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처럼 스쳐간 여자, 하인숙의 이야기

<모퉁이에서 책읽기> 김승옥 “무진기행”

안미선 | 기사입력 2014/09/29 [21:15]

풍경처럼 스쳐간 여자, 하인숙의 이야기

<모퉁이에서 책읽기> 김승옥 “무진기행”

안미선 | 입력 : 2014/09/29 [21:15]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나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좋아한다. 스무 살 무렵 읽은 <무진기행>은 지방의 소도시에서 보내던 내 입시생활의 갑갑함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에 대한 염오를 대신 토해내 주는 양 다가왔다. 지독한 회의와 쓸쓸함이 안개처럼 밴 그 문장의 매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삶의 쓸쓸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생경한 느낌의 세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구나, 하고 나는 홀렸다.

 

▲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

“언젠가 여름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부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청각의 이미지가 시각의 이미지로 바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의 감각 속에서 일어나곤 했었던 것이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반짝이는 별들이라고 느낀 나의 감각은 왜 그렇게 뒤죽박죽이었을까. 그렇지만 밤하늘에서 쏟아질 듯이 반짝이고 있는 별들을 보고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했었던 것은 아니다.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나와 어느 별과 그리고 그 별과 또 다른 별들 사이의 안타까운 거리가, 과학 책에서 배운 바로써가 아니라, 마치 나의 눈이 점점 정확해져 가고 있는 듯이, 나의 시력에 뚜렷하게 보여 오는 것이다.

 

나는 그 도달할 길 없는 거리를 보는 데 홀려서 멍하니 서 있다가 그 순간 속에서 그대로 가슴이 터져 버리는 것 같았었다. 왜 그렇게 못 견디어 했을까.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고 있던 옛날 나는 왜 그렇게 분해서 못 견디어 했을까.” -김승옥 <무진기행> 중에서

 

작가가 직접 각색한 <안개>(1967년, 김수용 감독)라는 영화도 보았다. 전라도 순천에서 자라난 작가 김승옥이 쓴 시나리오를 통해, 문장이 시각화된 영화를 통해 소설 속에서 다 알 수 없었던 1960년대의 세밀한 풍경을 보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그의 시나리오를 통해 다시 영화로 볼 수 있다는 건 즐겁고 귀한 경험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그 시대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묘사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중산층 남성의 독백으로 일관한 무진기행에는 여자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들은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지며 ‘과거의 자신’이거나 무진의 일부로써 여겨진다. 이것이 오십여 년 전의 작품이고, 그 시대에 여성들은 그러한 존재로 여겨지게 마련이었다고(사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감안한다 해도 이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예술 작품의 차별적인 의식은 특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무진기행은 새로운 작품이지만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새로운 점은 없으며 ‘1960년대에 형성된 근대적 주체는 어떤 것인지’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하더라도 그 ‘주체’는 남성의 이름으로 호명되며 여성은 풍경의 일부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때에도 현실 속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던 것이다. 언어로써 생각을 발표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그녀들의 삶이 안개 속 풍경의 일부로 그려지는 건 부당하다. 적어도 그녀들의 다음 세대인 나는 그런 정도의 불편함은 가지고 그녀들을, 나를 긍정해주고 싶다.

 

소설 속에서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지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 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 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라는 글이 있다. 영화에서 그 장면은 창호 너머로 동태를 살피며 엉덩이를 카메라 쪽으로 돌려 성행위를 기다리는 여자쯤으로 표현된다. 주인공 윤희중의 스쳐가는 상대역인 하인숙,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을지 한번 다시 쓰고 싶었다.

 

다음 글은 내가 다시 써본, 그녀의 이야기다.

 

어떤 갠 날, 하인숙의 무진기행

 

