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일도 제대로 못해?”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중소기업 사무관리 담당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누구씨
배너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데 함께할 필자를 찾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총무, 경리, 살림꾼…내 이름은 여러 개

 

우리 회사는 직원 수가 열 명 남짓한 소규모 중소기업으로 외국에서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을 한다. 수입에서부터 판매까지 한 곳에서 이뤄지다 보니 직원 수에 비해 일이 많은 편이다.

 

나는 돈과 관련된 재무 전반을 보며, 각종 사무를 처리하고, 급여 및 인사 관리를 하고, 상품의 판매량과 재고량을 정리하고, 사무실 청결 및 유지 보수를 맡고, 직원들이 각자의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손님들 차 접대를 하며 대표의 비서 역할 등을 했다.

 

회사는 나를 ‘사무관리 담당자’라고 부른다. 거래처에서는 나를 경리, 총무, 회계, 경영지원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다 다른 직종이지만 회사가 작다 보니 한 명이 여러 일을 같이 하는 거다. 그리고 이 업무들을 요약하자면, 사무실 살림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내 비공식 명칭은 ‘사무실 살림꾼’이다. 가정집 살림 하나만 해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여럿이 근무하는 사무실이야. 거기다 가사노동이 손은 많이 가는데도 인정은 별로 못 받듯이, 내 일 역시 그랬다.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업무 세분화가 이뤄져 자기 역할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에 비하면 두루뭉실한 편이다. 모든 직원들이 비슷한 분야의 일을 묶어서 같이 한다. 대표는 직원들에게 말한다. “모두 멀티플레이어가 되어라!”

 

나 역시 멀티플레이어로 힘차게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회사 내에서의 처우와 인식 때문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무 것도 아닌 일?

 

우리는 상품 판매 수익이 가장 큰 수입원이다 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상품을 수입하거나 혹은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직원들을 지원하고 회사 전체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다 보니 상품 자체와는 가장 연관이 적었다. 상품이 돈을 벌어들이니까 상품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모든 일은 그들을 중심으로 굴러갔다.

 

처음엔 중심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또 나는 업무가 다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만 모르고 있다거나, 일 때문에 필요한 정보임에도 상품 관련된 것들은 자기네들끼리만 공유하는 상황들이 반복되자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일 때문에 물어봐도 자세히 안 알려주는 경우도 많았다. 그건 단순히 같이 일하던 상사나 동료 개개인의 문제였을까?

 

내가 사무실이라는 화분에 열심히 물을 주고 있어도 그 흙에서 열매를 맺는 일에 비하면 내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내 일은 잘 하면 아무 말이 안 나오고, 못하면 당장 시끄러워졌다. 다른 직원들의 실수는 서로 업무를 주고받는 당사자들만 아는 경우가 많아 조용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내 실수는 사무실 전체를 상대하다 보니 조용히 넘어가지도 못했다.

 

특히 대표는 내 일 처리가 마음에 안 들면 다짜고짜 불호령을 내렸다. 주 레퍼토리는 이랬다.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일도 못해?”

 

나는 “쉬운”, “애들이 하는”, “덧셈 뺄셈만 하면 되는” 일을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대표가 내게만 화를 낸 것은 아니다. 다른 직원들에게도 화를 냈다. 하지만 빈도수가 확연히 달랐고, 다른 직원들의 경우 애들처럼 다루지도 않았다. 그들의 업무 자체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폄하하지도 않았고.

 

처음엔 이런 반응이 내가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줄 알았고, 그 다음엔 내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 줄 알았고, 그 후엔 대표 성격이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고 버텼다. 하지만 내 실수가 줄고 업무 처리가 향상되고 점점 더 많은 일을 하는데도 대표는 여전히 그런 식으로 나를 대했다.

 

‘어린 여직원’에게 맡겨지는 업무

 

▲  내가 사무실이라는 화분에 열심히 물을 주고 있어도 그 흙에서 열매를 맺는 일에 비하면 내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직업에 따라 차별이 심하니까 반작용으로 나온 말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하는 일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대우와 인식이 다르다.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사무관리직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못마땅해하셨다. “그게 옛날 경리 여사원들이 하던 일이잖아. 그런 일은 오래 못해. 발전이 없으니까.”

 

50대 중반의 엄마가 볼 때 내 일은 사무실의 모든 잡일을 떠맡은 어린 여사원의 이미지였다. 지금처럼 사무 자동화가 되기 전에는 경리 여사원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의 원래 업무는 재무 회계였지만, 실제로는 남자 직원들(주로 그들이 상사였기에)의 ‘보조’로 사무실을 지키는 역할이 더 두드러졌던 것 같다.

