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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삶을 바로 보다
<나의 페미니즘> 여성주의가 내게 준 가장 벅찬 선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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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창간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개인들이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그 의미와 사회적 영향을 독자들과 공유하며 대안담론을 만듭니다. 세 번째 필자 니나 씨는 영문학 석사 과정에 있고 현재는 페미니즘이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의 페미니즘”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늘 취해 있던 엄마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아니?’
 
▲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알아?" 어린 시절, 늘 취해있던 엄마의 '이상한 행동'들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 일다
아주 선명한 낮이었다. 이 순간이 낮이라는 것을 부정할 가능성도 주지 않는 빛이 너무 매정했다. 그 날, 그 시간에 엄마는 언제나처럼 술에 취해 있었다. 나는 왜 엄마가 이렇게 밝은 대낮에 취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곁에 가면 항상 맥주 냄새가 났고, 그 냄새를 애써 가리려는 안타까운 향수 냄새도 같이 났다. 시간이 지나 아련해진 기억만큼이나 내 기억에 남은 그때 엄마의 행동들은 과장되었다.

 
또 술을 마시러 나가는 엄마를 말렸다. 더 이상 취할 공간도 없을 만큼 엄마의 뇌는 술에 절어있었는데 대체 얼마나 더 취하기를 바랐던 것인지 난 가늠도 하지 못했다. 그만 마시라고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내가 엄마한테 했던 말은 그뿐이었다. 술 좀 그만 마셔. 그러는 내게 엄마가 갑자기 이상한 것을 보여주었다. 엄마의 행동은 말 그대로 ‘이상했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왜 저럴까.
 
“oo야.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알아?”

 
당연히 모른다고 말했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엄마가 더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지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그 삶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엄마가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아빠랑 싸우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여기서 네 아빠가 오길 기다리고, 아빠가 오면 강아지처럼 마중 나가서 아빠가 벗어주는 옷을 받아서는 그저 네, 네, 하면서 옷걸이에 거는 것이 엄마가 하는 일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등을 있는 대로 구부려가며 시중을 드는 내시 흉내를 냈다. 그게 얼마나 이상하고 흉측하고 과장되어 보였는지 엄마는 알 수 없을 거다.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난 언제나 엄마가 자기 인생을 과도하게 포장해서 억지로 비극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고 믿었다. 그때 그 이상한 행동은 비극을 쥐어 짜내는 엄마의 안타까운 제스처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말을 할 수가 없다’는 엄마의 말은…
 
내게 엄마는 언제나 ‘소리 지르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내가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지금까지도 엄마는 모를 거다. 아무튼 내 머리 속에서 엄마의 소리 지르기란 거의 엄마와 동일시되는, 꼭 엄마가 가져야만 하는 그런 속성이었다. 엄마는 소리를 질러야 하고, 질러왔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엄마는 상상할 수도 없으며 그 소리 지르기는 날 너무 무섭게 했다.
 
술을 마시면 엄마가 항상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네 아빠가 말을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엄마는 아빠 때문에 항상 ‘말’을 하지 못했고, 그게 너무 답답하고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언제나 ‘소리 지르고 있는’ 엄마가 ‘말을 마음대로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했다. 엄마는 언제나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어째서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귓속에는 엄마의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항상 울려 퍼지고 있고, 그건 날 너무 무섭게 하는데 어째서 엄마는 말을 못한다고 말할까.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은 말을 내뱉지 못한다, 소리를 내지 못한다 등의 뜻이 아니라, 엄마가 겪어온 세월의 폭력과 엄마 인생의 맥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어떤 ‘징후적인’ 수사법이라는 것을 처음엔 전혀 알지 못했다. 엄마의 ‘말을 하지 못한다’는 그 한 문장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맥락과 관계들과 역사들 그리고 ‘관점’이 필요했다.
 
