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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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삶의 ‘물리적 조건’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어떤 동네를 원해?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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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집보다 마을이 먼저였다

 

마을이 괜찮다 싶으면 집이 없고, 집이 괜찮으면 마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한동안 겉모습에 마음이 혹(惑)했던 집이 있었다. ‘내남’ 쪽에 있는 낡은 한옥을 개조한 집이었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는 수백 년은 됐을 듯 거대했다. 그 아래 평상에서 할머니들이 나물을 다듬으며 한담을 하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몽환적이었다. 집은 주인이 옷을 만드는 장인이라, 아름답게 잘 고쳐놓았다. 낡았지만 고운 자태였다.

 

그러나 마을 안은 어수선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점도 그랬지만 마을 자체의 놓임이 후미지고 어두웠다. 게다가 그 집은 마을의 수로가 지나가는 맨 끝에 있었다. 집 옆으로는 개울이 있고 뒤 쪽은 집보다 높은 논이 있다. 삼 면이 물이었다. 습할 것이다.

 

▶ 내남 노곡리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   ⓒ 김혜련

 

집 자체는 마음에 쏙 드는데 마을과 집의 위치가 문제였다. 마치 결혼 상대가 외모는 준수한데 성격에 문제가 있고 부모나 집안사람들이 별로 탐탁하지 않은 상황 같았다. 저절로 실소(失笑)가 나왔다. 나는 언젠가부터 ‘왜 이혼을 했냐?’는 질문에 “외모에 반해 한 결혼이었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말하게 됐는데, 그 격이었다.

 

몇 번이고 그 집을 보러 갔다.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보고, 몰래 훔쳐보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아침 햇살 속에서 눈부셔 하며 보고, 석양빛에 고즈넉이 잠겨 있는 자태도 보고… 그러다가 마음을 접었다. 또 다시 외모에 빠져 인생을 그르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오십이 넘지 않았는가. 젊은 날의 실수는 삶의 자원이 될 수도 있지만 오십 대의 실수는 치명적이다.

 

이래저래 집 찾기가 쉽지 않았다. 원칙을 세워야 했다. 집보다 마을이 우선이었다. 아무리 집이 마음에 들어도 마을이 편안하지 않으면 그 마을에 있는 집이 안온하기는 어렵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마을을 원해?”

 

“음…. 오래된 마을이기를 원해. 깊은 시간이 쌓인 곳, 그 시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길 바래. 산책을 할 수 있어야 해.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너른 벌판과 낮은 구릉 같은 산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여자 혼자 살아도 안전한 곳, 사람 사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마을.”

 

나는 오래된 마을의 품속에 안기고 싶었다. 수십 년 도시의 삶에서 지치고 황량해진 몸과 마음을 편안히 눕힐 수 있는, 목화솜 이불처럼 두터운 시공간을 원했다.

 

산책할 수 있는 마을, 온기가 있는 마을

 

지리산에서 사년 여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했다. 그 산책의 시간들이 내 몸에는 명상과 기쁨의 시간으로 쌓여 있다. 산책하면서 늘 그 자리에서 만났던 사물들, 계절 따라 달라지는 나무와 꽃들, 새와 짐승들…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으로 “지금 뭐하는 거죠?” 묻듯 고개를 갸웃한 채 바라보던 아기 염소들. 봄에 계곡 가던 길에 갓 세수한 얼굴로 청초하게 피어나던 돌배나무의 흰 꽃들, 겨울 밤 하늘 가득 빛나던 차가운 별들….

 

산책은 삶을 누리는 의식 같은 거였다.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서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산책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난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산책을 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 용장리에 있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집.    ⓒ 김혜련

 

그리고 혼자 사는 여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이어야 했다. 가끔 시골에 들어간 독신 여성들이 마을에서 얼마 살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자면 너무 외지거나, 배타적이고 안정감 없는 마을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전하게 혼자 살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훈기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이어야 했다.

 

그런 원칙을 가지고 마을들을 따져봤다. 내가 좋아하는 남산 아래 마을 중 서남산의 ‘용장리’는 경주 최고의 땅이라고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동남산 쪽 ‘남산마을’은 오래된 유구함이 저절로 드러나는, 품격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두 마을 다 <벼룩시장>이나 <교차로> 같은 생활지에서 ‘촌집’이라고 나오는 낡고 오래된 집들이 있었다. 당시 일기를 보면 ‘용장리’ 마을에 대한 나의 느낌이 나온다.

 

<‘용장리’를 돌아보다.
 참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햇살 가득한 마당, 오래된 가옥.
 저런 땅에서 나도 낡은 집처럼 늙어가고 싶다.

