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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중시하는 학교사회에 발 딛다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초보 교사의 한 학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무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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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데 함께할 필자를 찾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교실 문을 열고 학생들 맞을 준비를 하며

 

나는 올해 3월에 발령 난 새내기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는 1년을 여름방학을 기준으로 1학기와 2학기로 나누는데, 이제 2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절반 정도 적응을 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하는 일은 매일 사소하게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아침에 출근해 교실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학생들 맞을 준비를 한다. 학생들 오기 전에 칠판에 아침자습 과제를 내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수학문제 풀기나 독서를 하는 등 공부할 때가 많지만 가끔은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고, 교실에서 자유롭게 놀기도 한다. 교실에서 놀라고 한 날은 아이들이 나한테 다가와서 ‘자비로운 선생님’이라고 칭찬을 해준다.

 

학생들이 아침 과제를 할 동안 나는 메신저를 확인하고 간단한 업무를 처리한다. 간단하지 않은 업무는 일단 제쳐둔다. 1교시 시간이 급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1교시부터는 정신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교사를 하면서 가장 성취감을 느낄 때가 바로 수업을 할 때다. 아직 경력이 없는 나는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크게 차이가 난다. 열심히 준비한 수업은 아이들이 같이 호흡해주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준비가 조금만 소홀해지면 금방 냉정해지는 것이 또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두말할 것 없이 체육시간! 가장 힘들어하는 수업은 수학이다. 이제 6학년이 된 우리 반 아이들은 벌써부터 학습 부진이 누적된 경우가 많다.

 

점심 먹고 6교시까지 수업을 한 후에,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학생들이 드디어 하교한다. 그 때부터 수업 이외의 업무 시간이 시작된다. 학년 업무와, 학교 업무, 공문을 처리하고 내일의 수업 준비를 한다.

 

우리 학교는 학급이 많은 학교가 아니어서 한 명이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퇴근 시간이 지나고서도 남아있는 선생님이 꽤 많은 편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주로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시간을 맞추려 노력한다. 저녁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1등 신붓감 여교사”

 

내 나이는 스물다섯. 아직 어린 나이라 생각한다. 나는 취업을 해서 직장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학교에 다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 사실 내 친구들 중 내가 가장 취업이 빠른 편이다.

 

대학을 재수하여 들어가면서 남들보다 1년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 교대 임용고시 발령까지 정해진 코스를 거쳤다. 그동안 내 친구들은 다른 일, 다른 학과를 열심히 탐색하기도 했고, 잘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맘껏 놀기도 했으며, 아무리 이력서를 써도 기업에서 부르지 않아 졸업을 유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서나 칭찬받는 모범적인 젊은이’가 됐다. 어른들을 만나면 항상 내 직업을 물어본 후 ‘결혼상대자 1위가 여교사다’ 라며 칭찬해주었다. 요즘 시대에 구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했다며 ‘1등 신붓감’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교사의 훌륭한 복지 조건은 내 직업의 큰 장점이다. 안정적인 월급과 휴일. 그리고 철저히 보장되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왜 사람들이 교사를 ‘여성’의 직업 중 좋은 직업으로 생각하는지 이해가 된다. 반면, 당연한 것을 제공했는데 그것에 감탄하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기도 하다. 받아야 할 돈과 쉬어야 할 날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은 기본인데, 그렇지 못한 직장이 하도 많아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작은 사회, 교실

 

학교의 또 다른 장점은 교실에서 교사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된다는 것이다. 업무만 제대로 마친다면, 칼퇴근을 해도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다. 학교에서의 상관은 관리자들밖에 없고, 그 관리자들도 내 교실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권리는 없다. 그래서 교실은 독립된 작은 사회가 된다.

 

▲  학생들이 반 규칙을 정한다. 2학기 들어서는 아이들이 다같이 ‘학급 온도계’를 만들었다.   © 무아레

 

우리 반은 철저한 민주주의를 채택해서 운영되고 있다. 나는 최대한 학생들의 의견에 따라 학급을 운영하고 싶었다. 사실 우리 반 학생들은 초등학교 생활 6년차고 나는 6개월째니 경력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래서 경력자들의 의견을 우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학생들이 우리 반 규칙을 정했고, 나는 최대한 그 규칙을 따르는 심판관의 입장이 되곤 한다. 어떤 규칙은 원활히 운영되지만, 어떤 규칙은 존재감이 미미해서 모두들 잊어버리기도 한다.

 

2학기에 들어서는 반 아이들이 다같이 ‘학급 온도계’를 만들었다. 1학기 때는 ‘모둠제’를 이용해서 모둠 친구들끼리만 도왔는데, 그뿐만 아니라 ‘학급’ 전체를 위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학급 온도계’는 우리 반의 생활 태도를 온도로 나타낸 제도로, 바른 태도로 학교생활을 하면 1도가 올라간다. 10도, 20도 30도 등, 10도가 올라갈 때마다 학급 전체가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요리 만들기’ 같이 인기 있는 활동이다. 새로 만든 규칙이라, 요즘에는 우리 반 학생들 모두가 숙제를 해오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1도가 올라갈 때 마다 행복해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같이 웃음이 난다.

