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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능 장애, 세 개의 가설과 3천조각 퍼즐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③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하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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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짊어지고 국경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삶의 변화와 사회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천해가는 여정이 전개됩니다. –편집자 주

 

나의 ‘마음 금고’와 치료사 베아트리체

 

나는 요즘 ‘마음 금고’를 탐방한다. ‘마음 금고’에서는 시간 개념이 직선적이지 않고, 공간은 한계를 알 수 없이 무한하다. 이 금고의 일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물(物)화된다. 나는 물질세계에 열리는 이 작은 틈새를 놓치지 않으려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적어도 한 시간 전부터는 혼자가 되어 금고 주변을 서성이며 시계가 째각대는 것을 바라본다. 속으로는 한 주 간의 내 삶을 되감기한다. 되감기 중 툭 걸리는 것이 있으면 노트에 휘갈겨 적는다. 그리고 3분 전, 첩보요원이 본부를 찾듯 어느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 딸깍, 숨죽이며 열리는 철문 앞에 선다.

 

철문을 통과하면 늘 같은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는 베아트리체가 보인다. 45도 각도로 위에서 아래로 불쑥 내미는 오른손, 영화 타이타닉 포스터 그리고 레몬생강차의 주인, 그녀는 나의 금고지기다. 베아트리체와 나는 내 ‘마음 금고’ 속에 있는 한 뭉치의 심하게 얼킨 실타래를 풀고자 만났다.

 

치료사와의 면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심리치료에서 치료사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 면담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우선 나의 치료사 베아트리체의 기본 자세는 늘 공감과 격려이다. 내 말에 대해서 “~해서 상처가 컸겠네요”, “그 때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어요” 라고 반응하지 “어떻게 ~할 생각을 했어요?” “~의 입장은 어떨지 생각해봤어요?”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치료사가 ‘무조건 내 편’이어서, 혹은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의도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내가 들려주는 내러티브가 철저히 내 입장에서 재구성된 기억이므로 묘사의 정확성이라든지, 행위의 옳고 그름이나 결과 따위가 무의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그 당시에, 그리고 지금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느냐가 그녀의 관심사이므로, 내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말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그녀는 필요한 정보를 더 모으기 위해 중간 중간 질문을 한다. “그 때 ~하고 싶었는데 왜 안했어요?” “그래서 OO가 ~하니까 기분이 어땠어요?”와 같이, 생각과 감정에 대한 추가 질문들이 많다. 내가 충분히 할 말을 쏟아냈다고 생각되면 그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방금 언급된 사건과 거기 등장한 사람, 행위, 감정을 재구성해서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심리치료는 과학적 분석 과정에 기반한다

 

하지만 이렇게 단일한 내러티브에 대해 따로 따로 접근한다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 사람의 일관된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보다 통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분석이 개입된다.

 

심리치료는 임상 심리학의 한 갈래이다. 여느 심리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심리상태를 진단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수많은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내담자가 어린 아이이거나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태라면 이론에 대해 설명해주거나 분석 내용을 공유하지 않고 치료사가 단독으로 ‘연구’를 해나가겠지만, 성인 내담자에게는 치료 단계별로 설명을 해주고 동의를 구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 제프리 영 박사가 1980년대 중반에 개발하기 시작한 ‘스키마 요법’에 쓰이는 설문 형식 도표. 

왼쪽의 이미지는 심리치료가 과학적 분석 과정을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 도식은 제프리 영 박사가 1980년대 중반에 개발하기 시작한 ‘스키마 요법’에 쓰이는 설문 형식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어떤 모습의 아이였는지(무기력하거나, 화를 내거나, 자기 방어적인) 그 당시 받았던 처벌이나 동기 부여가 무엇인지, 억압 기제와 그에 대한 소극적/적극적 회피 방식은 어떠했는지, 보상 기제는 무엇이었는지 적게 되어있다.

