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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계속되는 영향들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⑩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하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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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짊어지고 국경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삶의 변화와 사회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천해가는 여정이 전개됩니다. –편집자 주

 

심리치료사와 환자의 관계

 

이번 주 치료사 베아트리체와의 면담은 걱정했던 것보다 순조롭게 끝났다. 나는 그녀의 판단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 딴지를 걸 목적으로 질문 목록까지 미리 만들어 갔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했었다.

 

좀 우습게 들리지만 내담자(환자)도 치료사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우선,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친한 친구도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사이란 걸 생각해보면 잦은 만남 아닌가. 또 눈 깜짝할 새에 문진이 끝나버리고 기계적으로 약을 처방해주는 다른 병원 면담과는 다르게, 평생 누구에게도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적 교류가 많이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심리치료사와 환자가 사적인 관계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것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있는 좋은 관계.

 

그러니 아무리 내가 ‘의료 서비스’를 받으러 온 입장이라도 그 사람에게 타격이 될 만한 발언을 할까 봐 조심스럽고, 그녀가 오늘따라 피곤해보이진 않는지, 내가 배려해줄 건 없는지 마음이 쓰인다. 이건 꼭 내 오지랖이 넓어서는 아니다. 심리치료를 받는 지인들이 털어놓기를, 그들도 사실은 묻고 싶은 것, 특히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차마 말을 못 꺼내거나, 대화를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치료사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답변하는 경우가 왕왕 있단다.

 

아무튼 이번 면담은 한 달여 간의 휴지기를 끝내고 다시 만나 중간 점검 격으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됐다.

 

치료의 원리는 학계에서도 아직 미스터리

 

최면에 걸리거나 꿈을 꾸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 특정 기억이 불러내지고 영화처럼 영상이 흘러간다고 하면, 얼핏 듣기에도 신기하다. 도대체 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을 소개하는 배너.  불안 불면 슬픔과 좌절 등 증상이 열거되어 있고 <트라우마가 눈 안에 있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출처: innercounseling.com

 

아쉽게도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의 원리나 과정은 아직 과학(뇌신경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단다. ‘우연히’ 발견된 이후, 수많은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치료 효과는 인정되어 의료보험료 지급 대상 과목까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과정이 꿈을 꾸는 것과 같지는 않다고 했다. 꿈꾸는 상태인 렘수면에서는 눈동자가 사방으로 움직이므로, 일정하게 양측 자극을 주는 EMDR이 그 상태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요법을 실시할 때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상상이 나타나는지도 물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혹은 트라우마 치료법으로 많이 쓰이는 요법이니 응당 그래야 하지만, 간혹 기억 재처리 영상이 본래 트라우마 기억처럼 부정적으로, 혹은 더 나쁘게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즉각 세션을 중단한다. 이런 부작용 사례는 트라우마를 입은 지 얼마 안 되어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그 사람의 자아가 아직 건강한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준비가 안 된 거라고 본다고 한다.

 

나의 바람과 달리, 내가 떠올린 영상에서 엄마가 아닌 성인이 된 ‘나’가 나타나 어린 시절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속상했는데, 이도 간혹 있는 경우라고 했다. 기억을 재처리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상상이라 해도 내가 인지하고 있는 현실적 제약이 적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제약은 ‘엄마가 나를 도와줄 능력이나 상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성인 ‘나’가 아니라 현재의 친구나 조력자, 다른 어른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우리,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건가요?

 

나는 고분고분한 내담자는 될 수 없는, 매사 비판적이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치료사에게 또 묻는다. “우리 지금 잘하고 있는 거예요?”

 

나: 왜 EMDR요법인지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 유년기의 트라우마는 조용히 묻혀버리기 쉽다.  ⓒ출처: coe.ucsf.edu (캘리포니아 여성건강센터)

베아트리체: 일단 트라우마 기억이 어린 시절에 생겼다는 것에 주목했어요. 어릴 때 겪은 끔찍한 경험들의 공통점은 아이였기 때문에 당사자로서 어떤 대응을 하지 못하고 그냥 고스란히 ‘당해야’ 했다는 거죠. 그러면 그 경험은 제대로 처리가 되지 못하고 남아요. 마치 억울하게 죽으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된다는 속설처럼.

