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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는 어디에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마을공부방 교사로 2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달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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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방년 스물여덟 살. 젊긴 젊은데, 어리다고 하기엔 민망하고, 그렇다고 성숙하다고 하기엔 하는 짓마다 뭔가 어설픈. 그런 애매하고 모순된 시간을 지나고 있다. (아니,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25살부터 본격적인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알바를 제외하고는 일반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고, 지금까지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 공공 영역의 프로젝트로 일하며 살아왔다. 현재 지역운동단체 내 마을공부방에서 ‘교사’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고, 2년차이다.

 

내가 선택한 노동이 나를 좀먹을 때

 

토익, 토플, 각종 공모전과 자격증 시험은커녕, 학점 관리도 터부시했던 게 나의 대학생활이었다. 나를 소진시키며 일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고, 워낙 대안적인 운동이나 활동을 좋아했던 터라 학내에서 그런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걸 좋아했다.

 

마침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의 채용 공고를 보고 ‘이거다! 이거라면 즐겁게 돈 벌며 살 수 있을 거 같아!’ 라고 막연히 느끼며 주저 없이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당시에 뭘 몰랐던 나는 백만 원 정도 주는 월급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 출근 날, 총 여섯 명 정도의 신입 활동가들과 첫인사를 했다. 첫 출근 후 3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그 중 세 명이 재빠르게 퇴사했다. 각자의 퇴사 이유가 있었지만, ‘솔까말’ 야근이 잦은 분위기와 낮은 급여 때문에 결정적으로 퇴사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반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일찍이 퇴사를 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부서에서 일했지만, 이 작은 조직에서 야근하는 동료, 선배들을 무시하고 혼자 퇴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내게 아무도 야근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일찍 퇴근할 땐 마음이 불편하고 눈치가 보였다. 이것이 불만의 시작이었다.

 

대안적인 활동을 기획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문화 행사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주말이 부담스럽기 시작했고, 조금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일과 삶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조직과 나를 일치시키는 ‘열정노동자’로 살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쉽게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조직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스스로도 즐겁지 못한 못난이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그곳에서 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알바 따로, 활동 따로

 

첫 직장이었던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그만두고 1년간 인권 단체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알바나 공공 프로젝트로 돈을 벌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권 활동)을 위해서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1년이었지만, 1년이 끝날 즈음 상태가 몹시 안 좋아져있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못나져 있었다.

 

돈 되는 알바 따로, 돈 안 되는 활동 따로의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아 과부하를 일으켰다. 삶의 균형은 쉽게 무너졌다. 안정적이지 않은 생활이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꾸준히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어학 성적은 형편이 없었고, 이렇다 할 스펙을 쌓지 못한 1년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니 자괴감이 찾아왔다.

 

그때 우연히 어느 지역운동단체 내에 있는 초등학생 방과후 공부방 교사 자리를 제안 받았다. 지금까지 내겐 ‘교육’이나 ‘돌봄’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기에, 처음엔 거절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연결 지점을 찾자면 내 관심사(문화예술교육과 지역운동)와 관련된 일이기도 했고, 생각해보면 적당한 일자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성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나를 소진시키지 않아도 되는, 나의 불안을 잠시나마 잠식시켜줄 그런 일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거창한 대의는 아니지만 나의 일상을 조금 바꾸고 싶다는 것. 그게 또 다른 시작이었다.

 

전쟁 같은 1년을 보내고…

 

지역단체 내 마을공부방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 달꿈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초등학생 3학년~6학년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 오는 방과후 공부방이다. 이름이 공부방이기는 하지만, 학교 공부는 별로 중심에 두지 않는다. 아이들의 쉼터이자 ‘놀이’를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배움터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무료로 운영된다.

 

이 공부방은 지역운동단체 안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옛날에 야학을 하시던 분들이 만들었다는 점 때문에 묘하게 시민단체의 성격이 짙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부방의 유일한 상근자인 교사는 아이들을 만나서 교육하고 돌봄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마을활동가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또한 단체를 운영하듯이 후원 회원들을 관리하고, 공부방 운영과 재정에 관여한다. 때로는 지원사업에 발 빠르게 움직여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마을의 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연대해야 한다.

 

나는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로 중학생들과 미디어 교육을 해봤던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직장이었던 사회적 기업에서도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들과 만나 문화예술교육을 잠깐 진행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내심 내가 경험했던 청소년들보다는 다루기 쉬울 거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현장에서 단번에 깨졌다.

