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소녀물과 소녀들의 ‘환상’

요술공주 ‘밍키’에서 천사소녀 ‘네티’까지

최임성향,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3/04/30 [23:36]

변신소녀물과 소녀들의 ‘환상’

요술공주 ‘밍키’에서 천사소녀 ‘네티’까지

최임성향, 김윤은미 | 입력 : 2003/04/30 [23:36]
혜성처럼 나타난 변신소녀

만화 속 소녀들이 어느 순간 변신했다. 외계에서 날아온 공주도 있고, 마법나라에서 온 소녀도 있다. 이들 변신소녀들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주인공을 외면하고 고통을 주는 것만 같았던 명작만화, 순정만화영화의 설정은 없다. 소녀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고만고만한 문제를 대면하고 이
에 멋진 폼으로 마술봉을 흔들며 변신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고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소녀 시청자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마법소녀물은 순정물과는 다른 새로운 소녀상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많은 눈길을 끌었다. <들장미 소녀 캔디 ’76>를 원조로 하는 순정물의 경우 순진하고 착한 여주인공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를 다룬다. 예쁜 공주 타입의 여주인공은 수용자들의 자기 대입을 쉽게 끌어낸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으나 소녀들의 다양한 욕망을 풀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착하고 무력했다.
 
이와는 달리 마법소녀물는 <요술공주 밍키(마법의 프린세스 밍키 모모 '82)><천사소녀 새롬이(마법의 천사 크리미 마미 '83) ><샛별공주 '84><꽃나라 요술봉 '86>으로 이어지면서, 순정물과는 또 다른 소녀상을 창출했다. 변신을 통해 멋진 여성이 되어, 능력을 발휘하는 소녀상이 그것이다.

이 요술공주 시리즈의 의의는 월트디즈니의 장편만화영화 <신데렐라 '50> 이후, 교과서처럼 주입되어온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 작품들로서 백마 탄 왕자님이나 기다리고 있던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여성 스스로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 내는 등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송락현의 애니스쿨2>, 서울문화사 1997 167쪽)

마법, 변신, 성장, 로맨스- 이는 소녀들의 욕망을 반영하는 일종의 환타지다. 물론 욕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욕망은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특정한 서사와 이미지에 의지한다. TV만화영화의 경우 1990년대 여성들에게 이 서사와 이미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그렇기에 이 소녀들을 마냥 향수 어린 기억으로 덮어두기에는 아쉬운 것이다.

 
이 변신하는 소녀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거칠게 분석하자면 마법소녀물과 미소녀 변신물이 적극적인 여성상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문제는 아니다.

변신소녀, 이렇게 변했다

일본에서 마법소녀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였다. 당시에 시작된 마법소녀물은 환상을 통해 소녀들의 욕망을 실체화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설정의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1970-1980년대를 들어오면서 장난감을 팔기 위해 스폰서를 대주었던 완구 회사들과의 결합으로 과잉 생산되었고, 내용도 단순하여 귀여운 소녀와 마법 도구를 통한 반복되는 패턴의 환상체험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소녀 소비자들은 이에 대해 식상해 하기도 했고, 많은 작품들이 비슷한 설정으로 인해 시청자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마법소녀물은 미소녀 변신물로 바뀐다. 옷 갈아입기와 마법도구를 통해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녀들이 등장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92>를 시작으로 <사랑의 천사 웨딩 피치(웨딩 피치 '95)><천사소녀 네티(괴도 세인트테일 '95)>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전투나 변신 과정이 그 이전에 비해 더욱 강조되었다는 것. 이제 아름다운 소녀들이 멋지게 싸우는 장면들이 소녀들의 또 다른 대리 만족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녀들의 옷 갈아입기에서 보이는 모습과, 전투능력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옷차림, 전투하는 도중에 흐트러지는 소녀들의 매무새 등은 세미 포르노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며 남성소비자들의 눈을 끌려는 속셈을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변신소녀와 유사한 설정의 미소녀 전투물이 남성용 게임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다. 게다가 주인공 소녀(들)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실제로는 로맨스 소설의 남자주인공의 역할을 도맡아 소녀들의 실질적 지도자(주인)행세를 한다.

또한 주인공 소녀들의 연령 설정이 10-12세에서 15-18세로 올라가면서 주인공들의 성적인 매력에 대한 설정이 보다 강력해지고 로맨스의 가능성 역시 강화된다(이 때문에 이를 소비하는 소녀들의 연령층도 고등학생까지 증가하게 되고, 시장의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소녀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기에, 환상 세계에서의 대리 만족을 통해 조금이나마 현실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경향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소녀들이 마법을 통해 현실적으로 부닥칠 법한 사건들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만화도 생겨나고 있다. 원하지 않았던 마법의 힘을 갖게 되어 오히려 불만스러워하는 소녀, 마법을 쓰긴 쓰지만 제대로 된 마법이 아니라서 오히려 사고를 치는 소녀, 마법을 써서 자신의 임무는 수행하지만 자신의 일상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소녀 등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하고 의지도 강하며 성장하는 소녀들도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주류는 미
소녀 변신물이다.

