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순이의 아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00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6/10 [12:36]

을순이의 아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00화

김담 | 입력 : 2015/06/10 [12:36]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보살님예, 보살님이 좀 가봐 주이소. 지도 갈게예-

-내가? 내가 간다고 뭐 달라질 기 있나? 아는 산파가 받든가 하지. 내는 아 받아본 적도 없다-

안타까움에 얼굴이 달아오른 소향을 보며 털보무당은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며 말한다.

-아지매예!-

소향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마루에 앉은 두 아지매를 번갈아보면서 발을 구른다. 조용히 앉아서 아직 입도 떼지 않던 큰아지매가 광수에미를 향해

-애를 놓는 게 확실한 건가?-

발걸음을 거의 달포가 넘도록 하지 않다가 불쑥 대문을 들어선 광수에미는 이때를 핑계 삼아 슬쩍 어색함을 넘기려는 듯 얼굴에 화색까지 띄우며 대답한다.

-창호네가 캅디더. 양수도 점심 나절에 터지고, 쿤데 을쑤니가 부실해서 카는지… 놓지를 못하는 모양입니더. 벌써 그기 운젭니꺼? 저 카다가- 하고는 한숨을 길게 쏟아놓는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소향이 갑자기 대문으로 뛰어나간다. 어안이 벙벙한 큰아지매는 눈만 크게 뜨고 입을 달싹거리지만 이미 소향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광수에미를 향해

-자네 빨리 가서 소향이 잡아오게. 그런 험한 꼴을 보아서는 안되네. 빨리! 저것이 철이 없어도 한참 없지. 나설 일인지 안될 일인지도 모르고…아! 뭐하나? 자네?-

큰아지매의 재촉을 듣고서야 슬슬 일어나는 광수에미는 덥썩 무당의 손을 잡고 -보살님, 지캉 같이 가보이시더- 하면서 잡아끈다. 

억센 광수에미의 손에 끌려 마루에 앉았던 몸이 봉당으로 쏠리자 어쿠 하는 소리와 함께 -야는 와카노?- 하면서도 맨발에 신을 신발부터 찾아 코를 꿴다.

-아무케도 보살님이 창호네한테 한마디 하모 들을 깁니더. 그년이 산사람 죽게 하고 있으이  말입니더-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는 무당을 보며 둘이 대문을 나설 즈음 큰아지매도 일어서서 담 너머로 시선을 돌리지만 창호네는 보이지는 않고 무슨 소리라도 들리나 하고 귀를 기울인다.

 

광수네에 팔목을 잡혀 끌려온 무당이 창호네 삽작을 들어섰을 때 을순이 방문이 활짝 열려있고 창호어마이는 문밖에서 무어라 지껄이고 방안에는 소향이 있다.

-안 나오나? 니가 모한다고 거 있노? 퍼떡 집에 가거라! 아지매가 오라 칸다- 하고 소향에게 말한 후 광수에미는 방안 광경을 본다. 방바닥에는 피가 흥건하다. 소향은 머리가 산발이 된 을순이의 팔만 잡고 뭐라 하면서 있지만 을순이는 미동도 없고 이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광수에미는 훌쩍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서 소향의 팔을 잡아채고 -안 가고 모 하노? 니가 이런 거 볼 때가 아이다. 여는 우리한테 맡기고 퍼떡 가래이- 하며 소향의 등을 밀어낸 후 문밖에 서있는 창호어마이를 보며

-니, 이 카는 거 아이데이. 죄받는다. 죄받어. 보살님! 이리 좀 들어오이소. 아를 받던지 송장을 치우던지 우짜든지 사람 손이 필요합니더-

 

등을 떠밀린 소향이 여전히 집으로 갈 생각 없이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창호어마이를 나무라며 소매를 걷어올리는 광수에미를 보던 무당은 방으로 들어오라는 광수에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든다. 얼굴에 화를 가득 담고 궁시렁거리는 창호어마이를 돌아보고 무당이 날카롭게 나무란다.