 

단적인 예로, 어린이들에게 어떤 공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말을 해야 했고, 훨씬 손이 많이 갔다. 그러니 교육에도 훨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초등학생 저학년인 3학년에서부터 고학년 6학년까지 섞여 있는 것이 이 공부방의 특성이었기에, 나이 대마다 아이들의 욕구는 다양했고,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에 맞춰 하나의 수업을 기획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본의 아니게 나는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3년 이상 관계를 맺었던 교사가 교체된 자리에 들어가야 했다. 덩달아 아이들이 사용했던 공간도 축소되기로 결정 난 시점이었다.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바뀐 상황에 적응하는데 오래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이들은 여러모로 박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불만은 나에게 표출되었다. 특히 예전 선생님과 사이가 좋았던 고학년 여자아이들은 유독 새로운 교사인 나에게 텃세를 부렸다. 그 텃세를 요령껏 잘 받아내기에 나는 너무 서툰 선생님이었다.

 

내게는 조언을 해주거나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일터에 없었다. 그로 인해 아이들과 서로 적응하는데 전쟁 같은 1년을 보내야 했다. 정말로 전쟁 같은 1년이었다. 아이들과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싸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인과 주변의 활동가들에게 연락을 해서 쉴 틈 없이 자문을 얻었다. 교육과 관련된 책을 열심히 읽기도 하고, 좋은 강의는 저녁에 시간을 내서라도 들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혼자 끙끙 앓아가며 정리하고 대책을 세웠다.

 

1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아이들과 평온한 하루를 보낼 때면 내게도 참 많은 요령과 관계 맺기 기술이 생겼구나 싶다. 그렇게, 때론 단순하지만 아주 복잡하기도 한 어린이들의 세계를 읽게 되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하루가 무척 궁금해지고 더 알고 싶어졌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공부방은 교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해오던 대안적인 관계를 아이들과 맺고 나의 대안을 실천할 수 있는 장소로서, 내가 일하는 공부방은 여지가 정말 많다. 내가 하고 싶은 문화예술교육, 인권교육, 민주주의, 여성주의와 관련된 수업 등을 기획하고, 아이들과 나누고, 또 때론 실패한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평등한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하는 일중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공부방은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면서 양면적이게도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듯한, 어떤 체계도 없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으로서, 한 조직을 운영하면서, 한 조직을 통해 노동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면서 생기는 모든 불만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다. 모든 결핍에 대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고 해결해가는 것.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적응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공부방의 일상. 이 노동을 2년째 하고 있는걸 보면, 분명 내가 얻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 달꿈

 

‘언제까지 이렇게?’ 나는 여전히 묻는다

 

요즘 공적 영역에서 ‘마을’이라는 키워드와 ‘청년활동가’라는 키워드가 유행인가 보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서울시의 정책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보니 20대이면서 마을 활동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어쩌다 ‘핫한’ 키워드의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가끔 그 담론이 어색하다.

 

대체적으로 일반 직장에서 소진했던 많은 청년들이 제 3섹터의 일자리를 선택하고 나서, ‘돈은 얼마 벌지 못하지만 행복하다’는 류의 자기 고백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불안정한 삶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 일자리를 말한다.

 

솔직히 나는 지금은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난다면, 나이가 더 든다면 그땐 ‘이런 영역에서만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내가 지금 이렇게 인정도 받지 못하는 활동이 아니라, 다른 스펙을 향해 노력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끊임없는 ‘열정노동’과 책임을 요구하고, 홀로 성장하고 홀로 고군분투하여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이곳 역시 정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직도 백만 원 남짓의 활동비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곳이 정말 대안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언제까지 이 노동을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사회적 노동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활동비로 먹고 살지만, 나는 여전히 묻는다.

 

공부방에서 교사를 한지 2년차이지만, 지금도 나는 진로가 분명하지 않다. 이따금씩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 중에 누가 이번에 시험에 합격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부럽고 배가 아프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시험을 준비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평생 직장도 없고, 나이는 들어가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분명한 신념도 없는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다.

 

이젠 지겨울 정도로 자주 쓰이는 키워드 ‘불안’, 근데 얘는 나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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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1/24 [10:18]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라미 14/11/24 [12:10] 수정 삭제  
  공부방 아이들과 알콩달콩하는 모습이 그려지네요. 그 시간들이 쌓여서 아깝지 않길 바래봅니다.
an 14/11/25 [18:42] 수정 삭제  
  누군가 끌어주고 방법을 알려주고 도움 줄 사람이 없다는 건 참 막막한 일일 것 같아요. 여지가 많다는 것과 혼자 해야한다는 것 사이 장단점을 생각해보게 되네요.
14/11/25 [21:53] 수정 삭제  
  열정노동. 마을노동. 청년들이 성장할 수 있는 노동. 참 힘겨운 현실이네요.
송이송 14/12/02 [14:57] 수정 삭제  
  맞아요, '불안' 이 키워드....저도 20대라는 내 나이랑 결부되서 넘 진부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안 쓰려고 해도.....나랑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키워드더라고요. 마지막 문단은 저의 최근과 거의 흡사하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끔씩 올라오는 공무원 준비 유혹의 압박...ㅋ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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