나는 방죽에 서 있었다. 어제 그는 이곳에서 나에게 키스했고 서울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늘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그의 후배인 박 선생에게서 전해 듣고 내가 소리 내어 웃어버린 것은. 그는 어떤 전갈도 내게 보내지 않고 허둥지둥 무진을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터덜거리며 꽁무니를 빼고 가는 버스를 떠올리고 다시 웃었다. 교실에서 노래 부르는 아이들은 어제와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소프라노로 부르는 노래를 아이들은 따라 불렀다. 내 입모양을 아주 열심히 지켜보며 그대로 따라 하려고 애쓰는 여자아이들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의 등을 나는 쓰다듬어주었다. 운동장 마당에 내리쬐는 햇볕이며 나무들은 그대로 있었다. 박 선생만 어쩐지 더 풀죽은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그가 떠날 줄 알고 있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그가 무진에 머무를 기간은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로 그는 어차피 이곳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가 말끝마다 애지중지하는 서울에 나를 데려가지 않을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였지만 나 또한 그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저녁에 다시 세무서장의 집에서 모인다는 말을 박 선생은 웅얼거리듯이 했다. 함께 가자는 것인지 가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박 선생의 얼굴에 반가움과 실망의 빛이 함께 떠올랐다. “하지만 심심하시다면….” 그는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나는 윤희중을 만났고 그가 떠남으로써 나는 적어도 심심하지 않게 되었으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심한 사람은 박 선생이었다. 그리고 세무서장 조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조차,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벌써 심심해지고 있을지 몰랐다. 그때는 나와 나눈 정사를, 알사탕을 입안에 굴리듯이 심심풀이로 핥을지 모른다. 나는 조금은 위악적인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키득대며 웃었다.

 

그는 이 방죽 위에서 나에게 키스했다. 그 혀의 감촉이 떠올랐다. 그는 나에 대해 다 안다는 듯이 굴었고 여자와의 관계는 이골이 났다는 양 서슴없이 내 몸을 헤집었다. 그는 평소에 조심성 있게 말하고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나의 팔을 잡아 끌거나 키스하거나 성교를 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해찰 부리듯 내 가슴을 탐하는 것을 내려다보고 나는 그가 이물스럽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근엄함, 초연함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어린애처럼 가슴을 물고 빨며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내려다보는 것을 의식하자 그는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보는 사람은 그여야 한다는 것을 눈앞에 있는 컴컴한 손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다 냄새를 맡으며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아쉽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건 거짓말이야, 하고 또다른 내가 대답했다. 사물들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잇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수확으로 거두어갔을까, 그는 도회지의 피로를 나에게 풀었고 결혼생활의 규칙을 나를 통해 어겼으며 고향에 온 회포를 나에게 부려놓았다. 그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골반 뼈가 욱신거렸다. 오랜만에 한 성교의 통증이 몸에 남아 있었다. 그가 사정을 한 다음에 옷을 입고 나서도 내 몸에서 그의 정액이 흘러내렸다. 내 가슴은 그가 탐한 탓에 따끔거리고 핏자국이 속옷에 배어 나왔다. 한마디로 그는 살뜰한 기회를 저버리지 않고 나의 몸을 속속들이 훑고 갔다.

 

나는 냉정하게 그와 나의 잇속을 계산한다. 나는 그의 몸이 낯설었고 그의 자신감이 생경했고 그의 웃음이 껍데기 같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 짧은 성교 후에 갑자기 일어난 생각이었다. 나는 그가 지금은 사라진 아버지처럼 나를 다룰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큰오빠처럼 나를 염려하리라고 예상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나는 그가 나를 서울로, 과거로 데려다 주리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는지 모른다. 떠날 수 없는 이곳에서 더욱더 떠날 수 없는 곳으로 그의 몸을 통해 거슬러 돌아가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외진 길에서 그의 팔을 잡는 것이 좋았고, 내 노란 파라솔을 그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았고, 밤 열두 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뒤척인다는 것을 힘없이 고백하는 것이 좋았다. 그는 나를 문득 안쓰럽게 쳐다보았고 잡은 손에 힘을 주었으며 ‘오빠’라고 부르겠다는 말에 끄덕였고 서울에 가고 싶다는 말에 한 번 더 끄덕였다.

 

내가 시치미를 뗄 수 있다면 어디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흙이 묻은 지저분한 파라솔 끝으로 땅을 쿡쿡 찌르며 생각했다. ‘내 경험으로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반드시 좋지도 않더군요. 책임, 책임뿐입니다.’ 하고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이곳에서도 책임뿐이죠. 당신처럼 저도 책임에서 달아나고 싶어요.’ 하고 나는 대답하고 싶었다. 그가 어깨의 짐을 홀가분하게 벗어놓고 물속을 유영하듯 고향을 둘러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런 시선과 씁쓸함과 미소는 바다에서, 땅에서 아득바득 살아가는 토박이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에 나는 무진에 심어진 한 그루의 고정된 나무 같을 거라는 생각에 난 전혀 다르게 대꾸했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요.” 나의 당돌한 대꾸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그와 대결하기로 했다. “하여튼 서울에 가고 싶어요.” 좀더 단호한 내 어조에 그의 눈빛은 감격한 것 같았다. “절 데려가 주시겠어요?” 그것은 나의 마지막 연기였다. 내가 그 말을 할 때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하얗게 뻗은 냇물은 소리를 내어 흘러갔으며 그의 숨소리는 더 거칠어져 있었다.