 

또, 아이들은 겉으로는 잘 웃고 우는 것처럼 보여도 자기 감정이나 상태가 어떤지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이 미숙해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그게 외부로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표현하는 게 중요한 건, 힘없는 아이로서 도움이 필요해서예요. OO씨도 경비아저씨 일이 있었을 때 부모님한테 말했다고 했는데, 오히려 충격이 컸기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을 끌 정도로 ‘크게’ 드러내지는 못했을지도 몰라요. 이제 성인이 되어 자기 자신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전에 말했듯이 EMDR 요법은 몸이 함께하는 치료예요. OO씨의 트라우마도 성폭력이라서 이 요법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당장은 어떤 변화를 느끼지 못할지라도 특정 기억과 감정을 떠올릴 때 몸의 자극을 같이 주기 때문에 마음뿐 아니라 몸도 그때 일을 같이 극복할 수 있어요.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신체적 타격을 크게 입은 사람들, 예를 들어 고문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진동 자극은 지나칠 수 있어요. 고문이 단지 추상적 기억이 아니라 몸에도 너무나 큰 부담과 상처로 또렷이 각인되어 있거든요. 그 사람들은 치료할 때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요. 심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죠.

 

‘오늘의 나’는 모자이크 그림과 같다

 

나: 그런데 제가 처음에 찾아온 이유는 삽입섹스에 대한 거부감과 통증 때문이었잖아요. 선생님은 확신이 있으세요? 그 문제랑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성폭력 경험이랑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전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만약에 깊은 연관은 없다면 지금 하는 트라우마 치료가 그 문제에는 도움이 안 될까 봐 답답해요.

 

베아트리체: 사람은 모자이크 그림처럼 수많은 점점의 경험과 요소에 의해서 지금의 모습을 하거든요. 돌 하나 놓이고 그 위에 다음 것이 쌓여나가 성벽이 생기는 것과 비슷해요. 또 모든 것을 빨리 배우고 무섭게 흡수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결정적 사건’이라는 주춧돌이 되기 쉽지요. OO씨의 경우에 첫 번째 성추행 사건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별 반응이 없자 ‘그런 일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고, 두 번째 사건은 아예 알리지도 않았죠. 그 이후에 일어난 힘든 경험이었던 학교에서의 따돌림들도 마찬가지로 혼자서 겪고 지나갔죠. 사건 A와 B의 연관성을 수치화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다 연결이 되어있어요.

 

나: 그런데 학교에서 있었던 따돌림 사건들은 굳이 EMDR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왜냐면 세션 때 하듯이 머릿속에서 기억을 재생시키고 각색하는 작업을 살면서 이미 여러 번 했었거든요. 왜 내가 그때 다르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걔들의 유치하고 비겁한 행동에 왜 좀 더 큰소리로 맞서지 않았을까, 너무 후회가 되고 억울해서 수없이 되감기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미련이 안 남아요. 지금도 큰 집단은 좀 불편하지만, 나한테 맞는 관계 맺는 방식을 이제는 터득했죠.

 

베아트리체: 그러네요. 그럼 안 하고 넘어가도 되겠어요. 초반에 우리가 트라우마 기억 찾을 때 작성한 도표에도 학교에서 겪었던 따돌림의 경험들에 대해 ‘지금 느끼는 고통의 강도’를 6점(10점 만점) 정도로 낮게 표시를 했네요.

 

▶ 고통의 강도를 수치화할 때 쓰는 감정직선.   ⓒ 하리타


트라우마의 증상…차마 말하지 못한 내 편견

 

트라우마, 정신적 외상의 사전적 정의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경험’,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거나 신체적 상해를 입은 이후에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정신적인 쇼크’이다. 나는 다행히 아주 심각한 증상(해리 현상, 공황발작, 환청, 기억력 저하 등)을 겪지는 않았지만, 주된 증상이라는 ‘사건의 재경험, 사건과 관련된 상황 및 자극을 회피하는 행동’에는 해당이 된다. 치료사와 나는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이러한 증상에 초점 맞추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트라우마의 계속되는 영향 중 한 가지는, 이번 면담에서 갑자기 ‘발견’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작업복 남자 공포증’이 있다. 굳이 ‘고백’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이어지는 이야기가 대단히 부적절한 일반화이자 편견으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칭하는 작업복 남자란, 인터넷기사나 수도 보일러 등 각종 A/S기사, 건물 관리인 등 유니폼을 겸한 작업복을 입고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드나드는 남자들이다. 대체로 체격이 좋은 편이고,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은 아니며, 말씨나 행동거지가 거칠고 투박한 경우가 많다. 나는 그들을 경계하며 그들 앞에서 몸과 마음이 경직되고 불안해진다. 그래, 인정하자. 나는 그런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차마 쓰기가 싫었다. 그럼 왜? 왜냐는 질문에 겨우 논리를 동원해 비논리적인 두려움을 설명하자면, 나는 그들을 (성)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로 느낀다. 생각하는 게 아니고 느낀다.

