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근처 할인마트에 다녀왔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형 할인마트라야 20-30분은 족히 걸어야 하기 때문에, 자주 가는 것은 아니고 한 번씩 필요한 일이 있으면 들르곤 한다. 어제도 만년필 잉크와 파일 몇 개를 사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 곳만 가면 필요한 것들뿐만 아니라 꼭 넘치도록 여러 가지 물건들을 사게 되는 것이 문제다. 더욱이 내가 그곳에서 사오는 물건들은 대단히 값 나가는 것도 아니고, 모두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거의 비슷한 값에 살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버스도 타지 않고 다시 걸어올 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거리며 돌아오면서야 내가 왜 이렇게 많이 샀나 꼭 후회를 하지만, 그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나의 버릇 중 하나다. 이런 버릇은 할인 때문이라기보다도 여러 가지 곁들여 주는 물건들에 현혹되어 덥석덥석 집어오는 것인데, 어제도 참치캔 6개를 사면 프라스틱 밀폐용기 두 개를 공짜로 준다는 기획상품을 덥석 사 가지고 왔다. 그리고 또 야외용 물컵들을 끼워준다고 해 마요네즈도 한 병 샀다. 이왕 살 것라이면, 공짜로 이렇게 끼워주는 것을 사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심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도 근처 한 오피스텔 모델하우스를 구경갔다가 밀폐용기 3개를 사은품으로 받아와 ‘이게 웬 횡재인가!’했었다. 아무튼 고무바킹까지 튼튼하게 둘러져 있는 밀폐용기들이 마음에 쏙 들어, 집에 돌아와서는 이런 것도 모르고 밀폐용기들을 공연히 돈을 주고 샀다고 후회하면서 내가 얻어온 것들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귀국해서 내가 가장 놀라는 것이 바로 이 플라스틱 사은품들이다. 프랑스에서의 유학시절, 밀폐용기가 귀한 탓에 나는 빈 고추장통이나 된장통들을 이용해 냉장고용 반찬통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조금 넙적한 병들을 버리지 않고 밀폐가 잘 되는 것이 필요할 때는 그것을 사용하면서 생활했다. 그 곳은 플라스틱 제품들이 특히 비싸다. 밀폐용기는 말할 것도 없고, 휴지통이나 양푼 등,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든 제품들은 다른 유리나 도자기 제품들보다 훨씬 비싸다. 예를 들어 화분의 경우, 플라스틱 화분이 흙화분에 비해 약 2-3배 가량 비싸다. 그러니 플라스틱 제품들을 끼워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이렇게 플라스틱 제품에 가격을 비싸게 매긴 것은 환경을 위해서라고 한다. 비싸면 사람들이 그만큼 잘 안 사게 되고, 그렇게 되면 환경오염을 좀 더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는데, 이러한 예상은 적중해서 그곳 사람들은 플라스틱 제품들을 그다지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한 일년 간 홈스테이를 했던 집 할머니가 내 물건들 중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 고추장 3kg이 담겨 있었던 빨간통이었다. 그리고 기숙사 친구들은 반찬이 담겨 있는, 내 빨갛고 노란 작은 고추장통이나 된장통을 보고 예쁜 통이라며 마음에 들어 하기도 했고, 나도 그것들을 도시락통으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살다가 귀국을 하니, 이곳에는 플라스틱이 넘친다. 나는 며칠 새 벌써 여러 개의 야외용 플라스틱 물컵들과 5개의 밀폐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아직도 프랑스에서의 생활습관을 다 떨쳐버리지 못하고 궁상스럽게 쓰고 있던 된장통들은 곧 버릴 것이고, 고추장통들과 빈 유리병은 앞으로 절대 모으지 않을뿐 더러, 내 찬장에는 이렇게 저렇게 얻을 플라스틱 제품들로 쌓여 갈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내게 이렇게 플라스틱 제품들이 얻기 쉽다고 하는 문제의식조차 둔감해지겠지. 그렇게 익숙해질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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