엄마를 이해할 ‘다른’ 각도의 눈을 뜨다
 
내가 이해하지도 못했던,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엄마의 삶을 사실은 한 번도 포기한 적 없는 투쟁의 연속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서 여성주의를 배우고 난 뒤의 일이다. 교양 과목을 통해, 세미나를 통해, 운동권 선배를 통해 우연히 접한 여성주의는 내게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을 ‘다르게’ 이해하도록 했다.
 
이후 나는 내가 항상 이상하다고 여겨왔던 엄마의 과장된 행동들, 모순적인 어법들, 술을 끊지 않는 버릇,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그 ‘맞을 짓’을 그만두지 않는 것들이 모두 다시 서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언젠가, 아주 밝은 대낮에 술에 취해 이상할 만큼 등을 구부리며 내게 시중드는 사람 흉내를 보여주었던 엄마의 행동에서 중요했던 것은 “이상할 만큼 등을 구부린 것”이 아니었다. 결혼 후 20년 동안 엄마의 역할이라는 것이 아빠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에 불과했다는 엄마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 과정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 그리고 그의 인간성이 어떻게 상실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말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소리를 내지 못해서 입 밖으로 언어를 내뱉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의 관계 속에서 엄마의 “의견”이 유효했던 순간이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엄마가 술을 마시면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집을 나가면 데리고 와서 때린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계속했던 것은 결코 아빠가 때린다는 것이 두려워서 ‘투쟁하기’를 그만둔 적 없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엄마의 이야기를 다시 이해하는 데에는 완전히 다른 각도의 눈과, 엄마 인생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여성주의’가 내게 가져다 준 것들이다. 물론 여성주의가 모든 해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각도에서 ‘착취’ 당해왔던 엄마의 인생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여성주의는 그의 인생을 바라보는 내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내게 여성주의가 그 정도에 그쳐버리는, 잠깐의 문제의식만을 심어주고 도망 가버리는 것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의미 없어져버렸을 거다. 물론 엄마의 말하기 방식을 이해하고 숨겨진 맥락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성과였지만, 난 그보다 여성주의가 나에게 준 더 값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해줘야 하는 대상이 아닌, 존중해야 할 사람
 
엄마는 단 한 번도 알 수 없었겠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엄마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생각해왔다. 이 말이 결코 내가 엄마가 아파온 시간만큼, 그가 고군분투해온 세월만큼 나도 똑같이 겪어왔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엄마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지를 못했고, 나는 엄마에게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의존적인’ 존재로 여겼었다. 내가 엄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엄마도 내가 없이는, 좀 더 자세하게는 ‘자식’ 혹은 ‘가족’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엄마’라고만 생각해왔다는 말이다.
 
“네 생각보다 어머니는 강하셔.”

 
대학에 들어온 이후 아빠의 폭력은 더 심해졌고, 그의 아내폭력에 고통 받던 어머니를 보면서 또 고통 받던 내가 당시 학교 선배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언니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이었고,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는 저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저 말이 마치 엄마가 당하는 폭력을 방관하라는 것처럼 들려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언니는 내게 ‘엄마를 너와는 다른 한 개인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고 이 말도 사실 처음부터 이해하지는 못했다.
 
“네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희 어머니는 그렇게 약하신 것 같지 않아. 그런 세월을 견뎌오셨으면 어머니는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돼. 넌 지금 엄마를 아빠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찌됐든 어머니의 ‘선택’이야. 물론 그 선택이 강제되는 지점이 하나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어머니의 의지를 네 임의대로 삭제해버리는 것도 난 이해가 잘 안 돼. 엄마는 너 없이도 잘 할 수 있어. 네가 구해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래, 언니의 말대로 나는 엄마가 항상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고, 그에게는 혼자서 이 상황을 이겨낼 의지나 힘이 없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지적은 아주 정확했다.
 
당시 여성주의 입문 서적 좀 읽었다고 머리가 커진 나는 ‘아내 폭력’으로부터 엄마를 어떻게든 빼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 속에서 한 사람으로서 엄마의 의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난 여성운동이 여성에 대한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을 ‘구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고, 내가 스스로 여성주의자라고 여겨왔던 것까지 부끄러워졌다.
 