 

꾸민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말이건 행동에서건 정도에 넘치는 것들은 긴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긴장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심심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무진은 밤엔 정말 멋있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나의 연기에 그는 멋이 없는 고장에서 멋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금세 나의 무대에 들어섰다. 어떤 말이든 해도 되고, 어떤 빗나간 대화든 유쾌함을 자아내고, 어떤 행동이든 허용되는. 그러니까 그의 부재가 일으키는 쓸쓸함은 나 혼자 차지하고 있는 무대에서 어떤 것이든 잇달아 일으키지 않고는 심심해 미칠 것 같은 내 오래된 습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다시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바다로 뻗은 긴 방죽에 섰다. 무진에서 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 얼굴을 알게 된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그보다는 끝까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무진 사람들이었다. 그 또한 무진 사람이었다. 토박이에 둘러싸인 나는 그러나, 그들을 지켜보고 있지만 결국은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종종 깨닫게 되는 외지인이었다. 나에게는 안개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지, 가진 것이 없어 불행한 기억조차 오롯한 특권이 되는지 그들은 자주 낯설고 끈끈한 눈길을 보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공유하는 것이 없었다.

 

내가 무진에 취직되어 간다고 했을 때 큰오빠는 나에게 ‘객지에서 아무도 믿지 말아라.’ 하고 당부했다. 오빠가 염려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안다. 어저께만 해도 방죽의 경사 밑에 읍내 술집의 여자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오빠가 염려하는 것은 그녀의 처지가 나와 가깝다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방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빠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무진의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목포의 눈물을 소프라노로 노래할 줄 알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증이 있으며, 묻는 말에 또박또박 되받아 칠 줄 아는 나는 그 몇 가지 장벽을 제하면 ‘성기 하나를 밑천으로 하는 여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성기 없이 생각하는 존재인 양 초연히 굴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성기를 가지고 생각하는 여자인 것이다. 나는 방죽을 떠나고 싶었지만 어제도 오늘도 방죽 위를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무대에 서 있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어제보다는 흥을 잃고 서성이는 나는, 발밑에 죽은 여자의 시체를 상상하며 내려다보고 어제 방죽 위에서 다리를 벌려 누운 채 있었던 나를 그 위에 겹쳐보는 나는, 아무래도 조금은 우울한 것 같다. 결국 오빠가 아니었던 윤희중이 떠난 자리에, 그의 과거가 되었을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는 어제처럼 차려 입고 어제도 들었던 노란 파라솔을 접었다 편다.

 

노래를 불러준다고 하면 그들은 좋아했다. 그를 위해서 ‘어떤 갠 날’을 불러주겠다고 했을 때 그는 내 입을 막았다. 나는 적막이 싫다. 어떤 소리든 내고 싶다. 그러나 그가 없는 자리에서 입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노래는 잊고 있었던 노래였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 노래를 가르쳐준 이는 여자였다. 전쟁 때 우리 집 사랑방이 인민군 본부가 되고 마루에 많은 인민군이 와서 밥을 먹었을 때 나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파마를 하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처녀들은 머리를 땋고 시집간 새댁들은 비녀를 찌르는 게 당연한 시절이라 난 파마한 여자를 처음 보았다. 그 인민군 여자는 예쁘고 상냥했다. 같은 남자 인민군들도 그 여자 군인을 특별 대우하는 것 같았고 그녀는 밥을 먹을 때도 많이 먹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숟가락을 놓았다.

 

난 그녀를 구경하고 있는 동네 꼬마 중 하나였다. 나를 보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서 꼬마들을 한 곳에 모았다. 옆 병사의 담요 속에서 볶은 땅콩을 가져와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그녀가 노래를 불렀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 어린 자국.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더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세상에서 처음 본 노래하는 여자였다. 나는 뜻 모를 노래의 구절보다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에 더 끌렸다. 그녀는 과녁을 정확히 알고 있는 화살처럼 온몸을 팽팽히 하고 목청을 높여 그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날아가는 화살, 분명한 음색을 가진, 언제나 빛이 나는 사람.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동안, 그녀는 죽었을 것이다. 방죽 아래의 시체처럼 죽어 버려졌을지 모르고 아버지처럼 전쟁통에 행방불명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어디엔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어제 내가 윤희중에게 물었을 때 그는 나의 눈길을 피했다. 명랑한 목소리를 짐짓 꾸미며 내게 농담을 해댔다. 그때 나는 연극을 끝냈다. “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나 서울에 언제나 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그녀가 다시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를 줄 알았고, 자신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또렷하게 의식했던 그 여자. 그녀가 방죽 아래에서 기어 나와 바다로 스며들어갔다.

