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커밍아웃하지 않는 일터, 괜찮은가

직장 내 성소수자 권리 찾기에 노동운동이 나서야 할 때

나랑 | 기사입력 2014/10/28 [18:27]

아무도 커밍아웃하지 않는 일터, 괜찮은가

직장 내 성소수자 권리 찾기에 노동운동이 나서야 할 때

나랑 | 입력 : 2014/10/28 [18:27]

만약 당신이 이성애자라면, 직장에서 성소수자 동료를 만난 적이 있는가? 아마 “없다”는 답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주변에 성소수자 동료가 없는 것일까?

 

“직장동료들이 여자 친구 있냐고 계속 물어봤어요. 여자 친구 있다고 거짓말했죠. 사진 보여 달라고 해서 페이스북에서 친한 여자 친구랑 찍은 사진 보여줬어요. 그때 마음이 안 좋았어요.” (남성동성애자, 29세)

 

“이미 채용이 다 확정이 된 상태에서 주민번호를 조회해보겠다고 그래서 주민번호 주니까… ‘주민번호를 조회해봤는데 문제가 있는 걸로 뜬다. 그래서 채용이 어렵겠다.’ 이런 식으로.” (트랜스젠더, 26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이달 발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에 실린 내용이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간성) 등 성소수자 4천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는 응답자 2천455명 중 57.7%가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직장동료가 아무도 없다고 했고, 23.4%가 ‘거의 모른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대부분인 81.1%가 직장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며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환경이 바로 ‘노동권 침해’

 

지난 10월 2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는 “노동 현장과 성소수자 차별- 평등한 일터를 위한 토론회”라는 제목으로, 성소수자의 노동권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주최하고,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관한 이 토론회에서 조혜인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는 “성소수자가 직장에서 차별 받는 사례가 없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차별 사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차별이 심각한지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2009년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가 함께한 <성소수자 노동권> 캠페인.

성소수자들은 정체성이 드러나면 아예 채용이 되지 않거나, 해고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편을 택한다는 것. 또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을 당해도, 이를 문제 제기했을 경우 뒤따를 불이익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수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곽이경 노동권팀장도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성소수자를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면서, “노동 현장의 차별이라고 하면 보통 임금차별 등을 얘기하지만 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곽 팀장은 성소수자들이 직장에서 듣는 이야기들을 차별 사례로 들었다.

 

“호모들은 다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해요” “회식 갔다 나오는데 남자 둘이 껴안고(…) 그걸 보고 직원들이 쟤네 호모인가 봐, 진짜 이상하다, 더럽다,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을 나한테 하는 것 같아서….”

 

같은 직장에 성소수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동료들이 성소수자를 농담거리로 만들거나 호모포비아 발언을 서슴없이 할 때, 성소수자들은 가슴을 졸이게 된다.

 

이처럼 성소수자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 사이에서 생기는 소외감과 불편함, 자신을 숨기기 위해 계속해야 하는 ‘거짓말’ 스트레스, 아웃팅(자신이 원치 않음에도 타인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채 스트레스를 견디며 일하고 있다.

 

‘기혼 직원’ 중심으로 돌아가는 직장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7.7%가 직장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조롱이나 차별, 폭력이 ‘종종’ 또는 ‘자주’ 발생한다고 답했다. 성소수자에게 직장은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특히 성별 변경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경우 주민등록번호의 성별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아서 ‘채용’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채용된다고 해도 여성 유니폼을 착용하도록 강요 받거나, 남녀화장실이나 탈의실, 휴게실 등이 구분되어 있는 작업 현장은 트랜스젠더에겐 고충일수밖에 없다. “출근하면 아예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다.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외모나 성격이 전통적인 여성상이나 남성상에 부합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경우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회사 내의 승진 체계나 복지에 있어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곽이경 노동팀장은 결혼을 안 하면 진급을 못 한다거나, 결혼한 직원에게만 집을 임차해주는 혜택 등은 혼인을 통한 ‘가족 구성’이 허용되지 않는 성소수자들에게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가족 수당이나 가족 간병, 경조사(배우자 장례 등)로 인한 유급 휴가를 받지 못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노사 단체협약에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 넣자!

