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에서 편지가 오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4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2/16 [11:26]

삼천포에서 편지가 오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4화

김담 | 입력 : 2015/02/16 [11:26]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해거름 세밑에 일하는 동네아낙들도 하나둘씩 눈치껏 먹을 것을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 우체부가 누런 가죽가방을 어께에 메고 대문을 들어서며 큰소리로 묻는다.

-종가에 김소향이라고 있습니꺼? 내가 이집 이름은 다 아는데…. 첨 듣는 이름이라서- 하며 눈앞에 편지를 들고 훑어본다.

-삼천포에서 왔는데-

-아! 그거 이집 사람이 맞습니다. 이리 주이소-

마당에 깔렸던 멍석을 말던 장서방이 우체부의 군소리를 듣고 소향의 편지를 받으려고 허리를 편다.

 

정기에서 서성대던 소향이 삼천포라는 소리에 귀가 쫑긋해진다. 후다닥 정기를 나가려던 참에 정기문턱에 뒷발이 걸려서 윗몸이 모래주머니같이 퍽하고 곤두박질친다.

우체부로부터 편지를 건네받던 장서방이 그 모습을 보고 웃음기 띤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와 아직 일어나지도 못한 소향을 내려다보고

-괜찮나? 자, 니 편지구나-

소향이 그냥 상체만 일으켜 땅바닥에 앉은 채로 편지를 받아드는데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 장서방은 내려다보며 별로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냥 돌아서서 말다가 만 멍석을 말아서 헛간 처마 밑으로 가져가는데 뒤에 들리는 소향의 발자국 소리,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미소를 짓는다.

 

방으로 들어선 소향은 편지를 들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 또 돌려보기를 여러 번 한다. 주소와 이름이 누가 쓴 것인지 모르지만 연필글씨가 오는 동안 많이 흐려졌다. 조심스레 편지 위를 찢어서 입구를 벌려 속을 들여다본다. 속에는 종이 하나가 접혀 있다. 입으로 후하고 불어 입구를 벌리고 편지를 꺼내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펼쳐본다. 빨간줄이 쳐진 편지지에 반쯤 채워진 글이 삐뚤삐뚤하다. 어느 곳은 연필이 연하게 쓰였고 어느 곳은 진하게 쓰였다. 소향은 자신이 글 연습을 할 때 연필에 침을 묻혀본 경험이 있어 그것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소향아 보거래이.

 추분데 잘 있나. 여는 다 잘 있으이 것정 마라라.>

 

소향이 읽기 시작하자마자 눈물부터 쏟아낸다. 편지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누가 썼는지 이렇게 삼천포 냄새가 나는 편지를 받으니 그저 한없이 반갑다. 종락이가 이제 겨우 일 학년을 다니고 있으니 글을 쓸 정도는 아닐 테고 그럼 누군가 장터에 있는 아이들을 구슬려 썼을 것이다.

 

<향숙이도 종락이도 숙향이도 노마도 어무이도 다 잘 있다. 아지매도 잘 있다.>

 

소향은 그 이름 이름 하나씩 읽어가면서 한동안 입으로 불러보지 못한 미안함과 그리움에 목이 멘다. 사는 게 무엇인지 자기 살보다 더 아까운 피붙이들인데 그렇게 불러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하고 산단 말인가? 서러움이 몰려오지만 소매로 콧물을 훔쳐대며 다음 줄을 읽어낸다.

 

<설이 나몬 보살님이 니기 갔다 온다 쿠더라.

 돈 꼬주지 말거래이. 징역 살다 나왔다 쿠더라.

 봄에는 아무케도 내하고 아지매하고 한빈 갈꺼다.

 우짜든지 몸 성하고 잘 있거라.

 카고 아저씨한테도 고맙다고 전하거래이.>

 

눈물이 어른거려서 삐뚤거리는 글이 더 삐뚤거리지만 삼천포에서 자신에게 소식이 왔다는 것이 그저 신기한 소향이다. 한 번 더 콧물눈물을 소매로 닦아낸 후 편지를 곱게 접어서 봉투에 넣고는 바느질 상자 속 실타래 밑에 넣었다. 

