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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 틀 벗고 ‘동등한 관계’를 실험하며
<나의 페미니즘> 여성주의 미술가 이충열(1)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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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창간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개인들이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그 의미와 사회적 영향을 독자들과 공유하며 대안담론을 만듭니다. 두 번째 필자 이충열 씨는 여성주의와 삶, 그리고 교육을 연결하는 미술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페미니즘”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이성애 비혼 커플로 함께 산 8년
 
어제부터 쌓인 설거지가 싱크대를 채우고도 넘쳤다. 함께 사는 반려견들도 씻길 때가 지났는데…….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려면 밀린 가사노동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올해로 서른일곱 살이나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놓고 갈등한다.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하기 싫은 것은 가사노동이다. 이 사소한 갈등으로 나는 오늘도 몇 시간을 허비했다. 나와 달리 파트너는 평화로운 낮잠에 빠져있다. 왠지 얄밉다.
 
파트너와 함께 생활한지는 8년이 되어간다. 우리는 이성애 비혼 커플이다. 출처모를 결혼‘식’ 의례나, 남성의 집안에 종속되는 결혼 문화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성애만 인정하는 혼인제도와 다양한 법적 특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우리는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주변의 질문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고, ‘정상’적이라고 하는 삶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여성스러워 보이는 나와 대비되는 파트너의 남성적인 외모는 전형적인 남녀 커플의 모습으로 이해되기 쉽다. 하지만 밖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의 관계는 매우 다르다.
 
‘여성스러운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
 

▲ 나는 사춘기 이후로 쭉 ‘여성’성을 발달시켜 왔다. 어리고 여성스러운 여성이 받는 특혜는 다양했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받는 것은 진짜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 일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여성스럽다’고 한다. 나는 사춘기 이후로 쭉 ‘여성’성을 발달시켜 왔다. 하지만 과거에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연기했던 ‘여성상’과 현재의 내가 선택한 ‘여성성’은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그 영향력의 방향은 반대일 것이다.
 
어린 생각에, 사람들이 원하는 ‘여성상’은 너무 단순하고 명확해서 연기하는 것이 쉽고 재미있었다. 미소를 연습했고, 상냥한 말투를 계발했다. 머리를 길렀고 화장은 필수였다. 평균보다 큰 키에도 높은 굽의 신발을 고수했다. 태생적으로 갈비뼈가 작아 장기를 압박하고 있다는 내 몸은 소화가 안 돼 항상 힘들었지만, 장점으로 작용했다. 내숭이 아니어도 밥을 조금씩밖에 못 먹고 허리가 가늘었기 때문이다. 내 의견은 속으로 감추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까지 하면 정말 바람직한(?) 여성이 될 수 있었다.
 
어리고 여성스러운 여성이 받는 특혜는 다양했다. 가방을 들어주고 밥을 사주고 과제를 도와주고 힘든 일은 빼주는 등 남성적(?)인 여성에게는 베풀지 않는 호의가 베풀어졌다. 처음 본 남자가 고백하거나, 술값이나 밥값을 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과외나 옷가게 등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예쁘게 생기지 않아도 ‘여성성’으로 분류된 신체적 특징과 성격을 드러내면 남성들에게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예쁨을 받고 사회적으로 편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받는 것은 진짜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고, 모험심이 많고, 추진력 강하고, 비판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성’적이라고 하는 모습에서 벗어나는 나의 모습들은 인정받지 않았고,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반응이었다.
 
사회에서 원하는 여성은 너무나 수동적이었고, 인형 같은 존재였다. 답답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생각, 내 꿈, 내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성을 연기하여 받는 이익이 더 컸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여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점점 ‘바람직한 여성’의 역할에 점점 갇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사랑밖에 난 몰라’로 세뇌 된 진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이별통보를 들은 후, 심각하게 아파했다. 망가져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와중에도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에 몰입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너무 불쌍해졌다. 나는 없고 어떤 역할의 연기만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사랑만을 갈구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원하는 역할을 연기하며 보이지 않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관계가 아니라, 동등하고 솔직한 진짜 관계를 맺고 싶어졌다.
 
