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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자급자족’ 꿈꾸며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작업실이 생겼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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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떠돌이 음악가의 작업실 

 

▶ 작업실 ‘따뜻한 시도’ 내부 모습.  ⓒ이내

작업실이 생겼다. 부산 원도심 중앙동에 예술인들에게 작업실을 지원해주는 ‘또따또가’라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3년 주기로 새로운 지원자를 받고 있고 올해가 새로운 입주 작가를 뽑는 시기여서 부랴부랴 신청했는데 선정이 됐다. 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목적 없이 3년쯤 이리저리 노래하러 다녔더니, 어느새 이력서에 채울 내용이 길어져 작업실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떠돌이 음악가에게 작업실이 어울릴까? 나만의 작업실이라고 생각했다면 지원하지 않았을 거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무언가 시도하고 싶은 것들-전시도 좋고 공연도 좋고 일상에서 작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그런 장소를 만드는 꿈이었다.

 

그 후 10년도 넘은 지금 나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은, 나에게는 장소를 만들어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꿈을 조금씩 실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장소를 꾸리는 데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나는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기댄다면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중앙동 40계단 언저리 ‘따뜻한 시도’

 

작업실은 한국전쟁 중에 부산으로 피난을 왔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로 약속했던 장소였다는 중앙동 40계단 언저리에 있다. 엄청 조그마한 공간이 3층까지 이어져 있는 재밌는 구조의 건물이다. 두 평이나 되려나, 정말 작은 자투리 자리에 만들어진 이 건물의 1층 ‘마중’은 부산의 문화예술정보를 모아둔 ‘또따또가’ 공공의 공간이다.

 

꾸불꾸불 위태해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작은 공간이 바로 내 작업실 ‘따뜻한 시도’이다. (이 이름은 동네 고양이 이름에서 나왔다고 지난 칼럼에 소개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한 층이 더 있는데,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폐허의 공간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가능하다면 나는 그 건물을 통째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가까이서 온기를 더해주는 동네 친구들과 테입 컷팅식 놀이.  ⓒ이내

 

엄마는 내가 작업실이 생겼다고 하니까 무슨 장사하는 가게라도 생긴 것처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이제 우리 딸이 정착해서 돈을 벌려나 생각하시나보다. 지하철역에서도 가까우니, 주변에 가난한 예술가 친구들이 거기서 뭐라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게도 분명히 있었는데, 역시 나는 돈을 버는 방법은 아무리 궁리해봐도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싶은 짓궂은 고집이 얼마나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지. 그래도 ‘따뜻한 시도’라고 이름붙인 것처럼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시도하고픈 것들이 마구마구 일어나는 장소가 되길 소망한다. 지난 몇 년간의 나의 작은 시도들이 나에게 ‘음악가’라는 이름을 주어 그렇게 살아가게 만들어 준 것처럼.

 

‘따뜻한 시도’라는 이름을 함께 지은 나의 ‘2015년의 귀인’ 친구가 이번에도 엄청난 일을 해 주었다. 장소의 로고를 만들고 실내를 꾸미는 크고 작은 일들을 ‘놀이’라고 여기며 나와 함께 놀아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처 인쇄골목을 중심으로 친해진 독립 출판사와 독립 서점 친구들도 손과 마음을 보태주었다. 이들은 허술한 장소에 자주 들러주어 온기를 채워 주기도 했다.

 

한 달에 한 권 ‘이내책방’

 

먼저 내가 하고 싶은 따뜻한 시도는 ‘이내책방’이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골라 그 책을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다시 쓰는 실험을 하고 싶었는데 일단은 로고부터 만들었다. 그리고 4월의 책으로 진주의 헌책방에서 발행된 <소소책방 책방일지>를 골라서, 저자인 책방의 방주님도 모셨다. 커다란 행사는 전혀 아니었고, 내 실험의 첫 발을 응원하러 진주에서 와 주신 것이다. 도움을 준 친구들을 모아 그저 고마움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아직도 실험 단계지만, 뭔가 ‘짠!’하고 만들어지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씩 소심하게 한심하게 깨작깨작, 뭐라도 계속하고 다시 하는 것이 목표다.

 

▶ 집에서 손으로 스무 권쯤 만든 <월간이내> 이내책방 이야기와 이내의 4월 일정을 모아둔 작은 잡지다.  ⓒ 이내

 

작업실이 생긴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장소를 꾸리는 것도, 지키는 것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정말 한심한 수준이다. 하지만 누군가 와서 뭘 한다고 하면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뻐진다. 친구들이 모임 장소로 쓰기도 한다. 심지어 혼자 와서 시간을 보내고 기타 연습을 하겠다는 메시지가 와도 두 팔 벌려 대환영이다. 4월은 공연과 행사가 많아서 부산에 계속 머물지 못해, 장소를 비워두는 것에 전전긍긍하던 참이었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해도 ‘따뜻한 시도’에 가장 커다랗게 그려놓은 생각은 ‘도시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함께 모으는 것’이다. 누군가가 가진 잔재주라든지, 지구를 아끼는 방법들을 나누는 시도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가난한 우리가 자급하고 자족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모자라더라도, 계속해서 함께 만들고 찾고 나누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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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20 [10:01]  최종편집: ⓒ 일다
 
까망 16/04/20 [13:10] 수정 삭제  
  우와 축하합니다! 이런 공간이 돈이 될 일은 없는 거 같지만 돈 때문에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된다면 그것으로도 기쁜 일이죠. 부산 계단길 언저리에 찾아가보고 싶네요. ㅎㅎ
spring 16/04/22 [15:46] 수정 삭제  
  따뜻한 시도 가보고잡네요~ 재밌는 시도 마이 벌이시길~
구월 16/05/01 [20:43] 수정 삭제  
  자알살고계시네요따뜻한 시도.. 멋진 이름입니다 행복한 응답이 뒤따를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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