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에게 이제 내려오라 전해주시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9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3/23 [14:01]

“집사람에게 이제 내려오라 전해주시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9화

김담 | 입력 : 2015/03/23 [14:01]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태식이 노인은 그래도 동네에서 제일 존경받는 노인이라 여기는데 자기를 쉽게 아재라 부르는 무당이 내심 못마땅하지만 막상 면전에서 무어라 말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헛기침을 하고 다리를 바꾸어 꼬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언의 심기의 표현이다.

 

태섭은 연신 하품을 해대며 이 무리들이 빨리 나가주기만을 기다리는데 양반이 한번 자리를 틀고 앉으면 궁둥이에 곰팡이가 슬어도 일어날 줄 모르고, 상놈은 앉으면 일어나기 쉽게 아예 궁둥이를 한 쪽 다리 위에 올리고 쪼그려 앉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금령김씨 종친들이 앉아있는 자리라 낮잠이라도 길게 자고 싶은 태섭의 욕망과는 거리가 멀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무당이 물은 질문에는 대답도 않고 머리에 올라 앉아있는 갓을 매만지는 태식이 노인을 보고 있던 태섭은 무당에게 대신 답을 한다.

-이분은 우리 종친에서 제일 연장자시고 또 이번 태봉제를 모실 축관이시기도 합니더-

태식이 노인은 두어 번 더 헛기침을 하며 무당의 눈치를 곁눈질한다. 

 

무당은 속으로 생각한다. 축관이든 지랄관이든 나는 그것이 중하지 않다, 무슨 축을 지껄이든 내가 누구 다음에 활개춤을 추든 그것도 중하지 않니라, 그저 빈 주머니가 고파 그 속에 얼마나 돈이 들어올지가 중하다. 생각은 하지만 하기 힘든 돈 얘기를 어디서부터 풀어낼까 궁리를 하며 또 지금 이 자리에서 못 박아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날라버린 꽁털만 손에 잡고 있는 격이 되리라는 내심 급한 생각마저 든다.

 

-이집 안방 마나님이 지하고 지난해 말에 나눈 말이 있심더. 딴기 아이고. 신단에 제의식을 디린다고 지보고 꼭 들르라고 한 기. 작년 말인데 봄이라 여간 바쁜 기 아인데도 지가 삼천포서 여꺼정 왔심더. 점사를 보는 기 아이고 마을에 젤로 중한 제를 모시는 것 아입니꺼? 케서 마님이 성의금으로 쌀 두가마를 주신다꼬 카싰는데 지금 그 마님이 여 안계시서 혹시 아재가 귀뜸이라도 들으싰나 해서 묻심니더. 뭐든지 맺고 끝는 기 서로 안 좋심니꺼?- 

 

털보무당은 속으로 흡족하게 느낄 만큼 잘 늘어놓았다고 생각하며 좌중의 눈치를 살핀다. 

먼저 눈이 커진 태식이 노인이 태섭과 태광을 보며 눈을 맞추어 황당한 의견을 동의하려 하지만 말은 없다. 태섭은 그깟 쌀 두 가마가 지금 마음에도 없다. 그저 빨리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고 태광은 형수가 약속했다는 금액에 대해 말 할 입장이 아니라 그저 눈치만 보고 있으니 결국 말할 사람은 태식이 노인뿐이다. 

-작년꺼정만 해도…. 그땐 박수였지? 그 문경에 사는. 내가 알기로는 그저 한 가마 값이었는데?- 하며 털보무당의 얼굴만 빼고 주위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 

 

-아재요! 내가 만사 제치고 이 바쁜 봄에 여꺼정 온 이유는 이집 마님이 내캉 나눈 말이 있어서라 안 캅니꺼? 무당이 다 같은 무당은 아입니더! 넘들 보기엔 그 기 그것 같을지 모리지만. 아는 사람은 다 가리볼 줄 압니더. 종가마님이 지한테 그리 말한 이유는 다 연유가 있어서 그리 했으이 그리 알아서 하이소!-  

다그치듯 심지어 앙칼지게 나무라는 말투로 맺고 나니 무당의 속이 시원하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대니 태식이 노인이 더 놀라는 눈치다. 이제는 상대하기조차 싫은 눈치다. 양반이 무당을 앞에 놓고 실랑이를 벌이자니 체면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치자 태식이 노인은 태섭이에게 밀어놓고 만다.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나-

 

무당은 분위기를 십분 활용하여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지가 축원할 때 쓰는 음식은 몇 가지 따로 있심더. 그건 준비하는 사람들한테 따로 말해 놓지요. 그럼 지는 이만- 하며 먼저 일어나는 무당은 속이 시원하다. 빨리 동네 아낙들이라도 모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볼 요량이다.

