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방이 큰아지매를 서울서 만나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92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4/14 [10:27]

장서방이 큰아지매를 서울서 만나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92화

김담 | 입력 : 2015/04/14 [10:27]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세상사 다 맡겨진 팔자대로 산다고만 여겨왔던 무당이다. 자신도 암자에 언제 어떻게 누가 던져놓고 갔는지 보살도 말해주지 않았고 자신도 묻지 않았다. 부엌데기로 커오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비단 모시 입고 찾아오는 공양꾼들을 봐도 그저 남의 산 불구경하듯 무관심했던 무당이고 세 치 혀로 사람들 마음속을 휘저어대며 쌀 됫박이라도 혹은 지전 한 장이라도 알겨내려고 온갖 입담을 그들의 귓속에 쏟아 부을 때도 털보무당의 속내는 그저 이 바보 멍청이들아!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냐 하고 웃었는데 웬일인지 귀밑머리에 서리가 서리고 나서부터는 자신도 믿지 않았던 요령 끝자락에 달린 듯한 귀신이 무섭기도 하고 만사가 있는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고 요동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험한 꼴을 한두 번 보고 살아온 인생이 아니건만 오늘 창호어마이 집에서 맡은 죽음의 냄새와 그리고 쪼그려 앉아서 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그 을순이라는 미친년의 부른 배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이러다가 자신이 남의 신수를 봐주는 게 아니고 심약한 자신이 어디서 닦달이라도 당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며 생각에서 벗어난다.

 

-그기 뭐꼬?-

아직 인상을 찌푸린 채 역겨움을 삭히고 있던 소향에게 손에 든 것이 뭐냐고 묻는다. 소향도 과자를 들고 들어온 것도 잊고 있었다.

-이거예? 과자예. 보살님도 잡사보이소. 지도 여즉 안 열어봤심더-

무당이 소향의 손에서 봉지를 빼앗아 종이봉지를 열어 덥석 과자를 입에 넣고 한손으로는 소향에게 과자를 건넨다. 입에 든 센베이를 오물거리며 무당은 천장을 쳐다보고 속주머니에 쌀 두 가마 값이 들었으니 그걸 밑천 삼아 봄바람 타고 산천유람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하고

-소향아, 내는 인제 일도 봤으이 오늘이라도 갈란다. 운제 삼천포에 갈란가 모리지만 내 가면 너그 어무이한테 니 얘기 전하꾸마-

아이를 가졌다는 전갈을 하겠다는 말이다.

-가실라꼬예? 지한테 꾼 거 주고 가이소. 보살님예. 지도 돈이 하나도 없심더-

무당이 눈을 흘기며 소향을 모로 쳐다보는 것을 소향이 느끼고는 한마디 보탠다.

-돈이 있어야 장에 가모 살 것도 사지예. 안 그케예?-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자신의 요구를 정당화한다. 치마를 들추고 무당이 뭔가를 만지작거리더니 소향이 앞으로 툭 내던지며

-아나. 여 있다. 누가 안주고 간다 쿠더나? 무섭기도 해라- 하고 또 눈을 흘긴다. 하지만 털보무당의 마음이 그리 섭섭하거나 언짢은 기색 없이 오히려 여문 아이라고 여긴다.

 

*   *   *

 

-누님, 고생은 안 되십니까?-

가게 문을 닫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장서방 누나는 담담한 표정이지만 내심 장서방을 반가워하며 홍희와 함께 앉아있다.

-고생될 건 하나도 없다. 아이들도 다 컸고 이제 이거 하나만 잘 키우면 되니 부담은 없다만 자나 깨나 그저 너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홍희의 머리를 매만지며 정겹게 말하지만 결국 긴 한숨으로 말을 맺는다.

