 | 삭제
  • 잠깐 상영되고 말았던 것 같은데, 저는 운좋게도 영화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 영화를 보았답니다. (자랑^^) 영화를 떠올리면 그 친구들까지 같이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영화인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봐야 할 영화죠. 같이 모여 또 한 번 보고 싶은 영화에요. 비록 영화가 끝나고 서로 영화에 대해 아무 말도 안하겠지만요.
  • 에델 2003/09/01 [14:13] 수정 | 삭제
  • 에델 역의 엘자 질버스타인을 좋아해서 보게된 영화인데 처음엔 제목이 그냥 미나 인줄 알았어요.

    영화를 본 지 오래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기자님 말씀대로 스토리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영화였던 것 같아요. 미나의 사촌이 등장하는지도 몰랐네요.... 미나와 에델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고 많이 공감을 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나요. 프랑스 영화라서 인지 색다르게 편집을 했던 것 같구요.

    이 기회에 한 번 다시 빌려다 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냥 묻히기엔 아까운 영화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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