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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은 가치도, 문화도 아니다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근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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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데 함께할 필자를 찾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2014년 X월 X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옆 자리 언니는 내일까지 마쳐야 할 선전물 자료를 만들며 끙끙거리고 있으며, 그 옆 자리 팀장님은 내일 있을 회의를 위해 분주히 전화를 돌리고 있다. 덥지도 않은지 다들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도 없고, 배고프지도 않은지 ‘저녁은 어떻게?’ 라는 질문은 나오지도 않는다. 

 

▲  먼저 퇴근하겠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해 지기 전에 퇴근하는 것을 꿈꾸던 때도 있었다.   © 근자씨

물론 나에게도 내일까지 마쳐야 하는 업무가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 그만. 오후 6시가 넘었다. 일단, 지금은 그만하고 내일 아침 출근길에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 지금 한글 켜놓고 자판에 손 올려놔 봤자 수정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크게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음에도 야근을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그렇게 앉아 있다 보면 일이 생기곤 했다. 그 때의 내가 지금 나를 본다면 “다들 퇴근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먼저 ‘저 먼저 가겠습니다’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지? 그 사람 참 용감하구만!”이라고 칭찬했을 텐데. 하하하.

 

사회운동단체의 ‘활동가’라는 정체성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면, 다들 어디 대기업에서 일하는 조금 용감한 사람인가보다 싶을 거다. 하지만 나는 ‘활동가’이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

 

그래, 평등이나 평화, 자주, 정의, 민주 등등 좋은 가치가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곳. 지금의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꾸려 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

 

쓰고 나니 매우 거창한데, 그러니까 단순하게 얘기하면 세상에 불만이 많아 세상을 좀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득실득실 모여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처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매력에 빠져서,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함께 사람들과 나누고 토론하고 새로운 대안을 그려보고 실현해 나가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덧붙여서 평등, 정의와 민주 등의 가치는 누군가 실현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현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도.

 

그런데 이 평등, 평화, 정의, 민주 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곳에서는 밥 먹듯이 야근을 하고, 계좌를 네 명이 같이 쓰는 효과를 주는 듯 쥐꼬리만한 활동비에, 심지어 가치와 반대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야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분위기

 

활동을 시작한 첫 한두 해에는 일이 많지 않아도 야근을 하곤 했다. 사무실 내 만연한 야근의 기운을 끊어내고 “저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내가 무언가를 빠뜨린 것은 아닌지, 내일 해도 될 일이지만 미리 해야 하는 것인지, 일이 많아 보이는 다른 활동가들의 나누기도 어려운 그 일을 받아와야 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왜?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야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야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분위기였다!

 

사명감이 높아서, 업무가 숨 쉴 틈도 없이 많아서 야근 혹은 추가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근, 추가 업무, 그러니까 ‘바쁜 척’이 무슨 문화인양 늦은 시간 사무실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야근으로 인해 새로운 생각이 샘솟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이게 또 야근한다고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야근 해라 라고 이야기하는 윗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야근은 함께 합의한 가치도, 문화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야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젊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래 결정적으로 ‘활동가’이기 때문에 감내야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젊기 때문에 무언가를 제일 잘 찾는다. 여성이기 때문에 감수성 있는 기자회견문을 쓸 수 있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오늘 조금 늦게 끝나도 되지? 자, 이번 주말에는 여기를, 다음 주말에는 저기를, 그리고 그 다다음 주에는 1주일 내내 1인 시위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개인 약속이 있더라도 집중해야 할 시기이니, 좀 조절하는 것으로 하자. ‘활동가’인데.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각종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며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뭐뭐뭐니까~’ 라는 이 말도 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살기로 결심했으니, 내 개인적인 일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활동가의 기본 덕목이 아니라는 건가?

 

‘~을 해야만 한다’는 이제 그만

 

그래서 ‘저 안 되요!’ 혹은 ‘저 못 하겠는데요?’ 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결론 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설득력이 없이 역할로만 ‘~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쉬운 화법도 있다는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난 모르겠다, 젊은 네가 길 좀 알려줘’가 아니라, ‘나도 찾아보려 했는데 잘 되지 않네. 일단, 이번에는 같이 찾아봐주면 어떨까? 그리고 다음 번을 위해서 매뉴얼을 만들어 볼까 해’ 라고 한다든지, ‘지금 이 문제가 이러이러한 상황으로 매우 시급한데, 1인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고 하네. 다음 주 우리가 함께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을 같이 조율해볼까?’ 등의 형태로 말이다. 언제까지 정언 명령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겠다는 거지?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노동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최저임금, 단체협약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사측이 누구인지도 불투명한걸. 그렇다고 해서 사측이 늘 불투명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복지에 있어서는 요구할 사측이 없는데, 업무에 있어서는 지시하는 사측이 존재하니 말이다.