-니는 이 카모 안 된다. 말은 나중에 하고, 우선 물부터 떠온나. 죄받는다. 죄받어. 니도 아가 있제? 그 아 잘되게 할라모 죄 지면 안되제. 카고 모 하노? 소향이 니는 안 가고?-

눈을 부라리다시피 소향을 돌려보내고 무당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축 널어진 을순이의 치마를 들춘 광수에미는

-아가 이 지경이 되도록… 보살님 우짜지예? 머리는 나온 성싶은데. 피를 너무 마이 흘맀네예-

무당은 황당한 심정이다. 비록 자신이 여자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을 방바닥에 내려 깐 채 피로 범벅이 된 을순이를 보고 있다.

-보살님! 모 합니꺼?-

날카롭게 짖는 광수에미의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는 무당이다.

-응? 응! 그래! 우짜지? 이 동네에는 산파도 없나? 빨리 불러오지-

-우리 동네는 없씸더. 할마시들이 아를 받기는 했지만 산파는 신흥이나 함창에 가야 되예. 보살님, 지가 아를 땡기보께예. 머리는 나왔으이 우째 될 거 같기는 합니더. 보살님은 을쑤이를 좀 잡아보이소-

 

무당은 광수에미의 말은 듣고 있지만 선뜻 행동이 나서질 않는다. 대신 방문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창호어마이한테 호통을 친다.

-니는 그서 모하노? 들어와서 우짜든지 안하고! 이기 넘에 일이가? 너그 집안 일이제?-

-내는 모립니더! 카고 기냥 놔두이소. 다 지팔잔데. 오데서 아는 배가지고서리. 죽고살고는 하늘이 하는 일입니더. 지는 아를 받아본 적도 없꼬 받고 싶지도 않심더!-

창호어마이는 되려 악에 받친 듯 무당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꾸를 해댄 후 등을 돌려 정기로 가버린다.

 

-보살님, 을쑤이 다리를 좀 세워서 잡아보이소-

광수에미도 생전 처음 아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두 아이를 낳으면서 겪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래도 털보무당보다는 대담하다. 무당은 광수에미의 명에 따라 을순이의 다리를 들어 올리고 광수에미는 애를 써가며 삐져나온 머리를 잡고 당긴다. 힘써서 집자니 몰캉거리는 머리통이 어스러질까 걱정이고 살살 잡으니 피로 범벅이 된 머리가 자꾸 미끄덩거리며 손에서 빠져나간다. 을순이는 숨을 쉬는지 죽었는지 움직이지 않고 방안의 누구도 지금 을순이의 생사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우선은 아이를 받고 보자는 일의 순서에 의해서 누가 가리켜주지 않았지만 진행하고 있다. 

-아놔, 여 물 있다-

언제 왔는지 함지박에 물을 한가득 담아 방에 들이며 창호네가 문지방에 몸을 걸치며 안을 살핀다.

-뒤지든가 안하고. 이기 뭐고? 살아야할 사람은 죽고 밥 축내는 빙신은 살아서 이 고생을 시키고-

 

애써가며 아기를 빼내려는 광수에미는 창호네가 지껄이는 말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고 무당도 두 눈을 광수에미의 손에 고정시킨 채 처음으로 보는 생명의 탄생을 두렵게만 보고 있다. 자신도 저렇게 태어났던가? 자신이 태어날 때 누군가가 저렇게 문밖에서 저주를 했을까? 아니면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기다렸을까? 털보무당은 물론 전혀 기억이 없다. 기억하기 시작한 것은 암자에서 승복을 입고 염주를 돌리던 보살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르던 때부터이다. 그때가 네 살 아니면 다섯 살이던가? 여자로 태어났지만 그 보살은 자신에게 늘 팔자라고 하는 말을 지껄여대며 굿을 가리키고 점괘를 일러주고 신을 모시는 것을 배우라고 다그쳤지만 단 한 번도 여자노릇 하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비록 모자란 을순이지만 그 대부분의 여자들이 겪는다는 여자의 길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비로소 처음으로 그 여자들이 감당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나왔심더! 보살님!-

애기를 양손으로 받쳐던 광수에미는 무당을 보며 일성을 질렀다. 광수에미도 감히 두려운 일이었던지 무난히 애기를 빼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소리로 대신하는 것이다.

