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보는 눈’을 묻다

<아프리카 로드트립> 28. 나미비아 ⑤

Abby | 기사입력 2013/04/18 [17:39]

‘타인을 보는 눈’을 묻다

<아프리카 로드트립> 28. 나미비아 ⑤

Abby | 입력 : 2013/04/18 [17:39]
[애비(Abby)와 장(Jang)-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으로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숨가쁜 여행, 유쾌하고 또 헛헛한
 
     윤 오빠는 어디쯤 갔을까요?
     그러게, 오빠 없으니까 허전해요. 그런데... 좋네요. 이 차가 이렇게 큰 차였어요?

 
수도 빈트후크로 돌아오는 길, 민과 안이 장난스레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성인 다섯이 덩어리로 뭉쳐 있는 것 같던 실내가 헐렁해진데다, 사진 장비가 많아 두 사람 몫의 배낭을 이고 다닌 윤의 짐까지 빠지자 차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직전의 도시에서 헤어진 윤의 빈자리는 마음의 허전함과 몸의 안락함을 동시에 선사해 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아마도 남은 며칠을 홀로 운전해야 하는 장의 그리움(?)이 가장 진하리라.
 
▲ 도심에는 없는 위험천만한 출퇴근 픽업트럭도 빈트후크 외곽 지역에선 심심찮게 나타났다.     © Abby

걱정 마세요, 힘들면 저랑 교대해요! 하는 민의 말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여자 셋 중 유일한 면허 소지자인 민에게 운전 연수를 시키겠다던 장과 윤의 야심은, 시동을 걸자마자 캠프장의 낮은 담장을 타고 올라간 그녀의 박력에 일 분 만에 무위로 돌아간 바 있었다.
 
내 마음도 못내 쌉싸래했다. 윤과 20년 가까이 친구였지만, 보름이나 여행을 같이 하기는 처음이었다. 동네, 학교, 지인 그룹 등 더는 현재 삶의 어떤 부분도 겹치지 않는 어릴 적 친구들이란, 대학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여행은커녕 계절에 한 끼 밥을 같이 먹기도 쉽지 않은 사이였다. 그러니 그 세월 동안 서로 많이 변했으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괜한 심술을 부렸다.
 
마치 으르렁대는 형제들처럼 고질적인 서로의 문제를 가지고 대차게 부딪친 후, 윤과 나는 여행 내내 보이지 않게 툭탁거렸다. 보다 못해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했던 장의 경고가 뒤늦게 쟁쟁 울렸다. 그러게 그러지 말 걸, 살면서 언제 또 함께 여행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 긴장을 누그러뜨려 준 것은 다른 일행들이었다. 안과 민은 연예와 예능에 도통해 늘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네들에게선 종일 예능 프로에 나오는 누구누구의 캐릭터, 최신 드라마 이야기, 연예인 누구의 사생활 이야기, 그 주변 비화와 그에 대한 품평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그걸 어떻게 다 알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되물을 만큼, 한국 연예 산업의 힘, 연예 소식과 댓글을 실어 나르는 포털의 힘이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한 듯했다. 의식적으로 한국으에서 떨어지고자 가급적 뉴스를 보지 않았던 터라, 그 긴밀하고 촘촘한 관심이 내게는 문화충격이었다.
 