-누님도 참! 아,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뭘 그리 깊게 생각합니까? 홍희도 다 컸으니 이제 제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다 누님한테 그리고 부모님한테 몹쓸 짓 한 제 탓입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세월을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하고 살아야지요. 홍희를 이렇게 키워주신 거 정말 고맙습니다. 누님-

장서방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는 듯하자 누나가

-홍희는 내 딸이나 마찬가지다. 속이 깊어서 키우면서도 한 번도 힘든 적이 없었다. 빨리 좋은 혼처라도 나서면 좋겠는데. 뭘 배운다고 과년한 아이가 밖으로 그리 나도는지 그게 마땅치 않지- 하고 웃음 머금은 홍희의 손을 잡아끈다.

-고모, 내가 밖으로 나돈다는 것은 너무 험한 말이에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여자라고 집에서 수나 놓고 시집갈 때나 기다리고 하란 말이에요?-

 

장서방은 딸 홍희의 말을 듣고 미소를 띠운다. 자신의 딸인 것이 대견하다. 도피생활 중에 한 번도 부녀의 정을 나눌 시간이 없었는데도 기대한 대로 어쩌면 저리도 잘 자라주었는지 하는 생각에 싱글벙글이다.

-이것아, 그래도 여자는 여자다. 여자가 대가 세면 팔자가 사나워지기 마련. 그저 다소곳한 여자가 돼서 서방한테 귀여움 받는 것이 제일이지. 안 그러냐? 태근아?-

장서방은 그저 미소만 띠고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는다. 참으로 오랜만의 해후여서인가 세 사람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말을 주고받다가 기어이 누나가 흥을 깬다.

-태근이 너는 홍희방에서 자거라. 홍희는 오랜만에 나하고 같이 자고. 장근이 방이 있지만 불을 넣지 않아서 찰 거다. 홍희야 너도 이만 건너가서 이불 깔아라. 여기는 내가 이부자리 보고 갈게-

-예, 고모. 그럼 아버지. 밤새 잘 주무시고. 낼 아침에 제가 눈뜰 때 꼭 계실 거지요?-

 

웃으면서 나간 후 누나가 장서방 앞으로 바짝 당겨 앉는다.

-너는 언제까지 그러고 다닐 거냐? 식당에 송철이하고 명식이하고 또 그 뭐냐 친구들, 일일이 이름도 생각이 안 나네. 암튼, 다들 종종 들려서 나한테 말해주어서 알긴 알지. 더 이상 너를 잡으러 다니지는 않는다는 것을. 해도, 그것이 너를 자유의 몸으로 만든 것은 아니니…. 너는 도대체 무슨 복안이라도 있냐?-

홍희 앞에서 나누지 못한 말을 누이가 장서방에게 꺼내든 것이다.

-누님도, 참, 죄진 놈이 죄값을 치루지 않고 무슨 복안이 있답니까? 홍희가 저리 다 컸으니 이제 학교 졸업만 하면 저도 감옥 갈 작정이랍니다.-

-아이구, 이것아, 홍희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지 그게 애비로서 할 일이냐? 송철이가 너한테 연락 오면 꼭 자기를 찾아오라 하더라. 아주 당부를 했다. 가는 제법 높은 데 있는 모양이더라. 이번에 한 번 만나고 가지 그래?-

-안 그래도 이왕 서울에 온 김에 오랜만에 친구들 한번 보고 갈 작정이었습니다. 홍희도 많이 돌봐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디 홍희뿐이냐? 식당에도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몰고 온다고? 높은 데 있으니 한 번 오면 우르르 몰고 와서 정신없게 만들지만 그 덕에 우리 집이 아주 인근에서는 소문이 났단다-

 

핏덩이를 누나에게 맡겨놓고 도피생활에 쫓길 때 철없는 홍희야 아무 것도 모른다지만 누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드는 왜놈형사 때문에 이사도 몇 번을 할 수밖에 없었고 해방 후에도 비록 왜놈형사를 살해한 것은 유야무야 넘어간다 해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건일지로 말미암아 마누라를 죽인 건에 대하여 살인자의 꼬리가 길게 걸려있어서 뜨문뜨문 형사들이 추적을 했지만 언젠가 채송철이가 감찰실에 들어간 후부터 형사의 발걸음이 끊어진 것은 비밀 아닌 비밀로서 다 송철이의 손쓴 덕이었다.

