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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어려운데 같이 하면 할 수 있어”
<시설을 나와 홀로서다> ④ 김경남, ‘앎의 기쁨’을 찾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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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을 포함해 지역사회단체들이 함께 시작한 장애인주거복지사업을 통해 16명의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 지원이 많이 미비한 상황에서 ‘사람다운 삶’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용감하게 홀로 선 이들의 이야기가 최근 <나, 자립했다>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이 중 일부를 <일다>에 옮겨 싣습니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홀로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우리 사회가 어떠한 지원체계를 갖추고 어떻게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글쓴이 김원호 씨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공부하는 작은자야학의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경남과 희영, 함께 손을 잡고 시설을 나오다
 
“언니, 나도 같이 나가”
 
경남 씨의 시설생활은 1991년에 시작되었다. 15살이었다. 영등포여고 근처에서 경남 씨는 길을 잃었다. 지적장애가 있어 가족을 찾기 힘들었다. 서울 소년의 집에서 지내다가 1995년부터 철원 은혜요양원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경남 씨는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적장애인인 경남 씨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함께 시설에서 나온 희영 씨의 역할이 컸다. 시설에서 만난 희영 씨와 경남 씨는 함께 시설생활을 하며 자매처럼 지냈다. 희영 씨가 휠체어를 탈 때에는 경남 씨가 뒤에서 밀어주곤 했다. 경남 씨는 희영 씨에게 자주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했다. 언제나 경남 씨가 먼저 얘기했다.
 
희영 씨는 나가기가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막상 운동장으로 나오면,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희영 씨는 시설을 나오기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시설 안에서 편하게 얘기하긴 힘들 것 같았고, 경남 씨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희영 씨의 전화 내용을 들은 경남 씨는 희영 씨에게 말했다.
 
“언니 왜 혼자 나가려고 그래?”
 
희영 씨는 경남 씨가 그런 말을 한 것이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여 다시 물었다.
“왜?”

 
그러자, 경남 씨가 답했다.
“나도 같이 나가야지.”

 
▲ 지적장애인인 경남 씨(사진 오른쪽)과 지체장애인인 희영 씨(왼쪽)은 한 시설에서 자매처럼 지내다 함께 자립했다.     © 고은경

사실 희영 씨는 그 때까지 경남 씨와 함께 시설에서 나올 생각을 하고 있진 않았다. 경남 씨는 그 때까지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희영 씨는 처음엔 경남 씨가 그런 말을 한 다는 것에 놀랐다.
 
희영 씨가 경남 씨에게 묻자, 경남 씨는 희영 씨에게 어떻게 혼자만 나갈 수 있냐고 화를 냈다. 희영 씨는 괜찮았지만 경남 씨와 함께 시설에서 나오려고 하자 시설 직원들의 반대가 심했다. 희영 씨는 먼저 자립생활체험 프로그램을 받고 돌아온 뒤 시설 수간호사에게 경남 씨도 자립생활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안 돼.” 안된다고 했다. 갖가지 핑계를 댔다. 희영 씨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간호사에게 대들었다. “경남이도 한 사람의 인격을 갖고 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마세요. 경남이가 원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어렵게 경남 씨도 자립생활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경남 씨가 좋아하고 있다는 걸 희영 씨는 알 수 있었다. 다행히도 시설 직원들 중 몇몇이 사무실 눈치를 보지 않고 희영 씨와 경남 씨에게 나가서 살아보라고 말해주었다. 시설직원들이 반대를 했다면 시설에서 나올 때까지 눈치를 보며 시달릴 게 뻔 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수간호사는 시설에서 희영 씨와 경남 씨가 나오는 날까지 괴롭혔다.
 
“경남이 보호자는 누가 되어 줄 건데?” 경남 씨를 못 나가게 하려고 실랑이가 붙었다. 어렵게 희영 씨와 경남 씨는 함께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말이 없던 경남이 ‘수다쟁이’가 되다
 
시설에서 나온 뒤 경남 씨는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말이 많아졌다. 수다쟁이가 되었다. 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경남 씨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자유스럽지 않다는 걸 경남씨도 느꼈던 것일까. 희영 씨와 운동장이 있는 곳으로 나가야 그나마 몇 마디 할 뿐이었다. 그 몇 마디도, “언니, 열 바퀴”가 고작이었다. 지금은 희영 씨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두서는 없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속삭인다. 희영 씨는 그런 경남 씨의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희영 씨는 경남 씨와 같이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아 좋다고 한다.
 
