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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 터를 잡을까?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집을 짓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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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내 안의 모든 여자들이 환호성 치는 소리

 

백일의 칩거 동안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먼 곳의 북소리 같기도 하고, 희미한 함성 같기도 한 소리.

 

여자들이었다.

 

집 밖에서 울던 아이와 집의 온기(溫氣)가 그리워 남의 집 창 앞을 서성거리던 소녀, 집은 누군가와 함께 짓는 거라고 굳게 믿었던 젊은 여자와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 나이 든 여자와… 내 안의 모든 여자들이 해원 굿을 하듯 함께 환호성을 치며 외치는 게 집이었다. 머리를 풀고 깃발을 날리며 북을 울리고 있었다. 집을 짓자, 이곳에 집을 짓는 거다. 평생 없었던 집을, 평생 그리워했던 집을, 나의 우주를 만드는 거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 경주 지도. 경주는 서울 면적의 배가 넘는 큰 땅이다. ⓒ 김혜련


서점에서 경주 지도를 한 장 샀다. 제법 두툼한 질감이 손안에 뿌듯하게 잡혔다. 경주는 서울 면적의 배가 넘는 큰 땅이다. 농산물 수확량이 전국 몇 순위 안에 드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땅이다. 세계에서 천 년 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은 경주와 로마밖에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듯 경주는 천혜의 자원을 지닌 땅이었다. 관광지로 알려진 일부 장소를 벗어나면 넓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고도(古都)의 모습을 도처에 간직하고 있었다.

 

경주의 어느 곳에 터를 잡을까? 살터를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 지도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신대륙을 개척하는 탐험가처럼 골몰했다. 시내를 벗어난 지역들을 손가락으로 짚어 나갔다. 내가 뿌리내릴 곳을 탐구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는 이 없는 땅에서 ‘삶의 처음’에 서 있는 내 모습은 낯설고도 설렜다.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스무 살 무렵의 자유가 겹쳐졌다. 스무 살 때의 자유는 자유라기보다는 오히려 형벌에 가까웠다. 감당할 길 없는 그 막막한 가능성들이라니…. 내 안과 밖 어디에도, 어떤 힘이나 자원도 없이 그저 펼쳐져 있는 삶의 광활함. 그건 어쩌면 절망할 자유, 굶어죽을 자유, 실패할 자유, 폐인이 될 자유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지금의 이 자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는 것에서 스무 살의 자유와 닮았다. 이전의 모든 사회적 역할과 일들을 버리고, 이전의 관계들을 스스로 끊거나 끊어짐을 당하고, 힘겹게 이루어냈던 정체성도 버리고 그냥 맨땅에 서 있다는 점에서 난 가진 게 없었다.

 

그러나 아주 달라져 있기도 했다. 난 오십 여년의 삶을 살아냈다. 그 결과 절망에 이르렀지만 이십대의 선험적/관념적 절망과는 달랐다. 자신을 만나려고 ‘절망’에 이르기까지 나아간 것, 고개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절망을 맞이한 것, 그게 바로 ‘힘’이었다. ‘겪어 낸’ 자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절망해야 할 것’에 절망한 자가 누릴 법한 힘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자유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힘이 생겼다.

 

시골 마을을 순례하다

▶ 서쪽에서 바라본 남산. 용장곡 삼층석탑이 보인다.  ⓒ 김혜련

시내를 벗어난 시골 마을들을 찾아다니는 순례가 시작되었다. 경주를 알고 새로운 땅들을 알게 되는 경험이었다. 좋아하는 장소, 마을과 집이 구체화되어 갔다.

 

경주의 주산은 남산과 토함산이다. 남산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불교 유적이 많은 곳이다. 백여 개가 넘는 절터와 숱한 불상과 탑들… 낮지만 풍요롭고 신성한 산, 화강암이 많은 단단한 돌산이다. 토함산은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산으로 경주 동쪽에 위치해 있다. 남산보다 높은 산이다. 나는 산 아래 나지막한 평원이 펼쳐진 마을에 깃들고 싶었다. 그래서 토함산 쪽과 남산 쪽 마을을 주로 보러 다녔다. 선도산이 있는 ‘서악동’이나 ‘내남’이나 ‘암곡’, ‘율동’ 등을 돌아다녔다. 더 깊은 골짜기인 ‘산내’ 쪽 마을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볕 바른 날 서악마을 쪽에 있는 무열왕릉계의 다섯 개의 능들은 마치 꽃봉우리가 올라온 듯 봉긋하게 빛났다. 그런 날은 내 마음도 봉긋하게 솟았다. 어떤 날은 벌거벗은 아이 엉덩이 같기도 했다. 멀리서 그 궁둥이들을 보며 내 가슴도 어린아이 궁둥이 같이 보드랍고 말랑해졌다.

 

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 점차 윤곽이 드러났다. 유독 마음이 가는 집의 종류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집이어도 새 집에는 끌리지 않았다. 현대식으로 지은 집이나 큰 집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일지 않았다.