-예, 누님,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인사와 더불어 고마움도 톡톡히 나누어야지요-

 

봄이라고는 하지만 해가 진 후에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다. 홍희의 냄새가 가득한 방에서 장서방은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의 일에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   *   *

 

잠은 왜 그리 쏟아지는지 자도 자도 몸이 깔아지는 것을 느끼는 소향은 오늘아침에도 해가 봉창을 훤히 밝히는 것도 모른 채 잠에 취해있고 서울형님이 오늘내일 내려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광수에미가 종가에 발걸음이 잦다. 오늘 아침에도 일찌감치 이침을 아예 종가에서 먹을 작정으로 대문을 들어서서 소향이 방문을 힐끗 볼뿐 그냥 정기로 들어간다.

-장서방이 없으이 물도 없네-

몸 무거운 소향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광수에미는 오랜만에 물동이를 들고 대문을 나서기 전에 소향의 방문에 대고 큰소리로 말을 남긴다.

-일나라 고마, 해가 중천이다-

깊다고 하지만 아침잠이라 그런가 말이 귀에 고스란히 들린 소향이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젖혀보니 정말로 훤한 아침 햇살이 마당에 쏟아진다.

-아이구, 내가 우째… 요새… 이럴꼬-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머리를 매만지며 고무신을 끌며 정기로 가는데 저만치에서 이상한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필 생각으로 나무단을 가지러 뒷단으로 가는데 그 고양이 소리 같은 것이 더 크게 들린다. 발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분명 사람의 울음소리다. 아침부터 무슨 일로 누가 하는 생각으로 소리를 좇아 몇 발작 옮기는데 대문으로 물을 이고 들어오는 광수에미가 큰소리로 부른다.

 

-소향아! 오데 있노?-

턱밑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상관없다는 듯 소향이를 불러댄다.

-예, 여 있습니더. 와예? 이리 주이소. 물 받을게예-

-아이다. 니는 무거운 거 들모 안된다. 그카다가 우찌 되모 내는 정말로 이 집에 발걸음도 못한다-

용을 쓰며 혼자 물동이를 내린 광수에미가 숨을 헐떡거리며

-창호아바이가 죽었단다. 어젯밤에- 하고는 소향의 눈을 빤히 처다본다. 헐떡거리던 숨조차 멈추고 소향을 쳐다보는 광수에미의 눈 속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 눈을 보는 소향도 광수에미의 속마음을 읽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멍한 소향이 -예- 하고 대답을 하는데 놀란 것도 아닌듯한 대답이다. 사람이 죽었다는데도 그것도 겨우 몇 집 건너에 있는 집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놀라지 않은 소향의 대답에 광수에미도 누가 죽었는지 보다 그 죽음이 혹시라도 자기 오라버니 때문이라면 하는 두려움에 같이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소향아- 하고는 정기문밖을 힐끗 본 후 말을 소곤소곤 이어간다.

-알제? 절대로! 저 여편네가 보통이 아이데이. 알았제?-

그리곤 소향의 손을 한번 잡아 흔들고 나서

-내는 아무 케도 가봐야 되겠다. 그래도 한 동네 한 성받이 집인데…. 니가 아침하고 있거라-

-예-

 

소향도 어안이 벙벙하다. 순경이 문디촌에 갔다 왔다는 말도 들었지만 누굴 체포했다든지 잡아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그 문디대장이 창호아버지를 죽였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그럴 만도 하다고 짐작은 간다. 생각에 잠기던 소향은 건넌방에서 들려오는 태섭의 기침소리를 듣고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침을 시작한다.

 

벌써 아낙들 몇몇이 창호네 집에 엉거주춤 서있다. 광수에미는 통곡소리가 들리는 안방으로 불쑥 들어갈 수가 없다. 아직 죽은 자가 방에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다,

-아지매들, 그리 서있지만 말고… 자, 우리 아바이 오라 카고, 아지매는 동네사람들 좀 불러오소. 아지매는 내하고 정기하고 을쑤이 방하고 청소라도 하재이. 사람들 올낀데. 집이 이래가 안 된다-

방안에서는 계속 악을 쓰는 창호어마이의 소리가 들리지만 광수에미는 얼굴을 들이밀 용기가 없다.