두려움을 직면하며 솔직한 관계를 실험하다
 
그동안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돌이켜보고, 그 모든 것이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단순화되어 있는 막연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누린 특혜가 억압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배려와 차별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 모든 과정의 출발 즈음 지금의 파트너를 만났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내가 운영하던 온라인 카페의 오프모임에서 여럿이 함께 만났는데, 처음 만난 나에게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여자아이처럼 수다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자기감정에 무척 솔직했다. 취향도 까다로웠고, 기준도 엄격했다. 외모를 꾸미는 데 나보다 더 관심이 많았다. ‘남성’적인 특성보다 ‘여성’적이라고 하는 특성이 더 많이 보였다. 나이차이가 많이 났지만 ‘오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됐다. 신기하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다.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마침 미술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나는 ‘예술가’로서 자유로울 수 있는 특권을 나에게 주었다. 나의 자유로움을 막는 틀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었던 시기에 그를 만났기 때문에 ‘이상하다’ 또는 ‘싫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그 판단을 검토했다. 그리고 내가 왜 그것을 싫어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전의 연애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싫은 점을 발견하면 내색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그 사람을 밀어냈다. 싫은 것이 많이 누적되었을 때 다른 사람의 애정공세가 커지면 간단히 이별을 통보하고는 징검다리 건너듯 다른 연애관계로 넘어갔다. 힘들면서까지 관계를 지속할 이유는 없었다. 어린 나이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감당하는 것으로 나에게 삶은 이미 힘겨웠다. 그런 나에게 연애는 보상이었고, 싸움으로 낭비할 에너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파트너와는 치열할 정도로 싸웠다. 역시 싸움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피했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내가 인격적으로는 외면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받는 관계가 끝날 거라는 두려움. 두려움을 외면하는 방법으로 나는 평화주의자의 가면을 썼던 것이다. 연기와 가면 쓰기를 그만두기로 한 나는 싸움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파트너는 싸움을 피할 수도 없는 상대이기도 했다. 감정표현도 정말 강력했고, 무엇보다 내 연기를 모두 알아챘다.
 
서로 다른 언어가 심화시킨 갈등을 겪으며
 

▲ 가사노동을 둘러 싸고 촉발된 우리의 갈등은 언어의 차이로 더욱 심각해져갔다.     © 이충열

함께 살기로 하고, 처음 몇 년간은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작업을 하느라 늘 바빴기 때문에 파트너가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감당했다. 나는 대외적인 활동을 좋아했고, 사람들 사귀기를 좋아했다. 가사노동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던 나는 파트너의 수고를 알 리 없었다.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즐거움과 성취감으로 나는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나의 행복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파트너의 노고가 보이지 않았다. 파트너는 나의 활동을 인정하는데 나는 파트너의 활동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파트너는 그 말에 진심이 없음을 알았고, 서운함이 쌓인 파트너와 이기적인 나 사이에 싸움이 잦아졌다.
 
사소했던 싸움은 언어의 차이 때문에 심각해졌다. 직설화법만을 구사하는 나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기 바랐고, 파트너는 내가 알아주고 인정받기를 바랐다.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것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언어와 이성만을 발달시키며 자라온 나는 화남을 느끼면 화내기 전에 왜 화가 나는지 생각하고, 화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화’ 자체를 잘 못 느끼기도 했다. 감정을 불균형적으로 발달시켜서 부정적으로 분류되는 감정들을 억압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파트너는 섬세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사회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 ‘남성’으로서 학습된 사람이었다. 긍정적인 감정만 발달시켜온 나와 반대로 파트너는 긍정적인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목소리가 컸고, 동작도 컸다.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했으나,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것보다 지식에 대한 것이 많았다.
 
언어가 발달한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파트너의 감정적이고 비언어적인 표현들은 너무 거칠고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평가받는 것에 민감한 나는 파트너의 의견을 평가로 받아들여 상처 받기 일쑤였다. 감정이 섬세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파트너는 이성적이고 당위적인 나에게서 답답함을 느꼈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힘든 마음이 더 커져갔다. 갈등이 최고에 달해 이별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쯤 나는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만났다.
 
폭력과 지배논리의 본질을 인식하다
 
폭력은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거나, 무언가를 부수거나, 직접적인 강요만이 아니다. 상대가 내 기준대로, 내 방법대로 하기를 원하는 마음 자체가 폭력이었다.
 
어떤 면에서 내가 파트너보다 더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친절하게 말하니까 상대도 매사에 친절하기를 바랐고, 내가 목표를 향해 열심이니까 상대도 그렇기를 바랐다. 그렇게 내 방식을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때에야 깨달았고, 상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언제나 ‘바람직’했던 나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기준들로 나의 모든 행동이나 노력을 합리화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회에서 정한 가치를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유독 성 역할 구분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나를 ‘여성주의자’로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있기 전까지 ‘폭력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구분하고 그러한 질서로 ‘지배하려는 마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계에서 상대를 내 뜻대로 하려는 마음, 권력 관계의 우위에 서려는 마음이 사회적 폭력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구를 지배하려는 마음, 자본을 지배하려는 마음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만들고 ‘정상, 비정상’의 테두리를 만들어내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뿐,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한 사람들…. 다른 사람을 이기려는 마음, 혼자 살아남으려는 마음,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마음 등을 똑바로 보고 싶어졌다. 그 후에야 성 역할 구분 뿐 아니라, 이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들을 밝히고 그로 인해 배제되고 소외되는 ‘차이’들을 돌보고 긍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역할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서로의 기준과 언어의 차이를 어떻게 조율할까
    

