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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 멸종된 단어, ‘안정’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3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뽀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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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데 함께할 필자를 찾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1. 대학시절 – 면접

 

그리고 졸업이었다 /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 대학시절 중)

 

학교에 더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흔히들 졸업을 유예하고 ‘취직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무던히도 그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려던 축이었다. 딱히 갈 만한 데도 생각나지 않았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졸업을 미루자니 학교에 들어가는 돈이 아깝고, 졸업하고 백수로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은 더 불안했다. 부모는 내 백수 생활을 몇 년 정도 더 지탱해 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당신의 노후까지 내 걱정 안에 포함시키는 게 싫었다. 결국 한 학기 휴학이라는 준수한 기록으로 사년 반 만에 졸업하게 되었다.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청소년 대안교육업계와 잡지사와 게임업계와 인터넷 포털과 대기업을 기웃거린 후 – 그냥 닥치는 대로 괜찮아 보이는 곳에 자기소개서를 들이밀었다는 뜻이다 – 열 번째 회사에서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 면접 장소와 시간을 알리는 이메일에는 정장일 필요 없이 단정한 복장이면 된다고 써 있었다.

 

옷장을 한 번 뒤집고 나름의 단정한 복장을 만들어 면접장에 도착하자 모두 졸업앨범을 찍거나 결혼식 알바를 하다 뛰쳐나온듯한 차림새로, 여자는 흰 블라우스에 에이치라인 스커트 차림으로 무릎을 모은 채, 남자는 목까지 조인 넥타이에 다리를 적당히 벌린 채 반짝거리는 구두코를 보고 있었다. 모두가 이메일을 봤지만 ‘단정함’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나만 청바지를 입고 와서 떨어지는 건 아닌지 괴로운 고민을 했을 터였다.

 

면접장에 들어가 자기 소개를 해보라는 말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또박또박 책을 읽는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마음에는 뜨거운 열정을 품고, 머리로는 이 회사의 발전을 고민하는 OOO입니다’ 같은, 이제까지 실생활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소개를 뱉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범위에서 시험 문제가 나온 기분이었다. 모두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나는 영어 시험을 준비해 온 기분.

 

그러나 첫 번째 면접을 끝내고 보니 면접장에 있는 그 누구도 어떻게 하면 붙을 수 있는지, 심지어 면접관조차 어떻게 하면 잘 뽑을 수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모두 모르니 다들 헛발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면접을 끝내고 이불을 한 번인가 두 번 걷어찼고, 어찌된 일인지 붙어버렸다.

 

공채로 뽑힌 인원은 총 아홉 명이었다. 대기업 공채보다는 적고 중소기업 채용치고는 많은 애매한 인원. 두 명은 나가고 지금은 일곱 명이 남아있다.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매우 많은 인원이 남은 케이스로, 몇 명이 뽑히든 보통 절반 이상이 나간다고 한다. 6개월 인턴까지 합해 나는 지금 3년차를 바라보고 있다.

 

2. 직장생활 – OX 퀴즈

 

전후 사정 다 빼고 말하면, 들어왔던 회사에서 차출되어 지금은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 농담으로 말하면 취업 사기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취업 사기가 맞다. 어느 날 출근했더니 책상이 옆 건물로 옮겨졌다는, 도시 전설 같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회사는 친절했다. 면접 때부터 ‘옆 회사로 가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까?’ 라고 미리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정장을 입은 그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괜찮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상황에서 누가 아니오, 라고 할 수 있겠나. 그건 예/아니오의 선택권이 아니라 O/X 문제였다. 틀리면 나가야 했다.

 

현재 속해 있는 직장은 온라인 쇼핑몰로, 패션상품을 사고 파는 일을 한다. 지리한 잔심부름 이후로 처음 맡았던 업무는 온라인 광고 구좌에 이미지 배너를 올리고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이미지와 이메일은 매일 내용이 바뀌었고, 나는 내용을 채우고 맞는지 검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던 어느 날, 매일 자정에 업데이트되는 배너에 오류가 났다. 시간당 몇만 명이 보는 자리였다. 정오가 거의 다 되어서야 복구가 되었고, 그 동안 내 상사와 나는 모든 관련 부서에게 조리돌림을 당했다. 나는 그 후로 종종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정에 잠에서 깨 핸드폰으로 사이트를 확인하고 잠이 들곤 했다.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고민보다 누군가 나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게 나를 숨막히게 했다.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몇 달 전 인턴 중 하나가 잘렸다. 해고되었다, 도 아니고 퇴사했다, 도 아니고 잘렸다, 도 아닌, 생각하면 속에서 짠 맛이 올라오는 일이었다. 도급업체를 통해 고용한 디자이너는 걸핏하면 교체되었다. 비정규직과 인턴은 대체 가능한 인원으로 분류되었다. 사무실 어디에도 사용자는 없었지만 위계는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없애는 일에 침묵함으로 사람을 도구로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있었다.