-아이구, 을쑤이가… 배가 마이 부르네. 우짜꼬- 히죽이 웃는 을순이를 잡아 세워 밖으로 밀어낸 후 방을 치우는 광수에미는 참, 사람 팔자 알 수 없구나, 멀쩡하다가 저승 가는 게 사람이구나. 작년에 할마시가 죽더니 올해는 아들이 따라가고 또 빙신 을쑤이는 어쩌다 얼라까지 놓게 생겼으니, 도대체 이집에 무신 원귀가 서려있단 말인가 하며 걸레질을 해댄다.

 

그리고는 한바탕 시끄러운 사람소리가 들리고 서방 태광의 목소리도 들린다.

-광수야, 오데 있노?-

마누라를 부른다.

-여 있심더. 와요?-

울순이 방문을 열어서 대답을 하자 태광이 나오라는 손짓을 한다.

-와요? 내는 방치우는데- 하며 나오자 태광이

-니는 아지매 델꼬 우리 집에라도 가있거라. 우리가 들어서라도 장례 준비를 해야지 누가 있노?-

인심 잃고 살던 집안이라 선뜩 마음은 안내키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종가에서 손을 보태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지 천벌을 받을 끼다! 꿀럭꿀럭! 우짜라꼬 내는 우짜라꼬 아이고~-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통곡과 악을 들으며 마루에 걸터앉아 눈물을 흘리며 한 쪽 발을 덜렁거리는 창호를 보던 태광이

-창호야, 니는 우리 집에 가서 광수하고 같이 학교 가거라- 하자 마누라가 눈을 흘기며

-오데 학교를 가라 캅니꺼? 저거 아부지가 죽었는데? 그 케도 가가 상주 아입니꺼?-

-응? 그래, 그래, 맞다. 우째거나 니는 빨리 아지매하고 안방 비워라. 우리가 태촌 행님 수습이라도 해놔야지. 염하기 전까지는-

 

*   *   *

 

기분 좋게 홍희와 누님과 함께 헤어진 장서방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소를 들고 신당동으로 가고 있다. 안방 아지매한테 소식을 전해준 후 송철이에게 전화라도 해볼 요량이다.

 

멀리 보이는 남산을 휘돌아 아직도 군데군데 지난해 베어놓은 벼 밑단이 남아있는 농토가 있는 한적한 동네로 들어선다. 제법 기와집들이 번듯한 마을이다. 다시 한 번 주소를 확인했지만 결국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이 알려준 대로 큰 대문 앞에 선 장서방은 안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인기척이 없다. 할 수 없이 문을 밀고 들어서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큰소리로 부른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안마당이 제법 잘 가꾸어진 집이다. 마당 한가운데에 화단도 있고 한쪽 구석에는 심지어 샘도 있다. 소리를 들었는지 부엌에서 웬 젊은 여자가 앞치마를 두른 채 나오며 -예, 누구세요?- 하고 말하지만 대문 가까이는 오지 않고 화단 저쪽에 서서 장서방을 살핀다.

-예, 저는 상주에서 온 장서방이라고 합니다. 이 댁에 종부께서 계신다고 해서 소식 전하러 왔답니다-

자신을 스스럼없이 장서방이라 칭한 장서방은 또 안방 아지매를 종부라고 존칭했다. 장서방의 목소리가 호방했는지 그 말을 들은 태섭이 마누라가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로 나서며 - 아가 시골서 온 손님이시구나. 올라오시지요. 찾느라 힘들지 않았나요?- 장서방은 비로소 화단을 둘러 대청 앞에 섰다.

-내려오시라는 전갈입니다- 하고 큰아지매의 얼굴을 본다.

 

한참을 보지 않았지만 얼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큰아지매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는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우회하여 묻지만 장서방은 금방 알아차린다.

-예, 소향이가 도다리를 찾는데 그것도 싱싱한 생물로 말입니다.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큰아지매는 아무 말 없이 마루를 내려다보다가 묻는다.

-그게 뭡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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