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인터뷰] 파기환송심 선고 앞둔 KTX열차승무지부장 김승하

나랑 | 기사입력 2015/11/18 [12:04]

비정규노동,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인터뷰] 파기환송심 선고 앞둔 KTX열차승무지부장 김승하

나랑 | 입력 : 2015/11/18 [12:04]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2004년, 코레일(구 한국철도공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4년간이나 농성을 벌였던 KTX 여승무원들. 우리 사회에 공공부문 외주화 문제의 심각성과 고용차별 이슈를 제기한 승무원들의 투쟁은 이후 법적 소송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그녀들은 여전히 투쟁 중이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승무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가 코레일이라고 밝혔던 1심과 2심 판결을 깨고, 코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져 이달 27일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KTX 여승무원들은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1심과 2심 판결에 따라 4년간 지급받은 임금에 소송 비용까지 더해 한 사람 당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3월에는 한 승무원이 이러한 처지를 비관해 목숨을 끊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막막한 마음을 안고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사무실에서 KTX열차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을 만났다.

 

▲ 전국철도노동조합  KTX열차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  ©나랑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조합원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지난 7일에 총회를 했어요. 총 33명 중에 27명이 모였어요. 대법원 판결이 나면서 법적으로는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예상했던 바에요. 각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견을 나누고, 앞으로 강도 높은 투쟁을 하자고 총회에서 각오와 의지를 다졌어요.

 

총회에 철도노조 위원장님이 오셨어요. 우리가 2006년에 파업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해고된 거잖아요. 지금까지 저희 마음대로 한 게 아니라 철도노조 지침에 따라, 철도노조 조합원으로 활동했던 거예요. 지금 1인당 8천640만원이라는 빚이 생겼잖아요. 그걸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철도노조가 같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철도노조 위원장님이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조합원들이 되게 많이 실망했어요. ‘끝까지 함께 하자, 우리가 책임진다’는 확답을 듣고 싶었는데 전혀 그런 말씀 없으셔서요.

 

우리가 2004년에 투쟁을 시작해서 4년간 싸우다가, 소송으로 가면서 많이 잊혀진 게 사실이에요. 4년 동안 누구 못지 않게 힘들게 싸웠지만, 잊혀지는 건 순식간이더라고요. 철도 조합원 내에서도 KTX 여승무원들의 싸움에 대해 많이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교류하는 활동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끝까지 싸우다 소송을 제기한 34명 중에서 한 분은 돌아가시고, 남은 분들도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인 거죠?

 

“주로 서울이랑 부산에 있는데 해외에 있는 조합원도 두 명 있고, 경기도 충청도 등 흩어져 있어요. 결혼한 사람이 많다 보니 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어서, 본인 의지만 가지고 싸움을 밀어붙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에요. 나중에 강제집행 떨어지게 되면 나는 싸우겠다 해도 가족들이 어떻게 나올 지 모르는 거고, 불안 불안한 건 사실이죠. 사실 엊그제 총회에서 울고불고 난리 났었거든요. 한 조합원이 그러는 거예요. 사망한 조합원한테 딸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가에 따라서 그 아이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고. 모이면 그 친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분은 지난 3월에 목숨을 끊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세상에는 늦게 알려졌죠.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도 한 달 반 뒤에야 알게 됐어요. 유족분들이 안 알려주셨어요. 어느 날 그 친구가 딱 잠적한 거예요. 연락처는 없는 번호가 됐고 갑자기 모든 게 끊어졌어요. 무슨 일이지? 하면서 수소문한 끝에 그 친구의 언니 연락처를 알게 돼 연락해봤어요. 그 때도 ‘병으로 사고가 나서 죽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셔서 정확한 사망 원인을 잘 몰랐는데 나중에 밝혀지게 된 거죠. 유족들이 노조에 대한 원망이 있어서 딸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를 싫어하셨어요.

 

유서도 없었어요. 그 친구는 우울증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제일 고민을 많이 했던 게 대법원 판결 이후 돈 문제였거든요. 워낙 남들한테 피해주는 거 싫어해서 혼자 그러다가…. 얼마 전 남편분이 순직자 조의금을 받으러 오셨어요. 철도 조합원들이 돈을 모아서 드렸는데, 하시는 말씀이 세 살짜리 딸이 처음엔 엄마가 더이상 오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찾지를 않더래요. 뭔가 느낌이 있는 거겠죠. 그런데 요즘 들어서 다시, 우리 엄마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게 보인대요. 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  1인시위 중인 김승하 지부장.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제공

-대법원 판결 이후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승무원들이 1인 시위도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워낙 오래 전 일이라서 그런지 ‘그때 다 해결된 거 아니야? 다시 이렇게 하고 있어?’ 놀라는 반응이 많아요. KTX는 계속 운행되고 있고 승무원들도 그 안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다 잘 해결돼서 일하고 있나 보다 생각하셨던 거죠.

