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집사람에서 이웃으로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이상한’ 이사 이야기

이내 | 기사입력 2015/06/27 [11:06]

따로 또 같이, 집사람에서 이웃으로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이상한’ 이사 이야기

이내 | 입력 : 2015/06/27 [11:06]

※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  이사를 마치고 바라본 우리 동네 전경. 부산이 내려다보인다. (가운데가 필자)   © 이내

 

이사를 했다. 영국에서 돌아온 지 5년 만에, 부모님 집을 떠난 지 10년만에, 태어난 지 35년만에… 내 집이 생겼다. (아아!) 그런데 그 이사는 참 ‘이상한’ 이사였다.

 

‘공동 주거’라는 여행을 끝내고

 

지난해 네 명의 여자사람들과 공동 주거를 했던 기억은 나빴던 것보다 좋았던 것들이 훨씬 많아서 공연을 다닐 때마다 자랑을 했고, 집사람들에 대한 노래도 만들었더랬다. 확실히 여자들이 함께 사는 것에는 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들이 많았다. 자연스레 식탁에 둘러앉으면 이것저것 할 이야기들도 많았고 함께 나눌 음식도 넘쳐났다.

 

규칙 없이 얼만큼 살아지나 실험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 과정이 완벽했어! 라고 말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그때그때의 소통의 타이밍만 놓치지 않으면 무언가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겨났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과정’이라는 암묵적인 동의 때문이었을까, 그러니까 이 상태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라는 기본적인 생각은 우리의 시간을 어느 정도 ‘여행’처럼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녀들]  –이내 작사 작곡

 

몸이 밝은 그녀는 햇볕아래 빨래를 널고 고양이의 숨은 상처를 살피네

품이 너른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 그 사람의 지난 역사를 좇아가네

손이 깊은 그녀는 꽃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마음과 세계를 이해하네

 

그녀의 몸, 그녀의 품, 그녀의 손, 그녀들.

그녀의 시간, 그녀의 눈물, 그녀의 노래, 그녀들.

 

▲  한때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집사람들 사진 중에서.    © 이내

 

그러니까 그 ‘여행’은 끝이 있었다.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났고 그걸 연장하기에는 오래된 주택의 구석구석 탈이 많았다. 집 주인이 집의 상태에 신경을 써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좀 가까이에 살면서 ‘마을’처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가까이 지내던 친구네 부부가 사는 동네에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의 ‘이상한’ 이사가 시작되었다.

 

축제 같은 이사를 기획하다

 

그 동네에 미리 터를 잡은 친구들, 또 먼저 집을 구한 친구가 동네 게시판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계속해서 공유해주었다. 우리는 각자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부산이 내려다보이는(심지어 바다까지 보이는 곳도 있다) 높은 곳에 자리잡은 오래된 동네에는 비교적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는 집들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동네라서 그런지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고 살아온 집주인 어르신들이 반갑게 또 신기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르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혼자서 집을 알아보러 다니다 보니 이것저것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볕이 잘 드는지(산동네에서는 이것이 관건이다), 수도나 배관은 잘 되어 있는지(오래된 주택에 살며 배운 것), 그리고 함께 살 때는 몰랐던 각자가 집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 또 일을 처리하는 방식들도 꽤나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  이삿짐 정리    © 이내

 

시간이 걸리고 서로 발품을 열심히 팔았던 결과, 걸어서 5분 10분 거리에 각자의 집들을 구할 수 있었다. 꼭대기에 오래된 공원과 오래된 도서관이 있는 멋진(?) 동네에 대여섯 가구의 친구집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도 계속 이 마을로 집을 구하는 친구들이 늘고 있어서 몇 가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동네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엄청난 높이의 계단이다. 이런 곳에 어떻게 이사를 했지? 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싼 편인 것이고.) 그러니까 우리의 ‘이사’는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버금가는 작전을 필요로 했다.

 

물론 돈을 내고 이삿짐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겠지만, 무언가 ‘축제’같은 이사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날짜를 정하고 도움을 줄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혼자 지내는 삶, 누군가와 부대끼는 삶

 

이사란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것인데) 실질적인 노동과 일손이 많이 필요한 진짜 빡 센 일이었다. 한 집에 뭉쳐있던 여러 사람의 짐을 각자 싸고 또 버리는 일들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쉽지 않았다. 그것들을 분리해서 실어 나르는 것과 엄청난 계단을 지나야 한다는, 그러니까 순수하게 사람의 손이 닿아야만 짐을 옮길 수 있는 구간이 많고 길었다.

 

막상 일을 벌이고 나니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개미 군단처럼 구간을 나누어 짐을 옮겼다. 문제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가구들이었는데, 나는 이번에 짐을 나르는 남자사람의 등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커다란 장롱 아래에 들어가서 등으로 방향을 잡는 모습, 좁은 구간에 물건과 몸을 밀착시켜 빠져 나오는 모습은 기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이 동네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엄청난 높이의 계단이다.  © 이내

 

여러 사람의 힘과 마음이 들어갔던 이사를 제법 긴 시간 준비하는 동안, 약간의 삐걱거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마음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냥 돈을 내고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을 왜 ‘편리’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이 이쪽이 할 이야기가 많고. 많은 감정을 꺼내게 되고, 서로를 더 알아가게도 되고, 또 웃을 일도 울 일도 생기는 좀 사람냄새 나는 방식이었다고 느껴진다. 고마움이 쌓여서 무언가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것, 다음 번에 ‘만날’ 일이 생기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공연에서 공동 주거를 찬양하던 나는, 요즘 혼자 지내는 삶의 즐거움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또 언젠가 누군가와 부대끼는 삶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혼자 쉴 곳이 있지만, 5분 10분 거리에 있는 친구네 집에 밥을 먹으러 갈 수도 있고,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며 인사할 수도 있고, 필요한 물건을 빌리러 달려갈 수도 있다.

 

아, 최근에는 모여서 매실을 함께 담았는데 그렇게 김치도 된장도 고추장도 담그면서 새로운 실험들을 (삐걱거리면서도) 해볼 수 있기를 일단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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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ing 2015/07/18 [10:10] 수정 | 삭제
  • 친구들이랑 같이 이삿짐 정리하는 거 부러워요. 어느 영화에서 볼법한 장면인데 거추장스런 이사가 재미도 주고 추억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ㅎ
  • ㅁㄹ 2015/06/29 [16:34] 수정 | 삭제
  • 이내 님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그 상황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중독성있는 글이에요. 자기만의 집을 갖게 되신 거 축하드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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