 

가슴이 설레고 탄성이 울리는 집들은 언제나 낡고 오래된 집이었다. 나지막한 지붕의 작은 집 마당에 비치는 햇살이 그리 좋았고, 집만큼이나 낡은 흙돌담과 정성스레 손질한 오래된 나무 대문이 좋았다. 그런 집을 멀리서라도 바라보고 온 날이면 가슴이 설레고 또 보고 싶고 했다.

 

우물가 살구나무가 있던 할머니 집의 기억

 

나는 어린 시절 광산촌을 전전하며 자랐다. 고등학교 때까지 광산촌 사택에서 살았다.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긴 막사 같은 집들이 열병하듯 줄줄이 서 있는 곳. 옆집에서 요강에 오줌 누는 소리가 들리고, 자다가 무언가 얼굴을 밟고 지나가서 ‘툭’ 치면 쥐가 달아났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삭막하고 스산한 집. 집이라기보다는 임시병영 같은 곳이었다. 

 

헐벗은 공간이었다. 겨울 밤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릴 듯 태백산 골바람이 불어오면 집들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삐거덕거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 소리에 사로잡히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마을이었다. 유독 낡고 허름한 집,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고 초라한 집에 친밀감을 느끼는 건 그 헐벗은 집들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리라.

 

▶ 오래되고 낡았지만, 단정하고 아름다운 집.    ⓒ 김혜련


사실 집에 대한 깊은 정서는 아주 어린 시절, 초등학교도 가기 전 할머니 집에서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할머니 집은 ‘영월’에서도 좀 더 들어가는 시골 마을에 있었다. 나는 그 집에 대한 강렬한 기억 몇 토막을 지니고 있다.

 

마당 한 곁에 우물이 있고 우물 옆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던 집. 어쩌다 할머니 집에 갔을 때 한 여름에 주홍빛 살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서 있던, 늙은 할머니와 비슷해 보였던 나무. 대청마루에 누워서 올려다본, 어린 눈에 거대하고 조금은 무섭게 보였던 검고 장중한 대들보와 서까래들. 건넌방에서 문을 열면 뒤란의 앵두나무에 애처로울 정도로 다닥다닥 달려있던 빨간 열매들. 안방에서 나던 나무가 탄 메케하면서도 왠지 먹고 싶던 연기 냄새….

 

무엇보다 내 기억 속에 판화처럼 각인된 장면은 부엌이었다. 대낮에도 문을 닫으면 어두컴컴한 부엌의 살짝 열린 문으로 들어온 한 낮의 햇살 한 점, 마치 어둠을 잘 드는 칼로 베어낸 듯 선명하고 날카로운 햇살. 그 햇살이 눈 부셔 찡그린 눈으로 돌아섰을 때 햇살에 반사되어 어룽거리던 뒤꼍의 장독들. 그것들을 보이게 하던 조금 열려진 부엌 장지문의 거칠고 낡은 나무의 검은 뼈대….

 

그 때 부엌의 햇살과 어둠이 만들어내던 깊고 아늑하면서도 찌를 듯한 강렬한 느낌은 내 안에 신화적 공간처럼 신성하고도 모호한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따뜻하면서도 강렬하고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어떤 것, 도무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 공존하는 어떤 강한 느낌.

 

그 기억이 내가 떠돌이 삶을 마치고 집을 다시 사유하게 될 때,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집의 원형처럼 나를 끌어 당겼다. 아니, 집에 대한 나의 감각, 정서는 나 개인의 경험을 떠난 인류의 보편적인 감각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 몸에 수만 년 쌓인 인류의 역사적 감각, 그 까마득한 감각이 아니고서야 내 절실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비어있는 집, 무너지고 황폐화된 시골 동네

 

그러나 시골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경주 시내에서 떨어진 마을들은 그저 시골 마을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시골마을들이 겪어 온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마을들은 쓸쓸하고 황폐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동네에서 느꼈던 안온함과는 거리가 먼 풍경들이었다.

 

▶ 텅 빈 창처럼 비어있는 마을.    ⓒ 김혜련


왜 아니겠는가. 우리의 근대화는 시골의 땅을 없애고 집을 없애고 마을을 없애면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마을이라고 해도 불과 몇 집이 남아 있거나 폐가처럼 비어있는 집들도 많았다. 마을 가운데로 도로가 들어온 곳도 여기저기 있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 옆이나, 마을 한복판으로 시멘트 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시골 마을들은 도로로 초토화된 듯했다.

 

나는 그런 마을을 보면서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바라봤다. 우리나라 굴지의 자동차 기업들과 토건 산업, 국가 권력이 만들어낸 황폐한 삶, 그 끝에 나도 매달려 있었다.

 

찢겨진 비닐 조각이 날리고, 폐휴지가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마을들은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텅 비어 보였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흔적들은 무너지고 사라졌다. ‘시간의 향기’가 평화로이 배어있는 마을을 찾는 일은 쉬울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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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02 [21:32]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16/05/03 [12:55] 수정 삭제  
  곱씹어 읽게 되는 글이에요..
동글이 16/05/04 [09:31] 수정 삭제  
  글쓴이의 다른 글도 찾고 싶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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