 

용어가 어려워 보이지만, 치료사가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내담자와 대화를 통해 같이 작성한다. 이 요법은 성격장애 치료에 많이 쓰이며 인지행동요법, 정신분석이론, 애착이론, 게슈탈트 요법 등에 영향을 받았다. 과거 만들어진 부정적인 스키마(생각과 행동패턴)에 의한 기억과 감정, 대응방식을 없애거나 바꿔서 현재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스키마를 정립하는 게 목표라 할 수 있다. 최소 25회에 걸쳐 진행한다. (Dr. Matthias Fünfgeld, 2013)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감정, 게다가 한 사람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을 가지고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특정 모델과 이론을 적용해 분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좀 차갑고 낯설게 느껴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심리치료에서 분석이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할 줄 몰랐다. 게다가 내가 그 과정을 다 알게 될 거라고도 예상 못했다. 직업이 연구자라서 과학적인 개념이나 이론에 친숙한 나로서도 정작 나를 연구하자니 막막하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3000조각 퍼즐을 맞추는 숙제를 하듯

 

내 경우에는 출발점이 되는 연구 질문과 목적이 비교적 뚜렷해서, 전반부의 과정이 꽤 단축된 것 같다. ‘성기를 삽입할 때 왜 통증을 느낄까?’가 질문이고,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게 목적이다. 여기서 전제는 해부학적 신체 기형이 없으므로 심리적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것. 이미 두 번째 만남에서 치료사 베아트리체는 세 가지 가능한 가설을 언급했다.

 

1) 어린 시절 성폭력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신체적 제약을 준다.

2) 성기 삽입에서 몇 번 통증을 느끼자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켜 성기 근육이 수축, 긴장한다. 수축 상태에서는 삽입이 어려워 통증을 느끼게 된다. (vicious cycle, 악순환)

3) 성기 뿐 아니라 신체가 전반적으로 이완(relaxation)을 잘 하지 못한다. 이 경우 몸과 마음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 상태인 것.

 

세 가지 다 그럴 듯하다. 하지만 과연 어느 것이 진짜 원인일까? 한 가지가 지배적인 원인인지, 아니면 세 가지가 다 원인인지? 전부 다 문제라면 어떻게 뒤섞여 영향을 주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참 답답하다. 마치 3000조각 짜리 퍼즐 숙제를 받고 혼자 방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3000조각 퍼즐 게임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큰 막막감을 주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재미와 보람이 있는 만큼 짜증도 많이 나고 자주 막힌다는 것을. 박스에 완성그림이 이미 나와 있듯이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고 있고, 퍼즐 조각에 인쇄된 그림 일부가 단서가 되듯 내게 수많은 생각과 감정의 조각들이 있다. 언젠가는 이 어려운 숙제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아주 많은 품이 든다.

 

성폭력 트라우마는 사라진 것일까?

 

그런데 ‘전반적인 신체 이완 부족 및 스트레스 상태’(3번)라는 가설은 좀 새로웠다. 되돌아보니 그 동안 나는 줄곧 성폭력 트라우마(1번)와 통증 회피 악순환(2번)만을 내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두 번의 성폭력 사건이 내게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 특히 남성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감이나 경계심을 준 건 분명하다. 그 인식은 ‘이 세상에는 성폭력을 휘두르는 위험한 남자들이 많다’, ‘남자는 누구나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어서 쉽게 믿으면 안 된다’, ‘남자들은 성욕을 해소하려고 여자들을 이용한다’, ‘남자들은 대부분 포르노를 보면서 가학적인 섹스를 접하고 직접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자가 섹스를 하면서 느낄 수도 있는 불편이나 아픔, 두려움을 남자들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성폭력 경험이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상황 속에서 내가 느꼈을 감정(무력감, 공포감, 초조함, 수치심, 불쾌감)은 사실 희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의 장면을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고, 사람들과 성폭력을 주제로 대화를 하면 내 경험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다. 그때 부정적인 감정까지 딸려 나와서 말할 때 고통스럽거나,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내게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그림(그리스 신화 속 여자괴물 메두사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한 작품)과 사진들(샤르트르와 계약결혼하고 자유연애를 실험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 우측은 탄츠테아터라는 현대무용 장르를 개척한 피나바우쉬 얼굴이 있는 우표)  ⓒ하리타

반면, 그 경험은 나에게 있어 페미니스트가 된 동기이자 명분으로 작용한 것 같다. 십대 후반 처음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희열을 느꼈던 것을 시작으로 나는 지난 10여 년간 페미니즘과 관련된 거라면 책, 모임, 영화, 강연, 집회, 칼럼, 서명운동 등을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내내 설명을 찾아 다녔던 것 아닐까.

