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넘은 연대’ 희망버스, 지금도 달린다

『소금꽃나무』와 한일 노동자들의 교류

토모오카 유키 | 기사입력 2014/01/06 [16:28]

‘국경넘은 연대’ 희망버스, 지금도 달린다

『소금꽃나무』와 한일 노동자들의 교류

토모오카 유키 | 입력 : 2014/01/06 [16:28]
[필자 토모오카 유키 씨는 김진숙씨의 저서 『소금꽃나무(塩花の木)』 일본어판의 공동 번역자입니다. –편집자 주]
 
일본 노동운동가들, 한국 ‘희망버스’에 오르다
 
▲ 김진숙씨의 책 『소금꽃나무(塩花の木)』 일본어판  ©토모오카 유키
2013년 11월 10일, 일본에서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인 김진숙씨(53)의 저서 『소금꽃나무』 일본어판이 출간되었다. 김진숙씨의 30년 넘은 노동운동의 경험이 담겨진 한국어판 『소금꽃나무』에,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씨가 당시 트위터에 쓴 글과 연설문이 함께 실렸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것은, 예전부터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사업을 해왔던 일본 MDS(Movement for Democratic Socialism,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과 일본 오사카의 지역노조 중 하나인 나카마유니온(なかまユニオン)의 활동이 계기가 되었다.
 
2011년 ZENKO(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전국교환회) 대회에서, 김진숙씨의 고공 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 전역에서 달려온 ‘희망버스’에 관한 영상 <소금꽃나무들 희망버스를 타다>(오소영 감독)가 상영되었다.
 
‘희망버스’는 김진숙씨와 한진 노조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하자며 전국 곳곳에서 버스를 타고 많은 시민들이 모인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총 다섯 번 희망버스가 달렸고, 750명이던 1차 참가자는 2차에 1만2천 명, 3차에 1만5천 명으로 늘어났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알려진 ‘희망버스’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었다.
 
영상을 본 일본 활동가들은 김진숙씨 투쟁에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그후 나카마유니온 사무국장 이데쿠보(井手窪)씨를 중심으로 조합원들과 관계 단체 회원들이 3-5차 희망버스를 탔다. 이데쿠보씨과 조합원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진중공업 뿐 아니라 현대차, 쌍용차, 기륭전자 여성들, 청년유니온 등 한국 노동운동 조직들과도 교류하면서 연대해왔다.
 
▲ 크레인 밑에서 김진숙씨에게 인사하는 나카마유니온 조합원들  ©『소금꽃나무들, 희망버스를 타다』(오소영)

이데쿠보씨는 한일 연대 교류가 계속 이어진 이유에 대해 “희망버스 현장의 밝고 힘찬 시민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 사회는 개인주의가 일반화되면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결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의 희망버스를 본 일본사람들은 놀라기도 했고 대규모 시민연대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해고자의 복직 투쟁은 조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당사자 개인의 힘겨운 싸움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측과 단체 교섭을 통해 불법 해고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배상을 협의해야 하는데, 개인의 힘으로는 난관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큰 목소리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는 조합원들의 단단한 태도와 힘,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일본 노동운동가들에게는 부러운 모습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희망버스에 참여한 사람들은 문화활동가, 노동쟁의 중인 해고노동자, 그리고 젊은 조합원들이었다. 이데쿠보씨는 “평소에 마음 고생을 하면서 사는 조합원들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며, “희망버스가 마음 치유가 되는 장소로 의미가 있다”고 자주 말했다. 이데쿠보씨 자신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3차 희망버스에 참여하고, 이데쿠보씨는 일본에 귀국하자마자 트위터과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희망버스에 관해 일본 사회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희망버스를 통해 배운 SNS라는 수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발신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양극화, 성차별…일본과 닮은꼴
 
현재 일본에서 출간된 『소금꽃나무』를 읽은 독자들이 소감을 전해주고 있다. 일본의 여성단체 OPEN(Opening for Peace, Equality and Nexus) 대표인 야마모토씨는 “한 여성이 왜 그 높은 크레인에 올라갔는지, 무엇이 김진숙씨에게 결단을 내리게 했는지 궁금했다”며, “이 책을 통해 그동안 한진 노동자들의 투쟁 역사와 김진숙씨와 조합원들이 가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책에는 김진숙씨가 경험해왔던, 현재 많은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노동조합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과 조합원들의 죽음, 그 과정에서 노조원들이 느낀 슬픔과 억울함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희망버스> 무대에서 연대의 인사를 하는 일본 참가자들 ©나카마유니온
야마모토씨는 “책에서 읽은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이 말은 한국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일본사람들에게도 전해줘야 할 메시지”라고 말했다.