“약간 말이 두서없기는 하지만 말이 늘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요. 어디서 들은 얘기를 그대로 얘기는 못하지만 막 얘기하기도 하고. 그래도 일단은 얘기를 하니까 저는 좋은 거 같아요. 경남이가 저를 많이 웃겨요. 저번에는, 경남이가 시계를 아직 못 보니까 핸드폰에서 몇 시 이렇게 알려주는 거 있잖아요. 그걸 계속 듣거든요. 경남이가 언니 지금 5시래 그래요. 그래서 제가 누가 알려줬어 이렇게 물으니까 핸드폰으로 어떤 여자가 알려줬다고 그러는 거예요. 한 참 웃었어요. 경남이 때문에 자주 웃어요.”
 
경남 씨는 자립생활을 하며 조금씩 생활을 익히고 있다. 확실히 시설에 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많이 변했다. 웃음도 많아졌고, 말도 많아졌고.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경남 씨는 아직 혼자서 옷을 고르는 것도,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음식을 만드는 것도 어려워한다. 경남 씨에게 옷을 고르라고 하면 한 겨울인데도 얇은 옷을 고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희영 씨가 옷을 골라준다.
 
“옷은 친구(희영 씨 활동보조) 아니면 희영 언니가 사 갖고 집으로 와서 입고 희영 언니가 골라줘요. 나는 잘 못 고르니까요. 희영 언니가 골라주면 응 그거 이쁜데 그래요. 옷 고르는 게 아직 어려워서…”
 
“옷 같은 걸 제가 골라주긴 골라주는데요. 저도 이게 맞는지 안 맞는 건지 고민이에요. 이걸 제가 고르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경남이보고 고르라 그러면 좀 그래요. 제가 볼 때 그런 게 보이니까 여자니까 더 예쁘게 보이게 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 마음에서 그러는 건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경남이한테 그냥 전적으로 다 맡겨야 할지, 아니면 제가 도와줘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해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냥 놔둬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 갈등이 좀 많이 돼요.”
 
시설안의 15년,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만든 시간
 
경남 씨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다.
“떡볶이하고 순대.”
 
바로 대답하신다. 음식을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경험 해 본 일이 없는 경남 씨에겐 옷을 고르거나,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짧은 만남이지만 경남 씨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시설에서의 15년 할 수 있는 일마저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경남 씨에게 시설에서 일을 해 보거나 배운 적은 없냐고 물었다.
 
“일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어요. 거기 엄마들(청소, 식당일을 담당하는 시설 직원들)이 다 한다고 놔두래요. 왜 그러냐면 막 답답하니까. 느리다고, 알아서 할 테니까 놔두라고, 가서 운동이나 하라고… 공부 같은 거는 배운 게 없어요. 사무실에 복지사 언니가 공부를 가르쳐주긴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냥 이렇게 혼자 써 봐, 그러는데 글씨가 이거 밖에 안 써지잖아요. 못 쓰겠다고 하면 막 욕먹어요. 막 소리지르고. 아니 바보도 아니고 이런 글씨를 왜 못 쓰느냐고.
 
그러면 내가 이런 글씨 잘 썼으면 내가 시설에 왜 갔는데? 우리 엄마가 똑똑한 엄마도 아니었는데… 어우 소리 지르면 막 무서웠어요. 그럼 그냥 내가 운동하러 가겠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도 나 같이 못 쓰는 엄마였어요. 그래서 내가 글씨를 잘 못 써요. 엄마는 집을 나갔어요. 아버지가 많이 뭐라고 하고 그러니까. 딸한테는 뭐라 안 하고 엄마한테만 뭐라 그랬어요. 나한테는 바이바이 하고 나갔어요.”
 
만약 시설에서 아주 조금씩, 기본적인 생활 교육을 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아쉬움이 생활 교육 뿐일까. 기초적인 문장 교육이라도 장애인의 입장에서 가르쳐 주었다면 어땠을까. 시설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함께 시설에서 생활했던 희영 씨에게 물었다.
 
