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유도선수들이 몸바쳐 호소한 것은

스포츠 조직 내 괴롭힘(power harassment)에 문제 제기

야마다 유카리 | 기사입력 2013/11/11 [00:22]

여자유도선수들이 몸바쳐 호소한 것은

스포츠 조직 내 괴롭힘(power harassment)에 문제 제기

야마다 유카리 | 입력 : 2013/11/11 [00:22]

작년 12월, 일본에서는 여자유도선수들이 감독의 폭력과 괴롭힘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용기 있는 고발이 있은 지 반 년이 지난 9월 7일, 2020년 올림픽 개최지가 도쿄로 결정되었다. 여자유도선수와 전체 여성운동선수들을 둘러싼 환경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스포츠 선수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오랜 동안 여성과 스포츠 문제를 집중 취재해온 야마다 유카리 씨의 글이다.
 
‘지도’라는 이름의 폭력, 감독의 괴롭힘(power harassment)
 

▲ 2012년12월 여자유도 국가대표 감독 소노다 류지 씨의 폭력적인 지도방식과 괴롭힘에 대해, 선수 15명이 JOC에 고발했다. ©페민

2012년 12월 4일, 일본의 여자유도선수 15명이 일본올림픽위원회(JOC)에 소노다 류지 감독의 폭력적 지도 방식과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power harassment) 문제를 고발했다.
 
나는 고발이 있기 전에 선수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야마구치 가오루 씨가 일본유도연맹에 호소했지만, 연맹 측은 이를 무시하고 같은 해 11월에 소노다 감독을 연임한다고 발표했다. 그 후 언론을 통해 선수들의 문제 제기가 보도되자, 올해 1월 소노다 감독은 사퇴했다.
 
이후 올림픽위원회는 ‘긴급조사대책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유도연맹도 제3자위원회와 ‘개혁 제언 구체화 검토 프로젝트’를 설치했고 ‘폭력/폭언 근절 선언’을 채택했다.
 
올해 8월 14일 유도연맹 회장을 포함하여 이사 23인이 사퇴를 결정했고, 21일에 철강 최대기업인 신닛테츠스미킨 최고경영책임자 무네오카 쇼지 씨가 회장에 취임했다. 여자선수들의 고발을 지지한 야마구치 가오루 씨도 연맹의 감사로 임원이 되었다.
 
‘선수들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뉴스가 흘러나오고, 그 때마다 대중은 이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망각해간다. 작년 12월 여자유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소노다 류지 씨의 폭력 행위에 대해 대표강화팀 여자선수 15명이 일본 올림픽위원회(JOC)에 고발한 사건은, 상당히 예전 일이 되어버렸다.
 
해가 바뀌면서 일본의 도쿄 올림픽 유치 운동은 고조되었고, 메달리스트들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올림픽 유치’를 외쳤다. 그러한 광경을 보며 과연 유도여자선수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용감하게 수면 위로 드러낸 일련의 문제 제기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지도라는 명목 하에, 혹은 지도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소노다 감독에 의해 이루어진 폭력 행위와 희롱’(선수들이 낸 성명 중에서)은 과연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또한 선수들은 ‘선수들 상호 간의 경의와 존엄을 짓밟는 연맹 임원과 대표강화팀 체제진에 실망했으며 강한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일례로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발표 기자회견 때에는 선발을 두고 겨뤄온 선수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발표 순간 개개인의 얼굴 표정을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했다. 아무런 방어막도 없이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얼굴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이다. 이를 텔레비전 방송국에 판 것은 누구인가.
 
그녀들이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나 ‘책임 추궁’이 아니었다. ‘선수들과 스포츠 관계자들, 팬들에게 적합한 환경을 정비하라’는 요구였고, 선수들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이었다. 이 중 어떤 것도 유도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계 전체의 문제이자, ‘스포츠는 세계 공통의 인류 문화’라고 명시한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한(2011년)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매달 몇 개!’ 승리 지상주의가 낳은 폐해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지도자와 선수의 편향된 주종 관계, 권력을 가진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제압하는 구조, 냄새 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어버리는 사회, 뿌리 깊은 남존여비, 윤리의 결여, 희박한 인권의식…. 이러한 문화는 일장기를 가슴에 단 국가대표단뿐 아니라, 그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어린이들 사이에도 만연하고 있다.
 