 

 세월이 흐를수록 낡고 정겨워지는 집처럼,
 나도 그런 늙음을 맞이하고 싶다.> (2008년 가을)

 

용장리와 남산마을, 이 두 곳 중에서 집을 찾자.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용장리 마을과 남산마을을 둘러보니 두 마을의 차이가 드러났다. 용장리는 아름다운 골짜기지만 골짜기가 깊으니 땅의 폭이 좁았다. 넉넉한 느낌의 마을이 아니었다. 산자락을 끼고 길게 늘어선 집들이래야 몇 채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내 마음에 드는 양지 바른 낡은 집은 주인이 팔려고 하는 집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상업화가 진행되어 가는 중이었다. 집 장사들이 한옥도 양옥도 아닌 집들을 짓고 있었다.

 

▶ 서출지. 남산마을에 있는 연못. <삼국유사>에 나온다. 누각은 조선시대의 정자 ‘이요당’이다.  ⓒ 김혜련

 

그에 비해 동남산 쪽 마을은 남산 아래 칠십 여 호가 있는 넉넉하고 큰 마을이다. 마을 입구엔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름다운 연못 서출지(書出地)가 있다. 마을 중간과 끝엔 신라 시대의 절 터였음을 알리는 ‘삼층 쌍 탑’들이 서 있다. 넓게 펼쳐진 논 쪽에서 바라보면 남산은 연꽃 같고, 그 속에 마을은 평안히 안겨 있다.

 

오래된 마을이 주는 안정감, 쌓인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마을이다. 낮고 단단한 기와집, 작은 ‘촌집’들이 넓은 산자락에 여유 있게 모여 있다. 누가 봐도 한 번 쯤 살고 싶어지는 곳이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도 발굴되었다고 하니,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적합한 안온한 땅이었나 보다.

 

남산마을을 걸으며

 

“이 빨간 색이 뭘 뜻하는 거죠?”
“유물 보전 지역 표시입니다. 남산마을에 집을 지으려면 제한이 많습니다.”

 

시청 문화재보호과에 가보니 남산마을은 지도에 온통 빨간 색으로 칠해져 있다. ‘유물 보전 지역’이라는 표시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신라시대에 수많은 절들이 들어서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신라시대 고유의 양식인 ‘삼층 쌍 탑’이 두 군데나 남아 있고, 서출지를 비롯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유적, 유물들이 남아 있다. ‘양피못’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연못, 염불을 구성지게 잘하는 스님이 살아서 염불사(念佛寺)라고 이름 붙은 절터도 있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는 영혼의 거장들이라 할 만한 인물들의 스펙터클한 ‘퍼포먼스’와 신기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그 오래고 풍성한 책 속 드라마에 나오는 장소가 바로 이곳에 버젓이 제 실체를 가지고 살아있다니… 역사 속의 장소에 서 있는 이 느낌이라니! 나도 일연 스님에게 전염되어 스스로 장엄하고, 아이처럼 마냥 유쾌하고 신이 났다.

 

▶ 양피못. <삼국유사>에 나오는 양피못과 같은 못이라고 알려져 있다.   ⓒ 김혜련

 

이 아름다운 마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유물보전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 마을에 집을 지으려면 제한이 많다. 일단 땅을 파서 유물이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발굴 조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단층일 것, 기와로 지붕을 올릴 것.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 마음대로 높은 집을 올리거나 마구 건물을 지어댈 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산마을의 산책 코스는 다양하고 풍부하다. 마을을 둘러싼 너른 들, 봄여름가을 벼들이 자라고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다. 마을 안쪽으로만 걸어도 삼십 분은 넘는 큰 마을이니, 사람들이 사는 다사로운 모습을 보며 한가히 걸을 수 있다.

 

그리고 남산으로 향하는 가늘고 작은 숱한 길들이 마을과 이어져 있다. ‘칠불암’ 올라가는 길, 약수터 가는 길, ‘정강 왕릉’과 ‘헌강 왕릉’으로 이어진 소나무와 진달래 가득한 오솔길, 조금 더 걸어가면 수만 평의 땅에 나무와 풀, 꽃들이 우거진 산림연구원, 그 옆 갯마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잘 생긴 신라 불상이 있는 ‘보리사’, 사면(四面) 모두에 불상(佛像)과 비천상(飛天像)이 새겨진 ‘부처 바위’가 있는 탑곡(塔谷), 일명 ‘할매부처’로 불리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이 있는 불곡(佛谷)…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찾는 건 삶의 황량함을 품어줄 ‘구체적/물질적 조건’이었다. 바로 그 마을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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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16 [09:40]  최종편집: ⓒ 일다
 
C 16/05/21 [17:46] 수정 삭제  
  내가 사는 동네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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