 

나는 왜 마초 남자가 지나가기만 해도 이렇게 화가 날까. 영화에서 본 강간 장면은 왜 잊혀지지를 않고 따라다닐까. ‘상황을 주도하고 여자를 구슬리는 남자와, 남자를 칭찬하고 그들 뜻에 동조하는 여자’ 같은 구도는 왜 이렇게 나를 불편하게 할까.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는 고민들….

 

아마 내게는 내가 겪은 일과, 내 마음과 몸의 반응에 대해 납득한 만한 설명이 절실했을 것이다. 설명이 되면 나는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평가하고 나아가 주도할 수도 있으니까. 또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곳을 감별하거나 직접 창조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페미니스트로의 나의 정체성-의견-입장이 형성되어 왔고, 성폭력 경험은 늘 중요한 레퍼런스(참조, 기초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 봐, 나도 이런 일을 겪어봐서 아는데 끔찍해. 쉽게 극복이 안 돼. 그리고 이렇게나 흔한 일이야. 나의 분노와 혐오는 정당해.’

 

아직 치료사에게 직접적으로 의견을 묻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위와 비슷한 관점에서 내가 꽤 ‘건강한’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보는 지도 몰랐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트라우마를 내면에서 처리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트라우마로 인한 억압은 사라진 것이고, 억압에 의해 이상 증세가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데 사는 게 원래 다 힘들잖아요

 

통증 회피 악순환(2번) 가설은 어떨까. 이 가설이 맞다면 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아프지 않은 삽입섹스의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윤활제(lubricator)를 써봐서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내고, 섹스가 더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거나 하는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하는데. 물론, 많이 해봤다. 현재는 치료사의 권고에 따라 삽입섹스가 ‘금지’된 상태다. 좀 우습게 들리지만 그게 일반적인 수순이라고 했다. 뭔가 적극적인 행동으로 변화를 꾀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

 

베아트리체는 오히려 세 번째 가설, 긴장완화와 스트레스 해소 부족을 매번 강조한다. 그녀는 많은 남성들이 섹스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나 분노 조절을 하므로, 섹스하기 싫은 심리 상태라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는 사정을 통해 공격성을 일으키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내릴 수 있다는 생물학적 설명이 뒷받침한다.) 그러나 보통 여성들은 심신이 편안하고 여유가 있을 때 성욕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즉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뭐, 여기까지는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런데 ‘마음의 여유’라는 건 정말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이라 잘 와 닿지 않는다. 게다가 야근과 경쟁, 의무가 많아서 늘 몸도 마음도 과로한 한국 사회에서 ‘마음의 여유’가 넘치기는 쉽지 않다. 꼭 한국 사회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다들 그렇다. (한국보다야 낫지만 독일도 만만치 않게 살기 힘들다는 걸,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 <심리사회> 등의 저서에서 낱낱이 서술하며 신랄하게 비판해서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래도 현대 여성들이 이런 상황 때문에 성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온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그래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그 때 그 때 풀어주고 섹스를 할 여유를 만들도록 해보라는 그녀의 조언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차라리 내 성격을 문제 삼는다면 좀 더 납득이 갈 지도 모른다. 나는 매사에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놀 때도 열심히 의미 있게 놀아야 하고, 모처럼 일정이 없는 휴일에도 가만히 쉬기보다는 멀쩡한 가구 배치라도 싹 바꾸는 좀 피곤한 성격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것 때문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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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25 [17:12]  최종편집: ⓒ 일다
 
두런두런 16/02/25 [19:51] 수정 삭제  
  매회 흥미진진하네요. 숨죽여 읽게 되요. 두번 세번.
혀니 16/02/26 [08:11] 수정 삭제  
  긴 글을 단숨에 읽어내리게 하는 마력 있는 글. 연재 잘 보고 있습니다!
딸기 16/02/27 [21:16] 수정 삭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일케 공감이 되는 걸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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