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애도하며, 베트남의 안전을 묻다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나카 NAKA

구수정 | 기사입력 2014/09/03 [12:10]

세월호를 애도하며, 베트남의 안전을 묻다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나카 NAKA

구수정 | 입력 : 2014/09/03 [12:10]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나카 (NAKA)

 

2012년 10월 창립된 <나카>는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해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하는 호치민시의 사회적 기업이다. 2013년 ‘베트남 사회적기업지원센터’(CSIP)에서 올해의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된 <나카>는 베트남인들의 생활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 상품을 발명, 개발, 판매하고 있으며, 안전과 환경, 쓰레기 재활용 등에 관한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사업 수익의 절반을 공동체 지원 사업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월호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게 해선 안돼

 

세월호 침몰 사고의 충격과 아픔은 바다 건너 베트남까지 전해졌다. 한 달이 넘도록 베트남 언론들도 연일 세월호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한국인을 친구로 둔 베트남인들은 조심스레 안부를 물으며 애도를 표했다.

 

<나카>(NAKA)의 사장 응오끼남.    © 아맙

“찌아 부온(Chia buon).”

함께 슬픔을 나눈다는 뜻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조문 인사말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생존자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다 이제는 부디 시신이라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하던 즈음, <나카>의 남 씨를 만났다. 베트남에서 어린이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안전사고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 그에게 한국의 세월호 소식은 남달랐던 것일까. “찌아 부온”이라며 첫 인사를 건네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두 번 다시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한 우리 두 사람이 마치 오랜 동지라도 되는 양 한 목소리가 되어 잔뜩 결기를 세우며 베트남의 ‘안전’을 묻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안전한 베트남을 꿈꾸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지금까지 40여 곳에 달하는 베트남 사회적 기업을 만났는데, <나카>처럼 안전사고 예방교육 사업을 하는 곳은 처음입니다. 한국은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데요, 지금 같은 시국에 <나카>를 만나게 되어 더욱 의미 있는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오끼남(나카 사장. 이하 ‘남’): 세월호 참사는 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함께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희생자와 유가족들, 그리고 한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베트남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저도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며 뉴스를 지켜봤지요.

 

수정: 말씀 감사합니다. ‘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CSIP)에서 선정한 2013년 올해의 사회적 기업 가운데 <나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어요. 어떻게 안전사고 예방교육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남: 저는 군대에서 정보병으로 복무했고, 사회에 나와 은행, 인테리어 사무소, 소프트웨어 기술발전센터 등에서 일하며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렸어요. 그런데도 가슴 한편이 늘 허전한 겁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땐 사회적 기업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주변에 NGO 관련 일을 하는 지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막연하게 이윤 창출과 사회 기여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사업은 없을까 궁리만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에 베트남에서는 안전사고로 한 시간에 한두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통계 수치를 접했어요. 큰 충격을 받았지요. 즉시 유니세프(UNICEF)와 베트남 의료부의 보고서, 통계 자료 등을 찾아보고 안전사고 예방 교육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에는 안전사고나 재난에 대비하는 교육이라든지 훈련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안전사고 캠페인도 구호나 외치고, 포스터나 전단지를 뿌리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요.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안전사고 예방교육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CSIP) 세미나에 참석한 <나카>.  2013년 올해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아맙

 

‘헬멧 쓰고 오토바이를 타면 미쳤단 소릴 들었죠’

 

수정: 안전사고 예방교육 이외에도 <나카>에서는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남: <나카>는 창의적인 교육 훈련 프로그램과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전체 수익의 절반은 기업 운영에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공동체 지원사업에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교육 훈련 프로그램은 안전사고 예방교육 말고도 환경, 쓰레기 재활용, 소프트 스킬(Soft Skill, 커뮤니케이션이나 협상, 팀워크 등)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더 신설할 계획입니다. 학교나 공공기관, 기업 등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강좌를 열죠.

 

제가 직접 발명한 아이디어 상품들도 많은데요. 몇 가지만 소개하면 산간벽지의 가난한 농민들과 소수민족들을 위해 사용이 간편한 4달러짜리 정수기, 전등과 독서대까지 구비된 신개념 해먹, 다리나 사공이 없어도 로프를 이용해 강을 건널 수 있는 도하용 뗏목 등이 있어요.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상품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 속 불편을 개선하는 창의적인 상품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정: 베트남의 안전사고 실태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오토바이가 많은 나라라 교통사고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남: 베트남에서는 하루 평균 1백~1백20명이 안전사고로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어요. 성인과 아동 모두를 포함한 숫자입니다. 교통사고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죠. 오토바이 천국으로 불리는 베트남은 교통사고 다발국가라는 오명을 함께 안고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교통사고로 약 9천3백 명이 사망했고 약 2만9천 명이 부상을 당했어요. 하루 평균 25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는 셈인데, 교통관리시스템 문제도 있지만 베트남 사람의 안전불감증도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베트남은 2007년 12월부터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착용하도록 의무화했는데, 저는 그 전부터 헬멧를 쓰고 다녔어요. 그러면 주위에서 “날씨도 더운데 미친 거 아니야?”라며 수군거렸죠. 그 정도로 안전의식이 부족했다는 얘기죠. 심지어 정부의 안전모 착용 의무화 방침도 거센 반발에 부딪혔어요. 그러나 안전모 착용의 효과는 굉장했습니다. 베트남 최대의 국립병원 쩌라이 병원의 응급실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예전에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응급실에 오는 환자가 하루 약 3백명 정도였는데 안전모 착용 이후엔 약 30~40명으로 10배나 줄었다더군요.

