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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만덕’에서 부르는 노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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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게는 조용하고, 잘 웃고, 마음을 쨍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 친구 q가 있다. 어느 날 q가 하얗고 말간 얼굴로 다가와서 부탁을 하나 했다. 자신이 마음을 뗄 수가 없는 ‘만덕’이라는 곳에 곧 행정대집행(강제철거)이 있을 거라고 했다. 오랜 싸움 끝에 주민 대표님이 철탑에 올랐고, 응원이 필요한데 혹시 와서 노래할 수 있겠냐고 했다.

 

역시 조용하고, 잘 웃고, 마음을 쨍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는 또 다른 친구 p가 오래 전 부터 재개발을 앞둔 ‘만덕’이라는 곳을 틈틈이 걷고, 조금씩 폐허가 되어가는 그 곳에 남겨진 무언가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려준 적이 있다.

 

▶ 부산 북구 만덕1동 만덕5지구. 주민들은 10여년간 재개발 반대운동을 벌였다.  ⓒ촬영: 장영식

 

‘행정대집행’. 강정을 통해서 피부로 느끼게 된 그 단어를 다시 만덕에서 듣게 되었다. 단 하루,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드리고 집회에 나갔을 뿐인데, 다섯 명의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그 기억! 나는 무서웠고 눈물이 났는데, 강단 있게 경찰과 대치하던 친구들은 평소 내가 보던 모습과 달랐다. 그때 나는 겁에 질려 눈앞의 경찰을 두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내 노래는 그곳에서 아무런 힘이 없었다.

 

친구가 다가와 내게 부탁했을 때는, 마침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2번)였던 이계삼 선생님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하는 글을 읽었던 차였다. 정치공학은 머리가 아프지만, 정치가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이라면 친구의 손을 잡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무력한 내 노래에 대한 기억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도 친구의 손을 잡고 싶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만덕에서 열린 집회에 갔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여기저기서 만났던 반가운 얼굴들이 보여서 인사를 했다. 기타가방을 메고 가긴 했지만, 역시 이런 묵직한 분위기에서는 기타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q가 내게 다가와, 소담히 모여 노래를 부를 시간을 정하자 해서 날짜를 잡았다.

 

어느새 서로 기대며 작은 무리가 되어있는 친구들과 언덕을 내려가는데, 철탑 위의 만덕주민공동체 최수영 대표님이 손을 흔들어 고맙다 인사를 했다. 멀리서도 미소가 보였다. 한 사람이 우주만큼 소중하다는 얘기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이지만, 한 우주가 손을 흔들고 웃었다.

 

▶ 강제철거를 막으려, 4월 13일 주민사랑방 옥상 철탑망루에 오른 만덕주민공동체 최수영 대표.  ⓒ촬영: 장영식

 

만덕5지구, 재개발에 쫓겨 온 사람들이 자리잡은 터

 

부산 북구 만덕1동, 만덕5지구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래전 다른 재개발에 쫓겨 온 사람들이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했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스스로 집을 지어 올려 남향의 언덕에 ‘대추나무골’이라는 이름의 예쁜 마을이 만들어졌다. 이미 만덕은 고층아파트들로 가득해서 이 마을의 작은 집들은 더욱 예뻐 보였다고 했다.

 

내가 뒤늦게 찾아간 만덕5지구는 이미 대부분의 건물들이 부서진 폐허의 상태였다. 부산시는 2005년 이곳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한 이후 2007년 LH를 사업시행자로 선정해 재개발 사업을 진행해왔다. 10여년의 재개발 반대운동 끝에 대부분의 주민이 떠났다. 열 가구 정도 남아서 계속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것이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주거권 요구를 하면, 언론은 주민이 보상금을 더 받고 싶어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몰아가곤 한다. 하지만 전국의 수많은 재개발 바람에,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정착할 수 있는 주민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더 외진 곳으로, 더 땅값이 싼 곳으로, 조용히 떠나갔을 것이다.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을 빼앗긴 자리마다 비슷비슷한 커다란 아파트가 들어선다.

 

한 사람의 주거권이 소중히 여겨지는 세상

 

▶  만덕사랑방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이내   ⓒ촬영: 장영식

4월 20일 늦은 6시, 만덕사랑방 앞에서 열린 작은 콘서트에서 조용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불러 무엇 하나 자꾸 힘이 빠지고 부끄러워졌다. 내 노래들은 쉽게 빼앗기고야 마는 작은 시간과 기억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까. 노래가 끝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q가 준비한 <주거권 선언>(인권단체, 시민단체들이 2008년 세계 주거의 날을 기념해 발표한 선언)을 낭독했다.

 

한 사람의 주거권도 소중히 여겨지는 세상이 된다면 내 노래에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주거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마을 구석구석에 마음을 담은 문장을 썼다. 그리고 농성장에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었다. 여러 모양의 집회가 계속되고, 사람들이 시간을 정해 철탑 아래에서 응원이 끊이지 않도록 한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어 상황을 알린다.

 

나는 만덕에 다녀온 이후로 공연 중에 만덕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렇게 모아진 작은 힘들이 서로 모여 조금씩 큰 힘이 되어 ‘한 사람의 주거권’을 지킬 수 있게 되길 바라며.

 

<2008 주거권 선언>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밝히는 권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던 땅이나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을 때까지 살 권리가 있다.
2. 모든 사람은 적정 수준의 주거비 부담으로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3.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 상관없이 적당한 수준의 집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건강을 해치지 않을 쾌적한 주거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5. 모든 사람은 각종 시설들을 이용하기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6. 임대아파트나 비닐하우스촌, 쪽방 등에 산다는 이유로, 혹은 집이 없어 거리에서 잔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국적, 인종, 성별, 장애, 나이, 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집을 구하거나 집에서 살아가는 데에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7. 살만한 집에 살 권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는 마구잡이 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
8.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및 주택정책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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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09 [10:38]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stew 16/05/09 [22:33] 수정 삭제  
  가슴아프네요. 정착을 못하게 하는. 선주민 밀어내기. 언제까지 이러려나요. 만덕사랑방 앞에서 이내씨가 부르는 노래를 상상으로 들어봅니다. 주거권선언도 소리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이나 16/05/10 [06:25] 수정 삭제  
  알박기 그만하고, 빨리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져야하는 의견이 더많습니다. 먼저 나간 원주민들이 더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소수를 위해 다수가 배려할수있지만 소수때문에 다수가 피해를 보는것이 더 비극입니다. "모든사람은 더 좋으집에서 거주할수 있는 소망을 가질수 있다"
고운 16/05/10 [10:36] 수정 삭제  
  이나님, 혹시 먼저 나간 원주민분 이신지요? 그럼 어떤 피해를 보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지요? 입주가 늦어지는 것은 단순히 저 분들 책임은 아닌것으로 아는데요.. L.H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이유로 공사를 지연시켜 왔잖아요? 저분들이 먼저나간 남들을 대신해 험난한 싸움을 한 덕에 이 사업의 문제점을 널리 알려내고, 보상가와 분양가가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알려내고 있는데요. 그런 결과로 특별분양가 할인에도 영향을 주고있단 생각은 안 드시는지?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hachol 16/05/11 [11:48] 수정 삭제  
  한국은 이제 정착민이라는 개념 저체가 사라질 위기인것 같습니다. 개발개발 고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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