 

문제는 당시에도 그런 일은 어린 여자들이 하는 일이었고, 지금도 관행상 이런 일은 남자 혹은 나이든 여자가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손님에게 차 대접하는 일만 해도, 일단 남자에게 이런 류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관례적으로 그들에게 시키지 않고, 대접받는 사람들이 보통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나이든 여자도 더 이상 이런 일을 하기 힘들다.

 

아주 큰 규모의 회사거나 세무, 회계 계통 기업이 아닌 이상 회사의 경리사원은 ‘어린 여직원’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 경리라는 직함은 더 이상 잘 쓰지 않는다는 점은 빼고.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하나라도 틀리면 안되고, 누구나 하는 일이기에 항상 회사 막내들에게 주어지는 일이고, 누구나 대체하기 쉬운 일이라면 나는 회사에 왜 존재하는 건지.

 

내 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은 곧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나를 대체할 인력은 넘칠 것 같았고 회사는 쉽게 나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버릴 것 같았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직원들이 먼저 직함을 달고 연봉이 오를 때에도 나는 변함이 없었다. 여기보다 더 나은 대우와 인정을 해주는 회사로 이직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다른 회사라 하더라도 어차피 비슷한 일을 하면 비슷한 대우를 받을 것 같았다. 아예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하면 모를까. 특별한 능력이나 자격 없이는 다른 직종으로 가기도 어려웠다. 밥벌이가 궁한지라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고….

 

그러다 회사 규모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각 부서마다 직원들은 늘어나는 업무에 힘들어했고 결국 인력을 충원시키기로 결정했다. 신입사원이 여러 명 늘어났다.

 

나 또한 업무가 많이 늘었다. 하지만 내 일을 같이 나눠 할 사무관리직은 신규 채용이 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부서의 신입사원들이 내 일을 나눠 하게 되었다. 정식으로 윗선에서 그런 지시가 내려졌다. 내가 하던 일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웠던 사무실 잡일들은 이제 막내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막내로 일하던 직원이 일을 익숙하게 할 만해지면 새로운 신입이 들어와 막내 자리가 바뀌었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새 막내에게 일을 가르쳐야 했다. 혹시나 막내가 그만두기라도 하면 그 위에 있던 직원이 다시 막내가 되어 일을 했다.

 

막내에서 막내로 항상 말단 직원이 하는 일. 숙련된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 분명히 이것도 일이자 ‘노동’이었지만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될 수 없었다.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지지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터를 꿈꾸며

 

회사가 커진 덕으로 지금은 연봉도, 직급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올랐다. 시간이 많이 흘러 사무실 잡일에서 손을 뗀 지도 꽤 됐다. 그 일들은 여전히 막내들의 몫이다. 지금 조건만 놓고 보면 처음보다 훨씬 좋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현재의 몇 가지 조건이 좋다고 해서 그 동안 겹겹이 쌓인 문제들까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고민은 남는다. 나는 여기서 하는 이 일이 즐거운가?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과 이런 고민들을 풀어보면 답변은 뻔하다. “어떻게 회사를 좋아서 다녀? 아무리 좋아하던 일이라도 밥벌이가 되는 순간 힘들어 지는 거야. 그냥 돈 벌려고 다니는 거지.”

 

나 또한 회사를 좋아서 다니지는 않았다. 숱한 어려움에도 계속 다녔던 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일을 꿈꾼다. 단순히 돈만 버는 것 말고도 다양한 가치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일, 지지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모든 일을 존중하고 일한 수고를 알아주는 곳. 모든 이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곳. 직원들이 일을 통해 자신이 회사의 부속품이 아닌 유기체라고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곳을 찾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나는 계속 탐색 중이다. 

배너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4/05/14 [23:17]  최종편집: ⓒ www.ildaro.com
 
14/05/16 [10:58] 수정 삭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평가를 들으면서... 일하기가 얼마나 재미없을 까요... 대체될까 불안한 마음 이해되구 공감해요. 사람 불안하게 하는 회사들...
이지 14/05/17 [21:13] 수정 삭제  
  동감이에요..
김재용(남자) 14/05/20 [20:46] 수정 삭제  
  사실 나도 회사에 있는 어린 여성사무관리원에게 뭐 부탁하기도 껄끄럽더군요. 소위 남녀평등 시대에 회사에서 여성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으니까요. 뭐 그래도 늙은 아저씨들은 잘도 그러지만 말이죠 ^^;


암튼, 그러다보니 여성사무관리원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도 상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느낌도 있죠. 사무관리원 본인도 그걸 느끼다 보니 뭔가 자격지심같은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어쩔 수 없어요. 시대가 시대인지라 여성도 숙련된 기술과 능력으로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글쓴이가 아직 20대라면 미래는 밝습니다^^.학원같은 곳에서 얼마든지 전문과정을 마치고 관련 분야로 취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나이니까요.


