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을 잡기 위해 동네에 온 사람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72화

김담 | 기사입력 2014/11/20 [19:04]

범인을 잡기 위해 동네에 온 사람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72화

김담 | 입력 : 2014/11/20 [19:04]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이튿날 순경은 두 사람을 대동하고 마을에 왔다. 태섭은 마루에 좌정하고 태광이와 장서방은 여기저기 남정네들을 불러 모았다. 늙은이들은 빠지고 그래도 힘깨나 쓴다는 장정이나 중년까지만 모아도 제법 인원이 많이 불어서 마당 한가득 웅성거리며 모였다.

 

-태광아, 올 사람은 다 왔나? 그라몬… 순경 양반, 대질해보소!-

 

순경은 옆에 있는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루한 남자에게 둘러보라고 일렀다. 하지만 문둥이는 둘러보는지 마는지 쓰고 있는 모자 밑으로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는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로 순경에게 무어라 말한다. 그 옆에 검은 코트를 입은 노랑머리의 왕신부는 눈치껏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열심히 살핀다.

 

-신부님, 그런 사람이 보이질 않는답니더. 이 동네가 아인갑십니더. 동네남자들 다 모인 거 맞지예?-

순경은 좌중을 돌아보며 다시 묻지만 누구에게 특정지어 묻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태광이 들어선다.

-아, 남자가 길 가다가 그리 했다몬 길이야 이리저리 다 서로 통해 있는데. 우째 꼭 이 동네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소?-

순경을 보며 한마디 한다.

-그래도 이 사람이 봤답니더. 이 동네에서 나오는 걸-

순경은 옆에 서있는 문둥이를 고개로 가리키며 난감해 한다.

 

-아, 우리 동네 밑으로 오데 동네가 한두 갭니꺼? 저 밑에 상갈 하갈 그라고 또 신흥 신덕사람들도 빨리 가자고 신작로로 안 가고 우리 동네를 가로질러 가는 기 예산데-

모여 있는 남정네들 중 하나가 거들자 모두 웅성거리며 그렇다는 듯 귀찮다는 듯 추운 겨울날씨에 한기를 느끼는 것이 싫은 몇몇은 아예 대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한다.

 

-신부님, 가시지예. 없다는데 우짭니꺼?-

순경은 굳은 얼굴로 왕방울만한 눈을 끔뻑거리며 생각에 잠긴 왕신부를 재촉하자 입을 연다.

-틀림옵다고 했오요. 베도로가 그 사람을 요기서 보았다고 했오요. 그런데 지금 고사람 옵소요. 베드로가 나으면 꼭 찾을 곱니다-

비록 혀 꼬부라진 소리지만 무슨 말인지는 분명하게 내놓는 신부를 보고 태섭도 제법 조선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순경은 목 주위의 옷깃을 다시 세우고는 가자는 듯 신부를 재촉하고, 세 사람은 몸을 돌려 마을 사람들 보다 앞서서 대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태섭이 그들을 부른다.

 

-순경 양반, 잠깐 좀 들어오시오. 신부님하고-

문둥이를 어떻게 하나 하는 속마음에, 마루에서 일어서며 문둥이만 빼고 청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인데 기냥 가시면 우짜요? 올라오시구려-

 

손을 들어 시늉을 해대며 올라오라는 청을 들은 순경도 추운 한기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꺼릴 것 없이 왕신부를 보고 눈짓하며 돌계단을 오르고 몇 발작 따라 올라오던 왕신부는 걸음을 멈추고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는 문둥이를 돌아보고 난감해 한다. 그것을 눈치 챈 태섭이 장서방에게 이른다.

-장씨, 정기에 일러 저 사람도 자실 것 좀 내라고 하소. 자, 자, 이리 올라오시구려-

계단 중간쯤에 서있는 왕신부를 보고 태섭은 재촉하고 먼저 건넌방 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정기간에서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을 고개만 빼내어 구경하던 광수에미와 소향이 문둥이에게 먹을 것을 내라던 태섭의 말을 듣고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해 한다. 사람취급도 못 받는 문둥이에게 그저 식은 밥덩이나 떨구어줄지언정 막상 상을 차리고 자기 집 숟가락을 올려서 먹인다는 것은 여간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게 생겼다.