 

3. 회사에 붙잡혀 있는 이유

 

정규직이 되고 처음 받은 월급은 한 학기를 휴학하고 알바해서 모은 돈과 맞먹었다. 외식을 하면 메뉴판 가격에서 자유로웠고 어머니 용돈도 드릴 수 있었다. 서른쯤 되면 지상에 있는 방 전세금은 나오는지 통장을 보며 하나마나 한 덧셈과 뺄셈을 반복했다. 지금은 어차피 웬만한 기업 월급으로는 서울에 있는 집 한 칸 자기 소유로 만들 수 없다고 체념한 상태다.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있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업계로 가면 지금까지의 경력은 아무 의미 없게 된다. 그러나 최소한의 저녁 시간을 보장받으면서, 실적 때문에 재떨이를 얻어맞지는 않는 환경이 나를 붙잡고 있다. 여기도 불확실하지만 바깥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그래도 행복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인생 모토는 “백 살까지 살 건데 몇 년쯤 회사에 갖다 바치면 어때” 정도로 굳어졌다. 최대한 마음을 연하게 먹고 줄 수 있을 만큼 주되 다 주지는 않겠다고 매일 아침 다짐한다. 회사는 내 건강과 미래를 가져갔고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서 매일 회사에 나가고, 매일 회사에서 나가고 있다.

 

불안은 참 이상하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별 거 아닌데 차마 한 발짝을 떼지 못한다. 처음 구직할 때까지만 해도 월 백오십 만원 정도면 준수하고, 어디서 일하든 야근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막연히 환경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또 다짐했건만, 지금은 행여 아프면 나올 병원비와 오려면 앞이 깜깜한 노후까지 걱정하고 있다. 불안에 못 이겨서 괴물이 되지는 말자고 매일 저녁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안정은 우리 세대에게 멸종된 단어다.

 

4. 저녁이 있는 삶

 

▲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추처럼 흔들거리다 매일 나에게 맞는 균형을 잡고 있다.  © 뽀뽀스

불안해도 놀아야 한다. 최대한 즐겁게 사는 일이 지구에도 좋고 지역 사회에도 좋으며 내 자신에게도 좋다. 요새 하고 싶은 일로는 춤추기, 글쓰기, 악기 연주하기, 한량짓하기, 허랑방탕 연애하기 등이 있다.

 

퇴근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춤을 추러 가고, 악기를 연주하고, 가끔 글쓰기모임에 나가며 아주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만나서 낄낄대고 술을 먹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연애는 젊은 때만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아침에는 누가 날 죽여줬으면 하는 피로를 붙잡고 일어나다가도 밤이면 다시 밖으로 나간다. 좋아하는 일을 꼭 밥벌이로 만들지 않아도 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해야 한다. 혹자는 회사를 벗어나는 방법을 택했고, 나는 당분간 박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까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하나를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새는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추처럼 흔들거리다 매일 나에게 맞는 균형을 잡고 있다. 매우 힘들면 관둔다. 할 만하면 한다. 재밌으면 계속한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헛소리를 들었는데, 어쨌든 어른은 영원히 되지 않으리라는 것. 우리는 이미 열살 때쯤 천 번을 채웠다. 이미 흔들리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흔들릴 테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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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9/05 [10:24]  최종편집: ⓒ 일다
 
jh 14/09/05 [10:58] 수정 삭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쿨렐레 치는 모습이 멋져요!
옥버섯 14/09/05 [11:37] 수정 삭제  
  문장이 좋아요
파도 14/09/06 [01:45] 수정 삭제  
  쉽게 읽히는 글인데 여운이 감돌네요. 옛시절의 감성을 훔쳐본듯한 기분도 들고요. 웃어른분들이 이렇게 성장하신건가하는, 이미지때문일까요? 잘 읽었습니다.
오렌지 14/09/08 [13:00] 수정 삭제  
  백살까지 살건데 몇년쯤 회사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죠. ㅎㅎ 행복하게 살아야할 권리를 챙깁시다!
사르미 14/09/09 [13:33] 수정 삭제  
  참 공감가는 이야기예요
카멜레옹 14/09/14 [21:17] 수정 삭제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미 흔들리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흔들릴 테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저자분의 생각이지만 저 또한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같이 흔들려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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