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선돌의 고장, 브르타뉴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49) 거석문화유적을 찾아서

정인진 | 기사입력 2015/01/27 [11:55]

고인돌과 선돌의 고장, 브르타뉴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49) 거석문화유적을 찾아서

정인진 | 입력 : 2015/01/27 [11:55]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유명한 곳들을 다니고 특징적인 것들을 탐색해보면서, 한참을 달려왔다. 누군가 내게 “그렇게 둘러보니, 브르타뉴에서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꺄르낙(Carnac)의 선돌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  까르낙 ‘메넥’(Menec) 구역의 선돌. 4월 선돌 주변에는 노란 아종(Ajonc)이라는 꽃이 한창이다.   ©정인진

 

내게 꺄르낙의 선돌들은 인간이 만든 문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들 중에 단연 최고였다. 선돌들 앞에서 ‘숭엄미란 이런 걸 말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이 줄지어 서있는 수천의 선돌들이 자아내는 경건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잠시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더욱이 선사 시대 인류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능력이 수천 년 동안 그리 크게 발전하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신비에 싸인 선사 시대 선돌들

 

브르타뉴는 프랑스에서 선사 시대에 세워진 고인돌과 선돌이 많기로 유명하다. 옛날 프랑스 유학을 할 당시에도 고인돌을 보러 브르타뉴에 꼭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귀국했다. 그러고도 10년이 지났다.

 

사실, 귀국한 뒤엔 브르타뉴의 거석을 보러 갈 기회가 있을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인생이 그렇다는 걸,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터라, ‘내 인생에서 브르타뉴의 고인돌과 선돌을 볼 기회는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브르타뉴를 여행할 행운을 갖게 되면서, 지나쳤다고 생각한 그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 나는 만사 제치고 거석이 존재한다는 곳들은 빼놓지 않고 가보려고 애썼다.

 

브르타뉴의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선사 시대의 고인돌과 선돌을 보기 위해 버스나 기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서도 수 킬로미터는 예사로 걸었다. 숲을 지나고 풀숲을 헤치며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 봐도 끝이 없을 정도로 브르타뉴에는 선사 시대의 거석문화유적들이 많아,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려운 곳도 많아서 실제로 직접 살펴본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  프랑스 최고 문화상품으로 알려진 만화 <아스테릭스>의 오벨릭스 캐릭터가 바로 선돌 석공이다. © 정인진

 

브르타뉴의 고인돌들은 무덤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선돌은 어떤 목적으로 세웠는지 풀지 못한 채 신비에 싸여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인 ‘오벨릭스’는 바로 브르타뉴에서 이 선돌을 만드는 일을 하는 인물이다. 그가 항상 등에 지고 다니는 바위덩어리가 선돌이다.

 

브르타뉴에서도 특히 발달한 모르비앙(Morbihan) 지역의 거석 문화는 지금부터 6천년 전, 이베리아 반도(현재 스페인 지역)로부터 바다를 건너와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추정된다. 이들은 현재 브르타뉴인들보다 훨씬 앞서서 이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꺄르낙에 줄지어 선, 수천 개 거석이 이루는 장관

 

모르비앙 지역 중에서도 꺄르낙(Carnac)이라는 도시에는 수천 개의 거대한 선돌이 줄을 지어 있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다. 4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3천개가 넘는 거석들이 늘어서 있다. 그 규모가 40헥타르(ha)가 넘는다고 하니, 놀랄 만 한다. 그러니 꺄르낙의 선돌을 보러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꺄르낙에 가기 위해서는 오래(Auray)라는 곳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나는 오래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 일찍 꺄르낙을 향해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래에서 3일이나 머물렀던 건 순전히 꺄르낙의 선사 시대 유적을 보기 위함이었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케르마리오’(Kermario) 구역의 줄지어 서있는 선돌들! 꺄르낙의 세 구역 중 ‘케르마리오’ 구역의 거석들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고 한다.   © 정인진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꺄르낙의 줄지어서 있는 선돌들은 장관 그 자체였다. 왜, 무엇을 위해 거대한 돌을 이렇게 줄을 세워 놓았는지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라고 한다. 꺄르낙의 선돌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석 유적지라고 추측한다. 꺄르낙의 거석은 크게 메넥(Menec), 케르마리오(Kermario), 케를르스칸(Kerlescan) 세 구역에 걸쳐 존재한다.

 

이 세 지역은 서로 이웃해 있어서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줄지어서 있는 거석들 곁을 걸으면서 직접 찬찬히 살펴볼 수도 있고, 다리가 불편하거나 몸이 약한 사람은 코끼리 열차를 타고 구경할 수도 있다. 코끼리 열차는 거석들 곁을 천천히 지나가기 때문에 구경하기에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이들 중 ‘메넥’ 구역의 거석들이 크기도 크고 질서 정연하게 잘 서있다. ‘메넥’에는 100m넓이에 열한 줄로 1천99개의 거석들이 펼쳐져 있다. 그 길이가 1천165m에 달한다. ‘메넥’의 거석들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4m가 넘는다고 한다.