 

장서방이 정기로 들어서며 광수에미를 보고

-들었지요? 어떡합니까? 때는 아니지만… 추운데 밖에 있는 사람을 그냥 서있게 할 수는 없으니. 속이라도 풀게 국물이라도 뜨끈하게 내주지요- 하고는 바가지를 들고 물단지 속을 휘저어 물을 떠서 꿀꺽꿀꺽 마신다.

-죽을맹키로 맞았다고 하디만…. 내가 보이 멀쩡하구만-

광수에미가 별스럽지 않은 듯 말한다.

 

-작은아지매요, 우짭니꺼? 건넌방에는예?-

-아, 방에야. 때도 아인데… 니가 안방에 물어봐라. 내는 문디이 묵일 거나 채리꾸마-

장서방이 좀전에 들은 광수에미의 말에 덧붙인다.

-같이 온 저 사람은 맞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맞은 문둥이는 인사불성이 될 만큼 많이 맞은 모양입디다. 순경이 그러는데- 하고는 정기를 벗어나는데 순간 광수에미는 덜컥 마음 한구석에 돌 뭉치가 내려치는 듯 무겁다.

 

-작은 아지매예, 큰아지매가 그냥 차하고 과자하고 곶감이나 내면 된답니더-

소향의 전달에 주섬주섬 둘은 상을 보고 아침에 먹다 남은 북어국을 덥혀서 밥 한 그릇과 함께 소반에 올린 다음에 광수에미가 소향에게 이른다.

-니는 이거 건넌방에 들라라. 내는 문디이 주고 오꾸마-

 

늦은 아침 햇살이 내려쬐는 마당에 문둥이는 계단 끝에 앉아 있다가 광수에미가 소반을 들고 나오자 벌떡 일어서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자신들을 경계하는 사람들로부터 모질게 배운 습관적인 행동이다. 광수에미는 소반을 내려놓고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고는 나지막하게 문둥이에게 묻는다.

-그… 맞았다는 사람은 마이 맞았심니꺼? 누군데 그리- 하고는 말꼬리를 흘리고 만다.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만 괜스레 눈치가 보이고 안 묻자니 궁금하고 걱정이 돼서 한다고 하는 말이 그만 두서없이 나오고 만다.

 

문둥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광수에미가 가주기만 기다리고 있자 광수에미도 더 묻지 않고 정기로 몸을 돌리자 그제야 문둥이는 상 앞에 털썩 주저앉아 허겁지겁 김이 서리는 국물을 입에 퍼 넣는다.

태섭은 태섭대로 시끄러운 일을 사전에 예방이라도 할 심산으로 왕신부에게는 비록 모르는 문둥이지만 다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지전을 제법 전달했다.

문둥이 대장은 심각하게 다쳤지만 받아주는 의원이나 병원이 없어서 그저 성심원 내에서 의사가 준 약으로 치료만 하고 있다는 왕신부의 말도 들었다.

남들은 괴질만큼이나 피하는 문둥이 환자를 비록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렇게 돌보고 있지만 참으로 신성한 일은 틀림없다고 태섭은 생각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태섭과 태광은 태촌이를 전날 밤에 불렀었다. 항렬이 같은 그들은 다 태자 돌림이다. 다그치는 태섭의 말에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담배만 뻑뻑 피워대던 태촌이에게 오늘밤으로 마을을 한동안 떠나있으라고 이르고 태촌은 그들의 말대로 마누라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돈푼이나 벌면 봄 전에 오겠다고 하고 사라졌으니 얼굴을 대질하던 문둥이 눈에는 태촌이 뜨일 리가 없었던 것이다.