 

어른들의 안전불감증에 일침을 가하는 아이들

 

▲  호치민시 한 공원에서 진행된 <나카>의 안전사고 예방교육.  © 아맙

수정: 교통사고 이외에, 다른 안전사고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남: 베트남에서 주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유형 별로 보자면, 교통사고 다음으로 많이 일어나는 것이 수상 안전사고입니다. 베트남은 북부의 홍강, 남부의 메콩델타를 비롯해 강과 샛강, 늪지대가 많고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수상 안전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특히 어린이 익사사고가 많습니다. 매해 평균 약 3천5백명의 어린이가 익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부모가 일을 하는 동안 방치된 아이가 혼자 놀다가 물에 빠지는 경우도 많지요. 물과 항상 가까이 살면서도 수상 안전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고, 어린아이가 있어도 안전사고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세 번째로는 추락 사고가 많은데요. 대부분 건설 현장과 같은 공사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죠. 그밖에 오랜 전쟁의 잔재로 지뢰, 불발탄 사고 역시 아직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농촌, 산간 지방의 가난한 농민들이죠.

 

수정: 어린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나카>의 안전사고 예방교육은 어떠한 특징이 있나요?

 

남: 형식적이고 이론적인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이나 간접 체험을 통해 스스로 안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종이와 볼펜을 나눠주고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적어보라는 미션을 줍니다. 그러면 아이들 스스로 감전 위험이 있는 콘센트, 쉽게 깨지는 화분이나 유리병, 낙상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계단이나 베란다 등을 찾아내지요.

 

수업 진행 방식은 게임이나 레크리에이션을 활용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안전 문제를 발견하고 가상체험 등을 통해 대처 능력을 몸으로 습득하도록 돕습니다. 어른들이 조심하라고 백 번 일러 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학교에서 안전교육이 이루어진다 해도 기껏해야 글로 읽는 것이라 학생들이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지는 못합니다. <나카>는 안전체험장에서 화재, 교통사고, 개나 뱀에게 물렸을 때 등과 같은 가상의 상황을 체험토록 하여 학생들의 상황인지능력, 위험대처능력 등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수정: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받은 후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남: 아이들은 스폰지 같은 흡수력을 갖고 배우지요. 어른들보다 순발력도 훨씬 뛰어나고요. <나카>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대부분이 뚜렷한 변화를 보입니다. 학생들의 학습 효과는 학부모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바로 알려지는데요. 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집에서 “컨센트를 이대로 두면 위험해요”, “헬멧은 꼭 쓰세요”라며 주의를 주거나 “우리 집엔 왜 소화기가 없나요?” 하고 따져 물으면 교통경찰이나 공무원보다 더 무섭다고들 합니다. (웃음) 한 학생은 배를 타는데 구명조끼가 없다고 탑승을 거부했다고 들었어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안전불감증에 일침을 가한 셈이죠.

 

대형참사에 무방비, 베트남에 안전매뉴얼을…

 

수정: 강사로는 어떤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나요? 안전사고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때 다른 나라 사례를 참고한 것이 있나요?

 

남: 학교 또는 센터 등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주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육학, 응급처치 요령, 소화기 등의 안전장비 사용에 대해 공부한 분들이죠. 공고를 통해 선발된 뒤 2~3개월간 <나카>의 안전사고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에, 강사로 활동하게 되죠. 사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졸업생들 대부분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나카>에서는 이 젊은이들을 안전교육 강사로 육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교육 프로그램은 주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했어요. 하지만 각 나라의 환경에 따라 안전교육 내용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그 나라의 교육 모델을 베트남에 그대로 적용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쉬운 예로, 일본에서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널 때는 녹색등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로 손을 들고 천천히 건너가라고 가르치지요. 하지만 여기선 그럴 수 없어요.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보행자가 눈앞에 있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운전자들 때문이죠. 베트남에서는 아이들에게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더라도 바로 건너지 말고 수시로 좌우를 살펴야 한다”고 가르친답니다.

 

<나카> 센터 건립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응오끼남 씨.    © 아맙

 

수정: 베트남에서도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가 있었나요? 한국은 과거 백화점 붕괴, 지하철 화재 사고 등의 참사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안전관리 능력이 부재하다는 걸 전세계에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베트남에서도 그런 참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남: 베트남에도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2007년 9월에 있었던 컨터 대교 붕괴 사고입니다. 메콩강의 지류인 허우강을 잇는 550미터 길이의 대교로 일본 기업이 시공을 맡았지요. 2004년 공사가 진행되던 중에 다리의 일부가 붕괴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작업 중이던 2백명 이상의 인부가 속수무책으로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에 깔려, 결국 54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부상당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저는 일본 기업의 사고대처 방식과 태도에 주목하였습니다. 정부가 아닌 기업인데도, 우리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속하게 사고를 수습하더군요.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사죄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대교가 개통된 이후에도 수 차례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그때마다 유가족들에게 거듭 사죄를 표했죠.

 

베트남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어린 학생이었음에도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순순히 따랐다는 사실입니다. 베트남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완전히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게 분명합니다. 서로 먼저 탈출하려고 밀고 밀치고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되었을 거예요. 한국과는 아주 다른 양상의 비극이 일어났을 겁니다.

 

베트남에는 대형참사가 발생할 경우 안전매뉴얼 자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에요. 정부의 재난관리 시스템이나 긴급구조 능력도 신뢰할 수 없죠. 현재로선, 개인적인 차원에서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면서 국가가 재난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끊임없이 추동해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카>의 안전사고 예방교육 프로그램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세월호가 침몰 중이고, 대형참사가 일어나면 아이들은 언제나 가장 큰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 기록 정리: 권현우(아맙 공정여행 팀장)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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