그런데 그건 신기한 한 편 곧 지루해지는 일이었다. 재미있는 그 잡담을 어느 수준 이상 듣다 보면 ‘그런데 저 얘기가 우리와, 이 여행과 무슨 관계가 있나’ 하는 생각이 끼어들었다. 깊고 얕은 데를 오가는 리듬이 없이 종일 연예인 이야기를 넘어서지 못하는 대화는, 스물네 시간 함께 먹고 자고 낄낄대면서도 더 가까워지지 않는 묘한 벽이 되었다. 자신과 주변 세계의 이야기는 연예인 저편에 묻은 채, 여행하는 이곳의 이야기에는 표피에도 닿지 못한 채 엉뚱한 데서 배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장과 내가 지나치게 진지한 여행자들인지도 몰랐다. 여행이란 참 신기해서, 어디서 무얼 하는가만큼이나 누구와 함께인가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을 그렇게 ‘가볍고 즐거운 보름짜리 캠핑’으로 받아들였으면 될 일인데, 얼추 그렇게 즐기는 장과 달리 나는 이따금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나미비아에서의 시간이 머나먼 한국 연예계에 잠식되고 있다고 투덜댔다. 숨차게 매일매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일정도 내게는 버거웠다. 생각이 고일 공간도 시간도 충분하지 않은 여행은, 유쾌해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헛헛하고 목이 말랐다.
 
힘바족(族), 만나지 못해 다행이다
 
- 아, 정말 아쉬워요. 우리 힘바족은 보지 못하는 거죠? 그때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누군가 말했다. 힘바(Himba) 사람들은 온 몸에 붉은 흙을 바른 차림새로 유명한 나미비아 원주민 부족 중 하나다. 스피츠코프에서 에토샤로 가기 전 북서쪽 끝의 힘바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계획했으나, 이후 윤의 경로를 짜다 보니 일정이 꼬여 아쉽게 포기했었다. 중간 어느 도시에선가 길에 앉아 좌판을 벌인 힘바족 여인을 보고 윤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어 했지만,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는 장의 말에 지나친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차였다.
 
▲ 다큐멘터리 “타인을 보는 눈"(Framing the Other)의 한 장면.  
 
생각났다. 에티오피아의 한 부족과 유럽 관광객들의 만남을 다룬 24분짜리 이 작품은, ‘관광객이 부족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취급할 때, 그들 역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 타인들과의 ‘거래’를 시도한다’고 지적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부족 사람들은 촬영팀에게 사적인 생활터인 마을에 사람들이 대체 왜 들이닥치는지, 와서 왜 자신들을 들여다보고 묻지도 않고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지, 그 사진을 무엇에 쓰는지 알 수 없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적대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들은 그저 돈이 필요하여서 방문 시간을 받고, 시간에 맞추어 몸단장할 뿐이었다.

 
그러나 잘 빠진 지프에 실려 와 마을에 한두 시간 머물고 간 네덜란드인 관광객의 소감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부족이 마련한 공연을 보고, 마을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복색과 장신구를 살피고, 여인들과 아이들 등 부족 사람들을 고루 사진 찍어 돌아가는 차 안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 ‘새로운 이들과의 교감’에 거듭 만족감을 표했다. 카메라는 양측의 표정을 번갈아 비춘다. 관광객은 부족들이 어떤 표정과 눈빛으로 자신들을 대하는지에 대해, 관객이 민망할 정도로 무디고 무관심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소개와 이해도 없었으나, 프레임에 가두는 데 성공했으므로 ‘소통했다’ 느끼는 한쪽의 일방적인 만족감은 얼마나 불편한가.
 
그래서 나는, 힘바족을 만나지 못해 서운하면서도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사실 일행의 아쉬움은 '힘바 사람들을 만나고 그 문화를 맛보지 못한 것'에 있지 않고 '나미비아스러운 풍경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에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대할 때에는 초원의 동물들을 보는 것과는 다른 생각과 마음가짐이 필요할 텐데,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 다큐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힘바 마을 사람들 역시 우리를 돈 가진 뜨내기들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리라.
 
나미비아 여성의 자립 돕는 사회적 기업 ‘펜두카’
 
대신, 마지막 날 펜두카(Penduka)를 방문했다. ‘깨어나라’는 뜻을 지닌 펜두카는, 나미비아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여성들만을 구성원으로 테이블 매트, 베갯잇, 가방 등의 생활 소품과 장신구를 자수와 바틱(아프리카 전통 나염 방식)으로 제작하고, 제작과 판매에 관한 교육을 진행한다. 운영에 들어가는 실비를 제외한 모든 판매금은 여성들에게 돌아간다.
 