내가 아는 여동생들도 학원같은 곳에서 전문과정을 수료하고 관련 직종으로 취직해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어요. 내가 볼땐 30대 초반까지는 그럭저럭 취직이 잘 되는 것 같아요.그런 즉 30대 초반때까지 뭔가를 배워놓아야한다는 뜻이죠.


전문 직종 이라는 건 뭐 여러가지가 있겠요.
예들들자면, 편집디자인 학원을 수료하고 편집디자이너로 일을 할 수도 있고, 출판학원을 수료 후 출판사에서 근무할 수도 있고. 마케팅관련 분야를 수료해서 마케터가 될 수도 있고. ..자기 관심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겠죠.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하고 전문 바리스타가 될 수도 있겠고...



글쓴이가 만약 내 친여동생이라면 이런 말을 해줄 것 같네요 ..^^화이팅
김재용 14/05/20 [20:55] 수정 삭제  
  현장에서는 대학 간판이 없어도 일만 잘하고 성품이 좋으면 얼마든지 대접 받는답니다^^ 학력에나 전공에 연연해서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여자잖아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살리면 웬만한 남자보다 몇 배는 더 대접받을 수 있답니다^^ 글쓴이가 제 여동생과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 몇 마디 남겨요~ 화이팅
글쓴이 14/05/23 [20:26] 수정 삭제  
  재용님 안녕하세요? 글쓴이입니다. 댓글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 몇자 남깁니다.^^ 먼저 걱정해주고 조언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재용님의 걱정과 조언을 보니 제가 글을 잘 못 썼나, 그래서 내 뜻이 전달이 안됐나보다 싶었습니다. 제 글의 부족한 점을 잘 짚어주신 것 같아요..ㅎㅎ
글쓴이 14/05/23 [20:36] 수정 삭제  
  제가 새로운 일을 찾는다고 한 것은 '낮은 일로 대우받지 않는 일'을 말한 거였습니다. 재용님처럼 '사무원일보다 더 능력있는' 일을 해야 비전이 있다는 사회 인식때문에 힘들다는 거였지 일 자체를 싫어한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은 각자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회라면 사무원 일도 어릴 때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요. 또 그런 일을 '어린 여성'이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주의 지멋대로 머리 짧은 여자
여자의 하루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봄, 세상 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
메인사진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알람 하나 없이도 새벽에 눈이 떠졌다. 밖이 너무 궁금해서 더 잘 수가 없었다. 매일 ... / 김혜련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다
메인사진
나는 마더 테레사 하우스 때문에 콜카타가 100배는 더 좋아졌다. 샨티단에서의 오전 봉사활동은 나를 다른 곳으로 ... / 헤이유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셀프 디펜스, 이기고 지는 것은 없다
메인사진
흉기를 든 사람이 돈을 요구할 때 대부분의 안전 전문가들은 돈을 주라고 조언한다. 돈이나 지갑, 가방 그 어떤 것 ... / 최하란
홍승희의 치마 속 페미니즘
‘그’들의 성추문…여성에겐 어떤 경험인가
메인사진
지난 섹스를 되돌아보며 놀란 것은 기분 나쁜 섹스 대부분이 강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선배, 스승, 멘토 뿐 아니라 ... / 홍승희
반다의 질병 관통기
1인가구의 ‘건강’을 위한 제안
메인사진
1인가구를 다룬 기사를 보면, 1인가구의 삶은 건강하기 어렵고, 1인가구 그 자체가 취약계층이라는 관점이 전제된 ... / 반다
홍승은의 질문교차로
그 시절 너와 나는 사랑했을까
메인사진
그의 뚜렷한 세계는 종종 내 불확실한 세계와 충돌했다. 일찍부터 이혼하고 각자의 애인이 있었던 내 부모님의 관 ... / 홍승은
독자들의 영상 메시지
"일다의 친구를 찾습니다"
메인사진
내가 일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페미니스트들이 만드는 저널, 상업광고 없는 일다의 기사들을 후원해주세요! ... / 일다
최근 인기기사
일다소식
2017년 3월 일다 독자위원회 모니터링 모
[뉴스레터] 미녀가 왜 아직도 야수를?
[뉴스레터] “My Fair Home” 가사노동자
[뉴스레터]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
하늘을 나는 교실 2017년 봄학기 프로그램
[뉴스레터] 15년전 ‘월장’에서 #OO_내_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