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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더 아프게 만드는 ‘질병 낙인’
<반다의 질병 관통기> 잘못 살아온 결과라는 징벌서사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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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칼럼에 인용된 사례는 모두 사전 동의를 받았습니다.

 

암에 걸린 것이 왜 창피한 일이라고 느꼈을까?

 

▶환자들은 질병뿐 아니라 질병 낙인으로부터도 고통받는다.

“유방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병원 옥상에 올라가고 싶었어요. 가서 딱 뛰어내리고 싶더라구요. 너무 창피해서, 남 보기 부끄러워서.”

 

염색약을 밀어 올린 흰머리가 소복한 그녀는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암 진단 직후 수술을 했고, 2년간 항암을 했으며, 10년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남편과 자식들을 제외하곤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자신이 암 환자였다는 걸 모른다고 했다. 남한테 얘기하는 건 여기가 처음이라면서.

 

얼마 전 한 여성단체가 주최한 암환자 캠프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참가자 한 분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 시간은 질병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였고, 나는 각자의 경험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분이 꺼내 놓은 얘기 앞에서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어설픈 말로 그 이야기에 토를 달고 싶지 않았다.

 

암에 걸린 게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는 사람은 만나 본적 없었고, 들은 적도 없었다. 그 얘기 자체가 내겐 충격이었다. 그분이 질병을 치료하는 것 이외에도 암 환자라는 사실 자체로 무척이나 맘 고생했을 긴 시간이 짐작돼 답답함이 올라왔다. 마음 속 깊은 그 낙인이 어디서 연유하게 된 건지 누가 찾아낼 수 있을까.

 

쉬는 시간에 그분은 나에게 찾아와 질문을 건넸다. 창피하지 않냐고, 심지어 나이도 젊어 보이는 데 아팠다는 게 부끄럽지 않은지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함과 호기심을 담은 눈빛이었다. 나는 부끄럽거나 창피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솔직한 답변을 드렸다. 그분은 갸우뚱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불쾌한 표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그분 눈에는 자신과 달리 질병 경험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니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 것 같다. 자신처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뻔뻔해 보였거나 억울하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왜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던 걸까?

 

‘잘못 살아온 탓’이라는 징벌서사들

 

어릴 적 옆 동네에서 굿이 벌어진 적 있었다. 동네 어른 말로는 그 집 아이가 많이 아팠고, 병원을 돌아다녀도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영험한 점쟁이가 일러주길, 집안에서 조상신을 제대로 모시지 않아서 그 벌로 노한 혼령이 아이에게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굿은 그 혼령을 달래서 떠나보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다.


현대의학에 익숙한 우리에겐 황당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잘못 살아온 결과로 질병을 얻었다’는 징벌 서사는 흔하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썼다는 <일리아스>에도 “누가 이런 불행을 가져다준 것인가? 그것은 아폴론 신이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사제 크리세스에게 불경한 것에 대해 분노하여 경고의 뜻으로 역병(疫病)을 보냈던 것”이라고 쓰여 있다.

 

▶ Apollo and Diana Attacking the Children of Niobe ⓒ출처: DMA(Dallas Museum Of Art) dma.org

 

종교에서도 이런 은유와 상징은 흔하다. 불교에서는 질병을 인과응보 논리로 전생의 업보에 의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불교 경전인 <법화경>에는 “과거의 악행에 의해 병이 생긴 것”이라고 쓰여 있다. 기독교 <성경>에도 “주의 분노로 내 몸이 병들었고 나의 죄 때문에 내 뼈가 성한 곳이 없다(시편)”, “이제는 병이 다 나았으니 더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요한복음)”고 쓰여 있다. 여전히 일부 절이나 기도원 등에서 질병 치료를 위해 참회와 회계를 포함한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그러니 질병에 대한 종교 경전의 내용이 과거의 일일 뿐이라거나, 은유나 상징에 불과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것 같다.

 

과거 신과 종교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의 대부분은 이제 과학이 자리하게 됐고, 질병에 대해서 ‘신의 뜻’이라는 말보다는 ‘과학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질병은 잘못 살아온 결과라는 징벌 서사는 동일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신이 입혀준 성스러운 옷 대신 과학이 입혀준 하얀 가운을 입고 변주된 서사를 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암에 잘 걸리는 성격 유형을 꼽아서 화제가 되었다. 첫 번째로 꼽은 유형은 일중독에 걸린 사람이었다. 퇴근한 후에도 업무 걱정을 하고 일이 너무 많아 휴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 휴식을 취하면 안절부절 못하고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들어놓는 사람이 이에 속한고 한다.

 

두 번째는 완벽주의적 강박형 인간이었다. 책을 읽을 때 이미 읽은 부분을 다시 확인한다든지, 가스나 전등불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사람, 자다가도 일어나 정리하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고 한다.

 

세 번째는 힘들어도 참기만 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을 꼽았다. 다른 사람 부탁을 거절한 후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 다른 사람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거짓말 하는 사람이 이에 포함되었다.

 

▶ SBS <자기야-백년손님> 167회 (2013년 1월 10일) 방송 캡쳐.

 

이런 주장은 스트레스가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들을 떠올려 볼 때 설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성격을 가지고 살아온 결과로 암이라는 재앙적 질병이 왔다는 주장과 맥을 함께한다. 이런 관점은 질병의 원인이 환자의 성격에 있으며, 그 성격을 교화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결국 질병은 또 개인의 문제가 되고, 잘못 살아온 본인이 감수하고 변화시켜야 할 영역이 되는 것이다.