-소향아! 오데 있노?-

작은아지매의 큰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이 일을 늘어놓은 채 방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향은 얼른 방문을 열어젖히고 대답을 하며 나선다.

그믐밤에 소향은 몇 번이나 편지를 꺼내 호롱불 밑에서 울면서 읽었는지 모른다.

 

*   *   *

 

설이다. 아침부터 종가는 분주하다. 음식을 장서방의 지게 위에 올려 사당으로 옮겨 제단을 차린다. 광수에미는 팔을 걷어붙이고 정기로 광으로 정신이 없고 소향도 광수에미가 시키는 대로 분주히 움직인다.

 

남자들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갓을 쓰고 사당에 모여 태광이 제단을 마련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제주는 태섭이지만 태섭은 옆에 광수와 제수를 나란히 세운 채 비켜서 있다. 종손들은 제법 그 인원이 많아 다 마루로 올라설 수가 없어서 마당에 큰 멍석을 깔아 그 위에 열을 대충 맞춰서 서있다. 추위가 정월추위다. 다들 오들오들 떨며 빨리 정초 제사가 끝나기만 기다린다.

 

그때 태우가 헛기침을 해대며 사당 문을 들어선다.

-길이 멀다보이 지가 늦었심더-

두루마기 앞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혀 종친들에게 인사를 하지만 사람들이 마루 위에 서서 마당에 있는 태우를 보는 태섭과 태광의 눈치부터 먼저 살피느라 태우에게 인사 받는 것도 그냥 지나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우는 마루 밑에서 신을 벗고 덥석 마루 위로 올라서서 태섭이 서있는 옆으로 가 재수와 광수 바로 옆에 선다. 자신도 비록 서자지만 이집의 손이라는 것이다. 태광은 눈을 치켜뜨고 태우를 노려보다가 한마디 한다.

-니는 저 뒤에 서거라-

맨 앞줄에 태섭이 형제와 그리고 재수 광수가 서있는 바로 뒷줄에 서라는 말이다. 한 마디로 너는 앞줄에 있을 놈이 아니라는 말이다. 태우가 고개를 바짝 들고 태광을 보며 당당한 표정으로 말한다.

-와요? 내도 이집 자슥인줄 모릅니꺼? 같은 아부지하고 조상님들 모시는데 와 내는 뒷줄에 선단 말입니꺼?-

정초부터 제상 놓고 험한 말 나오는 것이 상스럽다고 태섭은 생각하는데 태우는 오히려 그 불편함을 역이용 하자는 것이다. 

 

-태광아, 모 하노? 술 안 따루고?-

어디에 서든 상관 안하겠다는 태섭은 빨리 제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다.

태광도 더 이상 종친들 앞에서 울근불근하는 집안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기에 술을 따르고 향을 사르고 광수와 제수에게 눈짓으로 절을 시키고 하며 제를 마쳤다. 

-자, 다들 집으로 가입시더. 추분데 고생들 하싰심더-

태섭이 돌아서서 마당 멍석 위에 있는 종친들에게 이른다.

-장서방. 음복해야 되이 다 도로 지게에 올리소-

태광은 문전에 서있던 장서방에게 이른다. 장서방은 지게를 마루 끝에 받쳐두고 태광이 건네주는 음식들을 하나씩 쏟아지지 않게 조심스레 지게 위로 포개 올린다. 

 

-장서방이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태우다.

뒷짐까지 진 태우는 배를 앞으로 불쑥 내밀고 오만한 태도로

-처음 보네만, 내도 이집 아들이라오-

한 마디만 남기고 대문으로 걸어 나간다. 물론 장서방도 들은 풍월로 저놈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다. 한심한 모습을 보고 있던 장서방은 마루에 서 있던 태광의 다음 말이 귀에 들린다.

-저 새끼는 모하러 여 오노? 사람들만 없었시몬 그저 대가리를 두 쪽을 내야 되는데. 집안 망신은 있는 대로 다하고 댕기민서-

아주 못마땅하지만 막상 그리하지도 못할 태광의 용심을 아는 장서방은 태광을 보며 웃는다.

 

광수에미는 건넌방으로 음식을 들이고 소향은 정기에서 마루로 연신 먹을 것들을 옮긴다. 방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있다.

