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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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나를 데려가는 곳으로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집에 이르기까지③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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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모든 탐험의 끝은
출발한 그 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비로소 처음으로
그 곳을 아는  

- 엘리어트

 

깃들 곳도 돌아갈 곳도 없는

 

놀랍게도 수십 년을 산, 서울 어디에도 발붙일 땅이 없었다.

 

가야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아무도 날 모르는 익명의 도시로서 서울을 좋아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해서 돌아갈 데가 없는 곳이 서울이었다. 해마다 오르는 전세 값은 서울의 변두리에서 변두리로 떠돌게 했다. 먼 거리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직장을 다녔다. 언제나 피곤하고 지쳤다. 이웃을 만들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아파트 옆 호에 누가 사는지 안 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딘가에 정 붙일 ‘나만의 장소’를 만들 여유 같은 건 더더욱 없었다.

 

그곳에서 수십 년 직장을 다녔다.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살며 아이를 길렀다. 그런데 직장은 그만 뒀고, 아이는 자랐다. 친구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길을 따라 갔다. 연인과 함께 공들여 만든 집이 있었으나 채 누려보지도 못했다. 욕망에 사로잡혀 집도 연인도 팽개치고 허둥지둥 지리산으로 떠났다. 집은 재개발로 무너지고, 관계 또한 무너졌다. 사람도 공간도 깃들일 곳 없는 수십 년의 세월이라니…

 

문득 이혼을 하고 살 곳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거대한 서울 어디에도 마음 붙일 ‘한 점 땅’이 없다는 사실에 오스스 오한이 서렸었다.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갑자기 발밑에서 푹 꺼져 버리는 듯한 공포. 겨울도 아닌데 윗니와 아랫니가 덜거덕거리며 부딪혔다. 낯선 거리 시멘트 바닥 위에서 넋 나간 사람처럼 서성거렸다.

 

삶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인간이 기대는 곳은 오래된 진부함인지도 모른다. 가장 원초적인 장소에 대한 그리움. 짐승들이 자신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찾아드는 보금자리 같은 곳. ‘고향’이라는 언어가 막막한 가슴에 떠올랐다.

 

그러나 내겐 고향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떠돌아다니며 자랐던 강원도 태백산맥 아래 광산촌 마을들은 광산이 폐광되면서 마을들도 사라졌다. 마을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돌아가고 싶은 땅이 아니었다. 황량하고 쓸쓸한 땅이었다. 쓰라린 기억의 공간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었다.

 

▶ 광산촌.  1980년대 강원도 정선의 한 광산마을.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평생 ‘꽉’ 쥐고 있었을 주먹이 풀리는 순간

 

그 때문이었을까, 내 것 같지 않은 어떤 겸허함이 너덜너덜해진 내 몸과 마음을 감싼 것은.

 

내 안의 괴물(아귀)을 만나고 돌아갈 곳도 없는 그 자리에서 인간다움과 이상주의라는 고상한 가면을 쓰고 욕망의 질주를 하던, ‘그 잘난 나’는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평생 ‘꽉’ 쥐고 있었을 주먹이 풀리는 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링 위의 권투 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다가 무릎이 꺾이고 등이 휘어지면서 쓰러질 때, 사각의 바닥에 닿아 영영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음을 알게될 때,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리고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 짚단처럼 가벼워졌을 때, 이런 느낌이 올까.

 

허탈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한 어떤 비극적 평화감이 왔다. 아주 낮아져서 더 낮아질 곳이 없는 곳에 쓰러져 생애 처음인 것 같은 평화를 느꼈다고 해야 하나. 갈 때까지 가서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져 삶 앞에 항복하는 자의 겸허함이 왔다고 해야 하나.

 

“제가 할 것은 다 했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참회가 내 안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영웅 스토리’를 쓰고 있었던 것일까

 

비로소 나는 ‘내가 주장하던 나’를 내려놓고 ‘삶’이 나를 데려가는 곳으로 갈 준비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삶을 산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스토리’를 살았는지 모른다. 나는 한편의 영웅 스토리를 쓰고 싶었던 것일까? 내 삶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던 것일까? 모든 영웅 스토리에는 공통적 서사가 있다. 고귀한 신분의 자손이지만 비정상적인 출생을 한다. 고난과 위기를 겪다가 조력자를 만나 고난을 극복하고 영웅이 된다.

 

나는 내 불행으로 영웅이 되고 싶었다. 불행과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위대하다. 나는 내 삶의 불행을 과장하고, 삶의 고통스러운 면에 몰두했다. 삶이 처절하면 할수록 ‘스토리’는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 마련이므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정지영 감독, 1994)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 중독되어 삶이 실종되어버린 주인공. 무슨 말을 해도 영화대사고 어떤 행위도 영화 속의 행위인, 영화와 자신의 경계가 허물어져 폐인이 되어버린 사내. 삶도 언어도 잃어버린 한 사내 이야기.

 

나 또한 내 ‘이야기’에 빠져 ‘삶’이 실종된 것이었을까?

 

▶ 땅.  ‘하늘’에서 내려와 비로소 처음으로 ‘땅’을 알게 되다.    ⓒ 김혜련

 

허구를 향한 추구가 끝난 자리,
거대한 정신적 관념과 환상을 내려놓은 그 자리,
그곳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이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와 비로소 처음으로 그 ‘땅’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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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30 [12:57]  최종편집: ⓒ 일다
 
jin 16/04/01 [13:23] 수정 삭제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리는 그 순간 비로소 내가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감 많이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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