 

근본으로 삼고 있는 원칙이나 가치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는 단체의 사정이 어렵고, 그 사정을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할 것이라며 가치와 원칙이 고무줄처럼 적용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또, 함께 인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활동가들의 활동과 생활을 별개로 생각해서 그들의 생활을 책임지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활동가란,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사는 사람 

 

▲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지는 길을 찾는 일은 고민의 연속이다.   © 근자씨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활동가는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더 많은 사람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며, 현재를 보고 문제를 찾고, 방향과 할 일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 더 나은 삶은 물질적 풍요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가치의 풍요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든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공평한 기회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활동가들이 그런 삶을 만들기 위해 사는 것은 그들이 잘 나서, 많이 배워서는 아닐 것이다. 나는 단지, 우연찮은 기회에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현장을 보거나 듣거나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였을 뿐이다. 시간상 먼저.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헤치고 나가야 할 길의 성격이나 장애물의 높낮이를 알지 못해 부딪히거나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는 다른 이들을 기다려서 해결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그 길을 밟았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해, 저것을 감내하는 것은 당연해 라는 것은 다수가 꿈꾸는 삶을 만들기 위해 너를 위해 꿈꾸는 것은 포기해라 하는 것과 같다. 마치 너는 해봤잖아, 형이니까 양보해, 그런 느낌이랄까?

 

후.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누군가 얘기하겠지. ‘그럼 네 맘에 안 드는데, 계속 다닐 거야? 그렇게 구구절절 읊어놓고서는? 왜 계속 그러고 있어?’

 

물론, 내가 평생 이 단체에서만 일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난 아직 젊고 다른 꿈을 꾸기도 할 테니까. 그래도 당장은 그만둘 수 없다. 아니, 그만두지 않는다.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기에

 

조직 안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만, 조직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문제 의식조차 없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실제로 조직 안에는 우리를, 그리고 나를 감동시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향하는 가치를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고 실현하게끔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조직 안의 작은 문제에도 깊은 고민을 하며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방안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스한 마음을 직접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이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변화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이곳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최근 카톡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잖아…” 그때 당장은 웃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 말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나 좀 불만이 있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야. 불만? 문제? 그건 함께 바꾸면 되는 거니까!

 

야근으로 시작한 오늘의 이야기는 투덜거림으로 이어졌다가 훈훈함으로 급하게 마무리. 앗, 약속 늦겠다. 이제 일어나야지. 자자, 훈훈함 하나 더. 언니도 팀장님도 내일을 위해,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이제 퇴근합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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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7/02 [10:15]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갈치 14/07/02 [13:20] 수정 삭제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드는 일상의 고민들을 이렇게 풀어내는 당신은 참 멋진 사람~ 이 글을 읽으며 시민사회단체나 사회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누구나 한 번씩은 해 봤음직한 고민들이 아닐런지~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야근하지 마시고, 즐겁게 일하시길 바랍니다^^!
다람쥐 14/07/02 [14:07] 수정 삭제  
  건강한 고민을 나누어주어서 고맙네요. 응원합니다.
finn 14/07/03 [16:07] 수정 삭제  
  사랑해요
야근ㄴㄴ 14/07/04 [11:59] 수정 삭제  
  일이 너무 많아서 맨날 야근에 주말 반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잠도 사무실에서 잤습니다. 왜 그리 살았나 싶으면서도 그 때만큼 열심히 산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뭐뭐뭐니까~' 정언 명령이 아닌 서로 기 살려주는 말하기, 저도 해보겠습니다.
펭펭 14/07/04 [18:39] 수정 삭제  
  근자씨 반갑습니다. 시민운동 플랜비라는 사이트에서도 '근자씨'가 비슷한 고민으로 연재를 하고 있어요!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 같아 좋아요. 한 번 놀러오세요. http://nowplanb.kr/787
자두 14/07/06 [10:43] 수정 삭제  
  미래를 꿈꾸며 현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살아 있는 자 모두의 로망이라 여겨지네요. 건강한 젊은 청춘 근자님! 당신과 같은 이들이 있어서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고맙고 정~말 사랑합니다~~~
활동가?노동자? 14/07/11 [16:09] 수정 삭제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활동가가 있다니 매우 반갑네요.
야근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없던 아이디어가 샘솟는것도 아닌데.
심지어 저희 단체에선 노동학습팀을 운영하여 함께 노동법을 공부하고 있는데도
저에게 야근 하는것이 운동에 열정이 있는 사람인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며 할말이 없었습니다.
조직문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시민단체가 이런데.... 엄청 실망만 늘어가는중
행인 14/07/26 [19:57] 수정 삭제  
  잠시 시민단체 상근자로 일했을 때 진짜 끔찍했어요. 내가 바라고 꿈꾸던 직업이자 소망이 내 자존감을 훔쳐가는 도둑이 됐었죠. 90년대의 영광만 생각하는 80학번들의 경직된 자세, 썩을 대로 썩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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