 

- 전보요! 계십니꺼?-

오후의 햇살도 희미하게 힘을 잃어갈 쯤 대문 밖에서 우체부가 부르고 있다. 여간해서 문간의 인기척에 먼저 응대하는 법이 없는 큰아지매가 안방 문을 열고 마루로 나서는 것으로 봐서 필경 전보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건넌방에 있던 태섭도 전보라는 말을 들었던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우체부는 인사와 함께 전보를 전해주고 큰아지매는 마루에 선 채로 전보를 보고는 여전히 문을 닫지 않은 채 궁금해 하는 태섭의 방으로 들어간다.

 

-서울에서 온 전보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안부도 물을 겸 해서 전보를 보냈더니 오라버니 대신에 조카가 전보를 보냈습니다-

 

마누라가 대승사에서 돌아온 뒤로 태섭은 행동반경이 사정없이 좁아진 듯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 오늘도 아침나절에 순경이 다녀간 뒤로 문을 닫은 채로 등짐만 지고 있던 참이다.

-그랬소? 다 잘 계시제?-

문득 무심했던 처갓집에 대한 미안함이 돋아난다.

 

-그러고 보이… 처남 행님도… 울매 안 가면 환갑이 되네. 조카가? 올해 맺이지?-

둘러대며 이리저리 사람을 입에 올리는 것으로 아직 마음에는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마누라에게 보여주는 태섭이다.

-그렇네요. 오라버니가 내후년이면 환갑이니. 조카도 장성했지요. 몇 년 전에 조카 혼사 때 가보고는 못 가봤으니-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태섭이 처는 위로 형제들이 다섯이나 있다. 그 중에서도 장자로 태어난 오라버니는 올해로 쉰여덟이라 태섭이 처와는 거의 이십년이나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말인데요. 겨울도 됐고 농한기니 제가 이참에 서울나들이를 한번 할까합니다-

 

구차하게 늘어놓을 변명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이다. 태섭으로서도 마누라가 안방에 들어앉아 있는데 소향을 방으로 불러들일 수도 없고 태섭이 처 역시 자기가 안방에 있는데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치마꼬리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가면 좀 오래 있으면서 동기간도 찾아보고 여기저기 머물다 올까 합니다. 비록 섣달이라 곧 명절도 다가오지만 동서도 있고 또 일하는 소향이도 있으니 이번에는 제가 없어도 제사니 시제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태섭의 처는 묻는 것이 아니라 알리고 있는 것이다.

 

태섭도 내심 반갑다. 집안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마누라의 무게가 당분간 사라진다고 하니 금방 마음속에 봄기운이라도 서리는 듯하다. 그러나 전혀 내색은 없이

-그래도 그리 오래 있으몬… 당신이 그래도 종분데-

당신의 지위는 종부이니라! 하는 것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니 어디에 얼마나 있든지 간에 걱정 없이 있다가 와도 당신의 종부 자리는 여기에 여전히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태섭의 말에는 대꾸 없이 큰아지매는 그저 자기 할 말만 계속한다.

-영감이 다 알아서 하시겠지만… 종가에서 하는 일에는 모든 것에 명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저 그것만 염두에 두시고 집안을 챙기시도록 하세요. 내일 점촌에서 버스를 태워주시면 서울에는 조카가 마중을 나온다고 합니다-

내심 서로의 의중을 알고 있는 둘은 자연스레 서로의 입장을 정리했고 태섭이 처는 오랜만에 서울나들이에 바쁜 오후를 보낸다.

 

그날밤 광수에미는 궁금증을 태광이에게 묻고있다.

-아침에 왔던 그 문디이는 멀쩡합디다. 쿤데… 와 그리 야단입니꺼?-

-그 문디이가 아이고 맞은 놈은 문디이 대장이라 카더라. 빙신 같은 놈이제. 아, 주제를 알고 대들던가. 태촌이 행님이 오기를 가지고 뚜디리 패는데 도망을 갈 일이제. 와 대들긴 대들어? 그 카이 죽도록 맞제. 까짓 문디이 하나 죽는다꼬 무신 큰일이 날 거도 아인데. 지가 대드는 통에 일어났으이 맞아도 싸제. 내 같으몬. 직있을 끼다. 그놈이 우리 식구한테 그 짓을 했다몬!-

 

역시 짐작하고 걱정했던 대로 대장이었구나! 광수에미는 혼란스럽다. 오라버니가 을순이를? 그런 오라버니를 창호아바이가 두드려 팼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소문뿐이지 않는가?