 

냉담한 반응이 많아요. 다들 사는 게 어렵고 각박하고 제 코가 석자다 보니 남 신경 안 쓰는 거죠. 그런데 청년들, 대학생들이나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 저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비정규직인 거 알고 들어갔는데 떼 쓰면 정규직 되는 줄 아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에요. 충격적이었어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열차팀장은 안전 업무를, 승무원은 승객 응대 업무를 각각 독자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핵심 업무인 안전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승무원들에 대해선 코레일에서 ‘직접 고용’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거잖아요. 대법원은 ‘승무원들이 화재진압이나 승객 대피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했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코레일에서 승무원들에 대한 불법 파견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열차팀장은 안전 업무, 승무원들은 서비스 업무’ 이렇게 분리를 한 거에요. 같은 열차 안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너희는 다른 회사 사람이다, 서로 인사도 하지 말아라’ 이런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죠. 업무 매뉴얼을 전면 개정해서 승무원 업무 매뉴얼에서 안전 업무를 전부 삭제했고요. 화재 진압, 비상 사다리 설치 훈련 같은 게 없어졌어요. 그런데 승무원은 안전 업무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눈 앞에 승객 안전과 관련한 일이 닥쳤는데, 어떤 승무원이 ‘내 업무 아닙니다’ 손 놓고 있겠어요? 직접 응급환자도 치료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화재도 진압한 사례가 있거든요.”

 

-작년에 KTX 화장실에서 불이 났을 때, 여승무원이 소화기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는 ‘업무 매뉴얼을 어기고’ 직접 불을 껐는데, 이분을 코레일 측에서 포상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맞아요. 업무 매뉴얼을 어기고 (안전 업무를) 한 거죠. (웃음) 지금 ‘코레일관광개발’(외주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여승무원들이 철도노조에 가입해서 코레일관광개발지부로 활동하고 있어요. 가입할 때 설문조사를 했는데 ‘산업안전 관련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75% 가까이 ‘실제 교육 없이 자료만으로 교육을 진행했다’고 답했어요. 책 하나 갖다 놓고 서명 받은 거죠.

 

비상 사다리가 열차 5호차, 14호차에 있거든요. 그런데 교육을 제대로 안 받다 보니까 비상 사다리가 있다는 것만 알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모르는 거에요. 열차 바깥에 달려있는데 객실 안에서 비상 사다리를 찾고 있고…. 그러니 안전사고가 났을 때 신속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현재의 상황은 곧바로 승객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네요.

 

“그렇죠. KTX 열차 길이가 380미터고 좌석이 929개에요. 입석도 무제한 발행되거든요. 꽉 차면 천 명 넘게 탑승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열차에 공식적으로 안전 업무를 하는 사람은 열차팀장은 한 명인 거죠.”

 

-그럼 열차팀장이 열차 앞쪽에 있는데 뒤쪽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나요?

 

“한 십분 후에나 대응할 수 있는 거죠. 사람 스치고 문 열고 가고, 또 문 열고 가고….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늦을 수밖에 없죠. 사고가 나면 시간이 곧 목숨과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큰 사고 안 났으니까 괜찮지 않아?’ 이런 안일한 생각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안전 업무라는 게 경력이나 연륜도 필요하고,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으려면 그만큼 훈련이 잘 되어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이례적인 상황에 소화기 아무나 쓸 수 있는 거지’ 이러면서 안전 업무를 경시하게 돼요.

 

KTX에서 사고가 많아요. 아직까지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자잘한 사고가 끊임없이 거의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열차팀장님들이 철도 안에서 경력이 꽤 된 분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사고가 나도 바로 바로 위기 대처를 잘 하고 계시는데, 언제 큰 사건이 터질 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인 거죠. KTX가 2004년에 개통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때부터 프랑스에서 10년 묵은 열차가 넘어온 거였거든요. 열차 자체도 20년 넘게 노후되었고 불안 불안한 상태로 운행이 되고 있는데…. 모르겠어요, 큰 사고가 터지면 정신을 차릴까요? 세월호도 그렇게 해서 넘어갔는데, 얼마나 사람이 희생이 돼야 정신을 차릴지.”