 

그토록 낯설고도 아름다웠던 무진의 안개.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나는 차창 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난 놀랐고 은근히 설레었다. 나는 혼자가 된 것이다. 이곳에는 오빠도, 아버지도, 전쟁의 기억도 없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울타리 없는 여자, 맘만 먹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다는 희롱이 난무했다.

 

그가 떠나기 전 말한 대로 “이젠 어딜 가도 대학 시절과는 다를 걸요. 인숙은 여자니까 아마 가정으로나 숨어 버리기 전에는 어느 곳에 가든지 미칠 것 같을 걸요.” 그럴지 몰랐다.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그렇지만 지금 같아선 가정을 갖는다고 해도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나는 내가 한 대답을 다시 되풀이해보았다.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그 대답은 내 귀에 낯설게 들렸다. 아무도 정말 미치지 않는 이곳에서, 미칠 것 같다는 말을 밀어로 속삭이는 이곳에서,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난무하는 이곳에서 나는 그 말을 좀더 숨겨주고 싶었다.

 

외롭다는 말은 다 다른 말이니까. 어떤 외로움은 다른 외로움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니까. 미쳐간다는 말 속에는 활시위 같은 팽팽함도 활기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나에게 ‘너는 나’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 아님도 알고 있다. 윤희중은 나를 결코 떠날 수 없다. 내가 자신이기 때문에, 옛날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윤희중을 떠날 수 있다. 그가 나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만이 그를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나를 만난 적도, 나와 헤어진 적도 없다. 그것이 그와 나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이다.

 

나는 방죽을 천천히 거닐어 바다로 갔다. 노란 파라솔을 펼쳤고 그리고 그것을 사라지는 바다와 피어 오르는 안개를 향해 던졌다. 나는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었고 허락되지 않았던 것을 요구했으며 여기까지 왔다. 폐허에서 이곳으로 왔다. 무진, 이곳은 나의 현재다. 과거 속에 있던 사람들은 늙거나 죽어가지만 안개 속에서 나는 뜨거운 체온을 가지고 살아 있다.

 

나는 눈을 뜨고, 안개가 나에게 몰려들고 나를 품고도 사라지게 할 수 없는 것에 환성을 질렀다. 이곳이 안개의 그지없는 눈앞이라면 나는 그에게 부르지 못한 <어떤 갠 날>을 기꺼이 안개의 품속에서 불러줄 수 있다.

 

안개는 몸이 잘게 잘게 부서져 내 호흡 속으로 들어오는 무수한 숨결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녹아내려 서늘하고 텁텁한 내음을 풍겼다. 안개 속에서 마침내 보이는 것은 색색의 세상이었다. 바다가 안개 속에 어떻게 묻혀버리고 그리고 어떻게 수묵화처럼 떠오르고 어떻게 짙푸른 빛깔을 이곳 저곳에 드러내며 완연한 제 빛으로 일렁이는지 지켜볼 수 있다.

 

떠나간 사람들의 자리를 지워주고 홀로 된 이들의 숨결을 또렷이 느끼게 해주는 안개, 죽은 사람을 되살려주고 잊힌 노래를 흥건하게 흥얼거리게 해주는 안개, 나의 종착지 무진이 아름답지 않다면 내가 가진 어떤 것도 아름답지 않다. 이 안개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나의 노래와 만난다. 어떤 갠 날. 그것은 안개 속에서만 부를 수 있는, 안개만이 쓰다듬어줄 수 있는 나의 몸, 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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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1/09/13 [16:13] 수정 | 삭제
  • 좋을 대로 하세요
  • jh 2014/09/30 [13:42] 수정 | 삭제
  • 저도 무지 좋아했었어요. 근데 김승옥이 절필하고 이후에 기독교인이 되어서 하느님 만난 거 간증하러 다니는 거 보고 실망했지요. 그러다가 몇 년 전에 김승옥이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언어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에 놀랐었어요. 언어로 감수성의 혁명을 가져온 사람이 언어를 쓸 수 없게 된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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