-창호야! 가새 오데 있노? 가새 좀 가오니라! 탯줄 잘라야 된다!-

문밖에서 배를 문지방에 깔고 애쓰던 광수에미를 보고 있었던 창호어마이도 비로소 정신이 난 듯 화들짝 안방으로 들어가 녹 쓴 가위를 가져다 들이밀며 -아가… 살았나? 안 죽고?- 하고 묻는다.

창호어마이의 말에는 대꾸도 안하고 광수에미는 탯줄을 싹둑 자르고 애기를 들어서 보며

-째졌네, 째졌어. 그나저나 창호야, 아 좀 씻기라. 카고 보살님은 을쑤이 좀 깨워보이소!-

그러나 창호네나 무당이나 도무지 광수에미의 말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창호어마이는 방바닥에 놓인 핏덩이와 을순이를 번갈아가며 보다가 -뒤져뿌게 놔둬라 고마. 살아도 안 되는 것들이다- 하고는 봉당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먼 산을 쳐다본다.

무당은 그런 창호네를 보다가 무어라 말하려던 입을 다물고 오히려 핏덩이를 들어서 무릎에 올리며 -니는 을순이나 깨워라. 아가 나왔으이 정신 차리게 얼굴이라도 때리봐라- 하고 광수에미에게 시키며 애기를 조심스레 살핀다. 그러나 숨결도 잡히지 않는다. 언젠가 본 돼지새끼 생각이 난다. 무당은 옆에 놓인 함지박 속의 물에 손을 넣어보더니 창호어마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째려보며 -아무리 오뉴월이라 케도 이걸로 아를 씻기라고 갖다 줬나? 이것아- 하고는 자기 치마폭 한쪽을 잡고 조심스레 애기의 몸을 닦아 내린다.

 

-야, 야! 을순아! 정신 채리래이-

광수에미는 송장이 된 을순이의 뺨을 한 손으로 때려보며 채근해보지만 을순이는 아무 반응도 없이 늘어져있다. 광수에미는 한손을 을순이의 목에다 대고 가만히 숨을 죽이더니 -맥이 뛰긴 뛴다. 안 죽었다! 보살님, 아는 어떻십니꺼?-

몸을 돌려 앉으며 무릎위에 애기를 올리고 닦아내고 있는 무당을 향해 광수에미가 묻자

-그케. 아가 숨을 안 토하네.우짜지?- 

광수에미는 순간 눈을 강하게 뜨고 생각하더니 앙다문 입으로 -이리 줘보이소, 한 대 때리야 댈낑갑심더- 하고 애기를 받아서 거꾸로 들고 연한 궁둥이를 찰싹 때린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자 다시 손바닥으로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쳐대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광수에미는 애기를 방에 내려놓으며

-안될 성싶습니더. 보살님예-

 

길흉화복이 뭐더냐? 영화가 또 무엇이더냐? 한 생명이 이렇게 태어나도 아무도 반기지 않고 오히려 죽어주기를 기다리는 팔자는 무엇이냐? 하늘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비참한 장면이다. 털보무당은 광수에미가 방에 놓아둔 핏덩이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무한한 생각에 잠기는 순간 문밖에서만 있던 광수에미가 방안으로 확 들어와 -잘 죽었지. 잘 죽어. 살아서 뭐하구로?- 하면서 피로 얼룩진 을순이의 치마를 벗겨내더니 애기를 둘둘 말아서 을순이 머리맡으로 밀쳐버리고

-고마 나가이소. 방이나 닦아야겠심더. 피 냄시가 진동을 하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피로 흥건한 방에 퍼질러 앉아있는 두 여인에게 청호어마이는 대수롭게 말하자 그 말에 어이가 없는 듯 광수에미는 무당의 얼굴을 한번 보는데 무당도 창호네 말에 기가 찬 듯 광수네 얼굴을 보다가 둘의 눈이 마주친다. 

-이것아, 이것아-

무당은 그저 그 말만 연발하지만 다음 말은 없다.

-아이고, 인제 내도 모리겠다. 아는 나왔으이… 다 하늘에서 하는 일이제- 하고 일어서려다가 다시 한 번 을순이의 뺨을 쳐본다.

-을순아, 야야! 정신 채리라!-

 

봉당의 신을 돌려 신으며 비로소 허리를 펴고 삽작을 보니 동네 아낙 두어 명이 두런거리며 서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광수에미는 비로소 코끝에 미치는 피 비린내가 느껴지는지 손가락을 코에 대고 양쪽을 번갈아 가면서 코를 풀어내더니 삽작을 나서버린다.