 

-여승무원의 업무를 외주화한 이후 코레일은 인력을 계속 외주화하고 있지요. 선로전환 유지보수 업무와 차량 중정비 등 안전 관련 업무도 외주화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오면서 보니까 전기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철도노조 현수막이 걸려있던데요.

 

“네. 열차 검수 업무도 외주화되고 있어요. 전에는 열차 검수를 일주일에 한 번 했다면 점점 더 주기가 길어지는 거죠. 자주 할수록 경비가 많이 드니까요. 그만큼 안전성은 떨어지는 거고요. 내년에 개통할 수서발 KTX는 운전하는 기장 빼고 전 부문이 거의 외주화될 걸로 예상하고 있어요. 외주화되면서 급여도 낮아지니까 경력 있고 연륜 있는 분들은 나가버리고 사람은 계속 갈리고, 초보자들만 들어오게 되는 거죠.

 

또 외주 위탁 자회사와 (원청 회사 사이에) 서로 업무 교류가 있으면 불법 파견으로 법에 걸리니까, 그걸 피해 가려고 서로 소통도 잘 안 하면서 사고 위험은 점점 커져요. 2014년 상왕십리역 추돌 사고도 열차 신호 시스템이 외주화돼서 엉키다 보니까 사고가 난 거거든요. 모든 게 통합적으로 운영이 되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되는데, 여기 따로 저기 따로 이렇게 되니까.”

 

▲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고 코레일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시위중인 승무원들.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제공

 

-대법원 판결 이후 전국 각지에 있는 승무원들이 다시 결집하셨는데요, 장기간 싸움을 이어가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같이 하는 친구들 때문에 못 그만두고 있는 거죠. 누구도 투사이거나 무슨 사명감을 가지고 ‘이 투쟁을 해야겠다’ 이런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우리의 주장이 옳다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버틸 수 없는데, 같은 목표를 가지고 싸우는 동료들이 있잖아요. 항상 옆에 누가 있었고 그 친구를 외면하고 나 혼자 발 뻗고 잘 수가 없는 거죠. 단순한 직장동료가 아니거든요.

 

350명이 시작했는데 34명 남았으니까 10% 남은 거잖아요. 90%가 그만뒀는데 (그들을) 배신이라고 생각은 안 해요. 어떤 사람은 이만큼 견딜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만큼 견딜 수 있는 차이인 거겠죠. 그나마 아직 체력이 좋은 애들만 남아있는 것 같아요.(웃음)”

 

-2004년 당시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은 공공부문의 외주화와 고용차별에 맞선 상징적인 싸움이었잖아요. 10여년이 흘렀는데, 이제는 정규직 일자리가 거의 없는 세상이 됐네요. 그러다 보니 이 사건을 잘 모르는 청년들에게는 ‘왜 너희만 정규직으로 해달라고 해?’ 하며 승무원들이 특혜를 바라는 것처럼 왜곡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투쟁이라는 게 시끄럽게 하고 신경 쓰이게 하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거잖아요, 솔직히. 그러다 보니 저희를 비판하는 분들도 있는데, 알려고 하는 조금의 노력을 가져주시면 좋지 않을까 해요. 최근에 <송곳>이란 드라마가 나와서 좋은 것 같아요. 그거 보고 제 생각한다는 친구들도 있고요.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잘 되면 여러분의 가족이, 자녀가 잘 되는 거고, 우리 사회가 잘 되는 거고, 궁극적으로 당신도 행복해질 수 있는 한 걸음이 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찬가지로 ‘나만 아니면 돼’ 하고, 나만 뭔가 가지고 있고 나만 행복하다고 해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다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잖아요. 이 사회에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파이가 커져서 나에게도 좋은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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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15/11/20 [17:33] 수정 | 삭제
  • 벌싸 10년 전이군요. 승무원들이 많았는데.. 씁쓸힌 대한민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게 됨
  • j.y 2015/11/19 [15:16] 수정 | 삭제
  • 진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구나. 공기업임에도.... 시민의 발이 어쩌구하면서.. 안전에 무책임하고.. 싸게만 부리려고 하니.. 그 부담은 다 누가 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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