일본 스포츠계의 악습이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지금까지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자 유도선수들은 몸을 바쳐 호소했다. 굳은 마음으로 결단한 그녀들의 행동은 ‘유도(스포츠)를 사랑하고, 앞으로 계속 유도(스포츠)를 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일본 스포츠계의 악습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강한 분노를 느낀 것은, 일본올림픽위원회(JOC)나 일본유도연맹의 뼛속 깊은 ‘승리 지상주의’이다. 어느 올림픽이건JOC 대표자가 “목표는 메달 몇 개!”라고 기자회견에 나와서 말한다. 각 종목마다 경기단도 올림픽 전후에 언론 인터뷰에서 메달 개수를 기준으로 “잘 했다” 혹은 “큰일이다”라고 말한다. 이기고 진 이유가 기사화 된다. 바로 ‘메달 몇 개’라는 사고 방식이 이번 사건의 뿌리다.
 
소노다 감독은 “초조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고 말했다.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족한 시간 속에 강제적인 방법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은 스포츠계에서는 특별히 ‘나쁜 일’에 속하지도 않는다. 같은 행위가 다른 직장에서라면 폭력, 폭언, 조직 내 괴롭힘이지만, 스포츠계에서는 지도자의 지도 방식이고 열의이다.
 
유도가 ‘일본의 국기’라고 믿고 있는 일본유도연맹의 지도부는, 타 종목과 비교해 어떻게든 보다 많은 메달을 따지 않으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는다. 메달 획득에 기를 쓰게 된다. 올림픽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보다 많은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곧 국가의 위신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폭언, 폭력, 성희롱이 용인되는 스포츠계
 
선수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사태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감독이 사퇴하고, 그 주변 사람들이 사퇴한다. 일본올림픽위원회가 문부과학성 대신에게 사과한다. 문부과학성이 올림픽위원회 측에 조사하도록 명했지만, 그 조사는 보다 객관적인 제3자가 아닌, 해당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하는 것이라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과 관련된 31개 종목의 대표선수들에게 폭언, 폭력, 조직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를 물었다. 한 단체당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모든 단체가 “없습니다”라고 답변을 한 것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

사람들 뇌리에서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된 우치시바 성폭력 사건(2011년 12월에 기소된 유도 금메달리스트 우치시바 마사토에 의한 준강간 사건)은 어떤가. 이 사건도 같은 구조였다.
 
성희롱은 폭력, 폭언과 마찬가지로 ‘조직 내 괴롭힘’(power harassment)의 범주에 해당한다. 폭언, 폭력과 성희롱은 힘을 가진 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것으로, 동시에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자선수들은 성희롱을 겪어도 이를 호소하기 어렵다.
 
폭력, 폭언, 성희롱을 포함한 조직 내 괴롭힘이 구성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일반 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최대의 금기이다.
 
1999년에 내가 취재하여 세상에 알렸던 스포츠계의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나는 계속해서 ‘스포츠계의 상식은 사회의 비상식’이라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15년이나 지난 지금, 현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대책보다도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때
 
그렇다면 지금, 변화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연수를 시키거나, 전문가 강연을 열거나, 지도자 자격 제도를 만들거나 하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은 아닌 것 같다. 스포츠계에 여성 이사나 여성지도자를 늘린다 한들, 다수결을 하면 남성 측이 늘 이긴다.
 
선결되어야 할 것은, 근본적인 사회의 인식 변화이다. 스포츠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호주처럼, 지도자를 양성하거나 결정할 때는 처음부터 윤리관을 중시해야 한다. 또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스포츠계의 과제와 정면으로 맞설 기운이 필요하다. 캐나다에서 피해를 당한 전 국가대표선수가 솔선하여 조직 내 폭력과 성희롱 근절운동을 일으킨 것처럼, 품이 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바닥까지 그 손길이 미치는 개혁을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결국 밑에서부터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시간은 걸리지만 끈기 있게 이 문제를 부여잡고 스포츠 시스템에 개입해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9월 5일자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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