빈트후크 외곽에 여성들의 작업장과 전시장, 게스트하우스를 갖춘 펜두카의 본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섰다. 짧은 시간밖에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펜두카는 생활터가 아니라 일터이고 우리 같은 방문객에게도 자신들을 설명할 다양한 방편을 마련해 둔 단체이니 아쉬운 대로 나미비아의 상황과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펜두카 가는 길의 풍경, 깡통집이라 불리는 함석집이 끝없이 이어진다.     © Abby

시내를 벗어나 북쪽 길로 들어서자 말쑥한 빈트후크 도심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칼로 자른 듯 길의 오른편에는 저 멀리 근사한 주택들이 초원에 띄엄띄엄, 왼편에는 함석으로 벽과 지붕을 이은 깡통집들이 도로가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졌다. 백인들은 어느새 거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인부들을 가득 실은 작은 픽업트럭이 심심찮게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길가엔 허름한 채소나 잡화 한 줌을 합판에 대충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깡통집 사이의 먼지 뿌연 비포장 골목을 한참 달려, 고즈넉한 어느 호숫가에 자리한 펜두카에 도착했다. 전시장 겸 매장이 딸린 작은 공방일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손으로 벽에 그린 지도가 있을 만큼 꽤 큰 작업장이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잘 정돈된 제품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소개 자료에 더해,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시는 멋쟁이 매니저님이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셨다. 남아공의 눈과 진을 위해 선물을 마련하고 싶던 차였는데, 펜두카의 제품들은 예쁜 데다 각각 고유의 스토리가 있는 작품들이라 맞춤한 선택이 될 것 같았다. 민과 안도 이곳의 물건들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해 한국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몇 가지 선물을 골랐다.
 
     눈께는 우리가 얼마를 주고 샀는지 절대로 들켜서는 안 돼.
 
장의 말에 우리 모두 키득거렸다. 어느 날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오신 눈이, 하나하나 손으로 그리고 날염한 내 키만 한 벽걸이 천을 실랑이 끝에 삼십 랜드(약 5천 원)에 사 오셨다며 선물로 주신 일이 있었다. 어린아이 키만 한 기린 모양의 나무 조각도 백 랜드(약 1만 5천 원)에 사 오셨다고 했다. 그 근사한 그림을 받아들고 나는 기쁘면서도 난감했다. 작업에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지나치게 후려친 값이었으나, 그렇게라도 파는 게 낫다 여겼을 어느 길거리 작가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 나미비아 전통의 독특한 엄마와 아기 인형이 사랑스럽다. 펜두카의 제품들은 예쁜 데다  각각 고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 Abby

그것만 해도 펜두카의 존재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자신의 가치를 측정해본 일 없고 값을 제대로 지켜본 일 없는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부여해 일정 가격을 보호하는 일은 외부에서 잘해 줄 수 있는 역할일 것이다.
 
게다가 사정이 어려운 곳일수록 여성들의 삶은 더더욱 고단하기 마련. 약자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오래라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설 길 역시 바깥으로부터의 개척과 지지가 필요하다. 그 일의 종류가 그녀들이 늘 접하는 소재로 늘 해 왔던 바느질이나 공예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1세계가 주도하는 이러한 유의 공정 무역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아직은 더 많은 펜두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두카를 나서는 길, 한쪽의 공방에서 천을 손에 들고 마름질하거나 바느질하던 여인들이 누군가 던진 농담에 함께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장면에 캄보디아에서, 인도에서, 비슷한 일을 하던 활동가들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들은 일을 창출해 현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입을 얻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네들은 일을 통해 사람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헝클어진 가족과 주변의 관계가 살아나고, 또 일하는 동료 사이에서 그 나라 사람들 특유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다고 했었다. 사려 깊게 꾸려진 노동은 때로 인간에게 구원이 된다. 나미비아에서 발견한 그 작은 물길 하나가 우리 같은 바깥사람에게도 새로운 기쁨과 영감을 주었다.
 