-아, 종부가 정초에 집을 비우다이 이기 오데 있을 일입니꺼?-

태우는 느닷없이 좌중을 보며 한마디 한다. 하지만 사람들 누구도 대꾸 없이 그저 헛기침만 하는데 누군가 대답한다.

-아, 일이 생기서 서울나들이 갔싰다 안 합니꺼?-

-아, 집안 챙기고 조상님 모시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종부한테 오데 있다고 정초에 제상도 안 본단 말입니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예-

좁게 모여 앉아있는 사람들 틈에서 태우는 다리를 꼬아대며 빈정댄다. 태섭은 속으로 저놈의 화상을 그냥 감옥 속에 처넣어두었어야 했는데 한다. 그때 떡국을 사람 수대로 방으로 들이던 광수에미가 그 소리를 들었다.

-태우 아재. 이집 사람들은 다 젊잖아서 할 말도 못하지만 내는 그런 사람 아닌 줄 알제? 정초부터 되도 안 하는 말 지껄이지 말고 주는 떡국이나 묵고 가래이? 내 두 말 하기 싫다. 알것제?- 하고 태우의 눈을 노려본다.

태우도 뜨끔하다.

 

이집의 양반들은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고 놀려보기도 하고 또 때론 억지도 부려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엄연히 살아있는 형제라는 것을 각인시켜도 감히 구정물에 같이 뒹굴며 싸워댈 위인들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 번 백중 동네 풍물시위가 있었는데  태봉뜰을 돌던 풍물패가 논 주위를 흥겹게 장단 맞출 때, 술잔이나 먹은 태우가 두 팔을 벌리고 논두렁 위에 서서 -내도 이 들판의 주인인데 와 내 땅은 없노? 우리 아부지가 죽을 때 분명히 내게도 이 땅을 주라꼬 했는데 내 논을 누가 다 도둑질 했단 말이고?- 하며 주정을 부려댔지만 아무도 나서서 말리던 사람이 없었는데, 태광의 처가 치마를 걷어붙이고 태우의 멱살을 잡아 논구덩이에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고는 육두문자를 흙구덩이 묻힌 태우에게 한 아름 퍼부어댄 것이 바로 광수에미다.

 

-니가 종가 자손이몬 자손답게 하든가! 하는 짓거리는 개만도 못하고 집안에 망신은 있는 대로 다 시키는 놈이 모라꼬? 땅을 달라꼬? 아나, 니 에미 밑구녕에 그 땅이 다 들어앉았니라. 그 밑구녕에 가서 땅 헤비 파보거래이. 수백 마지기 나올 거다. 개자슥!-

 

사실 계집막에 들락거리던 태섭이 어른이 땅문서도 먹고 살만큼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재물을 다 탕진한 것도 태우다. 그것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뻔뻔한 태우는 이제 더 잃을 것이 없는 신세라 여기에 붙고 저기에 붙어대며 이간질에 없는 말 지어내고 있는 말 꼬아 엮기를 일삼고 어떻게든 종가에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참이다.

 

-아니? 행수요! 우째 시동생한테 그리 심한 말을 합니꺼? 내는 그래도 이집 형제로서 정초에 큰 형수가 없길래 한마디 한 걸 가지고?-

광수에미는 다시 태우를 노려본다.

-내 켔제? 두 말 하기 싫다고?-

광수에미는 육중한 엉덩이를 돌려 마루를 내려간다. 사람들은 한기에 얼었던 몸을 떡국으로 녹이느라 바빠서 말도 없다. 태섭도 태광도 보기 싫은 태우가 한방에 앉아있지만 종친들 모인 자리여서 아무 말도 없이 앞에 놓인 사발 속을 숟가락으로 헤집기만 한다.

 

*   *   *

 

사람들이 연신 들락거리며 인사를 나눌 때마다 상을 차려내고 치우기를 하루 종일 한 소향은 저녁이 되자 지칠 대로 지쳤다. 정기에는 설거지 할 것들이 산더미같이 쌓였지만 기운이 없는 소향이 부뚜막에 걸터앉아 맥없이 넋을 놓고 있는데 광수에미가 들어선다.

-야 야, 오늘 욕봤다. 우리도 대충 때우고 빨리 몸이나 눕히야지 이카다 병나겠다. 아이구 허리야!- 하며 나무둥치 같은 허리를 주먹으로 쳐댄다.

