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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를 끼칠 수 있는 용기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새해 공연을 준비하며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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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2015년이 지고 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정리되고 또 새로운 해를 기대하는 이맘때의 분위기를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자꾸만 흐트러지는 거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서도, 평소처럼 환기가 되지 않고 머리가 맑아지지 않았다. 감정이야 늘 기복이 심하니 ‘음~ 지나가겠지’ 하고 기다리다 보면 돌고 도는 기운이 찾아오곤 했는데, 이번은 달랐다. 불안이 자리잡은 곳에 기다림은 어울리지 않았다.

 

제법 열심히 달려온 한 해였다. 2집 앨범도 만들었고, 이리저리 공연도 다녔고, 작은 책도 한 권 만들었다. 6개월간 꾸준히 두 가지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그에 따른 금전적인 보상도 그 어느 때보다 괜찮았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사귀고 함께 재미난 일들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족감보다 불안이 더 크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한동안 그렇게 맥이 빠져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새해 공연 하나를 준비하며 내 불안의 이유를 조금 짐작하게 되었다.

 

2016년의 첫 공연은 제주에서 한다. 이야기는 지난 5월로 거슬러가게 되는데, 그 때 받은 메일 한 통에서 시작한다. 제주에 살고 계신 한 가족이(냉이 달래 감자네 가족이라고 소개해주었다) 지인을 통해 내 2집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앨범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며 한 곡 한 곡에 느낀 감상을 적어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낯설고도 신기했고, 한동안 기분이 들떠서 이리저리 자랑을 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앨범을 다섯 장 주문해주셨는데 앨범을 받게 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들이 마치 나직하게 그들을 부르듯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음악가 시와와 선경의 이름도 있어서 쑥스러운 마음으로 사인을 했다!) 컴퓨터로 읽는 메일임에도 글자들이 또박또박 써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꼭 제주에 가서 만나 뵙고 직접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다고 답장을 했다.

 

올해는 작년처럼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부산에서 지내게 되어 제주에 갈 기회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제주의 그 감자네 가족은 지인의 카페를 내년 1월까지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리고 두둥, 드디어 제주에 가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장소는 감자네 가족이 잠시 맡고 있는 카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가족과 친분이 있었던 음악가 시와, 선경과 함께.

 

▲  2016년 1월 8일과 9일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열릴 공연 <따뜻한 시도> 포스터   ©Chaaalk

 

그리고 나는 이분들에게서 처음 받았던 메일의 글자들처럼,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간 여러 공연을 만들고 경험해 보았다고 어느새 효율적인 방식을 좇고 있는 내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두근두근 조마조마하며 일정을 맞추고,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가장 최선이 무엇일까를 조심스럽게 고민하는 모습이 이제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공연이라는 결과물보다는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비밀스럽고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조금씩 잊어갔던 것이다.

 

언젠가 ‘폐를 끼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폐를 끼쳐 온다고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은 그 용기로 나는 노래여행을 시작했고 수많은 폐를 끼치면서 조금씩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 힘이 생기자 다시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고 있는 내가 보였다.

 

최근 겪게 된 불안한 마음에 완벽한 해답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폐를 끼칠 용기를 내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채우려는 마음이 효율과 시스템 사이 사이에 스며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2016년 1월 8일과 9일 제주도에서 공연을 한다, 이런 문장에서는 그 사이에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노래를 듣고 감상을 편지에 전해준 마음, 음악가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마음, 함께 공연의 크고 작은 것들을 준비하는 마음, 예쁜 포스터를 만들어준 친구에게 기꺼이 폐를 끼치는 마음, 그리고 그 시간을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도.

 

감자네 가족은 선경과 함께 무대를 어떻게 꾸며볼지 이리저리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일찍 제주에 찾아가서 그간 내가 잃어버린 마음들을 조금 더 골똘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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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26 [15:51]  최종편집: ⓒ www.ildaro.com
 
무지개 15/12/30 [11:38] 수정 삭제  
  따뜻한 시도라니, 제목도 참.. 좋네요. ^^ 이내님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 제주 공연도 즐겁고 이야기가 많이많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길 바래요.
냉이 16/01/15 [08:51] 수정 삭제  
  어머, 이내가 공연 전 올린 칼럼을 이제야 봤어요. 이내 시와 선경이 함께 한 따뜻한 시도는 정말로 눈물겹도록 행복하고 아름다웠어요. 그 시간을 감자네가 함께 준비할 수 있어 정말 기뻤어요. 이젠 부산으로 돌아가 일상의 시간에서 이내가 꿈꾸던 그 따뜻한 시도들을 하나하나 해가고 있겠네요. 제주에선 공연 뒤로도 정신없이 보내었어요. 공연 담담날엔 감자네 집 이사가 있었는데, 선경네와 시와도 같이 이삿짐을 나르고 부리고 (뮤지션들을 일꾼으로 ^^), 시와는 그러고도 이틀을 더 감자네 집에서 머물며, 공연 관객으로도 왔던 미용사 분 가게에 가서 시와 달래 감자가 다 머리를 깎기도 하고 ^^ 암튼 감자네는 아직도 그 이틀의 공연이 끝난 것 같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이렇게 공연 전에 쓴 이내의 글을 보다보니, 공연을 준비하던 그 시간들, 마음들까지 떠올라 또다시 아련하고 그리워지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인사를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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