빈트후크에서의 마지막 만찬
 
▲ 사바나 한복판의 사냥꾼 오두막을 닮은 사파리 레스토랑 'Joe's Beerhouse'     © Abby
 
빈트후크에서의 마지막 저녁, 우리는 초원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 동물들을 야생의 방식(?)대로 기억하는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왜건이 미끄러져 들어간 마지막 목적지는 마치 사바나 한복판에 놓인 사냥꾼의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레스토랑이다. “조의 맥줏집(Joe’s Beerhouse)”이라 불리는 이곳은, 사파리 동물들을 다양하게 요리해 파는 것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다. 물론, 야생의 동물들을 포획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 사자나 표범, 하마를 팔지는 않고, 농장을 운영해 안정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온순한(?) 초식 동물 위주로 메뉴가 짜여 있다.

 
타조, 오릭스, 쿠두, 스프링복, 얼룩말, 악어 고기가 차례로 나왔다. 그러나 호주에선 마트에서도 캥거루 고기를 팔았던 것처럼, 오릭스나 쿠두 같은 영양류는 사실 이곳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먹는 육류다. 타조는 즐겨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렇지 한국에서도 먹는다. 그러니 얼룩말과 악어 정도가 진정 우리 안(?)에 들어온 낯선 동물이랄까.
 
각각의 고기질과 즙을 음미했다. 장어와 비슷한 맛이리라 예상한 악어는 상당히 질겼고, 닭고기 오리 칠면조 등 조류의 맛을 상상한 타조는 비린내가 났다. 오히려 질기고 노린내가 난다는 말고기, 얼룩말의 허벅지가 가장 맛이 좋았다. 굳이 더욱 상세히 맛과 향을 음미하며 소감을 읊어대는 눈앞의 서로가 새삼 야만스럽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이튿날 돌아간 프레토리아는 마치 집 같았다. 공항까지 마중 나와 주신 S 선생님과 푸짐한 저녁을 차리고 기다리신 '눈'과 '진'이 우리를 엄마처럼 언니처럼 환대해 주신 덕이었다. 여행 속의 여행 한 절이 끝나고, 내일부터는 다시 프레토리아에서의 두 번째 자원 활동이 시작된다. 센터의 편안한 침대에 몸을 묻은 밤, 이미 저만치 과거가 된 것 같은 나미비아에서의 보름을 이야기하다 장과 나는 둘 다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어느 날 한국에 누우면, 프레토리아에서의 이 밤이 아마 또 그렇게 느껴지리라. 긴 여행의 끝, 집에 갈 날이 성큼 가까워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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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by 2013/04/28 [17:09] 수정 | 삭제
  •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자원활동 중이었는데, 한국인 관광객이 우르르 들이닥치더니 아이들과 현지 스탭들 사진을 마구 찍었어요. 저는 스탭들 사이에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몹시 불쾌하더라고요. 그들이 기부금을 내는 관광객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한국인 스탭들이 전혀 저지하지 않는데 그저 방문자 신분인 저희가 "찍지 마세요" 라고 대놓고 어깃장을 놓진 못하고.. 소심하게(?) 그네들을 빤히 노려보는 것으로 행동을 저지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동감 2013/04/25 [09:45] 수정 | 삭제
  • 그래요. 그 피상적인 시선들, 잘 사는 서구인들이나 한국인들이 못사는 나라에 가서 은근히 마음 속에 우월감을 갖고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 만족해하는 건-- 요즘 유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은 정말 너무나 피상적인 이기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가 속속 배여있지요. 다른 나라를 그리고 타인을 그저 자기 경험을 위한 도구로, 또 과시용 대상으로만 생각하죠.
    사진찍히고 구경당하는 그들이 과연 어떤 마음일지 단 한번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지 않는 거지요. 그들에게도 힘겹지만 나름의 고유한 삶이 있다는 걸, 그들이 나랑 비슷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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