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판결도 때로는 약이 될 수 있어”

<공익소송을 통한 사회변화를 말하다> ③ 김남희 변호사

김남희 | 기사입력 2013/06/18 [16:06]

“나쁜 판결도 때로는 약이 될 수 있어”

<공익소송을 통한 사회변화를 말하다> ③ 김남희 변호사

김남희 | 입력 : 2013/06/18 [16:06]
※ 공익소송과 같은 법률운동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소송운동의 효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공익변호사그룹 ‘희망을 만드는 법’이 주최한 제2회 공익인권법실무학교 특별좌담 <‘이기는 것’과 ‘바꾸는 것’-사회변화 전략으로서의 소송, 그 가능성과 한계>에서 4인의 패널이 발표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세번째 발제자는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의 김남희 변호사이며, 전체 좌담은 희망법 홈페이지(hopeandlaw.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최근 10년간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 짙어져
 
▲ 참여연대 복지노동팀 김남희 변호사 © 희망을만드는법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김남희 변호사입니다. 공익 활동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참여연대에 들어가면서 저는 변호사보다는 시민활동가로서 일하고 싶었는데, 마침 공익법센터에서 사람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변호사 경력이 있는 제가 일하게 된 것이죠. 얼마 전 부서를 옮겨 지금은 복지노동팀 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법을 통한 운동’을 하며 느꼈던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소송운동의 효용과 한계에 대해서, 저는 그것이 사회발전의 단계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워낙 억압적이고 권위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법원에 기대할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민주화가 되었지요? 아직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민주화되었는데, 반면 법원은 상당히 보수화되고 있어요.
 
제가 법조계에 몸 담은 지 한 10년 되었는데 그런 변화를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사회 변화상, 예전에 민주화 운동 시기에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식인의 소명이랄까? 이런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법조계는 신분상 안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공감대가 더 많이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회가 좀 달라졌죠. 예전보다 훨씬 분화되고, 또 사회운동의 흐름도 예전처럼 간명하지 않아요.
 
우리가 사회활동가로서 대응해야 될 대상도, 예전에는 권위적인 정부였다면 이제는 정부보다도 더 통제할 수 없는 자본 권력이라든지, 어떤 경우엔 외국계 자본까지 법의 영역을 벗어나 굉장히 다양화되었고요. 또, 이해 관계의 충돌도 훨씬 분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간명하지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을 해나가기가 더 어려운데, 법원은 점점 더 보수화되고 기득권을 중시하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거든요.
 
올해 초 노회찬 의원의 ‘안기부 X파일’ 사건 유죄 판결이나, 2011년 정봉주 의원 유죄 판결을 봐도 그렇지만, 특히 노동 쪽 판결들을 보면 법원의 보수화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어요.
 
[※ 안기부 X파일 판결: 2005년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가 옛 안기부 도청 녹취록에서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고 언급된 전 서울지검장과 전∙현직 검사 7명을 공개하고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올린 것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2013년 2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정봉주 의원 판결: 2007년 대선 때 민주당 정봉주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비케이(BBK) 소유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공직선거법 위반) 2011년 12월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되어 구속되고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었다. –편집자 주]
 
그래도 법원이 ‘자본 권력’에서 자유로운 측면 있다
 
그래도 저는 법을 통한 운동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어요. 하나는, 보수화되고는 있지만 사법부가 그래도 ‘자본권력’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우 사실 민주적 시민사회의 통제가 기반이 되어야 되는데, 우리 나라 입법부나 행정부는 별로 그렇지 않잖아요.
 
비록 우리가 선거를 통해 정치인을 선출하지만, 그렇게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을 하느냐? 그런 것도 아니고요. 실제로 국민들로부터 민주적 통제를 받고 있느냐? 그런 것도 아니죠. 입법부나 행정부가 사법부에 비해 훨씬 더 민주적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민주적 통제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소위 국회의원과 같이 ‘기득권’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본에 굉장히 민감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래도 아직은 사법부가 국가기구 중 청렴도에 있어서는 제가 경험한 바로는 덜 영향을 받는 편이다, 자본의 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감옥에 갔잖아요.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거죠.
 
[※ 최태원 SK그룹 횡령사건: 2008년 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텔레콤 등 계열사 펀드 출자금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올해 1월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는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집행유예 관행을 깬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편집자 주]
 
‘장애인 웹 접근성’ 보장하지 않은 회사에 소송 제기
 
소송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또 하나는, 이것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공익소송이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작은 시발점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서 ‘장애인 웹 접근성’에 관련한 소송을 제기했어요.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 모든 홈페이지는 웹 접근성에 관해 준수해야 하고, 장애인들의 웹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 그에 대한 손해배상 의무를 진다든지 하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 내용이 단계적으로 적용이 되어서 모든 홈페이지에 대해 2013년 4월부터 적용이 되죠. 대기업이나 국가 기관은 이미 적용을 받았고요.
 
그런데 이 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음에도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실제 대처를 안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익법센터에서 몇 년 전부터 1백개 정도 사이트를 조사하면서 소송을 준비해왔는데, 그 중 웹 접근성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 사이트는 20~30%밖에 안 되는 거에요.
 
법의 내용을 기업들이 모르고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에요. 기업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굉장히 큰 규모의 국제 심포지엄이 한국에서 열렸는데, 바로 웹 접근성에 관한 거였거든요. 웹 개발자들 수백 명이 와서 웹 접근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심히 논의하는데, 그 분야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이런 법이 제정됐고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죠.
 