태식이 노인은 비록 자기 돈을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두 배가 되는 돈이 무당의 성의금으로  지출되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안방마님과의 약속이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태식이나 태광이도 마찬가지다.

-아참! 태광이 니는 오늘 태촌 행님 소식 들었나? 무신 일로 병원에 있다 카던데… 장서방이-

-태촌이 행님이요?-

처음 듣는 말에 태광은 되묻고, 잠시 후 방에서 부르는 소리에 장서방이 들어왔다.

 

어느덧 파장이 다 된 함창장이라 사람들은 생기가 없다. 소향은 광수와 재수를 데리고 장까지 왔으니 우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센베이를 사서 손에 들려주고 어물전에 왔지만 생선들이라곤 전부 소금에 절여진 것들뿐이다.

-아지매. 도다리 있심니꺼?-

-도다리? 가재미 말이제?-

-언지예! 도다리 말입니더!-

-광어 말인가?-

소향은 들음직도 한 말이라 그것이 이쪽에서 부르는 말인성싶어

-광어라도 있십니꺼?-

-건어는 있지. 생물은 없꼬- 

어물전은 벌써 생선 상자를 주섬주섬 쌓아서 끈으로 묶어 달구지에 올리거나 손수레에 싣는 정도로 장을 마감하고 있었다. 두어 군데 더 물어보았지만 입속에서 맴도는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도다리를 구하지 못한 소향은 다른 생선은 보기도 싫고 냄새도 맡기 싫었다.

 

맹한 침만 꼴깍거리며 삼키고 허탈하게 돌아오는 힘없는 발걸음을 잡은 것은 서의원 앞에서 소리소리 지르는 웬 여자의 악이었다.

-아이고~ 우짜꼬. 내는 우짜꼬-

땅을 두 손으로 내리치면서 차디찬 맨땅 위에 주저앉아서 울어대는 여자가 바로 창호어마이였다. 소향이도 놀랐지만 광수도 재수도 친구인 창호엄마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 구경거리다.  

-아지매. 창호네 엄만데. 왜카지?-

광수의 질문만큼 소향도 의문투성이다.

-글쎄다. 내도 모린다-

주위에는 아무도 창호어마이를 돌보는 사람도 없고 다만 우르르 모여 통곡하는 여자를 구경만 한다. 소향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창호어마이 옆으로 간다.

-아지매요. 와 캅니꺼? 접니더! 와 이 카십니꺼?-

팔을 잡고 창호어마이를 흔들어대자 소향을 의식한 창호어마이는 덥석 소향의 옷을 잡고 늘어지며 악을 쓴다.

-누고? 누가 우리 아바이를 저래 놨노? 어이? 누고!-

 

그때 병원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 옷을 입은 젊은 처자가 나와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말한다.

-여서 이 카모 안 됩니더-

병원 안에서 한바탕 난리굿을 하던 창호어마이가 쫓겨났지만 바로 문밖에서 난리를 치니 간호사가 또 나온 것이다. 소향을 본 간호사가

-아는 사람입니꺼? 빨리 식구들 오라 카이소. 환자도 델꼬 가고. 여서 이 카모 안 됩니더-

옷이 억센 창호어마이 손에 잡힌 소향은 간호사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창호어마이의 몸부림에 같이 흔들거리지만 간호사에게 영문을 물을 수밖에 없다.

-무신 일입니꺼? 이 아지매는 우리 동네 사람인데예-

간호사는 빨리 어찌 하라는 말과 함께 시원한 대답도 없이 들어가 버리고 소향은 보통 상황은 아니라는 직감에 광수를 보고 빨리 마을로 가서 사람들을 모아 오라고 시킨 후 땅에 퍼질러 앉아있는 창호어마이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았다.