 

▶ '작업복남자 공포증' 스위치가 되는 작업복.  ⓒ출처: 옥션

며칠 전, 우리 집 화재경보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건물관리인에게 방문 신청을 했더니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벨이 울렸다. 예상치 못한 시각이었지만 내가 불러서 이미 온 사람을 거절할 수 없어 문을 열고 맞이했다. 관리인 두 사람이 함께 와서 10분쯤 머물다 갔다. 그 동안 나는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저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면 어떡하지. 그냥 대문을 열어놓을까. 내 복장도 살폈다. 자다 일어나서 짧은 추리닝과 셔츠 차림이라 신경이 쓰였다. 이런 모습 때문에 타깃이 되지 않을까. 이건 성폭력을 염려해야 하는 여성들의 전형적인 자기검열이다.

 

그들이 나가고 나니까 비로소 다시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반응이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다. 나는 오랜 세월 늘 그래왔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다 이렇게 느끼겠지, 간혹 뉴스나 영화에 나오는 범죄를 보고 생긴 불안이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면담 중 순식간에 찾아든 의혹을 부인할 수 없었다. 혹시, 혹시. 그 남자 때문은 아닐까. 군청색 관리사무소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그 남자. 금니를 번쩍이며 징그런 미소로 사탕을 내밀던 경비아저씨!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트라우마 경험

 

한편, 10살 때 있었던 그 ‘은밀한 성추행’ 사건에서 가해자인 사촌오빠와 대한 나의 감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꼴도 보기 싫고 다 잊고 싶지만, 한편으론 대면해서 꼭 사죄를 받고 싶다’는 모순적인 것이다.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그때 이후로 그 오빠를 세 번 마주쳤다. 그가 오는지 모르고 나갔던 가족모임에서 두 번, 할머니 장례식 때 한 번. 그 외에도 물론 각종 명절과 경조사 등 그를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애써 피해왔다. 구체적으로 그 기억을 떠올리며 피한 적도 있고, 어쩔 때는 무의식적으로 너무나 가기 싫은 마음에 다른 핑계를 댔다가 뒤늦게 그 때문이란 걸 깨닫기도 했다. 심지어 당일 아침 꾀병이 나서 못 가게 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었을 때, 나는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그가 내가 밥 먹고 있는 자리 바로 옆에 다가와 앉아 말을 걸기 시작했다. 때는 내가 대학입학을 앞둔 겨울방학, ‘아가씨’가 된 걸 기념하며 조금씩 멋을 내던 시기였다. 그는 오랜만에 만나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제 딴에는 칭찬을 하며 친한 체를 하는 것이었다. 건성으로 답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밥상을 뒤엎고 큰 소리로 싸움을 걸까. 핑계를 대고 그냥 일어날까. 따로 방에 가서 얘기하자고 할까 등등.

 

그를 볼 일이 거의 없어서 평소 아예 잊고 살았던 나는 기습적으로 닥쳐온 상황에 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일어나 그 자리를 떴다. 그 순간을 모면한 나는 이후에도 고민이 계속됐다. 내가 겨우 묻는 말에 답만 하니까 소극적으로 보였겠지. 내 목소리가 작아서 수줍어하는 줄 알았겠지. 따져야 했는데 바보같이 왜 그 기회를 놓쳤을까. 아니, 걔는 그 때 일을 기억이나 할까? 기억해도 저러면 파렴치한 거고, 기억 못하면 나만 더 억울하다 등등.

 

그 마지막 만남 이후로 아직 그를 본 일이 없지만, 그 사이 나는 페미니스트로 자기 정체화를 했고 이론적으로나 심적으로 훨씬 ‘무장’이 됐다. 종종 그 오빠를 다시 만나면 어떤 판을 펼칠 것인지 시나리오를 써보려 노력하는데, 사실 잘 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그 일과 그 사람을 피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가족이라는 견고한 권력 구조를 넘어설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그 정도는 여자들 누구나 다 겪는다. 그냥 잊어버려라’던 엄마는 내게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나보다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두 자매들이 과연 나랑 같이 싸워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렇게 오래 전 일을 가지고 여성단체의 도움이나 변호사를 동원할 수도 없고. 그냥 나 혼자 그 사람과 얘기해야 할까? 이 사촌오빠의 부모는 내 부모님보다 손위고, 특히 그의 어머니는 기질이 거칠고 공격적인 사람이다. 적반하장으로 내게 더 난리를 칠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내 말을 들으면 분노는 하겠지만 어떤 행동을 취하는 건 반대할 것 같다.

 

이 모든 상황(혹은 상황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냥 나, 여자 한 사람이 참고 넘어가는 게 조용하다는 맥 빠지는 결론을 시사한다. 물론, 이렇게 포기는 안 한다. 내 나름의 시나리오 쓰기,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를 시뮬레이션 하는 일은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그런데 그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서, 그 간의 모든 괴로움이 씻은 듯 사라지고 나는 흔쾌히 그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그저 내 입장에서 소소한 ‘정의의 실현’이지, 사건의 완결이나 치유의 장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또 그 오빠에게만 사과를 받으면 되나? 우리 부모님과도 풀어야 부분들이 있다.