그런데 왜 법의 준수율이 이렇게 낮을까요? 기업 측에서는 법을 준수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때 나중에 소송을 당해 손해배상청구를 받을 위험과, 법을 준수해서 사이트를 개편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비교형량을 하는 거예요. 법을 위반하고 있지만 실제로 소송이 제기될 확률이 낮고 소송에서 배상해야 할 액수가 별로 크지 않다면, 내가 이 내용을 준수할 필요가 있겠느냐, 좀 두고 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작년 12월 소송을 제기했거든요. 소장을 접수하니까 뉴스에 보도되었죠. 그걸 보고 이제 기업들이 ‘아, 소송을 하는 구나,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그 때부터는 좀더 적극적으로 법 내용을 검토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소송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기업들이 꽤 있다 하더라고요.
 
사실 웹 접근성 소송을 제기를 할 때 그렇게 큰 금액을 청구한 건 아니거든요. 원래 70여개 회사를 조사해서 그 중 웹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회사가 50개 정도 있었는데, 다 소송을 제기하기는 힘드니까 줄여서 대표소송으로 몇 곳을 골라내었는데요. 금액도 크지 않은 소송이지만, 이 소송의 추이에 따라 앞으로 우리 나라 많은 웹 페이지들이 웹 접근성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인가 여부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송이 사회를 전부 바꿀 수 있는 도구는 아니지만, 기업에서 보았을 때 소송으로 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차 불법파견, 정몽구 회장을 고발한 이유
 
공익소송이라는 것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아요. 패소율이 굉장히 높거든요. 아시겠지만 법조계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곳이니까,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법원에서도 굉장히 부담스럽단 말이죠. 공익소송을 제기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그런 판결이 나올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송을 제기하고 다투어나가는 그 과정 자체에서 사회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났는데도, 현대차가 법을 준수하지 않았잖아요. 지금 일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시정하지 않고 있어요.
 
[※ 현대차 최병승씨 정규직 판결: 2002년 3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최병승씨는 노조 활동 등을 이유로 2005년 2월 해고됐다. 최씨는 구 파견법의 ‘직접 고용 간주’ 조항에 근거해, 원청업체인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업장에서 원청의 지휘를 받으며 2년 이상 일했을 경우, 원청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편집자 주]
 
그런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문제를 풀기 위해, 작년 말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에서 파견법 위반으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고발했어요. 이전에도 불법 파견에 대한 고발이 있었지만, 그 대상이 현대자동차 임직원이라든지 포괄적이었고 별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거든요.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진보적 성향을 가진 법학 교수님들을 30여분 모아 피고발자를 정몽구 회장 1인으로 해서, ‘현대자동차가 파견법을 위반하고 있고 당신이 기업의 총수니까 책임을 져라’ 하고 고발장을 접수했죠. 그랬더니 언론에서 좋아하는 거예요. 카메라가 몇 대씩 오고, 기자들이 굉장히 많이 왔어요. 전면적으로 다뤄지진 않았지만 꽤 많은 방송과 신문에 실렸어요.
 
그랬더니 얼마 전 울산 노동청에서 현대자동차에 대해 특별감독을 했어요. 언론 보도를 보니, 작년에 정몽구 회장 고발 건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별조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는데요. 어쨌든 그런 과정을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 사회적 주목을 받을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기소를 했을 때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릴 수 있다는 것이죠.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액션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요.
 
또 한 가지 사례는, 노회찬 의원의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해 황당하고 어이없는 결론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저는 나쁜 결론도 때로는 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문제가 있는 판결이 나옴으로 인해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잖아요. 이래선 안 된다, 뭔가 문제가 있다 라고요.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꼭 승소라는 결과를 통해서만 나오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설사 패소를 하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소송의 과정이 사회를 바꾸는데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익기금과 ‘공익변호사’ 더욱 확충되어야
 
그리고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드는 고민을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소송을 하면서 당사자를 확보하는 일도 문제가 되고, 공익소송의 당사자가 있을 때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소송의 취지가 잘 안 맞는 경우도 꽤 있거든요.
 
이런 경우에 당사자의 협조가 부족하거나, 중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틀어지거나, 우리가 끝까지 다퉈야 하는 사안인데 당사자가 원치 않거나,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데 참 해결방법을 찾기 어려워요. 당사자 분을 잘 설득하는 역할이라든지, 공익소송에 적절한 당사자를 잘 발굴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높은 패소율인데, 소송 비용의 부담이 크다는 점입니다.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경우라면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공익 활동의 자원이 많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패소하게 되면 소송 비용의 부담이 굉장히 크죠.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익기금이라든지, 공익소송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임성’의 문제인데요. 공익소송을 전담하는 변호사들이 현재 매우 드물잖아요. 전업 공익변호사가 아니라, 자기 일을 따로 하면서 도와주시는 분들의 경우엔 끝까지 책임 있게 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지만, 때에 따라서는 본업이 너무 바쁘면 적절한 순간에 사건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전달을 제대로 못 해준다든지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소송이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년이 가고, 3년이 가고, 7년이 갈 수도 있는데, 중간에 담당 변호사가 해외로 유학을 가게 되거나 지방에 내려가시기도 하고, 그러면 갑자기 책임 소재가 없어지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공익소송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공익변호사의 확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정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김동현
* 녹취록 정리: 류수희, 조소영 (희망법 자원활동가)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데칼코마니 2013/06/18 [20:30] 수정 | 삭제
  • 정몽주가 아니라 정봉주 아닌가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