그 후로 나는 엄마의 선택을 지지하거나 응원할 수는 있어도 내가 엄마의 선택을 조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근본적으로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사람이고, 엄마 나름의 선택과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여성주의가 나에게 준 많은 변화들 중에 엄마를 나와 다른 개인으로서 존중할 수 있도록 해준 일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후로도 내가 여성주의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 있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지만, 나는 내 어머니를 내가 구해줘야 하는 ‘대상’에서 믿고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그 일이 여태까지 여성주의가 내게 준 것 중에 가장 벅차고, 감사하다.
 
‘여성의 삶’에서 배우는 여성주의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내가 여성주의와 어머니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된 이유다. 물론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나 자매애를 강조하는 여성주의는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구시대의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에게서 그리고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사실을 긍정한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책으로 여성주의를 배운 나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훌륭한 여성운동가같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 마다 여성주의는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써는 아주 논쟁적인 단어인) ‘여성’의 삶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 엄마는 오랜만에 가출하셨다. 며칠 째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엄마는 오랜 기간 동안 이런 단발적인 가출들로 아빠의 폭력에 저항해왔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왜 가족을 버리고 나가버렸냐고 어머니에게 그 책임을 물을 만큼 어리지는 않다. 다만 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결정이 부디 자신을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집을 나간 엄마가 (많은 것들이) ‘무서워서’ 무기력하게 돌아오는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 꼭 엄마를 지지한다고, 엄마가 가족을 떠난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틀리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엄마 전화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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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2/04 [03:26]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가이 13/02/04 [18:15] 수정 삭제  
  가슴 저미는 글이네요. 공감합니다.
비티 13/02/05 [04:22] 수정 삭제  
  엄마와 딸의 관계.. 폭력의 피해자인 엄마를 보는 딸의 마음은 그것을 보아 온 아들의 마음과는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를 생각했어요...
발칙한양 13/02/06 [22:43] 수정 삭제  
  2013년도의 이슈가 '엄마와의 관계 재조명하기 - 거리두고 바라보기'에요. 너무너무 벅찬 주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직면해야 할 어떤 것- 필자 니나님의 글을 소화시키고, 엄마라는 주제를 소화시키기 참 힘들지만- 곱씹어볼게요.
꼬부랑 13/02/07 [17:17] 수정 삭제  
  찡하게 오는 깨달음이 있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
비티님 13/02/10 [21:55] 수정 삭제  
  제 남동생의 경우도 저 처럼 아팠을거예요. 그러니 커서 아빠랑 힘으로 맞섰겠죠.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니 아빠가 힘으로 그 아이를 못 이기드라구요. 그래서 엄마를 지켜 주던데, 저래서 여자들이 아들 낳으려하나부다 싶고, 제가 아는 꼬마 아들은 아빠를 신고해 버리드라구요. 그래서 경찰이 오게 해서 엄마를 지켜 주더라구요. 암튼 아들은 딸들보다 확실히 행동력이 있네요. 글고 딸보다 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확실히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난 엄마랑 같이 무서워했을 뿐이고, 커서도 그때 내가 힘이 없었으니까 아빠를 신고해서 엄마를 구해줬어야했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맞고 있는 엄마처럼 나도 맞을 까봐 숨기만 했던 것에 큰 죄책감만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작은 초등학생 아이가 119에 신고해서 엄마 구해낸 것 보고 저 방법이 있었구나 깨달았네요. 아무리 엄마가 술 먹고 잘못한 것이 있어도 당장 힘에 밀려 맞을 것아 보이자, 아들은 엄마를 구해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더라구요. 글고 나중에 아빠랑 대화로 잘 마무리 지었다네요. 내 조카지만 나보다 낫다 싶었습니다. 암튼 자식 앞에서 배우자 폭행하는 건 아들에게나 딸들에게나 큰 상처가 되는 건 같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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