 
여성노동운동을 하는 사토씨(가명)는 “김진숙씨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온 노동자였다. 인간답게 살기도 어려웠던 1970-1980년대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노동 상황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며, “그런 시절의 경험들이 동료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현재 모습의 원점이며, 지금까지 연대 투쟁을 해온 힘이 되어,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내가 혼자서 생각만 하지 않고, 동지들을 믿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배우면서 손을 잡아 연대 투쟁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12년 여름, 김진숙씨에게 일본어판 『소금꽃나무』를 출판하려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일본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어로 읽어도 쉽지 않을텐데…”라고 염려하였다. 한국적 표현도 많고, 한국의 특유한 노동 문제와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해 외국사람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거라고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은 일본사람들도, 역시 그동안 비정규직화, 정리해고, 사회 양극화, 성차별 등 우리와 유사한 여러 사회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이나 나이, 성별, 직업을 넘어서 이 책이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년, 여성, 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2011년 11월, 김진숙씨가 크레인에서 무사히 내려오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폐 투쟁은 끝이 났지만, 조합원들의 해고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사가 합의한, 모든 해고자들을 1년 이내 복직시킨다는 약속은 2012년 11월 복직 예정날에 회사 쪽의 무기한 휴직 통보로 무산되었다. 또 한진중공업은 노조에 대해 158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압박을 가했고, 2013년 1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인 최강서씨가 죽음으로 항의했다. 아직도 해고자 다수가 일터로 복귀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소식들은 현재까지 MDS 조직신문과 인터넷신문 등을 통해 일본 사회에도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일 양쪽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방문 교류를 해오면서 연대 관계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13년 11월 10일 개최된 노동자대회에도 이데쿠보씨와 오사카시청 초과근무수당 미지불 투쟁의 당사자였던 쿠와시로(桑代)씨, 여성단체 OPEN의 야마모토(山本) 대표와 조합원 이토가(糸賀)씨가 참여했다. 대회 현장에서 한진 노조원들과 현대차 노조원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 2013년 10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교류하는 야마모토 OPEN 대표(오른쪽).  사진의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토모오카 유키 씨.  © 오소영
이데쿠보씨는 “한일 연대 사업은 지금까지는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춰 활동해왔지만, 최근에는 조직을 운영하고 조직화하는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청년들과 여성들, 노동자들이 함께 활동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이 좋은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 이번 방문에서는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과 <소금꽃나무> 출판사인 후마니타스를 방문했다.

 
야마모토씨는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 회원들과 만난 후 “글쓰기 활동을 통해 회원들과 10년간 어떻게 모임을 유지해왔는지 이야기를 듣고, 조직적 관리 체제로 조직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대화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후마니타스 출판사를 방문했을 때 접하게 된 ‘독서모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활동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을 조직화한다고 하면 어렵고 힘든 일이 되지만, 고민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희망버스’의 인연, 국경을 넘은 연대로 이어지길
 
2013년 12월 1일부터 5일까지 일본어판 『소금꽃나무』 출판을 계기로 도쿄와 교토, 오사카에서 김진숙씨의 일본 강연회가 열렸다. 영상과 책 등을 통해 접한 김진숙씨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노동운동가들뿐만 아니라 한일 교류 단체와 변호사, 학자, 대학 노조원, 시민들 총 6백 여명이 참여했다.
 
▲ 일본 아사히신문 2013년 12월 8일자에 보도된 김진숙씨의 오사카 강연회 기사
김진숙씨는 크레인 위에서의 상황과 희망버스에 대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크레인에 올라가서 트위터에 하루 1백만 원짜리 경치 좋은 팬트하우스에 산다(당시 김진숙씨에게는 불법 점거 명목으로 하루 1백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다.)고 올렸는데, 그것을 본 핀란드의 한 대학교수가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실제로 찾아왔다. 크레인 앞에서 2주동안 노숙하며 노동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를 경험하고, 귀국한 후 자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찾아다니신다.”
 
김진숙씨는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고공농성을 통해 이어진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청중들에게 전달하며, ‘힘든 일도 웃으면서 하자!’는 메시지로 참가자들에게 감흥을 주었다. 강연회 참가자들은 “감동과 용기를 받았다”, “우리도 자본과 권력에 지지 않게 연대해서 싸워야 한다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일본에서 연대하자고 외치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등의 힘찬 소감을 전했다.
 
하나의 작은 만남에서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연대 교류는 조금씩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 책의 출판과 이어진 강연회도 하나의 과정이다. 이런 만남을 통해 한일노동자들의 연대가 더 다양하고, 더 깊이있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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