 

방안에서 장서방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은 태광이는 장서방을 대동하고 서의원으로 가던 중에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오던 광수와 재수를 만나고 그 뒤에 몇몇의 마을 남정네들이 뒤를 따라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태봉제를 앞두고 생긴 마을의 좋지 않은 일에 말들이 많다. 아직 숨은 붙어있지만 의원의 말로는 사지를 다친 것이 아니라 머리를 다쳐서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광에게 건넨 의원의 말로는 까집어본 눈동자가 이미 풀릴 대로 풀려서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한 깨어나기가 힘들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태를 처음으로 목격한 장서방은 태광에게 일단 지서에 알릴 것을 제안한 뒤 스스로 지서로 가서 사건의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의원의 말대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집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붕대로 칭칭 감은 창호아바이가 장서방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고 또 한편 마을의 태종제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금줄을 지키느라 이틀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한 태광이는 축사고 무당의 굿이고 다 귀찮다. 빨리 방안에 눕고 싶지만 종가에서 실제 일을 주관하는 자는 형인 태섭이 아니라 자신인 탓으로 일단 태봉제가 끝날 때까지는 피곤해도 어쩔 수 없이 버텨내고 있다.

 

-너거가 음복이라도 할 음식을 다 사당으로 옮기고 여는 정리하도록 해라-

마을 청년들에게 제를 마친 뒷정리를 부탁한 뒤 태봉산을 내려오는데 태식이 노인이 혼잣말처럼 한다.

-태촌이가…. 제를 올리 전에 명이 안 끊어져서 다행이제? -

-우짜다가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는지-

대답처럼 하지만 혼잣말이다. 태광은 속으로 짐작이 가지만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그 태촌이가 초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는 거지나 문둥이 떼가 한 일이 아닌가 짐작이 가지만 본 사람이 없다. 크지는 않지만 태봉이 오뚝한 탓에 내려오는 길이 가파르다. 그 뒤에 장서방도 지게 위에 한 다발의 물건을 올리고 따라 내려온다.

 

어제도 순경이 들렸다. 본 사람이 장서방이고 보니 순경이 정황을 조사하러 벌써 두 번이나 들리고 또 제가 끝난 다음에 지서로 오라고까지 했다. 장서방 역시 마음에는 문둥이가 짐작이 가지만 일체 그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호어마이가 순경에게 말했다. 비록 마을에서 동화되지 않고 살지언정 원한 살만한 일은 없었는데 을순이 때문에 문둥이를 지게작대기로 반죽음을 만든 후 밤중에 피했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장서방은 이제 태봉제도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서울을 한번 다녀오리라 생각하여 저녁에 태섭을 찾았다.

-뭐 딴 일이 없으면 내일부터 한 삼일정도 말미를 낼까합니다-

이미 말을 나눈 사정이라 서로 알고 있던 사정이다.

-그래, 쿤데 이참에 서울에 가모… 집사람한테 들리서 이제 내리오라 전하소. 내 주소는 줄 끼이니-

소향이 아이를 가졌다는 말은 하지 않고 마누라를 내려오라는 전갈을 부탁한다.

-그러지요. 뭐 딴 말씀은 없으신지-

나가려는 의도를 그렇게 비치는 장서방에게 태섭은

-순경이 뭐라 캅디까? 태촌행님 일 말이요-

-순경의 말로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만 했고 저는 그저 광수어머니하고 본대로 진술만 했답니다-

장서방이 대답하는 동안 태섭은 작은 종이에 서울 주소를 적어서 장서방에게 건네며

-마을에 우환이 생기모 안되는데. 우째 그런 일이…. 자! 신당동인데 장서방은 서울사람이라 알제?-

-주소만 맞다면 못 찾을 리 없지요. 가서 전하겠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정기에서 서성이는 소향을 찾은 장서방이 걱정스런 얼굴로

-뭐 좀 먹나? 얼굴이 말이 아니네. 어떡하나? 내가 오늘 서울에 가는데 내려올 때 뭐 사올까?-

하지만 소향은 지금 며칠째 겨우 명줄만 이어갈 정도로 기운이 없다. 먹는 것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태봉제에 쓰인다고 온갖 산해진미를 동네 아낙들이 모여 마련했지만 소향의 코에는 온통 역겨운 냄새밖에 없었고 먹지 못한 도다리 쑥국은 갈수록 더 먹고만 싶어진다. 

-그래예? 서울에는 도다리가 있으까예?-

-응? 도다리? 흠 글쎄. 말린 것이야 어디에도 있겠지만 생물은 흔치 않을 텐데. 왜? 그것이 먹고 싶냐?-

누구에게도 부탁이나 청을 하지 않는 소향이 벌써 두 사람에게 도다리를 말하고 있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쑥국이예. 도다리 하고- 하고 대답하는 걸로 봐서 어지간히 생각이 나는구나 하고 장서방이 짐작을 하고 웃으면서 털털하게 말해준다.