-아지매, 설거지는 낼 하입시더. 지는 묵는 거고 뭐고 지금 들어갈랍니더- 하고 축 처진 눈으로 광수에미를 보자 광수에미도 알 만하다는 눈치다.

-안 그렇겠나? 하던 일도 아이고…. 그래. 정기문 닫아걸고 우리 고마 몸이나 눕히자-

만사가 귀찮은 소향은 뒤도 안돌아보고 자기 방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리고 인사불성이 되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희미한 소리가 들려서 꿈인지 생시인지 소향은 눈을 감은채로 의식을 차리는데 분명히 소리가 들린다.

-소향아-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영감님 목소리다. 정신이 번쩍 들어 확 일어날려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욱신거리는 육신이 병이라도 난 것 같다. 하지만 우선 목소리부터 내놓는다.

-예, 갑니더-

상체를 끌어 문부터 열어내고 머리를 올려붙인다.

뒷짐을 지고 어둠을 진 태섭이 -물 좀 들이거라- 하고 돌아서 간다.

장서방도 하루 종일 마신 술기운에 일치감치 녹아떨어졌을 테지만 그래도 태섭은 나지막하게 소향이만 들리게 말한다.

 

소향은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영감이 부른다. 단단히 병이라도 난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일 뿐 영감이 부르는 것에 거역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소향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문지방을 비틀거리며 잡고 겨우 신발을 코에 꿰고 영감이 찾는 물을 떠가는 것도 잊은 채 그냥 건넌방으로 간다. 속으로는 이럴 때는 천금도 싫다고 여겨지지만 이미 돈을 받았으니 어쩔 도리도 없다. 아, 하루빨리 삼신할매가 자기를 삼천포로 돌아가게 해주었으면 하며 깜깜한 건넌방 방안으로 들어가 그냥 털썩 쓰러진다. 불도 켜지않은 채 기다리던 태섭도 그 옆에 같이 누워버린다.

 

*   *   *

 

느리디 느린 시간이 겨울시간이다. 할 일이 없는 농사꾼들은 겨우 새끼를 꼬거나 망태기를 만들거나 그런 손재주도 없는 자는 뒷산에 토끼몰이를 가기도 한다. 벌써 이월이다. 올겨울은 그래도 험하지 않게 겨울이 지나간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햇볕 잘 드는 마당 한 쪽에 장서방도 오늘은 지게를 손보고 있다. 멜빵도 다시 엮고 삐거덕거리는 고정대도 새로 갈이 끼운다. 봄이 멀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전에 서울나들이를 한 번 더 하고자 마음먹으며 며칠째 태섭에게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마루에 앉은 광수에미와 소향이 팥을 한 말 넘게 펼쳐놓고 이물들을 골라내며 주거니 받거니 말을 주고 나눈다.

 

지게 작대기를 고이고 멜빵 길이를 견주어보던 장서방의 귀에 광수에미의 말이 들린다.

-니 와카노? 오데 안됐나? 잘못 뭇나?-

장서방이 고개를 돌려보니 소향이 얼굴을 감싼 채로 마루에 엎어져 있다. 순간 예감이 들기는 하지만 정서방은 못 들은 척 못 본 척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고 소향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머쓱한 광수에미는 골라내던 팥을 도로 자루에 담아 광에 들이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느닷없이 아는 얼굴이 들어선다. 

 

-잘 계싰는교?-

털보무당이다.

-아이구! 우짠 일입니꺼? 보살님! 점심은 잡샀십니꺼? 들어오이소-

-우짜긴 뭘 우짜겠노? 정초니 내같은 사람은 바쁘지. 그나저나… 이월이라서 동네에 별신제가 있을 끼이 내 안 왔나? 안방주인은 오데 있노?-

-서울 가싰는데. 안 그래도 별신제가 울매 안 남았는데 우째 알고 오싰는교?-

-지난 가을에 이집 종부가 내기 별신제 모실 끼라고 했구만. 그케서 왔지-

이미 광수에미 앞에서 보살 노릇 해본 터라 아랫사람 대하듯 말을 하는 털보무당이다.

-쿤데? 소향이가 안 보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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