 

나는 아직 용서하지 않았고, 또 못 했다

 

여기서 꼭 짚고 가야할 것이 있다. 내가 그 간 성폭력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야했던 ‘조언’인 “이제 그만 용서해라”에 관한 얘기다. 내게 용서를 권한 사람들의 논지를 종합해보면, 용서는 기능과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스스로를 먼저 용서해야 한다며, 내 손을 부여잡고 ‘넌 잘못한 게 없어. 넌 널 지키려고 최선을 다한 거야’ 하며 셀프용서를 호소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하나는 가해자의 아픔까지 감싸는 포용적 용서다. 간혹 들려오는 얘기-피해자나 그 가족이 수감 중인 가해자나 그 가족을 돌본다는 미담-이 여기 해당된다. 이런 용서가 진짜 가능한 사람들은 범우주적 휴머니스트가 될지 모른다. 불우한 과거사가 있는 범죄자들은 물론 상처 입은 세상사람 모두를 연민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용서와 사랑의 실천에 자기 삶을 던지는 것 말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치유적 용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부정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에 계속하면 자기만 손해고, 용서해야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치유가 빨리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둘 다 내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나는 용서라는 행위, 혹은 심리 상태를 아직 의심한다. 먼저, 사과를 주고받는 사회적 의례로서의 용서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편안한 관계를 복구하기 위한 기능적 측면이 크다. 일단 사과를 하면 가해자는 면죄되고, 사과를 받은 피해자는 마땅히 속이 풀려 더 이상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아야 한다.

 

그럼 반드시 상대방과의 합의를 전제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행하는 용서는 어떤가. 세상에는 ‘나는 용서했다’는 고백과 증언이 많다. 하지만 그 용서들은 종종 내외압에 의해 성급히 추진되었다가 결국 뼈아픈 자기기만(즉, 스스로 이미 용서했다고 믿고 살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서 더 큰 미움과 자책, 혼란에 시달리는 괴로운 상태)으로 귀결되곤 하지 않는가.

 

이와 관련하여 내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된 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다. 싱글맘 이신애(전도연 분)의 아이가 유괴되고 결국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범인은 그녀의 돈을 노린 이웃의 남자로 밝혀진다. 상처로 방황하던 주인공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 이후 신애의 ‘용서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와, 그녀 집에서 죽치고 밤낮으로 열성적으로 기도해주는 형재자매님들에게 감화된 신애는 어느 날 가해자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교도소 면회실 철장을 사이에 두고 신애가 애써 침착하게 ‘당신을 용서하겠다’고 하자, 그 살해범은 성자같은 평온한 미소를 띠며 ‘이미 주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하며 피해자가 주는 어려운 용서의 세례를 깔끔하게 거부한다.

 

▶ 영화 <밀양> 스틸컷. ‘저는 이미 주님께 용서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성자같이 평온한 얼굴의 살해범. 

 

신애는 거기 크나큰 충격을 받고 분노와 고통의 불구덩이로 더 깊이 떨어진다. 한껏 치뜬 눈으로 천정을 노려보며 “보이세요? 지금 보고 있어요?”를 내뱉고 손목을 긋는 그녀의 심정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주님? 당신이 대체 뭔데 왜 내 허락도 없이, 동의도 없이 저 파렴치한 인간을 용서하나. 어떻게 해도 내 아이는 돌아올 수 없고 나는 홀로 내버려져 여전히 고통스러운데, 당신은 왜 이리 빨리, 쉽게 용서를 내리나. 이런 게 당신이 말하는 참된 믿음이고 사랑이라면 난 못하겠으니 차라리 당신 앞에서 죄(자살)를 짓겠어. 자, 이제 날 어떻게 해봐.’

 

용서(for-give)는 누가 주어야 하는가? 누가 언제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너무 쉽게 답을 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 용서하지 않았고, 또 못 했다. 포용을 위해서건 치유를 위해서건.

 

다만 내가 해온 것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분노’였다. 어떤 개인의 악행을 묵과하고 은폐하고 나아가 조장하는 사회 세력과 구조와 생리를 목격하고, 문제 삼고, 기억하는 형태로서의 분노 말이다. 사람들이 내게 말했듯이 그것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동반하기에 지치고 피곤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다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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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18 [11:33]  최종편집: ⓒ 일다
 
하양 16/06/20 [22:15] 수정 삭제  
  심리치료사 분이 설명을 참 잘해주시네요. 신뢰를 갖고 심리치료 해나갈 수 있는 치료사를 만나는 일도 행운 같아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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