 

학생 성추행 사건을 겪으며…철밥통 속의 무기력

 

반 년간 교사를 하면서 느낀 ‘교사로서의 사회생활 제 1대 덕목’은 ‘책임’이다.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내 ‘책임’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만 무탈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의 ‘책임’은 ‘책잡힐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에 가까운 의미다.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 가장 큰 사건은, 우리 반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안이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학생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일은 학생에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그 중에서도 큰 문제에 속한다. 우리 반 남학생이 주말에 수영장에 놀러 갔는데, 장난을 치면서 중학교 여학생의 신체 여러 부위를 만졌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사건을 인지한 당일 아침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 학기 동안 정성을 다했던 학생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모난 부분이 많았지만, 같이 생활하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보지 못하는 장소에서 그런 일을 했다니…. 자괴감이 먼저 들었고, 그 다음 분노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성추행이라니, 그 학생이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남은 한 학기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 학생을 대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나는 학년부장 선생님과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께, 학년부장 선생님은 교감 교장 선생님께 알렸다. 업무 담당자 선생님은 교육청에서 제시하고 있는 매뉴얼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하셨다. 지침에 따르자면, 성추행 관련 사안은 곧바로 교육청에 보고하게 되어있었다.

 

문제는 피해자가 이 사건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는지의 여부였다. 또한 피해자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관리자 두 분의 의견이었다. 관리자 두 분은 이 사건이 우리 학교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인지, 아니면 중학교로 넘겨야 할 사안인지를 고민했다. 결국은 피해자가 있는 중학교에 사실을 고지하는 것으로 ‘책임’을 넘겼다.

 

사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에 질색한다. 이런 사건이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관리자들이 꺼려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학교에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알리지 않고 조용히 무마한다면, 기록에 남지 않고 끝날 수도 있다.

 

관리자 두 분은 우리학교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학교 주변에 있는 성 상담센터에 문의하라고 지시하였다. 나는 그 지시에 따라 지역의 성 상담센터 세 군데에 문의해보았지만, 권유 받은 대처방법은 세 곳 모두 달랐다. 첫 번째 연락한 곳에서는 중학교에 알리라고 했고, 두 번째는 해결방안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상담에 대해서만 안내해주었다. 상담 예약이 모두 차 있다는 말이었다. 세 번째는 피해자 학교에 먼저 알리면 피해자가 상처 입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사건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피해자의 담임선생님께 알렸는데, 피해자가 장난으로 인정해 넘어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가해자 학생이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 학생에게 분노했지만, 순간의 호기심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이제는 인간적으로 이해가 간다. 가장 슬프고 괴로운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일 것이다. 스스로를 위해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졌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일 뿐이다.

 

이 사건에서 학교의 사람들은 책임을 면하기 노력하였고, 나에게도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부장선생님은 신규인 나를 위해 관리자들에게 알려주었고, 관리자들은 담임의 책임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담 기록이 있는지, 평소의 생활 지도는 어땠는지 확인하였다. 또한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방치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동시에, 작은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가해학생이 추후에 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것을 대비해 위클래스 상담센터에 연계하기도 하였다.

 

책임을 면하고자 한 것은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다. 가해학생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자, 그 부모는 이 사건이 부모의 양육방식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 부모는 첫 번째로 ‘우리 아들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면서 사실을 부정했다. 그 다음에는 ‘이 정도 사소한 일을 왜 학교 전체에 알리냐, 담임이 학생을 잘 타이르고 가르치면 해결될 일 아니냐’면서 소리를 지르고, 사건을 크게 만든 나를 탓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을 위한 일은 없었다. 다들 뜨거운 감자를 내 손에서 치워 책잡힐만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각자의 몫을 다했고, 그로써 학교와 직장이 지켜질 수 있었다. 우리의 철밥 그릇이 안전하게 지켜진 것이다.

 

교사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시스템 내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다른 의견을 내지 말아야 하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며, 주어진 일을 책잡히지 않게 해결해야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무소식’이여야만 좋아하는 학교에서, 교사는 무기력하게 길러지고 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

 

▲  아이들을 바라 보며, 진정한 교사의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 무아레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흙이 없어서인지 물이 쭉 빠져버린다. 이 콩나물들이 물을 먹기는 할까 의심이 갈 정도이다. 하지만 어느새 한 마디씩 자라있는 것이 콩나물이다. 교사의 일도 콩나물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잔소리를 해도 또 사고를 치는 것이 아이들이다. 3월 첫 날에 말을 안 듣던 친구는 지금까지 여전히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다.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서 매일 새로운 수업을 준비해도 교사별 평가의 결과가 처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아이들이 과연 내 말을 듣기는 하는지, 내가 아이들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지 의심이 가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내 사소한 행동을 따라 하고, 무심코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반의 학생들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고 있는 것이다.

 

‘책임’을 중시하는 학교 사회지만, 진정한 교사의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책임의 대상이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 책임은 꾸준히 물을 주며 아이들을 기르고, 기다려 주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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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9/17 [08:53]  최종편집: ⓒ www.ildaro.com
 
웃음 14/09/17 [13:13] 수정 삭제  
  또 한 학기의 시작이네요. 학생들에게 공정하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느껴져서 좋아요. 무기력 철밥그릇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그 아이들과 생기있게 지내려고 하는 교사들도 있죠. 학교가 부디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교사들의 발목은 잡지않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후후 14/09/17 [21:43] 수정 삭제  
  책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학교 사회, 초심 잃지 않으시길! 응원합니다
행복 14/09/18 [17:35] 수정 삭제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함께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참 따뜻하게 읽은 글이었어요.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초심 잃지 마시고 바른 선생님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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