 

위의 방송 내용을 다시 생각하다 보니 조금 화가 난다. OECD 가입국 중 노동시간 1위에 산업재해 1위인 한국의 노동환경에서, 주말에도 업무를 생각하고 완벽하게 일하려는 노력하는 게 개인의 성격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또 여성의 상당수가 텔레마케터나 백화점 판매직 등 감정노동 직업군에 속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직장이나 집에서 상당한 감정노동을 요구받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서 질병을 예방하라고 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암에 잘 걸린다는 위의 세 가지 성격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구성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휴일에도 업무 리스트를 정리하지 않으면 업무를 다 소화할 수 없고, 강도 높은 노동이 당연시 되는 직장 구조가 만연해 있다. 두 번째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강박적 경쟁 사회는 완벽주의자가 되라고,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란 그런 것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세 번째는 당연한 자기주장과 의사표현을 하는 여성을 이기적이고 사회생활 못하는 여자라고 몰아붙이는 문화가 있다. 결국 이런 사회 구조와 문화가 개인들에게 암에 잘 걸리는 세 가지 성격을 형성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말이다.

 

위에서 나온 방송 이야기와 그것을 새롭게 구성해 본 이야기는 비슷한 내용인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완전히 다른 얘기다. 질병의 원인이 다르고, 따라서 예방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 주체가 다르다. 방송에 나온 이야기에서 질병의 원인은 개인의 성격이며, 질병 방지를 위해 개인이 성격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그 뒤에 재구성한 이야기에서 질병의 원인은 사회 구조와 문화에 있고, 따라서 변화해야 할 주체도 사회가 된다.

 

낙인이 ‘사실이 아님’을 선고하여 사라지게 하자

 

무엇보다 징벌적 결과로서 질병을 말하는 내용 중 가장 아픈 건 이런 내용이다. 유방암은 사랑받지 못해서 걸리고, 자궁암은 섹스 파트너가 많아서 걸린다는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목소리는 가까운 지인이나 환우회 등에서 드물지만 한 번씩 만나게 된다.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시어머니가 원래 유방암은 수녀들이 많이 걸린다며, 남편이랑 너무 떨어져 살아서 유방암에 걸린 거 아니냐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충고인지 비난인지 모를 그 말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자궁암 진단을 받고서, 예전에 동창회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가족 외에는 병을 숨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동창회에 갔다가 자궁암 투병중인 동창 소식을 들었는데, 사람들이 자궁암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쉽게 걸리는 병이라며, 자궁암 걸린 그 동창이 결혼 후에도 애인을 사귄 적이 있다고 가십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그분은 자궁암 진단을 받고 나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까 봐, 억울하고 화가 나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 징벌적 결과로서 질병을 말하는 ‘질병 낙인’이 사실이 아님을 선고하고 사라지게 해야 한다.

 

유방암은 아직 명확한 원인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수녀들에게 많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임신이나 수유 경험이 많을수록 유방암 발병률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과 연관된다.

 

자궁암의 경우 한국인은 주로 자궁경부암이 걸리는데, 주된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이다. 발병과 관련해서는 16세 이전의 조기 성경험, 출산 횟수가 많을 경우, 본인 혹은 상대방이 성관계를 가진 사람이 여럿인 경우, 경구피임약을 장기 복용한 경우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궁경부암은 소위 ‘정상적’ 상태인 이성애 결혼제도 안에서, 경구피임약을 장기 복용하거나 아이를 여럿 출산한 경험이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자신은 남편과만 성관계를 했지만, 남편이 다수의 사람과 성관계를 했다면 그 과정에서 감염될 수 있고, 발병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비스페놀A는 유방암과 자궁암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스페놀A는 어디서나 주는 종이영수증, 커피전문점의 일회용 컵, 캔음료, 통조림 등 우리가 거의 매일 만나는 물건들에 함유되어 있다. 영수증을 만지거나 해당 용기에 있는 음식물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인체에 유입된다.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상적 행위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유방암이나 자궁암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과학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유방암이나 자궁암엔 은근한 편견 자락이 쉽게 들러붙는다. ‘여성 질환’이라고 불리는 것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이미지가 유독 많이 붙는 것 같다. 질병 앞에서조차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 섹스를 많이 한 ‘비난받을 만한 여성’과 ‘정숙한 여성’을 구분하고 낙인 찍어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은근한 눈빛이나 작은 귓속말을 타고 다니는 ‘질병 낙인’은 항암제 독성보다도 날카로운 말이 되어 환자의 백혈구를 베어버리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막연한, 그리고 익숙한 그 낙인의 내용에 대해서, 생선가시 바르듯 그 허구성을 발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낙인이 사실이 아님을 선고하고 사라지게 하지 않는 한, 낙인은 환자의 삶을 더욱 무겁게 질병을 더욱 아프게 만들어 간다.

 

※ 참고 자료: 서울대병원 홈페이지 의학정보실,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질환백과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이재원 역, 이후, 2002)
   황상익 <역사가 의학을 만났을 때> (푸른역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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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13 [10:02]  최종편집: ⓒ www.ildaro.com
 
맞아요 16/05/13 [20:50] 수정 삭제
  속이 시원하네요. 입주변에 여드름이 잘 나는데 아줌마들이 자궁이 안좋으면 입 주변에 여드름이 난다면서 "처녀가 자궁 안 좋을 일이 뭐가 있냐"고 눈 흘기던 게 생각납니다.
바라스타 16/05/17 [18:31] 수정 삭제
  의사조차 성적 편견을 가지고 얘기하는 걸 보구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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