“저희 나올 때쯤에 젊은 엄마들이 공부 가르쳐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경남이도 잠깐 참여하고 그랬는데 제가 보니까 약간 강압적이었어요. 교육 수준이 그만한 건데… 산만할 수도 있잖아요. 그 꼴을 못 보는 거죠. 얌전히 앉아있는 애들만 시키는 거죠. 경남이 같은 애들이 그런 교육 받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경남이는 나가라고 하고… 얌전하고 말 잘 듣고 그런 애들만 공부를 가르쳐주었어요. 좀 어이가 없죠.”
 
제빵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경남 씨에게는 어려웠다. 어려워하는 것이 당연한데 제빵 기술을 빠르게 익히는 사람들에게만 교육을 시켰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시설에 살게 됐는데, 시설에서도 장애 수준에 따라 차별을 받는 셈이었다. 장애인의 생활공간이지만 생활 규범과 속도는 비장애인의 그것과 다름없는, 그래서 더욱 견딜 수 없는 곳이 바로 시설이었다.
 
“시설 밑에 제빵 만드는 작업장이 생겼었어요. 경남이도 한 번 뽑혀서 가게 됐는데 한 일주일도 안 돼서 올라온 거예요. 경남아 왜 올라왔니 그랬더니 실실 웃기만 하고 말을 안 하는 거예요. 그 뒤에 들어봤더니 경남이가 거기 가서 적응이 안 돼서 그런지 몰라도 막 웃고 잘 안한다는 거예요. 가르쳐주면 배울 수 있는데 잘 못한다고 그러는 거죠. 빵 만드는 순서를 익히지 못하고 웃고 떠든다고요. 애들이 그러더라구요. 경남이는 빵은 안 만들고 웃고, 막 정신이 없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방으로 올라가라고 그랬다고.
 
저는 한 번도 못 봤어요. 경남이가 빵 만드는 거를. 경남이에게 그런 일거리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잘 하든 못 하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좋은 거잖아요. 나도 자고 일어나면 어딘가 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거든요. 야학에서도 경남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고민이 많은 거 같아요.”
 
결국 시설생활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방치인 것이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도 홀로 설 수 없게 만드는 곳. 희영 씨는 말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없어요.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주고 그것 밖에는. 그냥 각자 알아서 돌아다니고 그렇게 사는 거지 뭐가 없는 거죠. 그 안에서는.”
 
“(지적장애인도) 가르쳐주면 다 알 수 있어”
 
▲ “같이 하면 나도 할 수 있어. 혼자서만 하면 어려운데 같이 하면 쉬워.”  천천히 하면 배울 수 있고, 앎은 기쁨이 된다. © 고은경
오후 7시, 경남 씨는 야학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탈시설 후 경남 씨의 주요 일과는 집근처에서 하는 걷기 운동과 노들야학에 가는 것이다. 숫자세기에 열중인 경남 씨, 점점 커지는 숫자에 조금씩 말문이 막힌다. 옆에 있는 자원교사가 함께한다.

 
다시 숫자세기를 이어 나간다. 50까지 세었을 때 조금만 쉬었다 하자며 자원교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경남 씨는 시설에서 공부하던 얘기를 꺼낸다.
 
“시설에 있던 사람들은 공부도 안 가르쳐주고 그랬어. 가르쳐줘도 그냥 이거 똑같이 써, 그런 애기만 했어. 선생님들도 아냐, 그이들은. 여기하곤 완전 달랐어.”
 
경남 씨는 수업 모습을 참관하고 있는 내가 있어서 그랬는지 평소와는 달리 살아온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참 동생뻘인 자원교사 앞에서 이제 막 숫자를 세고 있는 모습이 겸연쩍게 느껴진 것일까.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경남 씨, 아주 천천히 숫자를 세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열심이다. 자원교사가 숫자는 그만 세고 그림일기를 그리자고 한다. 경남 씨는 그림일기는 어렵다며 하기 싫다고 한다.
 