변신은 여성들의 성장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고 TV 앞에 앉는 소녀들이 변하면서 변신 소녀들은 마법소녀에서 전투적인 미소녀로, 또 다른 소녀들로 변해왔다. 변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그녀들은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그래서 로맨스에 발 묶인 채 눈물 흘리는 꼬마숙녀 링 보다는 귀여운 ‘밍키’나 수다쟁이 ‘세일러문’을 보는 게 속 편하다. 게다가 그녀들은 변신을 통해, 아름다운 여성이 되고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니 소녀들이 쉽사리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런데 밍키나 세일러문들이 활달하고 적극적이라고 해서 그녀들이 살아가는 세계 자체가 순정물과 다른 것은 아니다. 즉 변신소녀가 제공하는 환상의 서사는 <꼬마숙녀 링>과 별 다를 바 없다. 이 만화들은 여성들을 안온하고 화목한 가정과 변함없는 일상에 묶어두고, 자의식의 성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서 소녀들의 나이를 고려하여 동화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은 치워두자.

남자어린이들에게 그렇게 폭력적인 로봇만화를 잘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그 나이 대에 맞게 세계를 얼마나 쉽게 전달하는가이지, 예쁘고 귀여운 정도가 아니다. 변신 소녀들이 세계를 구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녀들이 세계를 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남성들이 소녀들에게 가지고 있는 환타지와 중첩된다.

 
그녀들은 생각 없이 착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위험에 빠질 만큼 성격 좋고, 사모하는 남자가 있고, 화목한 가정과 상냥한 친구들에 둘러싸여 밝고 맑게 자라난다. 이렇게 성장하는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남자 제작자들일 것이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그것이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컨대 <빨강머리 앤>만 해도 따스한 에피소드 가운데 소녀들의 엉뚱한 상상력, 초라한 현실, 성장의 단초들을 슬쩍 엿볼 수 있다.

결국 변신소녀에 대한 열광은 일회적인 환상의 소비이다. 누구나 환상을 소비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환상의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변신 소녀들의 환상은 철저하게 여성들에게 허용 가능한 수준의 갈등과 고민, 능력발휘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소녀들이 실제로 부닥치는 고민의 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환상을 소비하는 효과는 이렇게도 일회적이며, 여성들의 상상력과 사고의 폭을 제한하기까지 한다. 소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변신소녀들의 모습에 자기대입하고 열광하지만 그 일회성 때문에 몇 년이 지나면 쉽게 그 세계에서 이탈한다. 소녀들은 그 환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혼자 성장하고 변신 소녀들은 추억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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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루팬 2013/02/15 [13:44] 수정 | 삭제
  • 루루가 모든 마법소녀의 원조(?)격인뎅.
  • 아이엄마 2010/03/16 [10:14] 수정 | 삭제
  • 제가 자라면서봐온 정감가는 만화내요...요즘하는 아이들 만화가 폭력성을 많이띤것들에비해 순수하고 따뜻한 감정을 느낄수있었던 만화들 다시 TV에서봤음좋겠어요....
  • 오토나시쿄코 2009/04/23 [08:59] 수정 | 삭제
  • 그런데 큐티하니는 아예 없네요. 변신물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큐티하니가 없으니 너무 슬프네요
  • 오토나시쿄코 2009/04/23 [08:51] 수정 | 삭제
  • 소녀팬들은 물론 소년팬들조차도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세일러문. 마법기사 레이어스는 그중에서 가장 소년팬들이 많이 찾던 만화.
  • 나디아 2009/04/17 [02:07] 수정 | 삭제
  • 누나랑 같이 봤었던 밍키, 트윈테일(토끼머리)로 대표되는 세일러문, 포니테일로 대표되는 괴도 세인트테일 뒤에 2개는 아는 동생이랑 같이 봤었는데 밍키를 했었을 때에는 재미있게 봤고, 세일러문과 괴도 세인트테일 했을 때는 동생이 신나하니까 보조맞춘 기억이 있네요.
  • 사랑 2009/01/18 [23:57] 수정 | 삭제
  • 세일러문사랑♡
  • 김민지 2008/12/06 [14:27] 수정 | 삭제
  • 참좋다








    . 왜냐면 세일러문팬이다 그리고 세일러문노래도좋고
  • 로즈 2003/05/01 [13:34] 수정 | 삭제
  • 새롬이가 저렇게 생겼군요.
    추억이 새록새록~
    재밌게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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