 

이날 토론회에서는 직장 내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곽이경 팀장은 “주변에 노조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위기에 있을 때 노동조합이 지켜주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그 기대는 추상적인 수준”이라면서 “노동조합이 성소수자를 위한 구체적인 요구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 간의 단체협약에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넣는 방안도 이야기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그 영향으로 2013년에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서울시교육청과 맺은 단체협약에 ‘차별 금지’가 명시된 것은 좋은 예이다.

 

<교육청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되며,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조 2013년 단체협약 제 72조의 2항 차별행위 금지)

 

곽이경 팀장은 이와 더불어 혐오 표현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을 단체협약에 넣고, 성소수자 가족들도 간병 휴가나 가족돌봄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체협약에 명문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인식 개선이 없다면 성소수자들이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내 ‘성소수자 지지 그룹’ 필요해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상임활동가는 노동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연대해온 사례를 들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한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조합원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시민들에 의해 다섯 차례에 걸쳐 운행된 버스)에는 성소수자들도 함께했으며, 성소수자 합창단이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또, 해마다 열리는 성소수자들의 행진인 ‘퀴어퍼레이드’에는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참여해 응원하였다.

 

김혜진 활동가는 이제 “이런 연대의 차원을 넘어서서 ‘노동 현장에서 차별’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갖고 함께 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극복해나가는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 저항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지하철노조나 서울대병원 노조에서 비정규직을 지지하는 그룹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했듯이, 노동운동 내에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별도의 그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와 함께 뛰는 미국, 영국 노동운동 사례

 

해외에서는 노동조합이 성소수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앞장서 싸우거나, 노동운동 내에 성소수자 조직들이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영국은 국가 단위 노조인 TUC에서 성소수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직장에서 성소수자들이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1998년부터는 매년 ‘TUC LGBT 대회’를 개최하고 ‘LGBT 위원회’를 선출하고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직장 연금에서 동성커플에게도 혜택을 보장하고, 동성커플의 입양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용을 담은 캠페인과 법 제정 운동에 적극 동참해왔다.

 

TUC가 발간하는 노동조합 가이드북 <LGBT Equality at work>는 성소수자 관련한 올바른 용어 해설에서부터 관련 법규에 대한 설명, 성소수자들이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과 이 때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안내하는 책자이다.

 

 © 미국의 성소수자 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비영리기구 ‘일터의 자긍심’(Pride at Work)

 

한편, 미국의 성소수자 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비영리기구 ‘일터의 자긍심’(Pride at Work)은 미국 노총(AFL-CIO)의 공식 연맹기구로 인정받고, 미국 전역에 20개가 넘는 지부를 두고 활동 중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상처는 모두의 상처’라는 노동운동의 오랜 구호에 깃든 정신에 따라 활동합니다”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일터의 자긍심’은, 조직된 노동운동과 성소수자 커뮤니티 간의 상호 교류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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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4/10/30 [14:47] 수정 | 삭제
  • 노조가 캠페인을 하고 단협에 안건으로 넣으면 획기적일 것 같은데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 bean 2014/10/30 [12:57] 수정 | 삭제
  • 희망적인 내용이라 좋네요!
  • 겨자 2014/10/30 [09:29] 수정 | 삭제
  • 조계종과 성소수자...! >ㅁ< 싱기하네요! 다양한 접점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 토토 2014/10/29 [05:56] 수정 | 삭제
  • 제가 이상한 건지 모르지만,사람들은 왜 진심도 별로없으면서 남 헐뜯기를 위해이유를 그렇게나 찾아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입다물고있으면 안되는 걸까요? 인권이없는 건 남자들과 여자들의수다 취미때문이 많은 것같아요.뭐 하나 흠잡을 거 없나 그래서같이 흉보고 웃을려구 노리는사람들로 세상은 가득 찼어요.어떤 이유든 뭐 하나 흠이면다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