“저랑 같이 해 봐요.” 자원교사가 말하자 경남 씨 하는 말, “같이 하면 나도 할 수 있어. 혼자서만 하면 어려운데 같이 하면 쉬워.” 하고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일기를 그리며 경남 씨는 야학에서 노래를 배울 때의 이야기를 했다. 혼자 노래하면 음정도 박자도 안 맞아서 어려웠는데 여럿이서 같이 노래하니 노래가 술술 나왔다고. 함께하면 할 수 있다고 비로소 경남 씨는 말하고 있다. 수업은 계속 이어지고, 경남 씨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자원교사에게 묻는다. “이건 뭐지? 가르쳐 주면 알 텐데.”
 
자원교사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경남 누님은 가르쳐 주면 다 알지.”

 
경남 씨는 앎의 기쁨에 흠뻑 빠졌다. 그 동안 몰랐던 ‛아(가나다라의 ‘아’)’를 알게 됐다고 기뻐하며 희영 언니와 미영 씨(희영 씨 활동보조인)에게 보여줄 거라고 말한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익숙해지기
 
지금은 이렇게 야학에 적응하여 수업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힘들어했다. 경남 씨는 수업시간에 점선을 그려달라고 했다. 보고 직접 쓰지 못하니까 점선을 그려주면 따라하겠다고. 시설에서 배웠던 방법이었던 것일까. 일 년 동안 교사들에게 점선을 그려달라고 했다. 교사들은 직접 써야 공부가 된다고 경남 씨를 설득했다.
 
적응하지 못한 경남 씨는 교실을 나와 복도를 배회하며 욕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경남 씨는 결석 없이 꾸준히 야학에 나왔다.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수업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사납게 욕하는 모습도 서서히 줄었다. 경남 씨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금씩 한글과 숫자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교사들도 경남 씨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 느끼고 있다.
 
“야학에서는 어쨌든 와서 사람을 만나는 것,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배워가는 거 같아요. 실제적으로 제일 필요한 건 라면을 끓이는 가스불 켜는 거 이런 건데… 혼자 텔레비전도 안보거든요 누가 보라고 해야지 보지. 길 잃어버리는 것도 무서워하고. 처음에 경남언니 멘토를 했던 천성호 선생님은 처음부터 교육을 받았다면 지역사회에서 사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을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노들야학에서 경남 씨와 함께 수업하는 한명희 교사의 말이다. 한 교사의 말대로 계속해서 교육을 받아왔다면 경남 씨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았을 것이다. 어디 경남 씨 뿐일까. 결국 모든 장애는 사회적 장애에 불과함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고 있지 않은가. 야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경남 씨는 어두운 길을 헤치고 홀로 집으로 향한다. 이 길에 익숙해지기까지 교사들의 동행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홀로 갈 수 있는 길이 되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그렇듯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경남 씨는 앞으로도 주욱 희영 씨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다. 희영 씨에겐 고민이다. 물론 아직은 괜찮다. 서로가 서로의 손발이 되어주며 지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지적장애인에게도 활동보조가 필요한 이유다. 가르쳐주면 알 수 있다고 경남 씨는 말한다. 가르쳐주면 알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3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제 경남 씨는 익숙해질 것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대학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유쾌하게 웃으며 경남 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어, 아우 무서워서 잘 피해서 다녀야 해요. 막 툭툭 치고 그냥 지나가. 아후 사람들이 참.”
 
혜화로터리의 횡단보도, 왕복 8차선의 도로에 즐비한 차들은 파란불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쌩쌩 달린다. 경남 씨는 연신 주위를 살피며 발을 떼지 않다가 파란불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익숙해진 표정이다. 홀로 걷는 길이 무섭지 않아 보였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경남 씨는 천천히 고군분투 중이다. 언젠가 경남 씨의 삶에도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과거의 삶은 마땅히 느껴야 할 인생의 어려움조차 빼앗긴 삶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의 삶이 그렇듯 불안을 안고, 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경남 씨는 이제야 비로소 삶다운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 글은 김경남 씨의 구술만으로는 글 구성이 어려워 함께 생활하고 있는 장희영 씨와 경남씨가 주로 활동하는 공간인 노들야학의 한명희씨를 인터뷰하여 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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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1/14 [02:37]  최종편집: ⓒ 일다
 
둘리 13/01/17 [20:54] 수정 삭제  
  두 분의 우정이 부럽습니다.
냥이 13/01/21 [21:09] 수정 삭제  
  혼자 아니고 같이...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하면서 살아요.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행복해보이는 두 분의 사진을 보면서 저도 기쁜 마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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