털보무당은 창호네가 둘둘 말아서 을순이 머리맡에 놓아둔 치마 뭉치에 자꾸 눈길을 주며 일어설 생각을 안 한다. 머릿속에는 암자에 걸려있는 온갖 탱화 같은 어지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눈을 부라리며 양손에 창과 칼을 든 무장이 네 활개를 친다. 자비로운 부처의 머리위에 겹겹이 둘러싸인 고운 꽃들도 무수하다. 주위엔 구름도 둥실거린다.

 

-뭐합니꺼? 고마 일나이소예. 우짭니꺼? 치마가 다 배릿는데?-

송장 같은 을순이가 누워있는데도 창호네는 전혀 관심도 없다. 물론 죽었다고 치부하는 애기에게는 더더욱 미련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광수네한테 손을 잡혀 오기 싫은 창호네에 온 무당이 오히려 광수에미가 가고 없는 방안에 아직도 앉아있다.

창호어마이가 걸레를 들고 들어와 방을 닦기 시작해도 무당은 이리 저리 엉덩이를 들고 옮겨 다니며 창호네 걸레질을 피할 뿐 연신 눈길을 치마 뭉치에 둔 채 일어날 기색이 없다. 창호어마이가 오히려 이상한 생각이 든다. 

-보살님예, ! 와 안 가십니꺼?-

단호히 부르며 넋 나간 무당을 재촉하자 그서야 -그래! 그래. 우짜노. 다 팔잔데- 하고 치마를 걷어들고 일어서더니 나머지 방을 훔쳐대는 창호네를 향해 -너거 집에 술 있나? 내 한잔 도고!- 하고 나간다.

 

방을 다 닦은 창호어마이가 방에서 나오더니 마루에 걸터앉은 무당을 보며 -탁주가 있긴 있지만 이틀 전에 받아놓은 기라 초가 됐을 깁니더. 그거밖에 없는데-

먼 동산을 바라보며 앉아있던 무당은 눈길도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만

-괘안타, 그거라도 한잔 도오-

사발 가득 탁주를 들고 나온 창호네가 무당에게 사발을 건네주며

-잡술랑가 모리겠네. 초아제비가 됐을 낀데-

그러나 창호네 말에는 한마디 대꾸도 없는 무당은 사발을 받아들고 입으로 꿀떡꿀떡 삼킨다. 장정이나 한숨에 마실만한 큰 사발이라 무당은 반쯤 들이키더니 숨을 쉬느라 사발을 입에서 떼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끄윽 하는 트림이 나오더니 무당은 나머지 탁주를 다 마신 후 손으로 입을 닦고는 다시 을순이가 있는 방으로 고개를 돌려 본다.

 

삽작에 있던 아낙들도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고 남은 창호네는 빨리 무당이 가주기를 바라는 눈치지만 왠지 무당은 뿌리라도 내린 양 마루에 그냥 맥없이 앉아있다. 그 순간 무당의 귀에 마치 고양이 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먼 산에 두고 있던 눈길을 창호네를 향해 번개같이 돌리며

-니? 들었제?-

그러나 창호어마이는 영문을 모르는 눈치로 -예? 뭘예?- 눈이 왕방울만큼 커진 무당은 창호네가 되묻는 말에는 귀도 안 기울이고 후딱 을순이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두 손 두발로 방바닥을 짚고 무슨 소리를 탐지하듯 숨도 크게 쉬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 그런 모습을 방밖에서 보고 있던 창호네는 무당이 오늘따라 실성하다고 느낀다. 그 순간 무당의 귀에 이번에는 아주 똑똑히 그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뿐만 아니라 치마 뭉치가 움직이기까지 한다.

-그래!, 내가 잘못 들은 기 아이제!- 하고 치마뭉치를 조심스레 끌어당겨 풀어헤치는 무당을 보며 창호네가 -안 죽고 살았는기라예?- 하고 낙심인지 놀라움인지 말을 한다.

-천신이여, 지신이여, 삼신님이시여-

중얼거리며 무당은 풀어헤쳐진 치마 위에서 손발을 꼬무락거리는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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