▲ 파트너가 키우며 즐거워 하던 새싹.     © 이충열

지금은 각자의 가치관과 기준, 특성에 맞게 가사 노동을 분담하였다.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고, 제때 밥 먹는 것이 중요한 내가 밥 당번이다. 설거지와 주방 관리까지가 내 몫이다. 청소에 대한 기준이 높은 파트너는 집 안팎의 청소를 담당한다. 빨래는 필요한 사람이 하는데, 나보다 파트너의 빨래 분류의 기준이 엄격해서 파트너가 하는 경우가 많다. 네 마리 반려견의 미용과 목욕은 내 몫이고, 밥 주는 것은 파트너의 몫이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의 양이 더 많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난 세월 파트너가 감당했던 불공평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나서 가사노동에 관련한 싸움은 거의 없어졌다. 이제 노력할 것은 기준과 언어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조율하는가이다.
 
여성으로 살면서 평가에 민감하게 된 나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 파트너의 의견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도 연습할 일이다. 그와 함께 내가 들여다볼 것은 가사노동에 가치부여를 못하고 있는 나의 인식이다. 이유는 선명하다. 나는 사회에서 부여한 가치들을 잘 학습한 모범생인데, 가사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으로 직접적인 생산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학습된 가치와 추구하고 싶은 가치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궁금하다. 아니, 모순과 갈등은 당연한 것이므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살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또한 ‘부지런함’만을 가치로 학습한 내가 파트너가 자기 의지로 선택하는 ‘게으름’에 대해 억울해하지 않고 온전히 존중할 수 있을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그렇게 보면 ‘페미니즘’은 나에게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숙제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게 참 다행이다. 이제 밀린 설거지를 하며 평생의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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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1/19 [10:42]  최종편집: ⓒ 일다
 
발칙한양 13/01/19 [18:36] 수정 삭제  
  "하지만 지금의 파트너와는 치열할 정도로 싸웠다. 역시 싸움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피했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내가 인격적으로는 외면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받는 관계가 끝날 거라는 두려움. 두려움을 외면하는 방법으로 나는 평화주의자의 가면을 썼던 것이다. 연기와 가면 쓰기를 그만두기로 한 나는 싸움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파트너는 싸움을 피할 수도 없는 상대이기도 했다. 감정표현도 정말 강력했고, 무엇보다 내 연기를 모두 알아챘다." 이 부분.. 뭔가 확 와닿습니다. 비단 연인관계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거...
냥이 13/01/21 [20:54] 수정 삭제  
  여성성이 뭔지, 그놈의 여성성..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를 발견할 때마다 답답하고 벗어나려 하면서도 그게 어려웠던 것들..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100% 자유롭지는 않지만요.
관계에서의 문제들.. 참 공감이 많이 되네요.
사랑노래 13/01/21 [22:15] 수정 삭제  
  연애하면서 가장 섭섭했던건 니 가방은 니가 들라던 남친의 한마디였습니다. 섭섭했어요. 나는 연약한 여자고 너는 키도크고 힘도 쎈 남잔데 왜! 남자답지도 않아! 헤어져! 결국 다른 이유로 헤어졌지만 생각 해보면 남자라는 이유로 제 가방을 들어야만 했던 그들(x-boyfriend)도 나름 엄청 억울했겠지요? 글을 읽으니 그때 내 남친 생각나네.ㅋ
dooly 13/01/24 [18:36] 수정 삭제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얘기들이네요...
공감도 많이 가고.. 잘 봤습니다!
역차별 13/01/29 [16:18] 수정 삭제  
  같은 여자들도 피곤해하는 느낌으로 봅니다. 뭔 말을 하면 ' 또 시작!!' 이라는 느낌도 주는 것 같구요. 왜냐면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남자들의 여성성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왜 남자들은 캠핑에 가서도 뙈약볕에 나가 망치를 두드리지 않으면 지탄 받고, 결국 됫담화에 찝혀서 그 단체를 떠나야만 하는지.... 다른 여자들이 그러고 있듯이 썬텐 바르고 아이들 돌보고 있으면 그는 그 단체에서 결국 죽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그 꼴 못봐주는 것 같네요.
파트라슈 17/04/20 [15:44] 수정 삭제  
  "'나'로 살고싶어!" 라고 말했을때
그에게서 돌아온 말은 "그럴거면 뭐하러 결혼했어!" 였습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왜그토록 싸웠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분노들과 물음들을 가지고 있던 것들에 대해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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