-그래! 까짓 하늘의 별을 따는 것도 아니고 있는 생선 구하는 건데 한번 해보지 뭐! 그럼 나는 간다. 한 삼일 뒤에 올꺼다-

-아침도 안 잡숫고 가십니꺼? 다 됐는데-

-버스시간이 다 됐다. 밥이야 가다가 먹든지. 몸이나 잘 챙기고. 안방 큰아지매가 오실 거다-

 

대문을 벗어나며 장서방이 던진 마지막 말에 소향이 문득 잊고 있었던 큰아지매가 확 떠오른다. 이제 자신이 뱃속에 아이를 넣었으니 큰아지매가 오는 구나. 모든 것이 그저 당연지사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삼천포로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때 대문을 들어서는 광수에미가 표정이 평소와는 달리 굳어져있고 수다스런 말도 없이 다짜고짜 정기로 소향의 팔을 잡아끌고 들어간다.

 

-니도 들었제? 창호아바이 말이다-

-무신 말씀예?-

광수에미는 부뚜막에 털썩 주저앉는다. 정기 천장을 멍하게 쳐다보며 아무 말도 없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몸이 한껏 늘어져 있다가 소향을 힘없이 돌아보며

-그기… 순경이 지금 그 문디 찾고 있단다. 창호아바이를 그렇게 만든 기 문디라 안 카나?-

소향은 문디라는 말에 그럼? 아지매의 오라버니? 하고 놀란다.

-소향아- 하고 나직한 말로 소향의 손을 잡은 채 밖을 한번 힐끗 내다본 광수에미는 -절대로… 알제? 절대로 말하모 안 된데이!-

그 다음 말은 소향이에게도 필요 없었다. 무슨 말을 다짐하는지 소향으로서도 다 알 만하기 때문이다.

-걱정 마이소. 아지매. 지는 그런 말 안 합니더. 쿤데… 그기 정말입니꺼?-

-내도 잘 모리지만…. 순경이 찾고 있다카이. 큰일이다-

사실 오라버니가 문둥이라는 사실도 큰일이고 또 오라버니가 사실 창호아바이를 저렇게 만들었다면 그것도 큰일이고 그리고 그것이 동네에 밝혀지고 자신이 그 문둥이의 누이라고 밝혀지면 그것은 더 큰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것을 아는 사람은 유일하게 소향이뿐이니 소향에게 다짐을 받으려는 광수에미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무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소향에게나마 위로 받으려는 속내도 있다.

-아지매, 걱정 마이소. 아무 일도 없을 낍니더. 세상일이 마음만 곧이 먹으면 꼭 그대로 됩니더-

이번에는 소향이 광수에미의 손을 꼭 잡아준다. 광수에미는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된다는 소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리며 소향의 얼굴을 바라본다. 둘은 그저 그것, 저것, 그 말, 이라는 대명사로 사건에 휩싸인 일체의 이름이나 당사자를 거론하지 않고도 서로 충분히 약속을 주고받았다.

 

서울행 버스는 점촌에서 문경으로 그리고 충주를 지나 서울로 가고 있다. 트럭을 개조해 철판을 씌우고 그 속에 나무로 만든 의자를 정렬해 넣은 그야말로 깡통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두 번씩 가고 오는 산골에서는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새재 고개를 힘들게 올라가는 버스가 굽이굽이 틀 때마다 눈 밑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이 아찔하다.

 

하지만 이른 봄에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도 역시 아찔할 만큼 이름답다고 생각하는 장서방은 물이 잔뜩 오른 산야를 쳐다보며 도대체 생물 도다리를 어디서 구하며 또 구한다 한들 어떻게 상하지 않게 가져올 수 있는가? 하며 난감한 생각에 머물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리도 소향이에게 마음이 쓰이는지 하는 생각에 멈춘다.

 

그래!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딸, 홍희가 바로 소향이와 같은 나이가 아닌가?

지 에미가 지 애비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으니 그 한이 얼마나 컸을 것이며 그것으로 지금까지 애비 노릇 제대로 한번 해보지 못한 애석함을 소향에게 대신하여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이번 행차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얼굴을 마주하고 딸에게 죄를 용서 빌고 싶은 장서방이다. 버스가 흙길을 울퉁불퉁 부딪치며 흔들릴 때마다 장서방의 몸도 그냥 같이 흔들리며 저항하지 않고 내맡기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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