 

가운데 위치한 ‘케르마리오’ 구역의 거석들 역시 100m 넓이에 1천200m에 달하는 길이로 1천29개의 거석이 열 줄로 세워져 있다. ‘케르마리오’ 구역의 줄지은 거석들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 구역의 동쪽 끝에는 6m가 넘는 거대한 규모의 거석이 외따로 있기도 했다.

 

마지막 그룹 ‘케를르스칸’ 구역은 규모는 가장 작지만, 세 유적지 중에서 보존이 제일 잘 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은 555개의 거석이 열세 줄로 세워져 있다. 또 서쪽 가장 끝에는 ‘마니오의 사각형’(le Quadrilatere du Manio)이라고 불리는 39개의 돌이 사각형으로 세워져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거석 무리도 존재한다.

 

▲  까르낙 ‘메넥’(Menec) 구역, 한 귀퉁이에 있는 고인돌.   © 정인진

 

한편, 줄지어 서있는 세 구역 외에 까르낙 근처에는 고인돌과 거석 무리들이 곳곳에 있다. 나는 까르낙의 세 구역의 거석들을 모두 걸어서 보았다. 그리고 ‘라 트리니떼 쉬르 메르’(La Trinite sur Mer)라는 도시까지 걸어오면서 또 몇 개의 고인돌을 더 보았다. 이 지역에 펼쳐져 있는 고인돌과 선돌을 걸어서 보기에는 역부족이다.

 

건축재로 파괴된 선돌, 1887년 보호법령 마련돼

 

꺄르낙의 거석들을 보면서, 어떻게 수천 개에 달하는 선돌이 긴 세월 동안 보존이 잘 되어 지금까지 건재할까? 하고 놀랐더랬다. 그러나 알고 보니, 거석 유적들이 긴 역사를 지나오면서 잘 보존된 것은 아니었다. 선돌은 지금 존재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 큰 규모로 존재했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나마 겨우 훼손을 피한 운 좋은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꺄르낙의 선돌을 포함해, 모르비앙 지역의 많은 거석은 19세기까지 국가적인 토목 공사에서 건축 자재로 조직적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집이나 등대, 도로 운하, 철도 등의 다양한 건설용 자재로 선돌들이 제공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벨-일’(Belle-ile)의 등대는 꺄르낙의 거석을 조각 내서 만든 것이고, 이곳의 목초지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들도 선돌을 파괴했다. 지금도 꺄르낙의 선돌에는 돌을 깎아내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연장 자국들이 남아있다.

 

선사 시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과학 분야의 학문이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선돌을 건설 자재로 썼다. 모르비앙의 ‘꺄르낙’과 ‘에르드반’(Erdeven)을 비롯한 다른 여러 곳의 화강암 선돌들은 다양한 건설을 목적으로 파괴되고, 옮겨지고, 재사용되었다.

 

▲  꺄르낙 근처 ‘라 트리니떼 쉬르 메르’(La Trinite sur Mer)에 있는 한 고인돌.   © 정인진

 

이들 거석 유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브르타뉴의 거석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760년에 출판된 제임스 멕퍼슨(James Macpherson)의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영웅에 관한 시들은 신비스러운 문명과 안개 속에 봉인된 고대 거석 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1804년 ‘켈트 아카데미’(l’Academie Celtique)가 세워지면서 브르타뉴의 거석문화는 새롭게 조명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2년 파리와 깽뻬르(Quimper) 간의 철도 건설에 에르드반, 꺄르낙, 록마리아께(Locmariquer), 플루아르넬(Plouharnel)의 선돌들이 동원되었다. 20년 후, 1882년 ‘플루아르넬’의 수도사인 ‘펠릭스 갤라르’(Felix Gaillard)에 의해 이 사실을 폭로하는 책이 출판되면서, 거석문화재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노력이 모여, 1887년 3월에는 거석문화유적의 보호와 관련된 법령이 마련된다.

 

현재, 꺄르낙의 선돌 유적지는 국가 차원에서 문화재로 분류되어 잘 보호되고 있다. 또 ‘꺄르낙 박물관’(museedecarnac.com)에서는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이드를 동반한 유적지 탐방과 산책, 선사 시대의 기술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물론, 특별한 아뜰리에가 있다. 또 ‘박물과의 밤’이나 ‘문화재의 날’, ‘음악축제’ 같은 큰 행사를 열어 시민들이 선사 시대 유적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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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nha 2015/02/01 [11:46] 수정 | 삭제
  • 정보 고맙습니다. 기회 닿는대로 함 가보고 싶네요. 그런데 전세계에서 고인돌이 제일 많은 지역이 한반도라는 사실 ... 브르타뉴 지역과 비교해 봐도 좋을 텐데.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로 강화도를 둘러볼 수 있는데, 새마을운동 벌이던 어느 시절엔 바닷가 고인돌 죄다 뽑아 부셔서 개척지에 길바닥 까는 돌로 재활용했답니다.
  • berry 2015/01/27 [13:24] 수정 | 삭제
  • 오벨릭스 캐릭터를 떠올리니 선사시대 유적이 친근하게 다가오네요. 베일에 쌓인 세월이 묻어 있는 돌들 사이로 여행 잘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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