 

-그 문디이 대장이라 카는 사람은 울매나 맞았는데 그 야단입니꺼?-

-아, 문디이 하나야 별 거 아니지만 그 신부라는 사람이 지서에 고발을 하고 난리를 쳐서 안 글라? 서양사람이 들고 나서니 지서장도 우짤 도리도 없제. 하다못해 수사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제 별수 있나? 케서 태촌이 행님을 어젯밤에 피하라꼬 안했나? 한두 달 있다 오민 다 잠잠할 끼다. 쿤데? 니는 그기 와 그리 궁금나?-

 

속이 뜨끔한 광수에미는 돌아누우며

-아, 집에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시끄럽게 하고 하다못해 문디이한테 상도 내주라고 하이 안 캅니꺼?-

둘러대지만 속은 오라버니의 상태로 걱정이 가득하다.

-참! 니는 그 문디이가 묵은 상은 우쨌노? 숟가락, 젓가락하며 사발하고 대접은?-

 

병이 하늘에서 오는지 땅에서 솟구치는지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그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성심원 근처의 사람들은 논이나 냇가에서 물리는 거머리도 문둥이를 물었을 수 있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그 소반에 있던 것들은 다 가마솥에 넣고 삶았심더. 삶고 난 후에도 양잿물로 닦았고. 그케도 마음이 안 놓이서… 따로 허드레로 쓰라꼬 내놨심더-

 

창호어마이는 서방이 갑자기 집을 비우고 나자 생계가 막연해졌다. 일철에는 품 팔아서라도 목에 붙은 거미줄을 걷어내며 살았지만 농토라곤 없는 살림에 농한기는 봄철의 보릿고개만큼이나 혹독할 수밖에 없다. 돈벌러 간다고는 했지만 그저 몸 성히 와주기만 해도 다행일 성싶은, 벌이라고 해봐야 뻔하게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연스레 시작한 것이 안방을 내주는 일이이다. 안방을 내주어 마땅히 갈 곳 없는 남정네들이 모여서 골패라도 돌리고 또 필요하면 한밤중에 묵도 쳐주고 막걸리도 퍼주고 하니 당장 먹고 살만큼의 푼돈이 생기는 것이다.

 

한 가지 어려운 것이 있다면 창호와 지신이 을순이 방에 같이 머물러야 된다는 것이지만 지금 같은 혹한 겨울에 그날그날 지전이라도 만지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그깟 냄새나는 을순이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실 동네에서는 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노름이 행해지면서 큰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고 큰소리가 싸움이 되고 싸움은 담을 넘어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기 일쑤이다. 하지만 창호네 집안사정을 아는 동네사람들이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 노름판에 노삥 꾸루와이가 빠질 리가 없다. 수중에 든 돈은 없으니 그저 뒷전에서 바람잡이 노릇이나 하고 때로는 여기저기 돈푼이나 있고 시간 있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들을 불러들이는 것만으로도 술이며 안주며 매일 퍼마실 수 있으니 꾸루와이에게는 일상이 곧 그 짓이다.

 

그동안 매해 겨울마다 노름꾼들이 진을 치고 밤낮 골패를 돌리던 곳은 태봉에서 한 십오 리 떨어져있는 낙동강 포구의 계집막이었다. 바로 태섭의 배다른 형제 태우가 태어난 그 계집막이다. 그곳이야 원래부터 사공들에게 술 팔고 계집 파는 마을로 형성된 탓이라 노름으로 싸움이 나든 계집 간의 머리채 싸움이 나든 누구 하나 원성을 높이는 곳은 아니지만 마을 한가운데서 그것도 양반 가문을 높게 내다 걸은 종갓집 옆에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된 이유는 계집막이 너무 멀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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